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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폭스캐처>돈으로 그린 갑과 을의 슬픈 자화상 같은 영화

by 썬도그 2015.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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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월 세계 최고 갑부 중 한 명인 세계적인 화학기업인 듀폰사의 4대 상속자인 존 듀폰은 자신의 운영하는 폭스캐처 레슬링팀 코치이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데이비드 슐츠를 권총으로 사살하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납니다. 부족할 것이 없을 것 같은 갑부가 살인했다는 이 사건은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희대의 사건을 영화로 만든 것이 바로 <폭스캐처>입니다. 

 

<폭스캐처>는 서양의 상류층들이 하는 고급 스포츠로 여우를 풀어놓고 개를 풀고 말을 타고 여우를 쫓는 경기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여우 사냥 장면을 보면 주면서 미국 레슬링 국가대표이자 코치인 형 데이비드 슐츠(마크 러팔로 분)와 동생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 분)이 레슬링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두 형제의 피나는(?) 훈련을 보여줍니다.

두 사람 모두 1984년 L.A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레슬링 선수로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형제입니다. 그러나 이 형제는 고아로 자란 아픈 기억과 함께 넉넉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묵묵히 레슬링을 합니다. 동생인 마크는 형인 데이비드를 멘토로 여기지만 동시에 경쟁 상대로 느낍니다. 그렇게 매일 매일 세계 선수권 대회를 준비하던 마크는 세계적인 화학기업인 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갑부인 존 듀폰(스티브 카렐 분)으로부터 아주 솔깃한 제안을 받습니다. 두둑한 연봉과 집 그리고 훌륭한 운동 시설을 제공할 테니 자신이 코치로 있는 폭스캐처팀에 와 줄 수 있느냐는 스카우트 제의를 받습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땅을 소유한 존 듀폰의 저택을 헬기를 타고 도착한 마크는 집의 규모에 놀라서 바로 주눅이 듭니다.
존 듀폰의 호화로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마크는  존 듀폰의 극진한 대우에 기뻐하면서도 동시에 긴장을 타게 됩니다. 
그 긴장이란 이 돈 많은 스폰서를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세계선수권대회는 물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꼭 따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끼게 됩니다.
존 듀폰은 마크를 넘어서 코치이자 같은 금메달리스트이자 형인 데이브 슐츠를 데려오라고 마크를 압박합니다. 그러나 데이브는 두둑한 연봉을 준다고 해도 계약된 코치 기간을 이수해야 한다면서 거부를 합니다. 이에 존 듀폰은 마크와 데이브 사이를 이간질합니다.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서 형보다 나은 선수가 되라고 충고 같은 명령을 합니다. 그렇게 혼자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던 마크는 존 듀폰의 이상한 모습을 느끼게 됩니다. 늦은 밤에 찾아와서는 자신의 저택에서 스파링을 하자고 하고 어머니와의 관계도 이상합니다. 돈 많은 갑부의 허영심인가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훈련을 게을리한다는 눈초리를 하고 휴게실에서 마크의 뺨을 때립니다. 이때부터 마크의 메달에 대한 중압감은 폭발하게 되고 정신이 박살이 납니다. 이에 존 듀폰은 형인 데이브까지 돈을 앞세워서 다시 데리고 오려고 합니다. 듀폰에게는 돈으로 해결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올림픽 금메달도 돈을 주고 따기 위해 가장 유력한 금메달리스트 형제를 돈으로 사옵니다. 헬기를 타고 온 데이브 형을 피하는 마크. 이렇게 3명의 남자는 서서히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영화 <폭스캐처>는 미국 레슬링계의 갑질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갑부이자 스폰서인 존 듀폰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서 두 금메달리스트 형제를 서늘한 중압감과 함께 총으로 목숨을 앗아간 사건입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냉기가 잔뜩 흐릅니다. 옅은 눈썹에 큰 코를 가진 존 듀폰은 이래라저래라 많은 지시를 하지 않지만, 마크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게 되는데  이 과정을 아주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연출로 관객에게 어떻게 사람이 돈이라는 권력에 주눅이 들고 돈의 무게에 질식하게 되는 지를 마크를 통해 아주 잘 보여줍니다.
세상  수많은 갑들이 하는 말이 있죠. 
"난 시키지 않았어요. 을들이 알아서 한 거지"

이 말의 느낌을 영화 <폭스캐처>는 실화를 바탕으로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어떻게 을들이 갑에게 복종하게 되는 과정을 두 형제를 통해서 보여줍니다. 마크는 돈 많은 스폰서가 원하는 것은 금메달인 것을 알고 금메달을 향해 달려가지만, 이전에 느끼지 못한 금메달에 중압감 때문에 서서히 정신이 파괴되어갑니다. 이 과정은 한국의 금메달 지상주의와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세계적인 선수라고 해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려면 하늘의 도움이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마치 금메달을 따놓은 선수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한국의 금메달 지상주의와 존 듀폰이 마크라는 도구를 통해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이 너무나 흡사합니다. 요즈음은 예전보다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올림픽에서 메달만을 원합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U.S.A를 외치는 미국 관중들의 스포츠 애국주의를 비꼬는 감독의 시선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마크를 통해서 갑과 을의 관계와 스포츠 애국주의를 그려냈다면 형인 데이브를 통해서는 생활 밀착형 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데이브는 존 듀폰의 제안을 거부하지만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부성애가 발동되면서 존 듀폰의 폭스캐처팀에 합류하게 됩니다. 동생이 갑의 횡포를 당하고 그 고민을 형에게 털어놓지만 데이브는 동생의 고민을  그 정도의 갑질은 참아야 하지 않느냐고 가볍게 넘겨 버리고 떠나려면 너 혼자 떠나라고 합니다. 데이브는 수많은 우리 주변의 을들이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갑의 횡포에 굴복해가는 속물이 되는 과정을 담백하게 담고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우리들은 데이브 같은 모습을 하고 살지 않을까요? 갑질의 가장 큰 원인인 갑에게 있지만 그런 갑의 횡포에맞서지 않고 처자식과 생계 때문에 갑질에 적응하거나 눈감거나 바싹 엎드려야 하는 을들의 슬픈 자화상이 후반부에 잔잔하게 펼쳐집니다. 

영화에서 갑질을 하는 존 듀폰은 영혼 없는 상류층의 건조한 삶과 인정 욕구에 찌든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어머니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레슬링을 혐오하는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자신이 만든 레슬링 대회에서 우승하고 장난감 병정 같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수집합니다. 스스로의 삶을 살기보다는 어머니에게 인정 받고 싶어하는 유치원생 같은 존 듀폰의 모습 속에서 사회성이 모자란 갑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돈 많은 어린아이? 바로 그게 존 듀폰의 정신 상태였고 그런 성숙하지 못한 영혼은 완벽하지 못한 자신의 삶에 투정을 부리듯 방아쇠를 당겨 비극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이런 존 듀폰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최근의 땅콩 회항이나 재벌 2세나 돈 많은 사람이 돈만 믿고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는 인격 말살적인 행동들이 점점 만연해 가는 한국 사회를 보면 전국에 존 듀폰이 있는 것 같아 보여서 서글펐습니다. <폭스캐처>오는 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무려 5개 부분에서 후보로 올랐습니다. 이 중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존 듀폰을 연기한 코미디 배우로 잘 알려진 스티븐 카렐이 남우조연상 후보에는 데이브 슐츠를  연기한 마크 러팔로가 후보에 올랐습니다. 이 중에서 스티브 카렐은 인생 연기라고 할 만큼 놀라운 연기 변신을 보여줍니다. 항상 웃기기만 했던 이 배우가 가짜 코를 붙이고 눈썹을 탈색시켜서 서늘한 표정과 말투로 마크에게 넌지시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소름이 돌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해줍니다. 아직도 말끝마다 굿이라고 말하던 존 듀폰의 냉기 가득한 말투가 떠오르면 소름이 돋습니다. 여기에 레슬링 선수가 아닐까 할 정도로 레슬링 선수의 걸음걸이와 포즈와 운동 신경을 보여준 채닝 테이텀과 못하는 연기가 무엇일까? 할 정도로 항상 최적의 연기를 보여주는 헐크로 유명한 마크 러팔로의 연기가 아주 볼만합니다. 이 세 배우가 뿜어내는 연기 대결은 단선적인 연출로 지루할 수 있는 영화를 화려하게 만들어 줍니다. 머니볼을 연출한 베넷 밀러 감독은 이 세기의 스캔들을 아주 건조하고 차분한 연출로 담았습니다. 그 차분함이 잔잔한 호수 같은 거울처럼 느껴집니다. 그 거울 같은 호수에 비친 우리들의 세상은 배금주의가 만연한 세상이었습니다. 영화 <폭스캐처>는 돈을 쫓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을 실화를 통해서 잘 담고 있는 꽤 괜찮은 영화입니다.  돈에 질식되어 사회성을 잃어버린 갑부와 그 갑부의 돈에 노예처럼 이끌리는 슬픈 을들의 처량한 뒷모습을 느끼게 하는 영화입니다.


40자평 :  인간관계도 금메달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졸부를 통해 배금주의 세상을 돌아보게 하다.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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