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일요일 한 예능 프로그램은 저조한 시청률을 타파하기 위해서 감동 코드가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합니다. 그 예능 프로그램은 동남아시아의 한 가난한 나라에서 쓰레기 처리장에서 쓰레기 중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이나 종이를 분리해서 근근히 먹고 사는 빈민들을 소개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이런 삶도 있다고 소개를 했습니다.
이 예능 프로그램은 연신 출연자들의 눈물을 보여주면서 참혹하다고 할 정도의 눈물겨운 삶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이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이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기부를 독려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이 마을 사람들을 돕겠다면서 학교도 외식도 목욕도 해보지 못한 빈민가 아이들을 데리고 리조트로 데려가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음식을 먹이고 호텔에서 목욕을 하고 하룻 밤을 재웠습니다.
많은 시청자들은 이 아이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전 그 장면이 좀 불편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지 몰라도 다시 쓰레기 냄새 가득한 집에서 살아야 하는 아이들은 그 리조트에서의 하룻밤을 그리면서 불행해 하지 않을까요? 그게 내내 불편했습니다.
저 같으면 선택된 몇 명의 아이들을 위한 호화로운 리조트에서의 하룻밤 보다는 그 돈으로 마을 주민들을 위한 잔치를 벌여서 온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서 음식을 먹으면서 웃고 떠드는 것이 어땠을까요?
세심하지 못한 예능 프로그램의 구호 활동은 예능 프로그램을 지나서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구호 단체들의 공통적인 고질병이 아닐까요?
구호 활동 현장 비판서 '뚜제체'
<뚜제체>는 구호 활동가인 김여정이 구호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을 적은 구호 활동에 대한 경험담을 녹여낸 책입니다.
저자 김여정은 20대 초반에 영국 유학을 했던 그냥 평범한 유학생이었습니다. 다른 유학생과 다른 점이 있다면 1999년에 유럽연합 소속 비정부기구 일원으로 유엔의 동티모르 독립 투표 선거 상황을 감시하는 현지 활동을 했습니다.
이런 NGO활동은 저자의 성품을 느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한 스펙 쌓기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여러 구호 활동이나 세상을 이롭게 하는 NGO 활동에 대한 거대한 충격을 받게 됩니다. 2004년 서울에서 필리핀 하원 방문단의 통역을 하게 되었는데 이 필리핀 하원 방문단은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로비를 했습니다. 흔한 풍경이죠.
그렇게 저자는 흔한 통역을 해주고 이 일을 잊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2007년 다시 인사동 거리에서 만나게 됩니다.
필리핀 빈민가에서 온 원정 시위대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사라진다면서 한국 차관으로 진행되고 있는 마닐라 철도 건설 공사를 반대하는 시위였습니다. 일본도 현지 주민의 반대의 목소리가 있어서 차관을 제공하지 않은 사업을 한국 정부가 차관을 지원하게 되고 그 차관 때문에 수만 명의 필리핀 빈민들이 삶의 터전에서 쫒겨나게 됩니다. 물론, 피해 보상 같은 것은 차관에 있지도 않고요
자신이 도와준 일로 인해 필리핀 빈민들이 고통 받았다는 사실에 저자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죄책감에 회사를 그만두고 히말라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 히말라야에서 저자는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다가 큰 병에 걸립니다. 사경을 헤매던 저자를 도와준 것은 티벳 난민들이었습니다. 잘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티벳 난민들은 중국의 티벳 탄압을 피해서 히말라야 산을 넘어서 네팔로 피난을 온 사람들입니다.
저자는 7개월동안 티벳 난민촌 포카라에서 머무르면서 티벳 난민의 극진한 도움으로 병이 낳고 이들의 삶을 알게 됩니다.
강대국인 중국 눈치 보면서 세상 어떤 언론도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지 못하는 현실과 이들의 별빛과 같은 순수함을 목격하면서 서서히 몸의 치료를 넘어 마음의 병까지 치료됩니다. 그리고 이들의 순수함에 동화 되어서 다시 세상을 향해 떠납니다.
저자는 티벳에서의 7개월 후에 세상의 고통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소명 의식으로 여기고 빛이 필요로 하는 지구별의 어두운 곳을 찾아 떠납니다. 잠시 한국에 들렸다가 영국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팔레스타인의 고통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인도에 가서 인도의 참혹한 현실을 알게 됩니다.
저자는 인도가 한국의 유명 여행 작가가 묘사한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이자 깨달음의 나라가 아닌 참혹스러운 계급 사회에서 펼쳐지는 인권 유린 현장을 목도합니다. 불가축천민인 인도의 딜리트들은 간이 텐트에서 기거하면서 도로 공사나 공사 현장에서 맨손으로 자갈을 고르고 벽돌을 나르는 아이가 있는 아줌마들의 고행에 가까운 모습을 목도하면서 서서히 비극적인 세상을 알게 됩니다. 왜 남자가 아닌 아내들이 힘든 일을 할까라는 의문은 매년 20만 명의 농부들이 자살을 한다는 소리에 무너집니다. 이런 비극적인 현실을 저자의 인도 친구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대하는 태도에 저자는 분노를 일으킵니다.
요즘 인도에서 들려오는 몰상식한 뉴스를 보면 인도라는 나라는 너무나도 타락한 국가 같습니다. 책을 읽다가 책을 잠시 덮고 긴 한숨을 쉬었습니다. 중국의 티벳에 대한 폭력이나 이스라엘인들의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폭력 그리고 인도의 몰상식한 제도를 보면서 3국가 모두 유고, 기독교, 불교라는 세계적인 종교 발생 국가인데 가장 비종교적인 모습을 보이는 모습에 탁한 물에서 연꽃이 피는건가?라는 생각마저 드네요. 아이로니컬 하게도 3개의 국가 모두 그 국가에서 발생한 종교를 믿지 않고 다른 종교를 믿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인도에도 별과 같이 빛나는 구호활동가들이 있습니다. 이 인도에서 빈민촌 오클라의 백만장자인 산타누를 만나면서 그의 성품과 봉사 활동의 방식을 보면서 초보 구호활동가인 김여정은 하나씩 배워나갑니다.
이후 저자 김여정은 캄보디아에거 구호활동을 합니다. 구호활동 기획을 하면서 뿌듯함을 느끼지만 구호활동 현장은 책상머리와는 많은 부분이 달랐습니다. 구호활동을 하기 위해서 뇌물을 줘야 하는 모습이나 구호활동이 구호활동이 목적이 아닌 선교가 목적인 주객이 전도된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를 들어 MBC 예능이었던 <단비>가 파놓은 우물은 실제로 캄보디아 같이 물이 풍부한 나라에서는 오히려 지하수 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합니다.
캄보디아는 우물이 아니라 주변의 식수원에서 물을 끌어올 수 있는 식수관이 더 필요한데 원조단체들이 우물이 적은 비용으로 후원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업이기에 우후죽순처럼 우물을 팠습니다.
여기에 한국 연예인들이 촬영을 목적으로 하는 쌀 몇 포대와 문구류가 아닌 빈민촌 주민들이 요청하는 것은 공부방과 현지인 교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수헤를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방적 시선으로 먹을 것을 주면 좋아하겠지라고 일방적인 시선으로 구호활동을 합니다. 물론, 그 구호활동 자체에 대한 지적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구호활동 방법이 너무나도 일방적이고 구시대적이라는 것이겠죠.
저자는 이런 구조활동의 부조리함을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이런 현실을 저자는 현장에서 따져 물었지만 거대한 벽을 느끼고 뒤돌아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면서 점점 저자 김여정은 강해지고 효과적인 구조활동 방법을 제시하고 개선하려는 노력들을 하게 됩니다. 이런 글들을 읽으면서 또 한 번의 긴 한숨이 나왔습니다.
보여주기식 행정이 구호활동에서도 재현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구호단체의 구호활동도 현장의 목소리가 묵살되고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게 재단되는 모습이 마음 아프네요. 이런 일은 한국의 구호단체 뿐이 아닐 것입니다. 갑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을을 내려다 보기 때문에 그들를 내려다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을 맞추지 못합니다.
"우리는 현지인들에 비해서 절대로 우월하지 않아요. 가난한 사람들도 생각하고 말할 수 있어요. 그들의 의견도 물어봐요"
마치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에 버터와 식빵을 구호식품으로 주면 제대로 된 구호식품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그런 구호식품을 주면서 빈민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주는 대로 받아야지라는 일방적 시선과 함께 구호현장에서 사진찍기 여념이 없겠죠.
책 <뚜제체>는 저자 김여정이 초보 구호활동가로서 겪은 지난 10년 간의 구호활동 체험기를 적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인도, 티벳 빈민가들의 현실과 목소리와 구호활동의 아쉬움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개인 에세이집 같이 자신의 사랑 이야기와 가족이야기까지 녹여냅니다. 수시로 책을 읽다가 지구별의 아픈 현실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파서 수시로 읽다 말다를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내가 외면했던 또는 몰랐던 비극적인 지구 곳곳의 빈민가 이야기를 저자의 감정이 가득한 글로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 책은 저자가 감정의 과잉 때문에 분석적이라기 보다는 감정이 가득한 일기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조금만 감정을 좀 더 배제하고 그 빈민가의 현실을 좀 더 수치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네요.
예를 들어 티벳과 중국과의 관계를 좀 더 밀도 있게 그려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왜 티벳이 중국으로 부터 탄압을 받고 있고 현재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지에 대한 구체적인 글들이 없습니다. 또한, 책은 전체적으로 시간순으로 적혀 있지만 구체적으로 년도 표기가 없어서 언제 일어난 일인지도 알기 힘듭니다.
이런 아쉬움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세상 어두운 곳에서 촛불 같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구호활동을 하는 밤하늘의 영롱한 별빛 같은 구호활동가의 이야기와 그 구호활동갈ㄹ 통해서 점점 강인해지고 구호활동의 혜안이 늘어가는 저자의 변화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책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뚜제체입니다. 뚜제체는 티벳어로 고맙습니다라는 뜻입니다. 구호활동에 관심 많고 구호활동가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될 책입니다. 책을 읽는데 티벳 빈민가 마을이 있는 네팔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리가 들리네요. 부디 큰 피해가 없었으면 하네요.
네팔의 티벳난민촌인 포카라에 은총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지구라는 음습한 별에 빛을 드리우는 구호활동가들의 거룩함에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서 주관적으로 쓴 책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