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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마담 뺑덕. 두 배우의 힘으로 잘 가던 배가 후반에 좌초 되다

by 썬도그 2014.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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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이세요?"
한 지방도시에서 눈먼 어머니와 사는 덕이(이솜 분)는 놀이공원 매표원으로 일하는 아가씨입니다. 양복 입은 도회지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학규(정우성 분)은 잠시 동안의 피난처로 삼은 이 지방 소도시 생활이 따분하기만 합니다. 따분하기는 덕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소도시에서 평생을 사는 것이 썩 맘에 들지 않습니다. 재개발을 앞둔 소도시에서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을 뿐입니다. 

 

양복입은 학규를 통해서 탈출을 꿈꾸는 덕이 

"양복 입은 사람 처음 보나?" 지방 소도시에 도착한 학규는 캔맥주를 마시면서 옆에서 자길 빤히 쳐다보는 덕이를 보며 속으로 양복 입은 사람 처음 보나?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학규에게는 이상할지 몰라도 덕이에게는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신기하고 낯섬에서 오는 떨림이 있습니다. 덕이가 사는 곳에서는 양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도 없고 작은 일도 온 동네가 쉽게 아는 비밀이 없는 동네입니다. 덕이에게 있어 양복 입은 남자는 백마 탄 왕자입니다. 유리구두를 신고 양복 입은 남자와 함께 이 작은 곳을 떠나고 싶어 합니다. 

소도시의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을 사는 덕이 앞에 학규라는 일탈이 스며 들어옵니다. 그렇게 덕이는 양복입은 학규를 흠모하게 됩니다. 학규는 여대생 성추행 사건으로 잠시 지방 소도시에서 문화센터 문학강사 일을 맡습니다. 사건의 오해가 풀릴 때까지 잠시 피난처로 온 곳이죠. 일이 잘 마무리되면 다시 대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소설도 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옴므파탈 학규, 팜므파탈 덕이로 만들다

핸섬한 외모에 준수한 행동거지를 하는 학규는 색욕이 강한 소설가이자 교수입니다. 부인이 딸을 시켜서 서울로 오라고 재촉하지만 덕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덕이와 함께 살림을 차릴 정도로 외도를 하게 됩니다. 사랑에 대한 욕심이 강한 덕이는 학규가 유부남인 것을 알면서도 학규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학규는 처음부터 이 덕이를 잠시 머무르는 정거장정도로만 생각합니다. 

너무나 순수해서 거침이 없는 것일까요? 덕이의 사랑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기관차처럼 저돌적입니다. 덕이와 학규의 불륜 관계를 직접 학규의 부인과 학교에 말하겠다는 덕이. 그런 덕이를 달래가면서 학규는 덕이에게 기다리라고 해놓고 성추행 사건이 해결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서울로 올라가 버립니다. 

 

학규의 말만 믿고 기다리던 덕이는 서울로 올라와 학규를 찾아가게 되고 놀란 학규는 덕이의 집으로 찾아와 돈을 건네주면서 연락하지 말라고 합니다. 불륜의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옴므파탈인 학규의 배신과 사고가 겹치면서 덕이는 팜므파탈이 되어 갑니다. 

심청전의 조연인 뺑덕을 집중 조명한 '마담 뺑덕'

심청전은 심청의 효를 중심으로 다룬 고전극입니다. 심청의 효성을 중점적으로 다룬 심청전에서 뺑덕 어멈은 심학규를 이용하는 악녀로 나옵니다. 영화 '마담 뺑덕'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심청전의 조연이자 유일한 악역인 뺑덕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입니다. 뺑덕이 처음부터 악녀로 나오는 심청전과 달리 뺑덕이 악녀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순수하지만 욕망이 많은 덕이가 교수 학규라는 옴므파탈을 만나서 파괴되는 과정을 전반부에 다루고 자신을 파괴하고도 발정 난 수캐처럼 반성 없이 사는 학규에게 복수하는 과정을 중 후반에 담고 있습니다. 이 고전 원작을 비트는 모습은 꽤 흥미롭습니다. 이는 감독 임필성의 전작인 '헨젤과 그레텔'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고전 원작동화나 고전극을 비트는 솜씨는 꽤 좋습니다. 조연이었던 뺑덕을 주연으로 삼으면서 악녀 뺑덕도 악녀가 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력도 꽤 좋습니다. 이런 상상력과 색다름은 기시감 있는 줄거리임에도 전반부와 중반부까지 이끌어 가는 엔진 중 하나가 됩니다. 

청이가 등장하는 후반부에서 길을 잃어 버린 '마담 뺑덕'

심청전의 곁가지 이야기를 외전 형태로 만들어서 뺑덕과 학규의 관계를 집중 조명한 것은 색다르긴 하지만 큰 줄거리는 신선한 것은 아닙니다. 신선하지 않지만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의 두 배우 때문입니다. 정우성의 농익은 연기와 이제 막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리고 있는 이솜의 순수함과 욕망의 눈빛으로 영화는 지루함을 달래가면서 후반으로 이어집니다. 문제는 후반입니다. 학규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계획까지는 꽤 좋았는데 학규의 딸 청이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산으로 갑니다. 

후반 부분에서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뭔지 모를 정도로 이야기들이 튑니다. 독기 품은 여자의 복수극도 아니고 그렇다고 학규와 덕이의 애증의 밀당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청이 때문입니다. 청이가 등장하면서 '마담 뺑덕'이라는 배를 산으로 보내 버립니다. 이 감독이 관객에게 전해 주고 싶은 메시지가 뭘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집중도는 떨어지게 되고 영화 끝날 때 까지 갈팡질팡하다 끝이 나 버립니다. 약간은 당혹스러운 후반부가 너무나도 아쉽네요. 

만듦새가 약간 성긴 것이 아쉬웠던 '마담 뺑덕'

구두를 통해서 덕이의 신분상승의 욕망과 한 남자에 대한 집착은 아주 농도 있게 잘 그렸습니다. 덕이가 학규가 사준 하이힐을 신고 뒤뚱거리면서 걷는 모습을 통해서 덕이의 성장기도 잘 그렸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이 꽤 많습니다. 덕이가 학규에게 복수 하는 과정을 좀 더 밀도 있게 그려서 한 방을 터트려야 임팩트가 있을텐데 풍선에 바람을 잔뜩 불어 놓고 바늘로 빵! 터트리는 파열음 대신에 그냥 풍선 입구를 풀어서 바람이 서서히 빠져나가게 하는 모습은 좀 아쉽더군요. 

이런 모습은 학규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규라는 캐릭터는 중반까지는 겉과 속이 다른 악으로 잘 담고 있지만 후반에 갑자기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이면서 설득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임필성 감독만의 색깔도 안 보이고 올곧게 가던 복수 & 후회 그리고 개과천선인 주제도 후반에 헝크러져 버립니다. 그럼에도 크게 지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후반부만 아쉬웠을 뿐 영화 중반까지는 꽤 흥미롭게 봤습니다. 

이솜과 정우성의 연기가 좋았던 '마담 뺑덕'

심청전을 재해석한 부분은 색다르고 흥미롭지만 전체적인 스토리, 특히 후반의 정체 모를 스토리 전개는 이 영화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담 뺑덕'을 중반까지 잘 이끌어가는 것은 두 주연 배우 때문입니다.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가진 선한 이미지와 그 선한 이미지에서 나오는 학규의 절대이기주의는 근래에 본 영화 중 가장 참기 힘든 악으로 나옵니다. 

여기에 정우성의 첫 노출 장면은 생각보다 분량도 많고 묘사하는 수위가 꽤 높습니다. 기존의 한국 영화에서 보던 그런 묘사 수위를 넘어섰다고 느낄 정도로 꽤 적나라한 묘사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이 정우성이라는 배우의 힘으로 영화는 기우뚱거리지 않고 잘 흘러갑니다. 

여기에 이제 막 뜨고 있는 귀여운 외모의 이솜이라는 여배우의 연기도 꽤 괜찮았습니다. 다만, 친절한 금자씨에서의 이영애처럼 힘이 있어 보이는 연기는 아닙니다. 신인 배우 치고는 꽤 연기를 잘 했지만 정우성의 연기에 비해서는 좀 떨어지네요. 이는 덕이라는 캐릭터가 우유부단한 모습도 한 몫 했을 것입니다. 

추천하기도 비추천하기도 힘든 그냥 그런 영화입니다. 중반까지 진부하지만 모나지 않는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후반의 좌표를 잃고 목적지를 잃어버린 모습이 좀 아쉬웠던 '마담 뺑덕'입니다. 영화 별점 : ★

★☆

40자평 :   옴므파탈과 팜프파탈이 노를 젓던 배가 청이가 키를 잡고 산으로 올려버린 '마담 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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