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하자마자 3명의 아들을 둔 아버지와 어머니가 눈물을 흘립니다. 특히 어머니는 슬픔에 잠깁니다. 3명의 아들 중 한 명이 신의 부름을 받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후 그 슬픔을 녹여낸듯한 자연의 풍광들이 가득 담깁니다. 아름다운 지구의 영상, 지상과 수중의 자연의 에너지를 가득 담은 영상이 나옵니다. 때로는 미시적 인세계가지 담고 생명의 꿈틀거림을 담다가 우주가 나옵니다. 목성, 토성, 성단, 은하계가 나옵니다. 관객들은 수근거립니다
이 영화 다큐야?
마치 내셔럴 지오그래피 같은 영상들이 가득 담기면서 가끔씩 어머니의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마치 선문답 같은 진중하고 철학적인 질문이 나옵니다. 그 질문들은 과연 신이란 있는 것일까? 왜 착하게 사는 나에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하는 말들이 나옵니다 관조적인 영상의 나열 속에서 드디어 스토리가 흘러나옵니다.
이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의 이야기는 별다른 게 아닙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장남과 아버지의 흔한 갈등 즉
아버지는 엄하시고 항상 나에게 이런 것을 하지 말아라, 이렇게 해라. 착하게 살아라. 강해야 한다라는 강압적인 주입식 삶에 장남은 아버지를 저주하고 아버지가 죽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하죠. 반면 어머니와 있을 때는 천국을 느낍니다.
이런 부자간의 갈등이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입니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아버지가 아들에게 '미안하다. 다 너 잘 되라고 했던 행동이다. 이해해라'라는 말속에서 아들과 아버지는 화해합니다.
단순하게 보자면 이 영화는 아버지와 장남 간의 갈등 그러나 저도 공감하고 대부분의 아들 혹은 딸들이 부모님과 마찰음을 내는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을 아름다운 영상과 아들 혹은 아버지 어머니의 독백으로 녹여냅니다.
솔직히 초반엔 좀 졸았습니다. TV 영화 소개에서도 소개했듯 초반의 난해한 영상들이 흘러나오고 후반에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난해한 그 영상이 있었기에 이 영화는 대우주와 인간의 삶이라는 소우주가 만났고 그 대, 소우주를 꽤 뚫는 통찰력이 영화에 담깁니다.
현자들이 그런 말을 하죠. 우주의 진리 어쩌고요.
전 그런 거창한 단어는 모르겠지만 살아가면서 나이가 들면서 이런 느낌이 듭니다. 세상은 몇 개의 정언명령이라는 거대한 대전제위에 각각의 인간들이 다양한 삶을 살면서 변주곡을 노래 부르지만 결국은 인생이란? 절대 진리의 멜로디가 있다는 것을요. 우주와 인간이 크게 다르지 않으며 소우주와 미시적인 우주와 거시적 우주와 대우주가 하나의 명제 아래서 변주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요.
파괴의 아버지, 소생과 생명의 어머니
영화는 하나의 거대한 사건인 19살에 죽은 어린 동생에 대한 충격음으로부터 펼쳐집니다. 마치 접시가 깨지고 그 충격음이 영화 전체에 파장이 되어 펼쳐집니다. 3명의 화자인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장남의 내레이션이 군더더기 없는 잠언처럼 울려 퍼집니다.
장남의 나레이션이 가장 격정적이었는데 장남은 말합니다.
"난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 속에 함께 있었다"고요. 뭐든 강하게 살라고 파괴하는 아버지와 모든 것을 키워내고 사랑으로 모든것을 품는 어머니. 장남은 이 둘의 모습을 모두 가슴속에 간직한 채 삽니다.
마치 영화 '플래툰'에서 주인공이 반즈중사라는 악마와 일라이어스라는 천사를 경험하면서 할아버지에게 귓속말하듯 말하는 모습처럼요
이제 다시금 돌이켜보면 우린 적군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 싸우고 있었습니다. 결국 적은 자신의 내부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나에게 전쟁은 끝이 났으나 남은 평생 동안 내 속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어스도 반즈와 싸우며 평생 동안 내 영혼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가끔씩 내가 그 둘을 아버지로 하여 태어난 아이 같은 느낌도 듭니다.
그러나 그야 어찌 됐든 거기서 살아남은 자는 그 전쟁을 다시금 상기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우리가 배운 것을 남들에게 가르쳐주고
우리들의 남은 생명을 다 바쳐서 생명의 존귀함과 참의미를 발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영화 플래툰의 마지막 장면에서 크리스 독백-
성인이 된 장남 잭(숀 펜)은 어린 시절 죽은 동생의 죽음과 그에 대한 기억을 아버지와 통화하면서 다시 꺼내게 됩니다.
그리고 동생의 죽음을 떠올리면서 당시의 자신을 되돌아보죠
아버지의 말과 행동이 다른 이해 못 할 행동을 신에 투영해 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별게 아닙니다. 장남과 아버지의 갈등, 뭐든 하지 말라고 하고 착하게 살라고 하는 강압적인 아버지.
그러나 그런 아버지 자신은 착하게 사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식사시간에 떠들지 말라고 아들 3명과 아내 앞에서 말해놓고 혼자 일장연설을 하자 둘째 아들이 "시끄러워요!"라고 하자 화가 난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때리고 그 모습에 평소에 아버지가 말과 행동이 다르고 자신에게는 너그럽고 아들에게는 엄한 , 아들에게는 착하고 바르게 살라는 말에 분노심이 가득했던 장남은 아버지를 밀칩니다.
순간 저는 큰 충격음이 가슴에서 봉인해제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착하고 바르게 살라고 나에게 말하면서 정작 안내양이 있었던(80년대 초반까지는 버스 안내양이 있었음) 그 버스에서 안내양이 토큰이라는 버스비를 내라고 하자 없다면서 그냥 내렸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시내에 나갔다가 내리면서 행한 그 아버지의 행동에 난 너무나 크게 놀랐습니다.
아니 신과 같은 아버지가 저런 파렴치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한없이 높고 하늘 같은 아버지가 한낱 양아치랑 뭐가 다른가? 내 8살 때의 그 충격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버스 안내양의 혐오스러운 표정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그런 것 다 잊고 사는 줄 알겠지만 저요! 평생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그런 것 모르시겠죠.
여동생이 조카들을 데리고 전철을 무임승차 하려고 하기에 내가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돈 600원 아끼려고 모범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냐고 화를 내면서 조카들이 너의 그런 몰상식한 행동 평생을 기억할 거시라고 말했습니다.
영화는 이런 권위적인 아버지가 정작 권위를 무너트리는 논리적이지 못한 행동에 반기를 든 아들의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선은 크게 부풀어 오르는데 신에게 까지 따져 묻습니다.
신은 왜 착하게 산 나에게 내 가족에게 불행한 일을 내려주는가?
착하게 살았는데 왜 죄 없는 동생을 데리고 가는가? 정말 신은 착한 것일까?라고 따져 묻습니다.
착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착하게 살아도 못되게 살아도 동생의 죽음은 정해진 것 아닐까?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는 현학적이고 피상을 넘어서 인간의 삶의 본질을 꽤 뚫는 질문들을 계속 읇조립니다.
완벽하지 않는 아버지기에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어린 아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합니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기에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는데 어른들은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한다라고 대듭니다.
그 어린 아들의 모습 속에 내 모습, 그리고 관객의 어린 시절 모습이 투영됩니다.
지금도 어머니는 다 큰 어른인 저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가
하지 마라. 하지 마라고 합니다. 그 넌더리라는 소리 하지 마라! 물론 어머니의 경험과 아버지의 경험상 내가 해보니까 안 좋더라라고 해서 하지 말라고 말을 한것이지만 아버지 어머니의 얄팍한 경험이 진리기 아니라고 대들면서 하지말라는 것을 합니다. 그 시도가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를 하게 되면 혹은 실패건 성공이건 그 결론을 가지고 자신의 아이들인 아들과 딸에게 하지말라고 할 것입니다.
무엇을 하라고 하기보단 하지 말라고만 하는 우리들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영화는 이렇게 범 우주적으로 나가기도 하면서 일상 아침식사에서 펼쳐지는 사소한 우주적인 다툼까지 다루는데 두 개의 연결고리 즉 범우주적인 모습과 소우주적인 인간의 삶을 잘 링크합니다.
신은 과연 논리적인가? 주인공은 아무런 죄도 없는 친구를 수영하다가 죽게 만드는 신을 보면서 나쁜 신이라고 손가락질합니다.
태어나고 어른이 되기까지의 겪는 성장통을 뛰어난 영상과 절제된 대사로 녹여내다
영화는 시종일관 관찰자 같은 입장의 앵글을 담습니다.
광각앵글로 자연의 모습을 담으면서 항상 화자의 뒷모습에서 그들의 독백을 담고 화자가 바라보는 세상을 담습니다.
영화는 장남이 태어나고 아장아장 걸으면서 사랑을 느끼고 동생이 태어나서 질투라는 것을 배우고 아버지의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에 분노를 배우고 반항을 배우고 늙어버린 아버지가 힘없이 미안하다. 내가 널 엄하게 키웠구나라는 말에 아버지의 슬픈어깨까지를 담담하게 담습니다.
영화 보는 내내 내 인생이 자꾸 오버랩되는데 명작의 힘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빗자루로 항상 나를 때리던 어머니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 어머니가 든 빗자루를 막고 던져버린 그 반항심에 어머니는 놀라서 이후 절 때리지 않았습니다.
커가면서 배우는 사랑, 질투, 적개심, 분노, 아버지에 대한 불만, 사춘기 시절 아버지가 날 이해하지 못해서 대들던 그 모든 모습들이 영화 보는 내내 슬픈 주마등처럼 흐릅니다. 이런 머릿속의 혼돈을 이끄는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사랑만이 세상을 구원해 줄 수 있다
감독 트랜스 맬릭은 거장입니다. 그가 연출한다고 하면 수많은 허리우드 명배우들이 카메오로 출연할 정도입니다.
영화 '씬레드라인'은 2차 대전을 다룬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정상과 미침의 얇은 경계선인 그 레드라인을 줄타기하는 인간들의 광대짓을 2차 대전에 녹여낸 전작에서 그는 인간의 파괴본능을 자연이라는 거대한 사랑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 사람에게서도 많이 배우지만 자연에게서도 많이 배웁니다.. 풍경사진을 많이 찍고 자연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지나가다가도 발 밑에 지나가는 개미나 꽃과 나무를 한참 동안 응시합니다. 응시는 관찰이 되고 관찰이 깊어지면 자연이 나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농부들은 압니다. 자연은 거짓말을 안 하다는 것을요.
자연은 항상 정직하며 아주 낮은 목소리로 세상 구원의 경전을 매일 읊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 인간이 그걸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연을 파괴하죠.
이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는 나무가 전하는 세상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그 메세지를 어머니를 통해서 선보입니다.
시종일관 그레고리 성가대의 찬송가 같은 음악과 교향곡이 흘러나오는데 자연이 주는 언어를 교향곡에 실어 보냅니다.
사랑하고 사랑하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졸았던 내 눈은 어느새 감동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지루한 영화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의 본질을 담고 있습니다. 당신의 삶이 들어있고 내 삶이 들어 있는 영화입니다. 그 삶의 진리는 우주의 진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영화입니다.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과 함께 나무의 나이테처럼 똑같은 갈등을 수 세대에 걸쳐서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현재에서 미래에까지 이어지는 그 인간의 갈등, 소우주라고 하는 가족 간의 갈등을 담고 있습니다.
왜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며 정작 그 젊은이들이 어른이 되고 다시 30년 전 자신의 모습과 똑같은 젊은이들에게 훈계를 할까요? 이런 반복들, 30년 주기의 인간이라는 행성의 삶의 공전을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는 앞마당에 있는 거대한 나무처럼 묵묵하게 담고 있습니다.
왜 칸 영화제가 이 영화에 황금종료상을 주었는지 알 수 있는 수작입니다.
다만 인생의 경험이 짧은 20대들 보다는 10대 자녀를 둔 30,40대 이상의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종교영화로 볼 수 있는 오해도 있지만 그걸 떠나서라도 아주 훌륭한 영화입니다.
브래드 피트의 연기와 제시카 차인테인의 연기와 장남의 연기가 아주 좋습니다. 숀펜은 많이 나오지는 않네요. 좀 아쉽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 안방에서 술 한잔 했습니다
"아버지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어요?"
"너 태어났을 때"
그때 그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없을까요?
21세기의 2001년 오디세이 같은 미시적인 인간과 거시적인 우주까지 담는 삶과 생명에 대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