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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소소한 일상에서 감동을 이끌어 낸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by 썬도그 2012.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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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영화 제목이 영화를 망치기도 합니다.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이란 영화 제목을 보고 포스터에 못생겨도 너무 못생긴 요괴가 서 있는 모습에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더군요. 반대로 '늑대아이'는 뭔 내용인지도 자세히 보지 않고 스틸컷 한 장만 보고 달려가서 봤고 올해 본 최고의 영화 중 하나 였습니다.


어제로 끝난 SKT의 하루에 한개의 어플이나 콘텐츠를 무료로 쏘는 이벤트를 통해서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을 다운 받아서 봤습니다. 요즘 스마트폰들은 화면도 크고 화질도 좋아서 PC에서 진득하게 보지 않고 이동하면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네요. 다만 단박에 보지 않아서 영화를 보면서 감정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는 점은 있지만 신기하게도 이어보기 하면 바로 그 감정모드로 돌입합니다. 요즘은 영화 리뷰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고 행복해요. 

자 그럼 출발합니다.


두 모녀 섬 생활을 시작하다

영화는 '공각기동대'와 '인랑'을 제작한 '프로덕션 I.G입니다. 지브리와 함께 인기가 많은 애니 제작사인데요.
작화 퀄리티가 무척 뛰어납니다. 인물에 대한 묘사는 물론 풍경사진을 정밀화로 옮겨 놓은 듯한 뛰어난 묘사력에 쉽게 이 애니에 푹 빠지게 됩니다. 애니는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작화도 중요하죠. 


하지만 3마리(?)의 요괴는 전혀 귀엽지 않습니다. 엉뚱하고 짖꿎은 모습은 좋지만 전혀 귀엽지 않아서 아이들에게는 큰 인기가 없을 듯 하네요. 아무래도 요괴라는 설정에서 오는 부담감이 무척 큽니다. 

스토리로 들어가보죠.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고 예측 가능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11살 소녀 모모는 엄마와 함께 도쿄를 떠나서 섬으로 이사를 갑니다. 친척이 사는 섬이자 엄마가 자라났던 엄마의 고향이기도 하죠. 모모 옆에는 아버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영화는 이 아버지의 부재를 아무런 말도 없이 지나갑니다. 관객에게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어떠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초반을 진행합니다. 아마도 상처가 큰 것인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너무 오래전일이라서 굳은살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모모가 사는 방 위에는 다락방이 있습니다. 그 방에는 에도시대에 그려진 요괴그림들이 그려진 책자가 있습니다. 그 책을 들쳐보던 모모에게 요괴들이 다가 옵니다. 


일본은 이런 요괴들이 담겨진 그림들을 에도시대에 꽤 많이 그렸습니다. 조선시대의 민화 같기도 하지만 우리와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요괴들이 그려진 책을 열어보면서 요괴들이 봉인 해제 됩니다.

그렇게 요괴 3마리(?)는 모모의 다락방에서 기거하게 됩니다. 이 요괴들은 식충이들인데요. 남의 밭에 들어가서 먹을 것을 서리해서 먹습니다. 하지만 요괴들은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기에 걸릴일이 없죠. 하지만 단 한명 모모는 이 요괴들을 봅니다. 요괴가 있는 것을 느끼지만 어렴풋이 보이던 어느날 번개가 꽈꽈쾅 친 이후에 요괴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모모는 놀라 자빠지죠. 그렇게 요괴 때문에 하루하루가 가슴 졸이면서 사는 모모는 그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지만 쓸데 없는 소리 한다면서 핀잔만 듣습니다. 할아버지는 지나가는 말로 요괴를 보면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고 모모는 끙끙거리기만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모모가 용기를 내서 요괴들과 맞섭니다. 요괴들이 의외로 순진하고 무서움이 많다는 말을 들어서죠.
그렇게 모모의 느닷없는 용기에 놀란 요괴는 하늘로 가는 통행증을 떨구웠고 그 통행증을 모모가 줍습니다.

모모는 그 통행증이 3마리의 요괴에 생명과도 같은 존재임을 알고 이들을 다스리죠. 그렇게 요괴와 모모의 이상한(?)동거가 시작됩니다. 


무섭고 요상하게 생겼지만 귀엽고 소심하고 재미있는 이와, 카와 , 마메

이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의 웃음은 요괴들이 담당합니다. 보통 이런 오컬트 류의 캐릭터들은 뭔가 하나의 초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요괴들은 특별한 능력이 없습니다. 개구리 같이 생긴 카와가 독한 방귀를 뀌긴 하지만 특수능력은 아니고 머리 큰 이와는 힘이 쌔지만 그걸로 어떤 어려움을 극복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마메는 초딩 같고 마음이 어리기만 하고요. 

이렇게 인간과 너무 흡사한 요괴들은 통행증을 쥐고 있는 모모에게 잡혀 살면서 여기저기서 웃음을 자아냅니다. 
특히 마메는 참 귀여운데요. 문제는 이 요괴들에게 감정이입을 할려고 해도 워낙 생긴 것인 낯선 이미지라서 쉽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가지로 이 요괴 3인방이 이 영화의 재미도 주지만 거리감도 줍니다. 이 요괴들이 귀엽게 마구 느껴진다면 이 영화 상당히 재미있지만 낯설고 이상하다고 느껴지면 영화의 재미는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두 모녀의 간극을 이어주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이렇게 요괴와의 비밀스러운 동거를 하던 어느날 모모가 난처한 상황이 일어나게 됩니다. 다락방에서 거울 깨지는 소리가 났고 엄마가 다락방문을 열어보니 요괴들이 훔쳐온 온갖 과일과 학용품등이 널려져 있었습니다. 

이 모습에 놀란 엄마는 모모에게 설명해 보라고 다그치고 모모는 있는 그대로 요괴들의 짓이라고 말하지만 엄마는 믿으려 하지 않죠. 영화는 이 두 모녀의 서먹거리는 감정의 골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오해와 가슴 앓이 그리고 그 갈등이 태풍이 지나감과 함께 풀어지면서 아주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일본애니나 영화 소설들을 보면 그 감정의 스펙트럼을 담아내는 스타일이 아주 섬세합니다. 작은 것을 잘 만들어서 축소지향의 일본이라고 하는 책도 예전에 베스트셀러였지만 문학이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소소한 일상에서 감정을 길어올리는 솜씨가 무척 뛰어납니다. 이는 민족성과도 연결되어진다고 생각되는데요.

우리는 술을 따랐으면 바로 바로 완샷을 하지만 일본은 다 마시지 않고 첨잔을 한다고 하잖아요. 한국인들은 좀 다혈질인 반면 일본인들은 소심한 면이 있잖아요. 이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일본 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세심하게 묘사하면서 감정을 한단계씩 조금씩 끌어 올립니다.  저는 이런 일상을 그대로 영화로 만든  스타일을 좋아하지만 이런 심심한 듯한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이 애니가 그닥 달갑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 번의 클라이막스가 강하게 있지만 그 전까지는 사실 뭐 이렇다할 사건사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웃긴 장면이 아주 많은 것도 아니고요. 그냥 수묵담채화 같이 여백이 많은 모습입니다.  여러가지 사건사고가 덩굴처럼 치렁치렁 엃히는 것도 없습니다. 어찌보면 이 애니는 지브리 스타일의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제작사는 스튜디오 I.G이지만 제작사만 그렇지 애니 스타일이나 이야기 스타일은 지브리입니다. 돌아보면 일본 애니는 지브리 스타일만이 성공하고 국내에 소개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얼마 전 본 '늑대아이'도 지브리의 느낌이 살짝 났고 '별을 쫒는 아이'도 그렇고요. 이 애니도 악당이 등장하지 않는 일상을 그대로 애니로 만든 소박하고 소소함이 매력적인 애니입니다. 

하지만 지브리의 그 역동감은 없습니다. 지브리 애니가 악당이 나오지는 않지만 박진감이 있는 이유가 액션장면이 상당히 많습니다. 빠른 속도 표현은 지브리가 최고이죠. 그러나 이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은 그게 없습니다. 


이 애니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11살 소녀의 성장기를 담으면서 끝이 납니다. 
아버지의 죽음과 낯선 섬에서의 생활이 모모 앞에 요괴를 나타나게 한 것은 아닐까요? 그 요괴와의 이상한 동거를 하면서 소녀 모모는 한뼘 이상 영혼이 자라게 됩니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연한 두부 같은 애니입니다. 간장에 찍어서 먹는 두부, 맑고 깨끗한 애니로 아이들과 함께 봐도 좋은 영화입니다. 다만 좀 심심하다는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죠. 긴 장편 성장동화를 본 듯 하네요. 

수입업자가 영화 제목을 영어 원제대로 모모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했으면 어땠을까요?  너무 관객층을 어린아이들로 맞춘 것은 아닌가 합니다. 영화에서 편지가 아주 중요한 메신저 역활을 하는데 제목에 요괴가 나오니 나이든 저는 안 보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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