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가 세운 고등학교를 나온 저는, 학교 설립자가 친일파라는 소리를 이 블로그에 했다가 많은 동문 선배들로 부터 협박어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역시, 한국에서는 자기기판이 어려운 사회입니다. 설립자가 친일파이고 이걸 거론 했다고 동문회에서 보자느니 어쩌자느니 하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아버지가 바람을 펴도 아버지니까 용서하고 너그럽게 봐야 한다는 논리를 보면 이 한국은 깨끗할 수가 없는 나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비판이 강한 나라가 바른 나라로 갈 확율이 높죠.
그렇다고 제가 비판만 한 것이 아닌 일제 시대 때 일본도 차고 만주에서 일본 앞잡이 노릇은 비판 했지만 4.19의 시발점이 된 3.15 학생 시위를 주도 한 점은 높게 평가 했습니다. 이제는 제 입과 이 블로그에서 출신 고등학교의 이름을 절대로 거론할 생각이 없습니다. 학교 이름은 싹 지웠지만 기억은 지울 수 없습니다. 그건 제 기억이고 친일파가 세운 학교를 다닌 것이 제 잘못은 아니니까요. 또한 제 친구들의 잘못도 아니고요. 제가 다닌 학교는 야구부가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이름만 되면 알 수 있는 유명한 야구 선수들을 많이 배출한 학교이기도 하고 야구 했다가 도박과 협박 등으로 지금은 감옥에 있는 야구부 출신도 있습니다.
학교에 야구부가 있어서 좋은 점은 딱히 많지 않습니다. 툭하면 야구부 연습해야 한다고 운동장을 폐쇄하고 수업도 거의 들어오지 않다가 선생님이 불러오면 수업 방해나 하는 등 운동부 출신 동기들의 깡패스러움을 보고 있노라면 딱히, 야구부에 대한 좋은 감정은 없습니다. 야구부가 있어서 딱 하나 좋았던 점은 야구부가 전국 4강이나 결승에 올라가면 수업 중간에 모두 가방을 싸들고 야구장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야구장에 가서 신나게 응원하고 야구 경기가 끝나면 동대문에서 아이쇼핑을 하거나 옷을 사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 일탈의 느낌, 그게 너무 좋았습니다. 야구장을 처음 간 것은 타의로 가기 시작 했습니다. 야구부 때문에 갔던 야구장, 그 야구장이 바로 '동대문 야구장'입니다. 야구장에 처음 갔을 때의 느낌은 청량감 그 자체였습니다. 거대한 공터 그리고 깡~~하는 알류미늄 배트의 경쾌한 소리와 함성, 그리고 뜨거운 응원이었습니다. 야구장의 크기나 규모 시원함은 잠실야구장만 목한 동대문 야구장입니다. 그러나 이 동대문 운동장은 한국 야구의 자궁이었고 많은 슈퍼스타들을 길러낸 곳입니다. 지금 코치나 감독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동대문 운동장에서 야구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동대문 운동장이 2008년 사라졌습니다. 낡고 허름해서 새로운 야구장을 짓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세훈 전 시장의 숨겨진 똥이자 마지막 똥덩어리인 '동대문 디자인프라자' 건립 때문입니다. 이 디자인 프라자는 정말 구역질 나는 똥 덩어리 그 자체이고 황당함과 황망함 그 자체입니다. 현재 이 야구의 요람이었던 동대문 운동장은 사라졌습니다.
사라지기 전에 낡은 디카로 촬영해 놓았습니다. 조악한 사진이지만 이 사진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동대문 운동장의 부셔짐을 담고 있습니다.
1925년 일제시대에 건설되어서 83년 간 수많은 야구 선수를 배출한 동대문야구장. 이 야구장이 사라질 때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목소리는 아주 극 소수였고 더 좋은 야구장을 만들어 준다는 오세훈 시장의 약속에 야구인들은 동대문 야구장을 포기합니다. 장담하지만 현재 구로구 고척동에 거의 다 지어진 돔구장은 열악한 교통편으로 인해 야구가 있는 날 마다 관중들은 큰 고통을 받으면서 집으로 향 할 것입니다.
이 동대문운동장을 기록한 사람 둘이 있습니다. 박준수 사진각가와 김은식 작가입니다.
한국 같이 돈 되면 뭐든 허물어 버리고 새것을 올리는 나라에서는 기록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많은 사라지는 건물들을 기록해야 합니다. 이 일을 두 작가가 했네요동대문운동장이라는 책은 사진 에세이 같은 책입니다. 사라져버린 동대문운동장에 대한 긴 한숨과 후회와 추억 같은 책입니다.
책은 사진과 글이 여유롭게 담겨 있어서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사진들은 대부분 야구장 전경만 담을 줄 알았는데 그 보다는 그 야구장에서 기거했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유난히 노인 분들의 사진이 많은데 전성기가 지난 노인 분들의 노인정 혹은 노쇠한 야구장의 모습인 듯한 노인 분들의 여유로운 모습들이 담겨 있습니다. 왕년에 내가 말이지~~~ 로 시작하는 나이 드신 노인들의 추억팔이와 동대문 야구장의 추억이 절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생각해보면 야구장은 중고등학교의 젊은 아니 어린 선수들과 60이 넘은 나이 많은 사람들만이 가득한 공간이었습니다. 20,30대들은 잠실 야구장으로 가지 동대문으로 가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활력이 없는 동대문야구장은 필연적으로 사라져야 했었지만 그 메아리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가 아닙니다. 저자는 이런 모습들을 긴 한숨 속에 담아 내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야구장만의 비극일 리가 없다. 야구장 역시 이 시대의 한 조각이며, 축소판이고, 그래서 사라진 동대문야구장은 한 시대의 증명사진으로서의 풍경을 남겼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과감하게 꿈꾸고 시도하며 실패의 경험을 쌓아올리기보다 과감하게 꿈꾸고 시도하며 실패의 경험을 쌓아 올리기보다 가장 확률 높은 방식으로 성공해가며 먹고살 방편 마련하기를 요구하는 이 시대 모든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슬픈 자화상 말이다<동대문 운동장 90페이지> 일부 발췌
저자는 동대문 야구장에 대한 추억과 함께 야구장의 역사 그리고 그 야구장의 생리와 변화를 담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야구 용어를 제목으로 하는 작은 이야기들은 뛰어난 은유와 현실 비판적인 시선이 저의 시선과 연결 됩니다.
책은 커브와 직구를 적절히 구사하는 깔끔한 투구를 하는 투수를 보는 느낌입니다. 비록 구속이 빠르지 않아서 방어율이 높은 투수지만 노회한 투수의 역투라고 할까요?
책 자체에 대한 깊이는 깊지 않습니다. 동대문야구장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과 역사, 적어도 야구선수 한 명의 동대문운동장에 대한 추억이나 인터뷰 등이 있었으면 하지만 그 보다는 단 한사람인 저자 자신에 대한 추억담이 전부네요. 그래서 소박하고 읽기 편하기는 하지만 그게 너무 가볍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궁금한게 동대문운동장은 2개가 있습니다. 야구장하고 축구장이죠. 그런데 왜 동대문야구장에 이야기만 적었을까요?
그러면서 제목은 왜 동대문운동장일까요? 동대문 야구장에 추억이 많은 분들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추억 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