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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대한 단소리

장애인을 위한다면 장애우 대신에 장애인이라고 불러주세요

by 썬도그 2014.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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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에 동네에 있는 장애인복지건물 건립 때문에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심하게 반대를 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장애인 관련 건물을 우리는 집 값 떨어진다면서 혐오시설로 바라보는 것이 일상다반사입니다. 전 그 모습을 제 블로그에 신랄하게 비판 했습니다. 그런데 한 댓글러가 장애우가 아닌 장애인으로 불러달라고 하더군요. 


장애우는 비장애인들의 일방적인 시선이 담긴 단어

댓글 내용은 이랬습니다. 장애우(友)는 비장애인의 일방적인 시선이라는 것입니다. 좀 쉽게 설명하자면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비장애인처럼 장애인도 주체적신 선택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우는 장애인은 무조건 친구라는 일방적인 시선의 폭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보고 우리 친구합시다!라고 말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장애인은 친구가 될수도 있지만 안 될수도 있습니다. 그건 장애인이 선택에 따라서 친구가 될 수도 안 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우는 장애인은 무조건 친구라는 일방적인 시선입니다. 

따라서 장애인들은 장애우라는 호칭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난 후 저는 장애우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장애우라고 하는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장애인을 써 주는 것이 장애인들에게 좋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비장애인이라는 단어도 그렇습니다. 보통 우리는 장애인과 정상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 구분법은 장애인은 비정상인이라고 하는 불편한 시선이 있습니다. 
장애인을 위한다면 장애인 그리고 비장애인으로 구분해서 불러야 합니다. 

우리가 장애우라고 부르게 된 것은 2천년 대 중반으로 기억됩니다. 예전에는 장애인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았고 사회제도도 아주 미비했습니다. 그러다 2천년대가 넘어서면서 정부가 복지에 큰 신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성장과 함께 복지에 정부가 신경을 쓰면서 장애인에 대한 복지도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이때 나온 것이 장애우입니다. 장애인을 보다 친숙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으로 인식시키기 위한 방편이었죠. 

실제로 2천년대 부터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시선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장애우는 장애인 입장에서는 썩 좋은 단어는 아닙니다. 장애인을 위한다면 장애우라는 일방적인 시선 대신에 장애인이라는 주체적인 단어를 써줬으면 합니다.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은 일방적인 도움이 아닌 차별없는 시선

어제 하루종일 페이스북에서 회자 되었던 네이트 판 글입니다. 

출처 : http://pann.nate.com/talk/324531338/reply/408635080 

위 글은 한 중학생이 지하철 엘레베이터 앞에 길게 선 줄 뒤에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있습니다. 이 글을 쓴 중학생은 길게 줄을 선 아줌마들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서 있는데 양보를 해주지 않는 다는 취지로 어른들을 질타를 하고 있습니다. 
그 따스한 마음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같이 저 아줌마드을 손가락질 했습니다.

저도 한 중학생의 따스한 심성에 감복했습니다. 
하지만 전 이 사진을 달리 보고 싶습니다. 즉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고 싶네요. 우리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횡단보도를 건너면 선의로 손을 덥석 잡아서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이건 장애인에게는 좀 무례한 행동입니다. 그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좋지만 제대로 도움을 주려면 도와드릴까요? 라고 먼저 묻고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무조건 도움을 주는 것은 불쾌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행동 자체는 잘못 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좀 더 세련되게 도와주려면 장애인에게 의사를 물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저 사진도 그런 류의 시선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즉, 장애인은 무조건 도와줘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시선이 있네요. 그러나 정작 장애인들은 일방적인 도움을 그렇게 바라지는 않습니다. 물론, 도움을 주겠다는데 거부하는 장애인분들도 많지 않겠지만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세련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비매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장애인들은 주체적인 삶을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장애인들을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시선으로 봐야 합니다. 다만,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것에 대한 배려는 해줘야죠. 배려는 해주지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배려가 아닌 선의의 남용이 될 수 있습니다. 

전 위 사진을 보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일한 모습으로 보여져서 크게 지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양보를 하는 것은 오히려 장애인에게 불편할 수 있습니다. 목발을 집고 서 있는 자체가 불편하고 힘들어 보이면 양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전동휠체어라서 기다리는 지루함이 있을지언정 큰 불편함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애인을 비장애인처럼 동등하게 대우해줘서 보기 좋은데요. 

중학생의 시선은 아마도 교육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장애인은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나 봅니다. 문제는 무조건이 아닌 의사를 묻고 도움을 주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장애인을 무조건 친구고 도움을 줘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기 보다는 비장애인과 똑같은 사람인데 단지 몸과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해줘야 합니다.

여전히 전국 곳곳에 장애우라는 단어가 꽤 많이 보입니다. 그 선의는 간직한체 장애우 대신에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써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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