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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삼청동 잘 안갑니다. 예전에는 아는 사람 만나면 부러 삼청동에서 만나고 거기서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차를 마시고 그 아름다운 찻집의 분위기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그 찻집은 아름다운 기억으로 머리속에 저장이 됩니다
삼청동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책 한권 때문이었습니다. 서울의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골목길을 소개한 그 책을 읽고 일요일 새벽에 첫차를 타고 삼청동 골목을 탐험했습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혼자 걷는 묘한 설레임을 느끼면서 서울에서 느끼기 힘든 옛 정취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골목길과 기와가 아름다운 북촌 한옥마을을 이리저리 구경하면서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감탄사가 연신 나왔고 이후 제 작은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이때가 2007년도였고 이 당시만 해도 삼청동은 크게 알려지지 않는 동네였습니다. 그러나 책과 신문기사및 드라마 촬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 했습니다. 지금의 한가인보다 더 연기를 잘했던 시절인 한가인, 양동근 주연의 드라마 '닥터깽'을 촬영한 곳이 삼청동이기도 했습니다.
맞아요. 인심이 좋았습니다. 북촌 한옥마을을 찍고 집으로 향하는데 복덕방에서 나온 할아버지가 많이 찍었소? 라고 다정다감하게 물을 걸어 오십니다. 아.. 예~~ 동네가 참 아름다워서 많이 찍고 멋지게 담았습니다. 허허허 웃으시던 그 웃음소리 아직도 기억 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3가지 맑은 것은
프랜차이즈가 없는 동네
아파트가 없는 동네
편의점이 없는 동네
이 3가지는 서울의 이미지 대다수를 구성하는 이미지입니다
세계적인 드로잉 화가인 '댄 퍼잡스키'는 한국에 머무르면서 여러가지 한국의 이미지를 드로잉으로 그렸는데
그가 그린 드로잉중에는 에펠탑과 MC를 적어놓은게 있었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에펠탑은 '파리바게트'라는 빵집과 MC는 맥도날드였습니다. 얼마나 많은지 바퀴벌레 만큼 많은게 프랜차이즈들입니다.
지금 거리를 나가보세요. 프랜차이즈 아닌 것들이 얼마나 있는지 또는 프랜차이즈점이 얼마나 많은지를요.
프랜차이즈가 좋은 점도 있습니다. 맛에 균질성을 보장해 주므로 여행에 가서 음식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포근함과 익숙한 맛을 제공합니다.
사촌 여동생이 유럽에 여행가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한마디 했습니다
에이~~ 유럽까지 가서 맥도날드 먹냐.. 비싸더라도 아님 싸고 맛 없더라도 그 지방 음식을 먹지
인사동에 스타벅스커피가 들어 왔습니다.
인사동의 정체성은 전통입니다. 맑은 국화차나 감기에 좋은 감귤차등 다양한 우리 차들을 파는 전통찻집이 많았고 우리 동네 주변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찻집들이기에 삼청동 이전의 제 아지트였습니다. 그런데 이 인사동 입구에 오락실이 들어오더군요.
그리고 스타벅스가 들어오고 난 후 더 이상 인사동에 차 마시러 안가고 오로지 갤러리만 들락거리고 있습니다.
다행이게도 아직 사진갤러리들이 많은 인사동입니다.
인사동까지 가서 스타벅스 먹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 동네 주민이라면 모르겠으나 저 지방에서 혹은 외국에서 아니면 간만에 나왔는데 스타벅스 먹으면서 친구와 수다떨다 집에 가면 차라리 집 근처에서 편하게 만나지 왜 굳이 인사동까지 와서 만날까요? 물론 뭘 먹든 그건 개인의 자유입니다만 이렇게 프랜차이즈 음식과 음료를 먹게 된다면 인사동의 한 이미지를 차지하는 맛의 정체성은 잃어버리게 됩니다
더 이상 인사동은 전통의 거리가 아닌 전통도 현대도 아닌 하이브리드 잡탕의 거리가 되었습니다
아직 이런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음식점과 찻집들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일까요? 하지만 인사동 대로변은 이미 잡탕이 되어 버렸습니다. 인사동의 느낌을 간직한 곳을 찾을려면 골목 이곳 저곳을 기웃거려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인사동은 90년대 중반까지는 그런대로 전통의 거리를 잘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쌈지스페이스'가 들어온 후 전통에서 벗어현대의 느낌이 물씬 풍기게 됩니다. 이후 골통품과 갤러리가 많은 화가와 문인들의 거리가 아닌 그냥 소비의 거리, 젊은 사람들의 눈요기와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으면서 옛 이미지는 사라지고 현재는 여느 서울의 향락가나 유흥가와 다른게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많은 갤러리와 화랑에서 나오는 예술의 빛이 그나마 인사동을 붙잡고 있지 갤러리들과 화랑마져 떠난다면 인사동은 집 근처 유흥가와 다른게 전혀 없는 곳이 될 것 입니다.
프랜차이즈, 편의점, 아파트가 없어서 맑은 동네 삼청동은 인사동의 대안이었고 2천년도 후반 부터 여길 들락거렸습니다.
그러나 입소문과 언론 매스컴과 책에서 떠들기 시작하더니 여기에 많은 사람이 몰려 들었고 주말에 가면 줄서서 볼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왕래합니다.
욕망이 뭉치면 돈이 냄새를 맡게 됩니다. 삼청동은 많은 예술가들이 인사동의 높은 물가와 임대료를 피해서 보금자리를 마련한 동네입니다. 그런데 이 곳에 다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인기를 끌더니 유동인구가 많아지지 속속 눈쌀을 찌푸리는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 했습니다.
전 삼청동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 물고기 비늘 같은 이 건물이 최근에 저 멋지고 아름다움을 벗고 밋밋한 벽돌로 외장을 바꾼 모습에 긴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 이미지는 길거리에 널려있는 정말 하나도 주목 받을 것이 없는 그런 이미지였습니다.
그리고 삼청동은 삼청동이 아닌 일청동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두가지가 맑은 동네를 흐트러트리고 있습니다. 파리바게트, 대형 화장품가게, 하겐다즈, 커피빈과 브랜드 옷가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국무총리 공관 앞에는 편의점이 생겼습니다.
아파트가 없는 동네인데요. 아파트는 국무총리 공관과 청와대와 가까워서 100년이 지나도 지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삼청동의 즐거움은 그것입니다. 골목을 돌면 예측 못하는 이미지들이 튀어 나온다는 것이죠. 영화도 예측 가능한 빤한 이야기를 하면 졸립잖아요. 편의점과 프랜차이즈점의 단점은 그 빤함 때문입니다. 그 안에 들어가보지 않아도 대충 어떤 느낌인지 미리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설레임은 없고 오로지 편함만 있습니다. 편함을 느낄려고 삼청동에 가나요? 편한거 느낄려면 집앞 던킨도너츠나 스타벅스가 더 편하다니까요. 불편하지만 새롭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보러 삼청동에 가고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삼청동을 가보라고 하잖아요.
서울이라는 아파트, 프랜차이즈, 편의점이라는 블럭이 붙여넣기 안된 청정지대라고 가라고 가라고 입소문을 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삼청동 마져 프랜차이즈와 편의점이 들어와서 삼청동만의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지금은 몇개 없다는 건데 이 삼청동 상인들이 서로 협력해서 이런 이미지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결국은 여느 서울거리와 다르지 않는 그저 그런 동네가 될 것 입니다.
그 배우가 개성있게 생겨서 인기가 많은데 인기가 있어지니까 온갖 성형수술을 해서 표준형 미인으로 다시 태어나면 어느 팬이 그 배우를 좋아할까요? 한 외국감독이 한국 여배우들은 모두 비슷하게 생겼다는 말이 빈말이 아닙니다. 이런 얼굴과 동네이미지의 동기화로 우리는 얼마나 지루한 삶을 살고 있나요
저는 그래서 요즘은 삼청동의 이미지를 그나마 가지고 있는 서촌지역으로 자주 갑니다. 교통편도 좋지 않고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더 좋은 서촌, 언젠가 서촌도 삼청동과 동기화 되면 또 다른 동네를 찾아봐야죠. 아마 서촌이 끝으로 서울에는 더 이상 가볼만한 곳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또 경기도로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나요?
요즘 지방도 동기화가 많이 되어서 그 지역의 특색은 별로 없고 마치 전철타고 이웃동네 놀러간 느낌이 드는 곳도 많습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야 길고 오래 사랑 받을 수 있습니다. 삼청동은 현재 위기입니다. 주민들은 이걸 알고 있는데 돈은 그 위기를 느끼지 못합니다. 임대료는 올라가고 돈 없는 예술가들과 소규모 공방이나 카페는 또 떠날 것이고 돈 많은 주인들이 프랜차이즈 혹은 번쩍거리는 찬란함을 무기로 손님을 모시겠죠. 하지만 삼청동은 소박해서 아름다웠던 동네지 멋지고 번쩍거려서 인기 있는 동네가 아닙니다. 삼청동도 언젠가는 밋밋한 강남의 한 동네처럼 되어버리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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