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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복수와 사랑이라는 두 굴레의 바퀴를 굴리는 자전거 탄 소년

by 썬도그 2012.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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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같은 나이의 다른 중학생 둘이 가혹한 폭력과 구타를 했고 그 폭력과 구타에 시름 시름 앓던 중학생은 스스로의 삶을 포기했습니다. 우리는 광분했습니다. 마치 외계인을 명동거리에서 본 경악스러운 표정을 하면서 폭력학생을 집단 구타했습니다.

하지만 그 폭력 가해 학생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외계에서 우주선을 타고 온 것도 아닙니다.
항상 우리 곁에 있었던 학생들입니다. 어제 느닷없이 나타난 새로운 인물들이 아닙니다. 우리 어렸을 적에도 아버지가 학교를 다닐 때에도 있던 학생들이죠. 하지만 우리는 마치 신종플루 처럼 새로운 인간들이 나타난듯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가해 학생들을 감옥에 보냈고 이렇게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고 이 사건은 끝이났고 곧 잊혀질 것 입니다.

한 해병이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지고 총질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 가해 해병을 사형선고를 내리고 이 사건을 잊을 것 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해병대 내에서는 그 가해 해병이 폭주하게 만든 근본 원인인 기수열외와 구타는 이어질 것 입니다. 꼰대들이 나서서 별 쇼를 다 하겠지만 우리안의 아니 한국이라는 사회가 가지는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절대 정의 속에서는 이 무서운 복수의 굴레는 끊어지지 않을 것 입니다.

또 어딘가에서 폭주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우리는 그 폭주를 다시 발길질로 잠재울 것 입니다. 이 복수의 굴레가 한국의 표준 정의입니다


노르웨이에서 한 살인마가 살상력을 높힌 총기를 가지고 77명의 학생을 숨지게 했습니다. 
전세계가 경악을 했고 노르웨이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그 살인마가 사형을 받을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그에게 징역대신 정신이상자 판정을 받고 평생 정신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징역을 받는다고 해도 21년이 최고이기 때문에 그는 21년이 지나면 풀려납니다.  노르웨이에는 사형이 없기 때문입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살인마를 저주하고 욕을 하기 보다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장미꽃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노르웨이 총리는  "더 이상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고 더 강한 민주주의와 더 큰 관용의 정신으로 보복하겠다"고 했습니다.

노르웨의의 방식과 한국의 방식 어떤게 보복의 표준 방식일까요?  정의란 개개인이 다르고 나라마다 다르고 사회마다 다릅니다. 또한 어떤 정의가 더 옳고 어떤 정의가 그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개고기는 보신용이지만 어떤 나라에게는 혐오 식품이죠. 



 
붉은 옷을 입은 시릴은 옷 색깔 만큼 난폭하고 불안해 합니다. 항상 도망칠려고 하고 사납게 으르렁거립니다.
보육원에서 자꾸 탈출할려고만 하는 시릴, 이 11살짜리 소년은 안절부절합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 때문입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시릴를 보육원에 맡겨 놓고 자신이 좋아하던 자전거도 팔아버리고 사라졌습니다.

시릴은 그 현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날 버리다니. 그럴리 없다면서 보육원 상담교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여주고 자전거를 아버지가 팔았다는 것을 직접 목도해야 잠잠해 집니다.

 
그런 불안해 보이는 시릴을 사만다라는 미장원 아줌마가 시릴의 자전거를 사서 보육원에 갖다 줍니다.
사랑에 굶주린 어린 시릴은 그 사랑을 따라 갑니다.  시릴은 먼저 제안합니다.  아줌마랑 함께 있어도 돼요?

사만다는 파수꾼이 없이 방치된 채 밀밭에서 노는 시릴을 품어 줍니다.
그리고 아빠 찾기를 도와주죠.  그리고 시릴의 방황이 시작됩니다. 아버지라는 자리의 부재는 어린 시릴에게 한 세계가 송두리채 사리져 버린 것이고 어린 나이에 그 한쪽이 무너져 내린 세상을 올곧이 볼 수 없습니다

그럴때 마다 사만다 아줌마는 시릴을 끊임없이 보살핍니다.


 
영화 '자전거 탄 소년'은 복수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작년에 본 같은 스웨덴 영화인 '인 어 베러 월드'와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상 하시겠지만  북유럽 영화 답게  눈눈이이의 복수 보다는 사랑이 모든 폭력의 굴레를 잠재울 수 있다는 절대 진리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11살 짜리 시릴이 복수의 굴레와 사랑의 굴레 속에서 방황하는 내용이 대부분인 영화이고 그게 이 영화의 주제입니다.




아이들은 스펀지입니다. 주변 상황을 너무 쉽게 배우고 너무 잘 흡수합니다. 연탄광에서 놀면 검댕이가 되고  환한 잔디위에서 놀편 푸르게 물이 듭니다.  이렇게 쉽게 정체성이 변하는 아이들은  쉽게 폭력에 노출되고 폭력의 세계에 쉽게 빠져듭니다.  아이들은 세상물정과 판단능력이 흐리기 때문이죠.   이렇게 쉽게 폭력에 노출 되지만 또 쉽게 그 폭력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기도 합니다

폭력의 세계에서 웅크리고 비웃음을 배우던 아이에게 사랑이라는 동앗줄을 내려주는 사만다 같은 아줌마가 없다면 아이들은 그렇게 어두운 뒷골목에서 폭력의 세계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그 세계가 세상의 전부인양 살아 갈 것 입니다.

영화 '자전거 탄 소년'은  사랑과 폭력이라는 두개의 바퀴를 굴리면서 어디로 가야할 지 두리번 거립니다.
그런 소년에게 사랑의 힘을 알게 해주는 사만다,  사만다 같은 아줌마가 세상에 많아 진다면 시릴같이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울먹이는 소년들과 소녀들이  좀 더 환하고 바른 세상으로 나오지 않을까요?


 

 아줌마 자전거 타도 돼요?

시릴은 사만다 아줌마에게 묻습니다. 아줌마는 흥쾌히 자전거를 바꿔 탑니다. 처음으로 탄 어른용 자전거
그렇게 시릴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911테러를 당했다고  증거도 없이 심증만 가지고 이억만리에 수천조나 하는 전쟁병기와 병사를 이끌고 복수를 하는 미국과 
폭력에는 폭력으로 맞서야 한다는 한국,  교과부 장관이 폭력학생들은 평생 따라다닐 폭력의 주홍글씨를 찍어서 관리하겠다는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나라.

어떤 방식이 복수에 대한 해결 방식으로 좋을지는 각자 판단이 다를 것 입니다.
하지만 전 시릴을 말썽많고 폭력적인 사회 밑바닥 학생에서  밝고 환한 푸른 잔디밭이 깔린 세상으로 이끄는 사만다 아줌마의 방식이 더 좋아 보이네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의 시릴의 어른스러운 행동과 그가 배운 사랑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것 입니다. 
그나저나 이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첨 봤는데 이 감독들의 영화 다 찾아봐야 겠습니다. 북유럽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순수한 느낌이 너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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