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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변요한 보러 갔다가 별 4개를 준 영화 소셜포비아

by 썬도그 2015.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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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개봉영화도 볼 영화도 꽤 많습니다. 그중 으뜸인 영화는 위플래쉬입니다. 그러나 전 위플래쉬를 시사회로 봐서 다른 영화를 골랐습니다. 채피라는 영화는 주말에 볼 예정이라서 뒤로 밀어 놓았습니다. 순수의 시대는 악평이 많고 드래곤 블레이드는 시대착오적인 영화 같아서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뭘 볼까 하다 고른 것이 '소셜포비아'입니다

소설포비아를 선택한 이유는 오로지 변요한 때문입니다. 아시죠. 미생의 개벽이라는 별명을 가진 한석율을 연기한 배우요. 이름보다 한석율이 더 먼저 떠오르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소셜포비아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 프로젝트 중 한 편입니다. 상업 영화는 아니고 저예산의 독립영화입니다. 독립영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신인배우 또는 잘 모르는 배우가 나오는 저예산 영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영화 '소셜포비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예산에 잘 모르는 배우가 나오긴 하지만 다른 독립영화와 다르게 변요한이라는 인기 배우가 나옵니다.

이는 미생이 떠서 그렇지 미생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변요한도 우리가 잘 모르는 배우였을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 영화를 찍고 미생 드라마를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였습니다. 뻔한 그렇고 그런 SNS를 소재로 한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SNS 세계를 제대로 다룬 영화가 없어서 이쪽 소재는 영화로 제대로 만들기 힘든가? 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주말에 하는 공중파에서 하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이 영화를 아주 자세하게 소개를 해서 영화 다 본 느낌이라서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변요한 보려고 갔습니다. 개벽이 보려고 갔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변요한은 생각 나지 않고 영화 자체에 푹 빠져서 나왔습니다. 영화에 취하면 나오는 버릇인 무작정 걷기도 20분이나 했습니다. 



악플러 잡는 현피원정대에 따라나선 지웅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출근하고 등교하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흔한 풍경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그 스마트폰 세상을 생중게하듯 스크린에 SNS에 올라온 글들을 타이핑합니다. 어제 윤일병이 자살을 했는데 이 기사 댓글에 한 여성 악플러가 악플을 답니다. 

사람들은 이 악플러를 돌려보면서 이런 악플러는 응징을 해줘야 한다면서 악플러 잡는 현피원정대를 꾸립니다.  현피란 온라인에서 싸우던 사람이 오프라인 세상에서 만나서 싸우는 행동을 말합니다. 현실PK의 줄임말이 현피입니다. 마침 악플러 신상정보가 털려서 20대 여성 민하영이라는 사실까지 공개 됩니다. 이 악플러 민하영을 잡기 위해서 인기 인터넷 방송 BJ인 양게는 참가자를 모집해서 민하영 집을 습격합니다. 이 습격 과정은 인터넷 방송으로 낱낱히 생중계 되고 있습니다. 


이 현피원정대에는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경찰지망생 지웅(변요한 분)과 용민(이주승 분)이 있었습니다. 
경찰 시험 합격을 위해서 스마트폰도 사용하지 않는 지웅은 용민의 꼬득임에 끌려서 같이 악플러 민하영 집까지 찾아갑니다. 그렇게 민하영 집 앞까지 찾아왔던 현피원정대는 민하영 집 앞에서 주저하게 되는데 문이 살짝 열려 있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서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됩니다. 


악플러 민하영이 목을 메고 자살을 한 것입니다. 보통 이런 장면을 보게 되면 119에 전화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행동이지만 이들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자신이 민하영에게 보낸 악플을 삭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인터넷 방송으로 중계되고 있었고 이 현피원정대는 경찰서에 끌려가게 됩니다. 

경찰서에서 경찰지망생인 지웅과 용민은 이 일 때문에 경찰 시험 면접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죠. 
자신들이 쓴 악플 때문에 민하영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고심을 하던 지웅과 용민


그런데 당시 촬영 된 인터넷 방송을 살펴보다가 민하영 집에서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살을 하려는 사람이 세탁기를 돌려?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용민은 이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타살이어야 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꿈인 경찰공무원 꿈을 접어야 합니다. 이에 BJ 양게는 또 다시 현피원정대를 모아서 타살이라는 주장을 인터넷 방송으로 합니다. 이 현피원정대는 
 수시로 카페에 모여서 이 타살 타당성을 논의하다가 민하영이 그 유명한 악플러 베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베카는 수 많은 인터넷 유명인들의 실체를 발가 벗기고 조롱과 악플로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넷 글로 매장 시킨 유명한 악플러입니다. 베카에게 매장 당한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닙니다.

여기에 부자 강간범인 장세민이 레카를 죽인 범인이라고 지목을 하죠. 그 증거로 민하영을 현피 하던 날 그 장소에 장세민의 고급 승용차가 인터넷 방송 장면에 찍혔기 때문입니다. 이에 현피원정대는 장세민에게 트위터로 직접 물어봅니다

"니가 죽였냐?"
이에 내일 호텔 앞에서 만나자고 또 다른 현피를 제시합니다. 
그렇게 현피원정대는 장세민을 만나서 또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뛰어난 스토리텔링에 마지막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몰입하게 된다

그냥 그런 스토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그냥 그런 스토리가 아닙니다. 악플러 민하영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다니는 현피원정대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관객인 나도 누가 민하영을 죽인거지?라는 궁금증에 마지막까지 몰입하게 됩니다.

여기에 2~3번의 트릭과 반전이 영화를 보는 내내 짜릿하고 몰입하게 됩니다. 과연 범인이 누구일까요? 왜 민하영은 타살이 되었을까요? 그 과정을 풀어가는 과정 후에 밀어닥치는 자책감은 이루 형언 할 수 없는 자괴감이었습니다. 영화 소셜포비아는 아주 영민한 스토리를 가진 영화입니다. 추리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그 추리의 끝에는 현실 비판이자 사회 비판적인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영화들이 이런 흥미를 제공하면서 끝에는 빵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데 이 영화가 그런 영민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익명성 뒤에서 악플을 다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

익명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익명을 통해서 세상을 비판하고 사회를 비판하고 정권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갑을 관계가 확실한 오프라인에서 면전에 대놓고 못하는 입바른 소리도 익명이라는  보호막이 있는 온라인에서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습니다. 비판만 하면 되는데 비판이 아닌 도가 지나친 인격 모독성 비난을 하게 되면 그게 악플이 됩니다. 뭐든 정도가 있는데 악플러들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폭주하듯 자신의 감정을 쏟아냅니다. 지웅과 용민은 악플러는 아닙니다. 그러나 남들이 악플러 민하영에게 쌍욕을 하기에 그냥 덩달아서 쌍욕을 합니다. 

그리고 얼떨결에 민하영 현피원정대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나 민하영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은 이 두 경찰지망생을 지목하면서 니들이 민하영을 죽였다고 댓글을 답니다. 갑자기 익명성 뒤에 숨어서 글을 쓰던 네티즌에서 느닷없이 민하영처럼 악플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지웅(변요한 분)은 신상이 털려서 민하영의 입장처럼 됩니다. 여기저기서 욕설 문자가 날아오고 학원에서도 수근거리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절묘하게 익명으로 악플러에게 악플을 달던 지웅이 민하영의 입장이 되면서 역할이 한 순간에 바뀐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너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라라고 살며시 제안을 합니다. 익명성의 달콤함 뒤에서 낄낄거리던 대중이 신상털기로 세상에 발가 벗겨져서 대로에 던져지게 되는 무차별적인 익명의 집단 구타의 무서움을 잘 드러냅니다.

영화는 수시로 익명이라는 달콤함과 익명으로 사는 우리들의 삶을 여러가지로 보여줍니다.
그 하나가 아파트입니다. 아파트를 올려다보면 익명의 공간 같습니다. 다 똑같은 집에 사는 모습이 익명의 공간 같이 보입니다. 또 하나는 과T입니다. 대학생들이 즐겨 입는 과T를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쫒아간 지웅과 용민은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몰개성적인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익명의 불편함과 동시에 몰개성을 스크린에 담고 있습니다.

익명은 양날의 검입니다. 그 익명으로 사회를 비판하고 갑을 관계에서 하지 못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대학교수의 비리 기사에 익명으로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비판해야 그들이 부끄러워하니까요. 하지만 비판 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 또는 단지 내가 밉다는 근거도 없는 이유로 악담을 하는 악플은 자기 위안용 밖에 되지 않습니다.

최근의 일베 현상은 여러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스트레스 받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을 괴롭히는 집단 행동입니다. 예를 들어 엄마에게 심한 꾸지람을 받은 아이가 길에 나가서 죄 없는 기어가는 벌레를 밟아 죽이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과 같죠. 악플러들이 그렇습니다. 그 자신 자체로 해결하기 힘든 일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욕설을 하면서 쾌감을 느낍니다.  때로는 공명심 때문에 악플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공명심은 어긋난 공명심이 되면 악플러가 됩니다. 



어그러진 SNS의 추한 민낯을 모두 담은 듯한 '소셜포비아'

영화를 보면서 딱 3번 속으로 이 영화 물건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 SNS세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했습니다. "
이전에도 SNS세계를 다룬 영화들이 있긴 헀지만 한국적인 상황을 제대로 담은 영화는 없었습니다. 영화 '잉투기'가 어느 정도 유쾌하게 그리고 있지만 정조준한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 '소셜포비아'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인터넷 생활기 특히 2,30대의 인터넷 생활기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실시간 인기 검색어를 둘러보고 SNS에서 어제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수근거리고 공격해야 할 당사자가 있으면 비난 맨션을 보내고 심하다 싶은 인간은 신상을 털고 세상에 공개를 합니다.

이는 범죄인을 단죄하기 위해서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는 흔한 디지털 자경단들의 행동입니다.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을 상대하는 조커의 무기는 배트맨의 비논리적인 행동, 이율배반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법을 수호한다는 인간이 법을 어기냐는 식의 비꼼에 배트맨은 분노를 하죠. 우리들이 그렇습니다. 남의 죄를 단죄한다는 목적 아래 내가 죄를 짓고 있습니다. 
지웅과 용민은 디지털 자경단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순간에 악플러가 되고 자신의 신상이 털리자 안절부절 못하게 됩니다.

여기에 익명성의 무서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옆에서 웃고 있는 친구가 악플러라는 이중인격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온라인일 수 있다는 섬뜩함을 보여줍니다. 온라인에서는 악플러지만 현실에서는 그냥 평범한 이웃일 때의 그 괴리감을 영화는 소스라치게 잘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SNS를 무조건 비판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민하영의 과거를 조사하던 지웅은 민하영이 악플을 다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말에 용민은 그런게 어딨어? 이유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민하영이 악플을 다는 이유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지웅은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말합니다.

"난 인터넷이라서 그러는 줄 알았어. 그런데 실제로도 똑같잖아"
민하영이 현실에서의 불안정한 정신상태가 그대로 온라인에서도 발현 된 모습을 목격한 지웅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다르지 않음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SNS의 폐악성을 지적할 때 쓰는 말이 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었던 퍼거슨이 "SNS은 인생 낭비다"라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SNS를 하는 사람들은 봇이 아닌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의 모습을 담는 단순한 그릇인데 우리들이 문제라면 문제지 그릇을 지적합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걸 오용하는 우리들이 문제죠. 그리고 그 퍼거슨의 말도 우리는 SNS나 인터넷을 통해서 들고 있잖아요.

자신이 문제입니다. 자신이 문제이지 페이스북이 블로그가 트위터가 카페가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 그리고 우리고 문제입니다. 





변요한 이주승의 멋진 연기가 인상 깊다

변요한은 기름기 쫙 뺀 담백한 연기를 합니다. 미생의 까불 거리는 모습은 없습니다. 순박하고 귀여운 변요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폭발할 때는 제대로 폭발을 합니다. 우리 주변의 흔한 바른 청년 그러나 군중심리에 쉽게 휩싸이는 20대 취업준비생 역을 제대로 합니다. 전 변요한 보다는 이주승이라는 배우가 눈에 많이 밟히네요.

이주승은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서 섬뜩한 조두식 역을 할때부터 눈여겨 봤는데 이 영화에서도 섬뜩함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배우 최근에 활동량이 늘고 있는데 세상이 잘 알아보고 있네요. 변요한도 꾸준하게 이주승처럼 필모그래피를 늘렸으면 합니다. 



욕을 먹을 자세가 이 SNS 과욕 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

영화는 이 SNS 과잉시대를 슬기롭게 해처가는 방법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SNS시대가 이전 시대와 다른 것은 한 번 욕 먹을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욕을 먹는 무차별 욕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반대로 별거 아닌 그냥 주변의 일상적인 미담도 확대 재생산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SNS시대, 인터넷은 강약 조절이 힘든 시대인 것 같습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라고 할까요? 정도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욕먹을 짓을 해서 욕을 먹는 것을 지나서 과도한 욕을 먹고 반대로 과한 칭찬을 받기도 합니다. 

민하영은 욕을 잘하고 비평을 잘했습니다. 
남의 글에 비평을 잘 하면서 정작 자기 글은 잘 쓰지 못하는 전형적인 찌질이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교수는 니걸 써! 니껄 쓰고 욕을 먹어!  그렇게 민하영의 부족한 면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민하영은 욕 먹는 것을 무척 두려워합니다. 

"에고(자아)는 강한데 알맹이가 없어요"
라는 대사처럼 요즘 젊인이들의 문제점까지 지적하고 있습니다. 알맹이가 없기 때문에 자그마한 비난에도 몸을 부르르 떨고 약간의 비판에도 광분을 합니다. 이는 마치 한국 사회 같기도 합니다. 한국을 비난하는 말 한 마디에 전국민이 흥분하는 시대. 그게 비난이 아님에도 비난이라고 우기면서 과한 흥분을 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비판의 대사 같이 들리기도 하네요



추천합니다. 특히 블로거 분들이나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꽤 오래하는 분들이라면 꼭 보셨으면 합니다. 룰루랄라 변요한 보러 갔다가 변요한 보다는 영화에 취해서 나와버렸네요.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거울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았기에 다큐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만 가끔 우리 자신을 객관화 해서 보여주는 영화가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영화 소셜포비아는 소셜의 폭력성과 함께 그 뒤에는 추악한 우리들의 모습이 있음을 드러냅니다.

여전히 달에 인간이 간 적이 없다는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오늘도 내일도 공격 목표를 찾아서 먹이를 기다리는 익명의 동굴에 사는 우리들에게 거울을 내밀면서 가끔 거울 좀 보고 살라고 하는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SNS의 브레이크 없는 광끼의 민낯과 치료법을 모두 담고 있는 SNS 시대 풍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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