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영화창고

<장수상회>초반엔 지루해서 입이 쏙, 후반엔 감동의 눈물 쏙

by 썬도그 2015. 4. 10.
반응형

김성질로 보일 정도로 한 성질 하는 전형적인 동네 꼰대 할아버지의 모습을 한 김성칠(박근형 분)은 장수상회라는 마트에서 근무를 합니다. 혼자 살기 때문에 혼자 밥을 해 먹고 특별히 친한 이웃도 없습니다. 독거 노인 김성칠에게 남은 것은 성질밖에 없습니다. 

 

가족과의 연락도 끊어졌는지 가족도 없이 장수상회에서 근무하는데 그 성질 때문에 가끔 고객과의 다툼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장수상회의 젊은 사장은 이 김성칠 할아버지를 혼내지 않고 항상 푸근한 미소로 살갑게 대합니다. 그런데 그 웃음에는 꿍꿍이가 있습니다. 그 꿍꿍이란 재개발입니다. 수유동 재개발을 해야 하는데 김성칠 할아버지만이 유일하게 재개발 동의를 하지 않아서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수상회 사장인 장수(조진웅 분)과 세탁소 사장과 중국집 사장과 마을 사람들은 김성칠 할아버지를 구슬려서 재개발에 동의하는 인감도장을 꾹 찍게 만들 작전을 펼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한 성질 하는 김성칠 할아버지의 옆집에 한 노부인 가족이 이사를 옵니다. 김성칠 할아버지는 옆집으로 이사 온 임금님(윤여정 분)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노부인을 좋아하게 됩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해주며 살갑게 대해주는 금님 할머니와 성칠 할아버지는 놀이동산도 가고 저녁 식사 데이트를 하는 등 핑크빛 하루하루를 지냅니다. 

 

영화 초반과 중반은 이런 성칠과 금님 할아버지 할머니의 그레이 로맨스가 잔잔하게 흐르고 그 뒤로 음흉한 그러나 심하지 않은 재개발 계략이 흐릅니다. 영화 <장수상회>는 여러 가지로 의문을 가지고 출발합니다. 김성칠 할아버지가 임금님 할머니를 짝사랑하는 시선은 이해가 가는데 임금님이라는 할머니가 왜 김성칠 할아버지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많이 부족합니다. 또한, 장수상회의 젊은 사장도 직원인 김성칠 할아버지를 잘못이 있어도 크게 혼내지 않으며 항상 챙겨주는 모습이 가족 이상으로 잘해줍니다. 그게 재개발의 동의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이 되긴 하지만 폭압적인 수단도 있지만,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유일하게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는 임금님의 딸인 이혼한 유부녀인 민정(한지민 분)입니다. 민정은 성칠 할아버지에게 이유는 묻지 말고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죠. 영화는 1시간 정도 흐른 후 금님 할머니가 왜 성칠 할아버지를 좋아하는지를 보여주는데 그 이유가 아주 역합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죠. 여기에 금님 할머니는 병이 있는지 자꾸 피를 토합니다.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맑은 캐릭터들과 일방적인 그레이 로맨스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영화 보는 내내 지루했습니다. 강제규 감독의 영화라고 하지만 중국집 이름이 '철가방 휘날리며'라는 것 말고는 강제규 영화라는 느낌도 없습니다. 그냥 전형적인 CJ 표 블링블링한 그레이 로맨스 영화로만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그 흔한 성칠 할아버지나 금님 할머니의 과거 회상 장면도 없습니다. 왜 그 흔하지만, 흥미를 유발하는 강력한 장치인 노인의 과거 회상 장면을 활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하게만 흘러갑니다. 오로지 노인들도 로맨스를 느낄 수 있다는 메시지만 전달한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생각이 가득 차다 보니 '강제규 감독도 이제 끝났구나'라는 생각마저 들게 되네요. 

 

언제 끝나나 시계만 자꾸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끝나기 30분 전에 대반전이 일어납니다. 수많은 반전 영화를 봤지만 이렇게 거대한 반전은 최근에 본 적이 없습니다. 기저효과 때문인지 기대치가 바닥이었다가 반전이 일어나면서 갑자기 스토리와 캐릭터에 대한 제 불만이 모두 봄눈 녹듯 스르르 사라지고 그 녹은 물이 눈물이 되어서 제 눈에서 계속 흘러내렸습니다. 

후반 30분을 위해서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했군요. 그 1시간 30분이 다양하게 치장하고 재미를 넣으려고 노력은 했지만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혹평을 준비하고 있었다가 후반 30분의 반전으로 인해 그 악감정은 호감정으로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변하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이해 안 가던 스토리와 캐릭터 그리고 그냥 별 의미가 없던 장면들이 생명을 얻으면서 눈물의 흐르는 속도를 가속합니다. 인간은 참 간사합니다. 5분 전만 해도 '강제규 감독은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다가 반전이 일어난 후 '역시! 강제규'라는 말을 나지막이 하게 되네요.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단어인 '막 핀 꽃'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봄에 핀 꽃이 가을에 다시 피는 모습이 가끔 보이는데 그런 꽃을 '막 핀 꽃'이라고 합니다. 김성칠 할아버지가 질투심에 화를 내고 동네 창피해서 골목에 숨어 있을 때 금님 할머니가 오해를 풀어주면서 '막핀꽃'을 두 노인이 봅니다. 이 막핀꽃은  이 두 노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네요.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로맨스라는 감정을 느끼는 사랑스러운 두 노인의 사랑 이야기가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비록 몸은 늙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 만큼은 늙지 않음을 넘어서 더 진해진다는 것을 영화 <장수상회>는 관객에게 귓속말로 전해줍니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기대만큼 살지 못하는 대부분의 우리가 부모님 모시고 볼만한 가족영화입니다. 초중반 지루한 스토리에도 꾸역꾸역 보게 만든 박근형과 윤여정이라는 노배우의 사랑스러운 연기에 감사하다는 생각마저 드네요. 

40자평 :  1시간 30분을 기다리면 숙성 된 감동의 30분 동안 흐른다. 

별점 :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