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난 후 한 1시간 이상을 걸었습니다. 영화 후유증이라고 하나요. 어떤 영화를 보고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할 때 아무 말 없이 걷게 됩니다. 그렇게 중구에 있는 개인이 운영하는 영화관을 나서서 종로의 거리까지 걸었습니다. 울분과 창피함 그리고 서글픔이라는 감정이 밀물과 썰물이 되어서 계속 저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내가 이런 쓰레기 같은 세상에 살고 있었구나.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목격을 하고 나니 온 몸을 떨게 되었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파렴치한이 가득한 대한민국을 비판하다
잘아시겠지만 이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를 하다가 2년 만에 백혈병에 걸려서 사망한 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검색만 해보면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 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약속'의 원래 제목은 '또 하나의 가족'이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삼성의 캐치프레이즈인 '또 하나의 가족'입니다. 이 영화는 제작 초기부터 삼성전자를 정조준 했습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희귀병으로 사망하는 근로자가 계속 발생하는데도 우린 모른다. 우리 책임이 없다라고 쉬쉬하면서 넉넉한 보상금으로만 입막음을 하는 세계 1위 전자기업의 구역질 나는 그 행태를 비판하는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었습니다.
이런 날카로운 시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무조건 보겠다는 소리도 있었지만 불편한 내용이라는 선입견도 동시에 생겨서 복잡하고 머리 아픈 영화라고 생각하고 그냥 고개를 돌리는 분들도 꽤 있을 것입니다. 저도 삼성전자라는 국내 1위 아니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거대 기업을 정면 비판 하는 영화로 생각하고 봤지만 이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전자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거대한 돈의 벽 앞에서 변절하고 쓰러지고 뒷담화를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오히려 더 많이 담고 있습니다.
감독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영화 제목을 '또 하나의 약속'으로 바꾼 이유를 삼성이라라는 거대 기업을 정면 비판하기 보다는 따스한 가족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제작비 문제도 있었다고 하죠) '또 하나의 약속'으로 영화 이름을 바꾸고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약간 누그러뜨리면서 가족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영화 속 진성전자의 이보근 실장이 진성전자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린 윤미씨를 찾아와서 보상금 이야기를 하다가
"병은 지가 걸려 놓고 회사에게 뭐라고 그러나"라는 말에도 분노 했지만 같이 생선 손질을 하던 동네 사람들의 시선에 더 큰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윤미 아빠. 서울에서 데모 하는 이유가 보상금 더 받으려고 하는 거래"
빨갱이라는 소리와 함께 돈 때문에 서울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시위꾼들과 몰려 다닌다는 그 냉소적인 동네 사람들의 시선에 기가 차더군요. 저는 삼성전자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이보근 실장의 조소를 띈 얼굴보다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윤미 아빠를 욕보는 그 동네 사람들의 수근거림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 모습이 우리들 그리고 혹은 내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알지도 못하면서 눈에 보이는 표피만 보고 마치 그걸 다 안 다는 양 떠드는 그 더러운 세치혀가 나를 찌르는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걸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게 그게 우리들 모습이니까요. 솔직히 돈 때문에 불의를 참은 적 얼마나 많은가요? 애들을 위해서 이렇게 해서는 것을 알면서도 해버린 일 얼마나 많습니까?
서러운 서민이요? 돈이 없어서 서러운 이면에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돈 때문에 할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현실에 너무 화가 나더군요. 윤미 아버지가 딸을 그렇게 허망하게 저 세상으로 보내고 여기저기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 때 거의 모든 언론사는 최대 광고주인 진성을 비판할 수 없다면서 손사래를 쳤고 법조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소시민들도 마찬가지였지요. 진성전자와 외롭게 싸우고 있는 윤미 아빠에게 진성전자 납품 업체인데 갑자기 납품이 끊겼다면서 화를 내는 친척분, 더 가슴이 아픈 것은 아내와 아들의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그냥 보상금 받고 그만 두라고 소리치는 아내와 진성전자의 협력업체에 입사한 아들의 모습이 결코 영화 속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보상금을 넙죽 받는 아버지가 투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서글프다
이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태어날 때 부터 진보성향을 가진 아버지와 가족이 나오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냥 속초에서 택시업을 하는 아버지 한상구(박철민 분)이 국내 최고의 기업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입사한 딸 한윤미(박희정 분)의 입사를 축하하면서 시작합니다. 동네 방네 국내 최고의 기업에 입사했다고 즐거움을 떠들었던 아버지가 2년만에 백혈병에 걸려서 집에 돌아온 딸을 보면서도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운이 없었던 것이지라고 했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운이 없다고 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일하던 생산 라인에서 딸 말고도 다른 직원들이 비슷한 병 혹은 희귀병에 걸렸다는 소리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산재보험이 뭔지도 모르던 아버지가 산재보험을 알게 된 후에도 진성전자 이보근 실장이 찾아와서 500만원 수표를 건네자 넙죽 받아 드는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 값을 흥정하고 사람 목숨을 돈으로 판단하는 진성전자의 모습에 딸은 울부짖었고 그 모습에 아버지는 점점 투사로 변해 갑니다. 자신의 택시에서 죽어가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투사가 되기 시작 합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담아낸 '또 하나의 약속'
고백을 하자면, 출연 배우나 연출력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영화 자체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의무감이라면 의무감으로 봤습니다. 작은 목소리를 담은 그 자체가 감동스러웠고 대기업의 후원을 받지 못하는 영화가 소시민들의 십시일반으로 받은 후원비를 바탕으로 제작이 되었다는 그 자체가 감동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직접 제작비에 후원을 하지 못했지만 우리 주변에도 이러면 안 되는 것이잖아요! 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분들이 있다는 그 자체가 감동이자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서 제 생각은 달라졌습니다. 큰 기대를 안해서인지 몰라도 영화가 너무 잘 만들어졌습니다.
보통, 이런 영화는 조금만 노력해도 쉽게 관객을 울릴 수 있습니다. 워낙 사건 자체가 눈물샘을 자극하는 소재이기에 한눈을 팔면 영화의 본질은 간데 없고 눈물만 가득 남은 영화로 변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 충분히 눈물을 뽑아 낼 수 있는 장면에서도 감정을 절제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여줍니다. 또한, 한번 투사가 된 반도체 공장 피해자와 부모들이 그 긴 행정재판 소송을 하면서 겪는 심리적 갈등도 잘 보여줍니다.
주인공의 울먹이는 모습 보다는 전 저 푸른 설악산과 눈에 덮힌 설악산 그리고 푸른 바다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게 하네요. 바다가 푸른 것은 우리 안의 수많은 멍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영화는 슬픔이라는 바다에 빠지지 않고 한 발 물러서서 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가지는 구구절절한 이야기 때문입니다. 연출력으로 최대한 억제 하려고 했지만 이야기 자체가 주는 힘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영화관은 눈물 바다가 되어 버립니다.
사람에 대한 태도를 지적하고 있는 영화 '또 하나의 가족'
보통 이런 거대 기업과 싸우는 이야기를 소재로 다룬 '에린 브로코비치'나 '프라미스드 랜드' 같은 영화에서처럼 불의에 끝까지 항거하는 모습을 옹골차게 보여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노무사 유난주(김규리 분)를 아버지 한상구가 설득을 합니다.
또한, 강력한 증인이 없는 상태에서 재판이 질 것 같자 실리라도 챙기면서 그냥 진성전자와 합의를 하면 산재 보험금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소리에 각자 판단을 하라고 하는 모습도 너무나도 현실적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진성전자를 절대 악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또한, 피해자 가족과 피해자를 절대 선으로 묘사하기도 않습니다.
진성전자가 일부러 백혈병이나 걸려라라고 악마 미소를 지으면서 입사 시켰겠습니까?
본의 아니게 생긴 병에 대한 태도가 문제인 것이지 진성전자 자체를 정조준한 영화는 아닙니다. 그 태도 즉 이보근 실장이 윤미네 가족에게 보이는 그 무성의하고 반인륜적인 태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를 제작하는데 삼성전자 직원들도 제작금을 후원했습니다. 세상엔 절대 악은 없습니다. 삼성전자 직원 모두가 악마는 아닙니다. 문제는 책임을 질 사람들이나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이 악마의 본성을 지니고 있고 그 악마성은 돈에서 나왔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니 돈만 많이 주면 사람들이 잘 따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잘 따릅니다. 윤미씨도 자기네 회사는 대우가 너무 좋아서 노조도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죠. 돈만 많이 주면 인간의 기본권리 따위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암묵적 동의가 만연한 세상이 우리들 세상이자 한국사회입니다.
이런 사람에 대한 태도에 대한 지적은 근로복지공단이라는 정부 기관에게도 향합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희귀병을 걸린 사람들을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못하는 근로복지공단은 마치 진성(삼성)전자의 문지기 역할을 자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산업재해 판정 행정 소송을 하는데 주체자인 근로복지공단은 진성(삼성)전자의 고급 변호인을 지원 받아서 행정 소송을 진행 합니다.
이보근 실장이 이렇게 말합니다
"정치는 표면이고 경제가 본질이야"
드라마 추적자는 정치인 위에 군림하는 거대 경제인의 모습을 잘 담고 있습니다. 정치인이야 짧으면 5년 길어야 30년 밖에 못하지만 경제 거물은 평생을 왕처럼 군림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인 대한민국의 왕인 거대 기업을 한 아버지가 계란에 바위치는 심정으로 부딪히고 또 부딪힙니다.
지금도 노조가 없는 회사. 삼성, 과연 그 삼성이라는 회사가 건강한 회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영화에서도 말하지만 삼성이 망하라고 이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에 대한 태도를 바꾸라고 하는 것이죠. 돈이면 다 된다는 그 천민자본주의에 물든 시선을 거두고 기계 부속품 같이 취급하는 근로자에게 따스한 온기를 넣어달라는 것입니다. 고장난 장비처럼 수리비만 던져주는 모습 말고 일단은 쓰러진 근로자를 일으켜 세워주고 어디! 다친 곳은 없나요? 라고 묻는 인간미를 찾으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말 한 마디가 태도 하나가 돈 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이보근 실장을 물러나게 하는 아들의 한 마디가 저를 슬프게도 웃음을 주기도 하네요. 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돈으로 깔아 뭉개는 그 대사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듯 합니다.
정치비판 보다 더 힘든 기업비판을 알게 해준 영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저격한다는 내용의 26년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변호인'도 사법부를 정조준한 '부러진 화살'도 300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하고 상영을 했습니다. 특히 영화 26년과 비슷하게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제작을 하게 된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사회 비판의 영화인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관 100개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롯데시네마는 서울에 단 한 개의 개봉관으로 이 영화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정말 영화 대사처럼 정치비판보다 더 힘든 것이 기업비판이구나라는 것을요.
정치인들이야 법으로 세상을 재단하지만 기업은 광고로 세상을 재단하죠. 수 많은 삼성전자의 광고 아니 삼성그룹의 광고로 직원들 월급 주는 언론사와 방송사 그리고 롯데시네마, CGV는 삼성의 노여움을 잘 알고 있기에 알아서 기고 있습니다. 예매율 3위인 영화에 100개도 안 되는 스크린을 눈치보면서 던져주고 레고 영화에는 400개의 스크린을 할당해주는 모습은 돈의 논리로도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전 영화 자체도 자체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이 나라가 삼성이라는 거대한 이름에 어떻게 박박 기는 지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알아서 긴다고 하죠. 그게 가장 서글픈 것입니다. 똥개도 한번 맞으면 다음부터는 때리는 시늉만 해도 눈을 파르르 떨면서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알아서 기죠. 그 모습에 손가락질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라고 그들과 크게 다른 것도 아니고 오늘도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돈 때문에 하는 우리들이 대부분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몰상식이 상식으로 지배한 세상이라도 해도 양심은 압니다. 그게 좋은 행동이 아님을 알기에 괴로워 합니다. 그 우리 마음 속 불의에 굴복하면서 생기는 괴로움을 이 영화를 통해서 각혈하듯 토해 냈으면 합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특히, 아버지 한상구 역을 한 박철민씨의 연기에 탐복 했습니다. 솔직히 항상 까불 거리는 코믹 이미지 때문에 영화 초반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또한 이북 사투리 같은 강원도 속초 사투리의 강한 억양이 초반에는 덜컹거렸지만 한번 익숙해니 박철민씨의 절제된 연기가 눈에 그렁그렁하게 걸리네요
삭발 연기를 한 한윤미씨의 가족을 향한 따스한 시선도 감사했습니다. 딸의 시선으로 본 가족애를 일기를 통해서 보여줄때는 참았던 눈물이 나오더군요. 윤유선씨의 강단있는 연기와 아들 한윤석의 철부지 같은 행동들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도 보기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이실장 역할을 한 김영재씨의 연기가 너무 눈에 밝히네요. 김영재씨의 반듯하면서도 조소를 날리는 듯한 표정이 없었다면 모든 울분이 우리 속으로 소화 되어 홧병이 날 뻔 했습니다.
그리고 김규리, 김규리라는 배우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큰 빛을 발합니다. 무조건 강단 있게 나오기 보다는 강하게 나갈 땐 나가고 빠질 때는 빠지면서 강약 조절이 무척 좋더군요. 큰 눈에서 나오는 선함이 영화에서 큰 등불이 되어줍니다.
멍게는 동물로 태어나 식물로 죽는다
아버지 한상구는 노무사 유난주에게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멍게는 동물로 태어났지만 자리를 잡은 후에는 자신의 뇌를 소화 시키고 식물이 됩니다."
우리들 모습 같지 않나요? 동물로 태어나서 20대 때는 동물처럼 세상에 저항하고 꿈틀 거리고 밟으면 소리를 지르지만 나이가 들면 식물처럼 눌러도 아프다고 소리도 못 내고 때리면 그냥 맞고만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의 20대부터 이 식물적인 성향이 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식물 같은 삶들이 세상에 너무 많습니다. 그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전 이 영화가 변호인보다 훨씬 재미있게 봤고 26년보다 더 큰 울분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 속 이야기는 과거 완료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계몽 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그냥 이러면 안 되잖아요라고 동물 같은 사람들이 세상이 살고 있다고 하는 그 풍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 동물 같은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난 울어버렸지... 영화가 끝나고 엔딩 스크롤이 올라가면서 윤미가 부른 노래가 나옵니다. 그 엔딩 스크롤이 다 올라갈 동안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를 후원한 후원자 이름이 가득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에 제 이름이 없는 것이 창피했습니다. 그 창피함을 이 포스팅으로 대신 합니다.
부디 삼성전자가 이 영화를 통해서 수전노에서 염치 있는 회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노동자를 기계 부속품이 아닌 사람으로 대우해주었으면 합니다. 한 사람만 바뀌면 되는데 그 한 사람이 바뀌질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