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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책서평

새 도서정가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이 세가지는 바뀌어야 한다

by 썬도그 2014.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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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9일 국회 본 회의에서 통과된 새로운 도서정가제 제도가 11월 21일부터 본격 시행되게 됩니다. 
또 하나의 소비자만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동 통신사의 단통법(단말기 유통 개선법)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동 통신사만 배불리게 하는 단통법의 학습 효과 때문에 도서 구입을 하는 소비자들은 새로운 도서정가제를 도서 단통법이라고 겁을 먹고 21일이 되기 전에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서 대폭 할인을 하는 책을 구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비자의 불안심리에 호응하듯 대형 오프라인 서점과 대형 온라인 서점은 50% 이상 할인되는 책들을 매대나 메인 화면에 띄워서 새로운 도서정가제 전에 책을 사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신간 구간 구분 없이 최대 15% 할인만 허용하는 새로운 도서정가제

새로운 도서정가제의 핵심은 구간이건 신간이건 마일리지 포함 도서 할인을  최대 15%만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이전에는 출간한 지 18개월 이상이 된 책을 구간으로 설정하고 신간은 마일리지 포함 20%까지 할 수 있고 구간은 할인 제한폭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신간이 나와도 급하게 읽을 필요가 없는 책들은 구간이 되길 기다렸다가 구매하면서 중소 서점을 살리자는 취지가 무색하게 되었습니다. 중소 서점은 구간도 정가에 파는 모습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간 서적이라도 중소 서점보다 마일리지 같은 혜택과 이벤트가 많아서 중소 서점이나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살펴 본 뒤에 좀 더 싼 인터넷 서점에서 사는 '쇼류밍'을 했었습니다. 이런 폐단을 인지한 정부는 보다 강력한 새로운 도서 정가제로 다시 한 번 중소 서점 살리기에 나섰습니다. 

 11월 21일부터는 구간과 신간 구분 없이 모든 책을 최대 15% 이상 할인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기존에는 할인폭의 제한을 받지 않았던 실용서적과 초중고등학교 참고서도 15% 이상 할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출판사들이 문학서적도 실용서적이라고 우기면서 큰 할인을 하는 꼼수를 썼는데 이 꼼수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도서정가제로 인해 불만의 목소리가 많습니다. 소비자는 실질적으로 올라간다고 느끼기 때문에 불만이고 
출판계는 재고를 털어 버릴 수 없게 되었다고 불만이고 대형 서점은 대량 구매로 출판사에서 공급가를 낮춰서 공급받아서 싸게 팔겠다는 것을 왜 법으로 막느냐고 불만입니다. 이에 정부는 18개월 이상 된 구간을 가격을 새롭게 책정해서 판매할 수 있도록 보안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인터넷이 없던 시절 책값은 다른 공산품과 달리 어느 서점에서 사던 가격이 동일했습니다. 종로의 대형서점인 교보문고 종로서적에서 사던 동네 서점에서 사던 정가 그대로 판매했습니다. 따라서 가격에 따라서 이 서점 갔다 저 서점 갔다 하지 않았습니다. 동네에서 팔지 않는 서점을 구하기 위하거나 시내에 나갔다가 대형서점에서 책을 구입했을 뿐이죠. 

그러나 인터넷이 일상화되면서 예스24와 알라딘 같은 온라인 서점이 출판사로부터 책 1,2권이 아닌 대량으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구입하면서 공급가를 낮추기 시작합니다. 이를 공급률이라고 하는데 현재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대형서점의 책 공급률은 50~55%입니다. 1만 원 책을 5천 원에 공급받습니다. 이렇게 싸게 공급받은 책을 약 30% 할인을 해서 인터넷에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저를 포함한 많은 소비자들은 동네 서점에서 책을 들쳐 보고 집에서 인터넷에 접속을 해서 책을 구매했습니다.

동네 서점의 공급률은 70~75%로 도서 할인을 할 여력이 없었고 온라인 서점과 가격 경쟁을 할 수 없다 보니 하나둘씩 사라지게 됩니다. 이에 정부는 중소 서점을 살리고 질 좋은 도서 출판문화를 이끌겠다면서 보다 강력한 도서정가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도서정가제는 출판사, 소비자, 서점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서점과 대형서점은 가격 경쟁력으로 장사를 했는데 이 가격 경쟁을 하지 못하게 막아 버려서 불만이고 출판사는 재고 서적을 쉽게 털어 버릴 수 없고 당장 소비자들이 책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불만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불만을 넘어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소비자입니다. 소비자들은 또 하나의 단통법이라고 생각하고 책 가격이 내려가지 않으면 책을 구매하지 않는 극단적 방법이나 보고 싶은 책은 근처 도서관에서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볼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달리 책은 안 읽어도 생활하는데 큰 지장이 없어서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는 이 새로운 도서정가제는 책 가격을 올리는 효과가 있기에 책 수요가 줄어들 것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왜 모두가 싫어하는 이 새로운 도서정가제를 정부를 강력하게 밀어 부칠까요? 중소서점을  살리기 위해 도서 출판계의 공멸을 자초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소뿔 고치려다가 소를 잡는 것은 아닐까요?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제대로 정착 되면 질 좋은 책들이 늘어난다

출판사는 한국의 책값이 결코 비싸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소비자들은 책값이 비싸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항상 해외의 잘 사는 유럽이나 미국과 일본을 비교하는데 이런 것은 항상 우리보다 잘 사는 선진국과 비교를 합니다. 우리가 미국같이 영국같이 프랑스같이 일본같이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아닙니다. 

한국의 책 가격이 비싼 이유는 이상한 유통 구조에 있습니다. 
출판사들은 책 가격을 설정할 때 할인을 예상하고 책 가격을 책정합니다. 예를 들어 정가 1만원이 알맞은 책을 1만 6천원으로 정가를 책정한 후에 대형서점에 공급을 합니다. 대형서점은 정가보다 싼 10% 이상의 할인을 해서 판매를 합니다. 이걸 앵커 효과라고 합니다. 과일 장수가 소비자가 가격을 깎을 것을 예상하고 실제 가격보다 높이 부른 후에 선심 쓰듯 가격을 깎아서 판매하면 소비자는 싸게 샀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 가격 부분에 대한 출판사들의 이견과 반론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렇게 가격 할인을 많이 해주면 질 떨어지는 책들이 판매를 위해서 10% 할인을 넘어서 50% 이상 할인을 해줘서 가격적인 할인폭을 무기로 소비자들을 혹하게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 같은 경우도 책을 천천히 다 살펴보기보다는 책 할인율이 높은 책에 혹하게 됩니다. 이렇게 책을 고를 때 가격 할인이 많이 되는 책을 꼼꼼하게 살피지 않고 구매 한 후 소비자가 후회를 하면 다음에는 책 자체를 기피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큰 할인을 하는 책을 구매했다가 후회한 적도 많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도서정가제로 큰 가격 할인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질 낮은 책들이 줄어들고 질 좋은 책이 소비자에게 사랑을 받게 되면 출판사들은 비싸고 할인이 크게 되지 않더라도 좋은 책은 소비자들이 구매를 한다는 확신이 서게 되고 보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여기에 중소서점도 가격 경쟁력을 회복하고 중소서점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런 취지를 잘 살리려면 선행 되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새 도서정가제가 정착되기 위해서 이 세가지는 바뀌어야 한다

1. 책 가격을 내려라


출판사들의 고충과 고통의 소리를 많이 듣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 가격을 내릴 여력이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책 가격은 내려야 합니다. 특히, 이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잘 정착되려면 기존 출판사들이 관습적으로 할인을 예상하고 정가를 높이는 관행은 멈춰야 합니다. 이 폭만큼은 내릴 수 있지 않나요? 또한, 외국처럼 문고판이나 다양한 버전으로 책을 출간해서 같은 책이라도 가격대를 달리해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늘려 주십시오. 

또한, 전자책도 동시에 출간해서 가격에 대한 저항을 낮춰야 합니다. 할인폭을 제한하고 책 가격은 낮추지 않으면 소비자는 책 읽는 자체를 주저하거나 포기할 수 있습니다. 새 책 가격을 현재보다 낮추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책 읽기를 포기하거나 중고 책 시장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책 대여 쪽으로 눈길을 돌릴 것입니다. 그러나 쉽게 가격을 내리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 번 가격이 오른 제품이 가격을 내리는 모습은 쉽지 않으니까요. 

다만, 단통법과 같이 스마트폰 제조사가 많지 않고 이통사도 많지 않은 과점 시장과 달리 출판계는 수많은 출판사가 있기에 한 출판사가 가격을 내리면 연쇄적으로 다른 출판사도 책 가격을 낮출 것이라는 희망도 가져봅니다. 


2. 공급률을 동일하게 가져가야 한다

먼저, 전국의 도서관들이 책을 구입할 때 이전에는 싼 가격으로 구입했는데 21일부터는 도서관도 책을 구입할 때 일반 소비자와 동일하게 책을 제 값을 주고 구입을 해야 합니다. 이는 출판사들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새 책을 전국의 도서관들이 1부씩 구입하게 된다면(양질의 도서만) 출판사들은 책 제작비를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는 큰 후원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정부는 예산을 풀어서 도서관의 책 구입 예산을 지원한다고 하니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입원을 지원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책 공급률은 대형서점과 중소서점이 다릅니다. 
대형서점의 50~55%와 중소서점의 70~75%가 다르기 때문에 새 도서정가제를 시행해도 중소서점의 수익률은 크게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많이 사주는 대형서점에 책을 싸게 공급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소량으로 주문하는 중소서점에 책을 싸게 공급하기 힘듭니다. 이를 중소서점들이 뭉쳐서 공동 구매를 통해서 대량으로 구입한다면 공급률을 물류비 때문에 동일하게 할 수 없다고 해도 좀 더 낮출 수 있습니다. 이 공급률이 낮아지면 중소서점은 새로운 도서정가제의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머릿속의 생각이고 현실적으로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동네 서점들도 많은 변화를 했으면 합니다. 큰 변화가 없는 동네 서점도 이 새로운 도서정가제라는 순풍을 타고 멀리 가려면 단골 고객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3. 양질의 책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독서를 즐기는 인구가 많이 줄어든 것은 스마트폰과 같은 다양한 도구와 미디어의 발달 때문도 있지만 질 낮은 책들의 범람도 한몫을 했습니다. 그말이 그 말 같은 자기계발서나 뜬구름 잡기 식의 힐링 도서 말고 오래 읽히고 곱씹어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책에 대한 기대감을 다시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말초 신경만 자극하는 자극제에서 느낄 수 없는 진득한 책의 무게와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독서 인구도 조금이라도 늘어야 할 것입니다. 

싼 가격의 양질의 도서가 많아진다면 새로운 도서 정가제는 잘 정착될 것입니다. 또한, 책 가격에 대한 부담은 헌책방이나 중고서점 같은 곳에 책을 팔아서 다른 책을 읽을 수 있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어쩌면 새로운 도서정가제는 출판사도 소비자도 서점도 아닌 중고서점이 가장 큰 혜택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도서정가제의 성공 여부는 6개월 안에 판가름 난다

지금 소비자, 서점, 출판계 모두 이 거대한 폭풍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6개월 안에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잘 정착되어서  할인을 통한 싼 가격이 아닌 싼 정가를 질 좋은 책을 만난다면 예전 8,90년대의 서점의 분위기를 되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정착 되지 않고 꼼수가 남발하고 여전히 질 낮은 서적을 비싼 가격에 판매한다면 소비자는 책을 외면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많은 잡음이 생기더라도 호전 반응이라고 생각하고 지켜보다가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면 다시 이전처럼 무한 경쟁 시대로 돌아가고 자본력이 좋은 곳만 미소를 짓게 될 수 있습니다. 출판계 서점 위기 의식을 가지고 노력하고 가시적인 성과가 있다면 불신의 눈으로 보던 소비자도 다시 마음을 열어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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