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구에는 문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근사한 갤러리나 공연장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요. 한국에서 문화란 특정 지역에서만 소비할 수 있습니다. 서울이 문화 중심지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종로와 강남 일대만 문화 생활을 영위할 수 있지 다른 지역은 관에서 강제적으로 심은 갤러리가 대부분입니다.

금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천구에는 금천구청 건물을 지으면서 같이 만든 공연장과 갤러리가 있습니다. 
이 갤러리는 가끔 아주 보기 좋은 전시회를 합니다. 

 


우연히 들렸다가 좋은 전시회를 금천구청사 부속 건물인 금나래아트홀에서 발견 했습니다.

현재 2014년 7월 25일부터 8월 14일까지 '신학철, 박불똥의 현대사 몽타주'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물론, 두 작가 잘 모릅니다. 아니 모르는 줄 알고 들어 갔는데 한 작가분은 서울시립미술관 전시회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도둑맞은 장바구니> 1992년 박불똥

이런 좋은 전시회가 있고 사진 촬영이 허락 되는 줄 알았다면 DSLR을 들고 왔을거예요. 그러나 가진 카메라는 스마트폰 밖에 없어서 스마트폰으로 촬영 했습니다. 그럼에도 스마트폰 화질도 좋아져서 이렇게 당당하게 소개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네요. 

박불똥이라는 이름 자체가 신선하고 짜릿합니다. 본명은 아니겠죠
박불똥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몇년 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본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제 취향상 가벼우면서도 메시지가 명징한 예술작품을 좋아하는데 이 박불똥 작가의 작품이 딱 제 취향입니다. 좀 가볍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이런 모습이 경박단소한 이 시대에 오히려 더 어울리기도 합니다. 

 1956년 생인 박불똥 작가는 1980년대 신학철과 함께 민중미술 중에서도 포토몽타주 기법을 사용한 작가입니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제가 미술 시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림 스케치는 재미있었어요. 그러나 채색하면서 생기는 짜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물감 헹구고 물통 비우고 시간을 훌쩍 넘겨 버려서 집에서 미술을 그려야 하는 이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정말 짜증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즉석에서 그리는 힘이 있는 수묵담채화와 포토 몽타주 시간은 아주 즐거웠습니다. 특히 어린이 잡지를 보던 저는 친구에게 포토 몽타주에 필요한 컬러 화보를 찢어주면서 인기도 얻었죠. 또한, 포토 몽타주로 머리는 원더우먼 다리는 헐크 호간을 붙이면서 아주 즐거워했습니다. 원본의 아우라를 파괴하는 재미가 솔솔했죠. 재조립한 이미지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원본을 비꼬거나 원본 이미지를 여러개 합쳐서 새로운 이미지와 메시지를 만들어 냅니다. 

이 포토몽타주의 대가가 바로 박불똥입니다. 
도둑맞은 장바구니 작품을 보면 상류층에서는 보통 사람이라고 외치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있고 물가는 매일 오르는 고물가 시대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이 시절은 경기 호황기였던 시절이었죠. 그러고보면 90년대 초반부터 2014년 현재까지 정치인들은 경제 살리기를 하는 듯 합니다. 경제를 살리자는 김영삼부터 박근혜까지 경제를 무슨 20년간 살립니까? 심폐소생술도 20년하면 살려던 환자도 죽습니다. 

이제는 하도 경제 살리겠다고 해서 지겨워주겠습니다. 그냥 경제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네 압니다. 흔하게 쓰는 정치인들의 수사죠. 문제는 그 수사가 먹힌다는 것입니다. 내가 장담하는데 대한민국 경제 살리지 못합니다. 그냥 지금 이대로 쭉 갑니다. 한국이 중국처럼 고성장하는 시대도 아니고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접어들어서 고성장은 없습니다. 게다가 출산율도 세계 최저여서 생산성도 확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의 부조리와 짜증남을 박불똥 작가는 유쾌하게 풀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너무 적나라한 표현에 소개하진 않지만 사령관의 용두질 같은 작품은 낄낄 거리게 합니다. 80년 당시 군인이 대통령 하던 시대를 대놓기 비판했죠. 그러고보면 이 나라의 예술계도 참 수더분합니다. 

80년대는 독재에 저항하는 민중예술이 있었지만 지금 보세요. 거의 없어요. 몇달 전에 한 작가가 박근혜 대통령 풍자 이미지를 길거리에 붙였다가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지만 나머지 작가들 중에 정권 비판을 하고 세상을 비판하는 작가가 몇이나 있을까요? 이는 소설가들도 마찬가지고요. 세상에 대한 비판은 수그러들고 그냥 자기들 사는 이야기 인간 본질에 대한 이야기만 합니다. 

뭐 그럴 심하게 몰아 부칠 수는 없지만 80년대 미술을 보면서 안타까움도 느껴지네요. 물론, 80년대 민중미술이 좀 경직되고 강박이 있었던 것은 있습니다.

<슈퍼용 모나리자> 1992, 박불똥

이 작품도 낄낄거리게 합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90년대 초반에는 모나리자 두루말이 휴지가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다는 그림을 서푼짜리 휴지로 만든 한국. 이 작명 센스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저렴한 생필품에 가장 고귀한 그림을 붙여서 묘한 재미를 이끌어 냅니다.




<농촌, '내일이 없다> 1992 박불똥

농촌이 언제 내일이 있었습니까? 자고이래로 농촌은 수탈의 대상이었죠. 며칠 전에 쌀개방 어쩌고 한다면서 농민들이 시위를 했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농민들이 현 정권을 절대적으로 지지해 주는데 자업자득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한국은 공동체 의식도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농민들의 고통을 국민의 고통으로 알던 시절은 농민 시위에 많은 언론과 국민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지금은 언론에서 크게 다루지도 않고 왜 시위를 하는지 쌀개방이 어떻게 되는 건지 알려고도 취재도 잘 하지 않습니다. 

90년대 초는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해서 해외의 쌀을 수입하라는 협상이 있었고 전국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에 놀란 정부는 쌀개방을 유보하며 유예기간을 두기로 합니다. 농민들이 한국 사람은 한국 쌀을 먹여야 한다는 소명의식 때문이 아닌 지신들의 수익이 떨어짐을 걱정해서 하는 것이지만 식량 주권을 위해서라도 비싼 가격이라도 한국 쌀을 먹어줘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그런 보호주의적인 정책은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상품간 국경의 의미가 사라져서 이제는 식료품도 해외에서 수입하는 게 더 싼 시대가 되었죠. 

농촌은 붕괴가 되어가고 있고 그나마 정부 보조금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마저도 끊어지면 큰 곡소리가 나올지 모릅니다. 그래서 농촌이 각성해야 하는데 계몽시대는 80년대 농활문화로 멸종했고 농촌이 점점 보수화 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는 힘들어졌네요. 

위 작품은 맨 위에 강수연이 레이저를 쏘고 있습니다. 이는 도시를 상징하는 이미지입니다. 그 밑에는 도시라는 자본논리에 뭉개지고 있는 농촌을 묘사하고 있네요. 정치인들이 양주를 마시고 골프를 치러 다니는 것을 지적하고 동시에 외세 문화 침투까지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다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문화는 서로 주고 받고 영향을 받는 것이지 외세 문화라고 막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입니다.

하지만 80년대는 외국자본도 퉤, 외국 문화도 퉤퉤퉤 거렸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우리 것이 소중하다면서 써클을 동아리로 바꾸는 등 한글 사용을 장려하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민족주의 성향은 써클을 동아리로 바꾸고 개량 한복을 등장 시키는 것 밖에 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코화카염콜병라> 1988 박불똥

제목부터 보세요. 코화카염콜병라 아! 센스가 넘칩니다.
이런 상상력 아주 좋아합니다. 80년 대학가는 매판자본과 매반재벌을 대학생들이 엄청나게 지적을 했고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것을 숱하게 외쳤죠.  여기에 통일 문제와 정치 비판 등이 있었는데 매판 자본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매판 자본의 상징인 코카콜라 병을 화염병으로 이용했습니다.

반미 시위를 하면서 미국의 상징인 코카콜라 병을 이용? 아이러니하죠. 제대로 하려면 킨 사이다나 칠성 사이다병으로 했어야죠. 그러나 그렇게까지 따지면서 하지는 않았고 세상 모든 주장은 헛점이 있고 디테일도 약합니다. 그러나 이 디테일을 박불똥 작가는 찾았네요. 


<한국근대사> 1984년 신학철


<부자(父子)> 1981년 신학철

또 한명의 80년대 포토몽타주 작가는 신학철이 있습니다. 1943년 출생한 신학철 작가는 박불똥 작가와 달리 경쾌함은 없지만 시대의 흐름과 비판의식을 좀 더 채운 작품이 많습니다. 특히 그의 한국근대사 연작은 대작으로 그림을 촘촘하게 보면 근대 한국 역사를 비판하는 이미지를 가득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박불똥 작가와 같이 당시 매판 자본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기업 야쿠르트의 야쿠르트 병 이미지를 한 아버지의 모습이 아주 인상 깊습니다. 당시에는 대학생 같은 지식층(당시는 지식층이 맞음)미국 자본, 일본 자본 다 싫어했었습니다. 그래서 야쿠르트를 저렇게 묘사했네요. 여기에 여성을 상품화 한다는 미스코리아 비판,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 비판, 미사일과 총을 이용한 군사 세력 비판 등을 신학철 작가는 했습니다. 



<상황 -871> 1987년 신학철

88올림픽을 앞둔 한국은 수 많은 불량 주택이 밀집해 있는 달동네를 철거하기 시작 합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데도 포크레인으로 까부스는 극악 무도한 사회였습니다. 특히 성화 봉송로 주변에 있다는 이유로 부천 지역이나 오류동 그리고 상계동 달동네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 시킵니다. 

그럼에도 한국 특유의 국가가 먼저고 그 다음이 개인이라는 국가 민족주의에 이런 일들은 쉽게 가려지고 쉽게 잊혀지고 쉽게 빨갱이나 불순분자로 낙인을 찍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함부로 주택을 철거할 수 없지만 세월호 희생자 부모들에게 노숙자라는 표현을 하는 경남 합천의 국회의원과 지겹다라며 빨갱이 운운하는 인간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신학철 작가는 이런 살풍경을 무시무시한 색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 굵은 손기둥이 저항 정신을 담고 있는 듯 합니다.
뜻하지 않게 아주 좋은 전시회를 봤네요

80년 당시를 기억하는 3,40,50대 분들에게 추천하는 전시회이고 그 시절을 모르는 학생들은 엄마 아빠에게 그 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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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코나 2014.08.03 0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전시회 소개 감사합니다. 몽타주가 경쾌한 것만은 아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