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이 꽤 많습니다. 이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은 어떤 특정한 주제와 모델과 소재를 담기보다 한 도시를 배회하면서 우리들의 일상을 찍습니다. 스트리트 포토그래퍼가 많은 나라는 미국과 프랑스입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유명한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이 나오는 두 도시가 바로 뉴욕과 파리입니다.
파리는 실제보다 우리에게 낭만적으로 생각되어지는 도시입니다. 파리 바게트를 썰어 먹으면서 세느강변에서 샹송이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잔 마실 것 같은 그런 낭만. 이렇게 파리가 낭만의 도시가 된 이유 중 하나가 유명한 스트리트 포토그래퍼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대표적인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였던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로베르 두아노' 그리고 윌리 로니스(Willy Ronis)가 있습니다.
윌리 로니스는 다른 두 사진작가보다 한국에서는 덜 알려진 사진작가입니다.
2011년 겨울 이화여대 속에 있는 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나오는데 '윌리 로니스'의 사진집 그날들의 사진을 보고 걸음을 멈췄습니다
사진작가 이름은 생소하지만 이 자기 키 만한 바게트 빵을 들고 즐겁게 달리는 이 꼬마를 담은 사진은 기억합니다.
이 사진은 두아노의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처럼 많은 엽서로 판매된 히트 사진이죠
그날들이라는 사진집을 기억하고 있다가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습니다.
한국은 사진집을 구매하고 소장하는 문화가 별로 없습니다. 뭐 저도 사진 좋아하지만 사진집을 돈 주고 사기보다는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 봅니다. 그 이유는 사진집들이 너무 비쌉니다. 또한 사진 내공도 없어서 그걸 소장하는 것과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보는 것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저만 이러는 게 아니겠죠
일본은 사진집을 구매하는 문화가 발달했고 그런 문화 때문에 유명 사진작가가 많이 나온다고 하죠.
한국은 사진집을 안사니 대부분의 사진작가들이 생활고를 겪고 있습니다. 물론 상업사진을 하면 꽤 돈을 벌기도 하지만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사진작가들은 사진집 판매만이 유일한 수익원이 될 수 있습니다. 뭐 유명한 사진작가들은 작품을 팔고 수익을 많이 내기도 하지만 대중적이지 못한 사진작가들은 사진만 하고 생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윌리 로니스의 그날들은 다릅니다.
이 사진집은, 아니 사진집이라기 보다는 에세이집 같은 이 책은 로니스의 대표작들과 함께 그 작품을 찍었을 당시의 자세한 상황설명과 사진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습니다. 한 장의 사진에 푹 빠지다 보면 그 사진을 어떻게 찍었나 가 참 궁금한데 이 그날들이란 책은 그 설명이 빼곡하게 들어 있습니다. 1910년에 태어나서 2009년에 돌아가신 윌리 로니스의 머리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입니다
"나는 삶에 움직인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거니는 거리를 좋아한다.
나는 나를 숨기지 않지만 , 또 아무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다"
-윌리 로니스-
윌리 로니스의 사진의 매력은 일상성입니다. 일상을 몰래 들여다 보는 관음증이라고 할까요? 그 관음이 너무나 편하고 포근하고 따사롭습니다.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겨울날 한 줄기 볕이 드는 처마 밑에서 포근함을 느끼는 어린 시절의 그 따스함이 한 장 한 장 배어 있습니다.
위 사진은 한 남자와 두 남자가 춤을 추는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그 모습을 한 커플이 바라보고 있네요
이 사진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먼저 저 남자는 외다리입니다. 또한 같이 춤을 춘 두 여자들과는 그날 처음 만났고 그날 춤을 추고 바로 헤어졌습니다. 두 여자는 유치원때 부터 친구였고요
좀 맥이 빠질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게 바로 이 사진집 그날들의 재미입니다. 사진만 보면 연인들의 춤사위 같고 영원할 것 같지만 정작 저들은 그날 만나서 그날 헤어진 사람들입니다. 단지 춤을 같이 추었을 뿐이죠
적어도 저 사진속에서는 전경의 커플과 춤을 추는 남녀가 모두 행복하고 영원할 듯합니다
이 그날들은 이런 소소한 일상의 사진을 찍은 파리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윌리 로니스의 사진 한 장 한 장에 대한 캡션을 단 책입니다
내가 사진을 찍는 그때 그 순간을 정의하기는 무척 어렵다. 그것은 매우 복합적이다. 가끔은 은혜롭게도 사물이 내가 주어진다. 나는 그것을 '정확한 순간'이라 부른다. 내가 일부러 기다린다면, 그것은 나타나지 않거나 도망친다. 나는 이런 순간의 정확성이 좋다.
윌리 로니스의 그날들 8페이지 일부 발췌
저는 이 사진이 참 좋네요.
로니스는 집으로 가기 위해 튈르리 역으로 향하던 중에 점심시간이 되어서 양재공장에서 나오는 여직원들이 물 웅덩이를 건너는 모습을 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물 웅덩이에 오벨리스크 같은 것이 비추어지고 그걸 여자들이 점프하고 있습니다.
관능적인 사진, 그러나 이런 관능을 담으려면 많은 노력과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잘못하면 관능이 아닌 관음이 되기 쉬운데 로니스는 관음이 아닌 관능을 담습니다
한 장의 사진이 한 사람의 삶도 변화시키기도 하는데 이 사진은 알자스 지방의 한 섬유공장에서 찍었습니다.
이 사진을 본 한 미국인 교수가 이 아가씨를 데리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둘은 결혼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교수가 몇 년 뒤에 죽었고 이 유럽 아가씨는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이 그날들에서는 사진작가 윌리 로니스의 사진에 대한 거대한 생각들도 담겨 있습니다.
1945년 독일에 있던 포로들이 프랑스로 귀환하게 됩니다. 그 귀환병들이 기차역에서 내리는 모습을 로니스는 담았는데 한 간호원과 병사가 포옹을 하면서 간호원의 뺨에 키스를 하는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사진이 있습니다. 이 사진은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와 비견될 정도로 아주 매혹적인 사진인데요. 로니스는 이 사진을 30년 후에 잡지에 공개합니다.
그 이유가 멋집니다
두 연인의 사진일 수도 있지만 둘이 기차에서 만난 사이이고 실제로 병사는 아내가 있거나 혹은 간호사도 애인이 있거나 한다면 두 사람에게 있어 이 사진은 불륜을 담은 사진일 수 있기에 바로 공개하지 않고 30년이 지난 후에 공개합니다. 참 멋진 사진작가입니다
이 사진은 규소폐증에 걸린 광부를 찍은 사진입니다. 47살이라는 젊은 나이인데 얼굴에 걱정과 근심과 고통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 사진은 환자를 담은 고발성 사진인데 이 사진을 작가의 동의 없이 한 외국 출판사가 이 사진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제목을 답니다
"노동자 세계의 교화는 가능한가?"
이건 저 고인이 된 노동자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고 로니스는 이 문제를 강하게 어필합니다.
하지만 사진 에이전시 소속이었던 로니스는 이 사진의 저작권을 에이전시에 줬기 때문에 항의만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로니스는 사진 에이전시를 떠났고 15년간 프리랜서로 작업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루하루가 겹쳐서 일상이 되고 일상이 겹쳐서 인생이 됩니다
그날이 그날 같은 그날들을 살고 있는 우리들, 그 그날 속에 빛나는 일상의 보석을 캐서 우리에게 그날들이 그냥 그런 그날이 아닌 그날을 들여다보면 보석들이 있다고 윌리 로니스의 사진집 '그날들'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솔직히 처음 몇 장을 넘기고 따분했습니다. 사진은 흔들리고 초점 안 맞은 사진도 있고 그냥 평범해 보이는 사진들 같아서 지루하기도 했죠. 그러나 서서히 그날들에 물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지루한 일상에서 반짝이는 찰나를 잡아내는 이 사진작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가장 좋아했다는 로니스,
평생 아마추어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고즈넉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일상에서 황금을 캐는 이 작가가 너무 좋습니다.
서울에는 왜 이런 멋진 스트리트 포토그래퍼가 많지 않을까요? 있기는 하나요? 서울이 아름다워진다면 언젠가는 서울을 담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가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로베르 드와노가 인기스타였다면 윌리 로니스는 화려하지 않은 것에서 화려함을 찾는 소박함이 있는 시골 촌로 같은 기품 있는 사진들을 많이 담았습니다. 재미있게도 일상의 우연성을 잘 잡은 이 작가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바게트를 들고뛰는 꼬마 아이사진은 연출해서 찍었습니다. 아이 할머니에게 허락을 얻고 3번에 걸쳐서 뛰어오라고 지시한 후 찍은 사진인데요. 이것도 참 아이러니하네요.
괜찮은 책이고 추천하는 책입니다. 사진 속 뒷 이야기와 나중 이야기가 정겨운 책입니다.
저 하늘에서도 윌리 로니스가 우리의 삶을 찍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날이 그날 같다고 푸념하는 현대인들에게 그날이 그냥 그날이 아닌 그날 나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써보라고 꾸짖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