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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홀리모터스. 배우의 삶을 단 하루라는 시간에 유려하게 담은 수작

by 썬도그 2014.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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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어도 머리 아픈 감독들이 있습니다. 작가주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주로 난해하고 어려운 영화들을 아주 잘 만듭니다. 레오 카락스 감독도 그 중 한명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영화를 주로 만드는 영화 감독이라고 생각해서 머리가 복잡할 때는 그냥 건너 뛰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레오 카락스 감독 작품 중에 유일하게 국내에서 흥행 1위를 한 영화가 있습니다.  당시만해도 프랑스 영화는 안방 극장용이나 영화 학고들의 영화 교재 정도로만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레오 카락스 감독의  프랑스 영화는 흥행에 성공을 합니다.

아직도 영화계에서 회자 되고 있는 1992년 '퐁네프의 연인들'은 당당하게 1992년 4월 영화 흥행에 성공을 합니다. 
그렇다고 '퐁네프의 연인들'이 쉬운 영화냐? 그건 아닙니다. 아직도 이 영화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그렇다고 해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도 아닙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죠. 제 기억으로는 1992년 4월 당시 볼만한 개봉 영화가 없었습니다. 또한, 당시의 지적 허영이 꽤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80년대 후반 풀린 해외 자유여행(당시는 해외 여행 자체를 하지 못했음) 붐을 타고 '해외 배낭 여행' 붐이 일었는데 이 붐을 통해서 외국 문화가 물밀듯이 들어옵니다. 해외 문화의 흡수가 빠르게 일어나던 시기라서 그런지 지적 허영심이 꽤 있었는데 그 지적 허영심의 결과물이 '퐁네프의 연인들' 흥행 성공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아무튼 레오 카락스 감독은 명감독이긴 하지만 머리 아픈 요즘에 챙겨 볼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지례짐작을 했습니다. 
그래서 '홀리 모터스'가 작년에 개봉 했지만 안 봤습니다. 그런데 연말 영화 잡지를 보니 올해의 영화로 많은 평론가들이 '마스터'와 함께 '홀리 모터스'를 2013년 최고의 영화라고 칭송을 하더군요. 뭔가 있나? 하는 마음에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 지난 주말에 관람 했습니다. 


예상외로 너무 쉬운 영화, 그리고 웃기는 영화 '홀리 모터스'


긴장하고 봤습니다. '레오 카락스' 영화는 좀 난해하고 많이 알수록 더 이해하기 쉬우니까요. 준비한 것은 없고 나이로 만든 경험을 무장하고 봤습니다. 이 나이라는 것이 거추장스러운 것 같지만 경험이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기가 있기 때문에 사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같은 영화도 20대때 보는 것과 40대, 50대 때 느낌이 다른 이유가 바로 경험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어떤 영화는 20대들이 이해 못하는 영화도 있죠. 
잔뜩 긴장하고 봤는데 이 '홀리 모터스' 꽤 쉬운 영화입니다. 아니! 설마! 이렇게 직설적인 은유인가? 뭔가 있지 않을까? 하고 봤지만 무척 쉬운 은유에 웃음까지 보여주네요. 아주 편하게 봤습니다. 내용도 쉽습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한 호텔방에 있는 듯한 사람이 벽을 더듬으면서 열쇠를 꽂아서 벽을 열고 나갑니다. 그 남자가 문을 열고 나온 곳은 영화관 2층이었고 1층에는 제가 영화를 보는 그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즉 영화 관객들이 영화 스크린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시작 됩니다. 

이 홀리모터스는 배우의 삶을 하루에 담은 영화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은유만 이해하면 영화는 어렵거나 복잡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줄거리도 아주 간단하죠. 배우는 '레오 까락스'의 페르소나인 '드니 라방'이 연기를 합니다.  오스카(드니 라방 분)은 어린 딸의 배웅을 받으면서 출근을 합니다. 근사한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는데 그 리무진을 타자마자 서류를 봅니다

저는 무슨 대기업 회장이야기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이 영화의 재미가 시작 됩니다. 서류를 들쳐보던 오스카는 갑자기 분장을 하기 시작 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곳에서 거지 연기를 합니다.  시간이 되자 다시 리무진을 타고 이동하면서 다음 서류를 봅니다. 이번에는 게임이나 영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모션캡쳐 전문 배우로 변신을 합니다


이때 알았습니다. 아침에 비서가 말한 9개의 스케줄은 이 오스카라는 배우가 오늘 하루 종일 연기를 해야 할 배역들입니다.
아주 쉽죠? 리무진은 배우들의 트레일러이고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배우들의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9개의 스케줄은 그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은유하고 있습니다. 오스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9개의 무리한 스케줄을 힘들어할지언정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따릅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스케줄은 '광인'입니다. 2008년 옴니버스 영화 '도쿄'에서 광인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한 '드니 라방'이 이번에도 비슷한 분장을 하고 하수도 구멍에서 나와서 사람들을 놀래키고 다시 지하로 숨습니다. 각각의 캐릭터는 은유가 있는 캐릭터도 있지만 그냥 큰 의미가 있는 캐릭터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딸의 아버지, 광인, 모션캡쳐 배우,칼잡이, 암살자, CEO, 노인, 아코디언 연주자 등 세상 모든 사람을 표현하는 듯한 오스카의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만으로도 이 영화는 재미있습니다. 명 배우인 '드니 라방'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배우라면 이 정도의 연기는 해야 배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배역을 하면서 마치 옷을 갈아 입듯 새로운 배역에 몰입하고 혼신의 연기를 하고 빠져나와 리무진에서 분장을 고치고 다시 새로운 배역에 몰입하는 그 자체를 보고 있노라면 배우들의 힘겨운 삶이 서서히 느껴지게 됩니다. 



영화와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능청스럽게 말하는 '홀리 모터스'

홀리 모터스는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능청스럽게 담고 있습니다. 이 능글 맞은 감독은 아주 유쾌하면서도 때로는 가슴이 저리게 만드는 배우들의 실제의 삶을 상기 시키기 위해서 간단한 트릭을 사용 했습니다. 하루라는 시간으로 배우의 삶을 압축하고 리무진을 통해서 새로운 배역을 맡는 배우들의 억지 변신의 삶을 유쾌하면서도 관조적으로 잘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수시로 영화 초기의 활동 사진을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 혹은 배우에 대한 이야기라고 상기시켜줍니다. 연극의 3대 요소인 배우, 관객, 대본 중에 배우를 집중 부각 시킨 영화입니다. 9개의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오스카는 다양한 배역, 심지어는 아코디언 연주도 합니다. 배우들은 정말 천의 얼굴들입니다. 못하는 악기 연주도 해야하고 못타는 말도 타야하고 실제로 하지 못하지만 하는 척을 잘 연기해야 합니다. 그게 배우죠. 



그러나 이 배우들의 삶은 리무진 같이 화려하지만은 않습니다. 리무진끼리 접촉 사고가 날뻔 한 일이 발생하는데 상대편 리무진에는 자신의 아내였던 배우가 타고 있었습니다. 아내와의 해후는 곧 사라질 오래된 백화점에서 노래를 통해서 전해집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수 많은 마네킹들이 마치 배우들의 삶을 대변하는 듯한 이 시퀀스는 아주 훌륭하고 아름답습니다. 

수 많은 다른 인생을 연기한 배우의 삶을 자기연민의 시선으로 내 진짜의 모습과 삶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이 부부의 만남에서 가장 슬펐던 대사는  "많이 늙었네" "아니 노인 배역을 하다 나왔어" 라는 대사입니다. 자신들의 진짜 모습이 아닌 항상 다른 사람의 모습을 살아가고 그 모습을 다른 배우인 아내가 착각하는 모습은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하네요. 배우들이란 그렇게 스크린 앞 관객을 감동 시키고 흔들어 놓기 위해서 수 많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모습. 딴따라 혹은 광대라고 하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가 바로 '홀리 모터스'에 가득 담겨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상당히 유쾌합니다. 홀리 모터스는 생각보다 능청 맞고 유쾌하며 동시에 배우들의 고민과 고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스케줄은 집입니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배역이 배우들의 또 다른 스케줄로 묘사하는 모습이나  유리 동물원 안의 원숭이 같은 삶으로 묘사한 모습 등은 이 영화를 2013년 올해의 영화 중 하나로 꼽는데 주저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배우라는 사람들이 어느날 동시에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어린 아이에게 동물원이 사라진 느낌일까요? 우리는 오늘도 수 많은 배우들을 좋아합니다. 배우라는 인간을 좋아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배우가 가면을 쓰고 연기한 그 배역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 배역을 사랑하다가 배우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 맞겠죠. 칠봉이를 좋아하다보니 유연석을 좋아하게 되고 삼천포를 좋아하다가 보니 김성균의 삶도 들여다보게 되고 쓰레기를 좋아하다가 보니 정우라는 배우가 연기한 이전 '바람'이라는 영화도 찾아보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가면을 쓴 이미지를 좋아하고 추종하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배우들은 항상 그 배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이미지 안에서만 갖혀 사는 것이 숙명이 아닐까 하네요. 

몇달 전에 인터뷰 현장에서 수지가 울었던 것이 생각나네요. 항상 CF에서 방실 방실 웃고 있는 미스 에이의 수지. 그러나 CF 촬영에 대한 힘겨움을 물어보자 눈물을 터트립니다. 아무리 힘들고 짜증나고 화가나도 카메라라는 스크린이 펼쳐지고 대중이라는 관객 앞에서는 가면을 쓰고 억지로라도 웃어줘야 하는 배우들의 고달픈 삶, 연예인의 고달픈 삶을 영화 홀리모터스는 능청스럽고 미끈하게 잘 담고 있습니다. 꽤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강력 추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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