우리는 모두 불공평하게 태어났습니다. 누구는 재벌 2세로 태어나고 누구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출발 선상에서 출발하지 못합니다. 다만 사회가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공평한 기회를 줘야 건강한 사회가 됩니다. 그러나 점점 이런 공평함은 사라지고 평범한 사람 대부분은 재벌들을 부러워하면서 삽니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에는 툭하면 재벌 2세들이 나오죠. 그런 백마 탄 왕자들을 우리는 질린다면서 손가락질 하지만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여전히 원하니까 방송국에서도 그런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를 계속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 아닐까요?

뭐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아주 흥미로운 사진작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미징리소스닷컴에서는 부자집에서 태어나서 취미로 사진을 찍던  자크 앙리 라르티그(Jacques-Henri, Lartigue)가 세계적인 사진작가가 된 관한 흥미로운 글이 있네요 이 글을 소개합니다. 

원문 : http://www.imaging-resource.com/news/2013/06/21/jacques-henri-lartigue-youngest-master-photographer-ever-family-photos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크 앙리 라르티그

자크 앙리 라르티크는 좀 독특한 사진작가입니다. 이 분은 정확하게는 사진 작가가 아닌 취미로 사진을 하던 취미 사진가였습니다. 그런데 노년에 그의 사진을 알아본 뉴욕 현대미술관인 모마 큐레이터가 그의 사진을 보고 뛰어난 구도와 역동성과 기록성에 반해서 그 문턱이 높은 모마에서 전시를 하면서 세계적인 사진작가가 되었습니다. 

이런 분이 또 있죠.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의 비비안 마이어와도 비슷하죠. 다른 점이 있다면 비비안 마이어는 자신의 사진전을 보지 못하고 죽었고 자크 앙리 라르티그는 노년에 사진작가의 명성까지 후하게 즐기고 돌아가셨습니다. 

또 다른 점이 있는데 비비안 마이어는 평생 유모로 일하면서 노년에는 쓰레기통을 뒤적이는 쓸쓸한 노년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자크 앙리 라르티그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고 평생 돈 걱정 없이 살았던 분입니다.



1894년 6월에 태어난 자크 앙리 라르티그는 아주 작고 여린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태어나보니 아버지가 큰 부자였습니다. 아버지는 자동차광이자 비행광이었습니다. 여기에 진귀한 발명품을 직접 만들거나 수집했습니다. 



이 집안 자체가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형은 이상한 발명품을 만들었고 삼촌은 미친 듯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여자 사촌은 으스스하게 어두운 면이 있었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이 집안의 내력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저 시대에 저런 발명품을 가지고 놀기 쉽지 않죠

아버지는 사진에 대한 관심도 많았는데 6살의 어린 자크 앙리 라르티그에게 사진을 가르쳤습니다. 자크 앙리 라르티그는 사진에 대한 열정이 높았고 이를 지켜 본 아버지는 8살이 된 라르티그에게 나무로 만든 유리판을 이용한 카메라를 사줍니다. 이후 라르티그는 이 카메라로 이 에너지 넘치는 가족들을 촬영하기 시작합니다. 



자크 앙리 라르티그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전 사진기자인줄 알았습니다. 위 사진처럼  보기 드문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기자 아니고서는 찍기 힘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20세기 초 사진기자나 기록사진가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알아보니 이 사진들 모두 자크 앙리 라르티그가 자기 가족을 찍은 무척 사적인 사진입니다. 부자 집안이기에 가능한 고상한(?) 취미였던 것이죠. 이렇게 아마츄어나 프로 사진작가가 감상용이 아닌 개인 소장용으로 가볍게 찍는 스냅사진을 우리는 버내큘러 사진이라고 하죠. 작년에 초대박난 대림미술관의 '라이언 맥길리'의 청춘이라는 사진전의 사진들도 버내큘러 사진이죠. 


자크 앙리 라르티그는 상류층 사회나 당시에는 보기 힘든 다양한 발명품을 타고 있는 흥미로운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게다가 사진들이 다 역동적입니다. 이런 사진은 저 신기하게 생긴 탈 것을 여자분이 타다가 넘어지는 장면을 절묘하게 순간포착 했네요. 

자크 앙리 라르티그는 모험을 좋아하는 집안 사람들을 꼼꼼하게 기록했습니다. 자크 앙리 라르티그는 취미 사진가였지 진지하게 사진을 직업으로 한 사람은 아닙니다. 평생 취미로 삼았습니다. 다만, 찍은 사진을 차곡 차곡 가족 앨범에 담아서 보관을 했습니다.  




자크 앙리 라르티그는 개구쟁이들 같은 가족을 넘어서 20세기 초 벨 에포크 시대의 풍요로움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1차 세계 대전 전까지 세계는 희망찬 미래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르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만들고 에디슨이 전구를 만들고 다지와 벤츠가 자동차를 만들던 시대, 마르코니가 무선 통신을 발명하고 아스피린과 진공청소기가 발명하던 풍요로운 시대를 자크 앙리 라르티그는 카메라에 기록합니다. 



특히 이런 사진에 대한 열정은 아버지가 사준 카메라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자크 앙리 라르티그의 아버지는 비행광이기도 했지만 자동차광을 넘어서 프랑스 그랑프리라는 메이저 자동차 경주에 선수로 출전하기까지 합니다. 
글라이더도 어머니가 직접 바느질을 해서 만들 정도로 온 집안이 특이한 것 새로운 것을 추종했습니다. 




10대가 된 자크 앙리 라르티그는 자신이 찍은 가족 사진 몇 장을 잡지에 판매 했습니만 평생으로 아티스트나 디자이너로 살았습니다. 커가면서 사진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았는데 다양한 종류의 카메라를 구입해서 사용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그가 주로 사용했던 카메라는 롤라이플렉스  35mm 카메라였습니다. 

오토크롬이라는 컬러 사진이 나왔을때도 직접 필름을 구매해서 촬영도 했습니다. 이렇게 가족을 찍은 사진을 담은 앨범은 무려 130권이나 됩니다. 








이 사진들을 1963년 69살이 된 자크 앙리 라르티그가 친구에게 살짝 보여줍니다. 집에 놀러온 친구에게 자신이 찍은 가족 앨범을 보여줬고 이 친구는 이걸 당시 뉴욕현대미술관인 모마의 큐레이터였던 '존 자르코브스키'에서 보여줍니다.

존은 이 사진앨범을 보고 뛰어난 사진에 감탄을 합니다. 존은 발빠르게 '자크 앙리 라르티그'를 모시고 모마에서 사진전시회를 기획합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앨범은 가족만 보는 것을 넘어서 전 세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사진집으로 만들고 잡지에도 소개합니다. 전시회는 무려 10만 명이 오는 대박이 납니다. 

이후 취미 사진가 자크 앙리 라르티그는 사진작가가 됩니다. 그만의 뚜렷한 주관과 기록성과 독특함이 그를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만듭니다. 




이후 그는 유명 사진작가가 됩니다. 1986년 사망한 후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회고전이 열립니다. 2003년에는 프랑스 퐁피드 센터에서 '일생의 앨범'이라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그의 사진들에는 우울함 같은 것은 잘 보이지 않고 항상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진들이 많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행복한 순간에만 사진을 찍었다고요. 이런 그의 주장은 우리가 사진 찍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필름 카메라 시절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사진 찍을 때 졸업식, 소풍, 수학여행,  기념을 할 만한 기쁜 날에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는 아마츄어 사진가가 사진을 찍는 태도이죠. 라르티그가 아마츄어 사진가들과 다른점은 사진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사준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인화를 한 후 그 인화한 사진을 식물표본 처럼 정리하고 텍스트로 그 사진에 대한 부연 설명을 달았습니다. 그렇게 매년 사진 앨범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사진들이 더 매력적인 것은 상류층 사회를 촬영했기 때문이기도 하죠. 부자 아버지 덕분에 상류층 문화와 상류 사회 인물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의뢰를 받고 찍는 상업 사진가가 아닌 구속 받지 않고 그들을 촬영했습니다. 

자꾸 부자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지만 그의 사진이 밝고 자유롭고 화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부자라는 배경이 큰 영향을 줬기 때문입니다. 부자의 진정한 힘은 여유라고 하죠. 수천 만원 짜리 외제차를 리어카를 끌고 가던 노파가 긁었다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닌 그냥 가시라고 할 수 있는 여유. 그게 부자이고 그런 부자라는 여유가 그의 사진을 밝게 만든 것 같네요

더 많은 사진은 그의 홈페이지  http://www.lartigue.org/ 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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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heekeun.blog.me BlogIcon 송휘근 2015.06.12 15: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덕분에 정말 많은 사진작가를 알수있어 너무 영광입니다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