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뭐 한국 영화가 딱히 재미있다고 느낄 수 없고 점점 더 활력이 떨어지는 느낌이지만 80년대 한국 영화는 돈이 아까울 정도로 졸작들이 많았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3S(섹스, 스포츠, 스크린)라는 우민화 정책으로 한국 영화는 대부분 성인 영화였고 가끔 만들어지는 청소년 관람가능한 영화도 졸작들이 많았습니다.
이에 반해 할리우드 영화들은 높은 경쟁력 때문인지 대박치는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외하가 할리우드 영화만 있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프랑스 영화와 홍콩 영화가 많이 수입되었습니다. 특히 홍콩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의 대안이었죠. 홍콩 영화는 2가지 부류였습니다. 하나는 성룡이나 이연걸이 나오는 쿵푸영화와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로 대표되는 권총 영화가 있었습니다. 제가 권총 영화라고 하는 이유는 권총이 살상력도 파괴력도 떨어지는데 장총 못지 않게 쏘면 적들이 낙엽처럼 떨어지는 권총질 영화가 선보였습니다.
첩혈쌍웅을 보기 전에 살펴봐야할 영화 '영웅본색'
이 권총질 영화의 시초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크게 히트한 영화는 1986년에 제작 상영된 영웅본색부터입니다.
장르적으로는 홍콩 느와르 영화라고 분리우는데 정확한 용어는 아니지만 보통 그렇게 부릅니다. 갱영화라고 할 수 있는 이 홍콩 느와르는 뒷골목 갱단의 권력다툼과 의리라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기승전의리라고 할 정도로 모든 홍콩 느와르 갱영화가 남자들 사이의 강한 의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게 참 신선했습니다. 보통 청춘영화 또는 젊은 층을 위한 영화는 사탕바림 같은 사랑에 웃고 우는 사랑타령이 많았는데 홍콩 갱영화들은 의리라는 신선한 주제를 잘 포장해서 선보였습니다.
김보성이 의리를 외치는 것이 괜히 외치는 게 아닙니다. 영웅본색을 보고 반해서 영웅본색 한국 판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영웅본색은 종로의 1류 개봉관에서 개봉한 영화가 아닙니다. 변두리 2류 극장인 명화, 화양, 대지 극장에서 상영했다가 대박이 납니다. 보통 2류 개봉관에서 대박이 나기 힘들거든요. 당시만 해도 장국영, 주윤발은 한국에서는 잘 알려진 배우가 아니라서 큰 인기가 없었는데 영화를 본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대박이 납니다. 저는 다행히 담배 냄새 쩌는 노량진 동시개봉관에서 영웅본색을 친구와 봤습니다. 그때의 뜨거움을 잊혀지지 않네요.
영웅본색은 무차별적인 권총 액션이 난무하는 영화입니다. 권총을 쏴도 양손으로 잡고 쏘는 것이 아닌 양 손에 각각 권총을 든 쌍권총 액션이 당시의 청소년과 청년들에게는 그렇게 멋져보였습니다. 여기에 총알 한 방 맞지 않는 할리우드식 액션이 아닌 총알 1,2방 정도는 훈장처럼 몸에 달고 적과 피튀기는 혈전을 벌이는 모습은 너죽고 나죽자 식의 과격한 액션이라서 아주 자극적이었습니다. 여기에 주인공이 또 많이 죽기도 하죠.
이런 핏빛 갱영화를 만든 감독은 오우삼입니다.
오우삼은 영웅본색2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똑같이 생긴 쌍둥이 동생을 내세워서 또 한 번 빅히트를 칩니다. 아마 이 영웅본색2를 국내에서 수입하면서 지금은 사라진 영등포 명화극장에서 주윤발이 내한해서 일대가 미어터졌습니다. 이후 한국CF에도 나오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금의 한류이전에 홍콩 스타들의 공습이 80년대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홍콩 영화 수입도 잘 되지 않는 현실이네요. 그게 다 자기복제를 남발하다가 비슷 비슷한 영화를 계속 만들다 외면을 받게 됩니다.
영웅본색2로 확고히 총격 액션을 잘 찍는 감독으로 인정 받은 오우삼이 1989년 첩혈쌍웅을 연출합니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충무로 골목을 지나는데 첩혈쌍웅 포스터를 보고 보고 싶다는 욕망이 불끈 솟았던 그 기억이요.
흰 양복이 피로 물든 강렬함이 고등학생인 저를 설레게 했을까요? 지금처럼 개봉 영화나 영화를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여서 태어나서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100편도 안 되는 나이라서 그런지 강한 것에 쉽게 끌렸습니다.
다소 유치한 스토리의 유치함을 주윤발이 저격하다
16년 전에 볼때는 못느꼈던 부분이 스토리입니다. 당시는 그렇게 튄다고 느껴지지 않았지만 지금 나이들어서 보니 스토리가 매끄럽지는 못하네요. 이는 제가 그 16년 사이에 본 영화들이 엄청나게 많고 비슷한 스토리가 흐르면 어떤 영화와 비슷한 스토리네라고 하면서 식상해 합니다. 그러나 16년 전에는 많은 영화들을 보지 못해서 첩혈쌍웅의 스토리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안 보신 분들을 위해서 스토리를 적어보겠습니다. 아마 현재의 20대 분들은 본 분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살인청부업자인 아장(주윤발 분)은 돈을 받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냉혈한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지만 마음만은 따뜻합니다. 그날도 의뢰를 받고 한 유흥업소에 가서 쌍권총을 난사하면서 소탕을 합니다. 이때 제니(엽청문 분)라는 가수 눈 앞에서 권총을 쏴서 실명 위기를 만들어 버립니다. 아쏭은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둘러서 제니의 눈을 가려주면서 도와주려고 하지만 킬러이다 보니 자리를 피했습니다.
눈을 크게 다닌 제니는 유흥업소에서 계속 노래를 부르고 죄책감 때문에 아쏭은 제니를 매일 찾아가 지켜봅니다. 그러다 제니가 퇴근 길에 동네 불량배에 해꼬지를 당하자 제니를 구해줍니다. 그렇게 제니는 아장과 친해지게 되고 연인 관계가 됩니다. 물론, 제니는 아장이 자신에게 고통을 준 킬러인지 모릅니다.
이 형사(이수현 분)는 열혈 형사입니다. 무모한 행동일지라도 범인을 끝까지 추격해서 체포하는 유능한 형사입니다. 이 형사는 한 부패한 유력 인사 경호를 맡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유력 인사를 죽이라는 살인 미션이 아장에게 떨어지니다. 10만 달러라는 큰 돈이 걸린 살인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살인청부업을 그만두고 제니와 함께 해외에서 각막 수술을 받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장은 원거리에서 저격용 라이플로 미션을 쉽게 완수합니다. 이를 이 형사과 추격합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입니다. 그런데 돈을 주기로 한 고용주가 10만 달러를 주지 않고 오히려 아장을 죽이기 위해 또 다른 킬러를 고용해서 아장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이를 눈치 챈 아장과 조직간의 치열한 총격전이 일어나고 이 와중에 한 꼬마가 총에 맞아서 다치게 됩니다. 자신 때문에 다친 아이를 안고 자동차로 근처 병원을 가게 되는데 여기까지 이 형사가 쫒아옵니다. 그리고 이 형사는 킬러지만 따스한 성품을 가진 아장에 반하게 됩니다.
이 부분이 16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니 많이 덜컹 거리네요. 이해가 가긴 합니다. 다만 설득이 되지는 않네요.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킬러와 형사의 관계지만 서로가 의리에 목숨까지 거는 열혈남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적에서 덤보와 미키마우스라는 애칭까지 부르면서 친구가 됩니다
형사와 킬러의 우정? 이게 아주 매끄럽지 못하지만 걸려서 넘어질 정도는 아닙니다. 스토리의 약간의 억지스러움이 있긴 하지만 그걸 덮고 남는 매력이 이 영화는 많습니다. 그 첫번 째 장점은 주윤발입니다.
자신이 번 돈 12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고 홍콩 민주화를 지지하고 홍콩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주윤발은 완벽한 미소를 가진 호남입니다. 주윤발은 정말 잘 생겼습니다. 특히 웃을 때의 미소는 같이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여기에 쌍권총을 무차별 적으로 쏠때는 야수와 같습니다. 이런 매력적인 배우 때문에 스토리의 엉성함도 쉽게 넘길 수 있습니다.
하얀 머플러 목에 걸고 쌍건총으로 수십 명을 혼자 소탕하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네요. 이 80년대 액션이라는 것이 할리우드는 자동차 액션과 총을 쏘는 액션이 있었지만 코만도나 람보같이 중화기나 최신 무기를 쏘는 액션배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한국은 김두한 같은 주먹 액션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홍콩 갱 영화는 좀 달랐습니다. 뭔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권총이 주요 무기로 사용합니다. 권총 액션이 많은 이유는 보다 다양한 액션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 같기도 하고 실제 홍콩 갱들이 권총을 애용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홍콩 액션은 권총 액션으로 무장하고 한국 액션 팬들을 홀렸습니다.
권총 액션 명장면이 꽤 많았던 첩혈쌍웅
오우삼 감독은 권총 액션을 참 잘 연출합니다. 영웅본색에서도 화분에 숨겨 놓은 권총을 집어서 쏘는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는 모습은 전매특허입니다. 중요한 총격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면서 긴박감을 극대화 하면서 동시에 주인공의 권총 액션의 세세함을 잘 보여줍니다.
첩혈쌍웅에서는 대규모 총격전이 전반과 후반부에 있습니다. 전반부에서는 올백 머리를 하고 검은 양복을 입고 하얀 머플러로 멋을 낸 주윤발이 베레타 권총 2자루로 적을 무차별로 쏘는 모습은 짜릿합니다. 특히 탁자 위에 있는 권총을 잡기 위해서 탁자를 발로 차서 튀어 오른 권총을 쏘는 장면이나 저격 총을 쏘는 장면, 썬글라스로 숲 속에 있는 적의 저격총의 반사경을 알아내는 장면 등등 리드미컬한 액션 장면이 많습니다.
특히, 쌍권총 액션은 주윤발 액션의 최고봉이었죠. 다만, 너무 화려하게만 그리려고 하다 보니 다소 난잡스럽고 비현실적인 액션이 흠이라면 흡입니다. 예를 들어 적 1명을 죽이는데 과도할 정도로 총알을 쏘는 모습 후에 탄창을 갈지도 않고 20발 이상을 쏘는 모습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16년 전 당시에도 친구와 극장을 나서면서 왜? 홍콩 영화는 탄창을 안갈지?라는 생각을 한참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럼에도 권총을 이용한 화려한 액션은 홍콩 영화의 큰 매력이었습니다. 오히려 영웅본색3에서 M16 소총이 나올 때는 그냥 평범한 액션으로 변했습니다.
이 액션 장면도 16년 전 개봉 당시에는 황홀하게만 봤는데 16년 후 최근에 다시보니 다소 유치하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비현실적인 과시적인 액션은 약간의 실소가 나오기도 하네요. 그럼에도 액션의 창의성은 여전히 좋습니다.
오우삼의 3대 트레이드 마크. 비둘기, 촛불, 의리
낭만 자객? 킬러가 깨끗하다? 상반된 이미지를 오우삼 감독은 참 잘 이용합니다. 살인을 직업으로 삼은 아장은 무고한 아이나 여인이 다치자 목숨까지 걸면서 지켜냅니다. 이런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를 영화에서 참 잘 녹여냅니다.
이런 모습은 영화 마지막 액션 장면에서 나옵니다. 아장과 이 형사가 수십 명의 갱단과 맞서는 장소가 성당입니다. 촛불이 가득 켜진 성당은 성스럽기까지 합니다. 이 성당에서 잔혹한 액션이 펼쳐집니다. 성당이라는 평화의 이미지와 액션을 섞어 버립니다.
그렇다고 '킹스맨'처럼 광신도를 비꼬는 듯한 비판 의식이 있는 것이 아닌 그냥 성당이라는 깨끗한 이미지를 차용할 뿐입니다. 이게 오우삼 감독의 액션의 장점이자 아쉬움입니다. 그냥 아무런 개연성 없이 이미지만 따다가 섞어 버리는 행동을 잘 합니다.
여기에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까지 날아 다니니 두 개의 극과 극의 이미지가 성당이라는 공간에서 섞이면서 묘한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여기에 하얀 양복에 붉은 피가 가득 묻은 양복을 입고 붉은 화염을 내 뿜으며 적들에게 달려가는 모습은 악을 응징하는 천사 같다는 느낌까지 들게 하죠
비둘기와 성당과 촛불은 10년 후인 1997년 미국에 건너가서 연출한 '페이스오프'에서 그대로 자기 복제를 합니다.
오우삼 감독이 미국 진출해서 가장 크게 성공한 영화이기도 하죠. 오우삼 감독 액션은 화려하긴 한데 인위적인 느낌. 그림을 만들기 위한 모습이 보이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입니다. 그러나 총알이 비처럼 쏟아지는 액션 장면, 특히 권총 액션은 이퀄 리브리엄이나 원티드가 나오기 전까지는 가장 볼만 했습니다.
그리고 오우삼 감독 영화의 특징 중 하나이자 80년대 후반 홍콩 액션 영화의 차별성인 의리가 있습니다. 남자들끼리의 진한 의리는 남녀의 사랑타령의 달달함과 다른 끈적끈적함을 줬습니다. 16년 만에 다시 보니 생각보다 이 영화는 명작이라고 하기는 힘드네요.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은유 보다는 너무 이미지들을 도식화 했습니다. 보여주기 위해서 스토리를 엮은 것 같다는 느낌도 강하고요. 그럼에도 액션 장면의 창의성이나 주윤발의 매력은 시간이 많이 흘러도 녹슬지 않네요.
그래서 총격 액션을 좋아하는 20대 분들도 보면 괜찮은 영화입니다. 그리고 당시에도 느꼈지만 여자 배우가 예쁘지 않다는 느낌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한데 당시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노래는 정말 잘 부르고 좋네요. 그러고 보니 당시 홍콩 영화는 주제가들도 참 좋았습니다. 홍콩 영화 수입 될 때 마다 설레였던 그때가 가끔은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