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화들이 설자리가 없습니다. 극장 개봉관 수는 많이 늘었지만 영화 상영작 숫자는 크게 늘지 않았습니다. 메이저급 영화들이 멀티플렉스를 싹 다 점령한 살풍경으로 인해 작은 영화들인 독립영화, 저예산 영화는 변방의 허름한 극장에서 소수의 마니아들만 모셔놓고 상영을 하는 요즘이죠
그래도 잘된 작은 영화는 좌석점유율을 높혀가면서 입소문을 내고 가끔은 '워낭소리'같이 초대박이 난 영화도 있지만 대부분의 작은 영화는 언제 개봉했는지도 모르게 살짝 개봉했다가 들꽃처럼 아무로 알아주는 이 없이 사라집니다.
영화 평범한 날들도 작은 영화입니다. 2010년에 제작된 이 영화가 뒤늦게 상영관에서 관객과 대면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라는게 촬영 중간에 엎어지기도 하고 다 만들어 놓고 상영관 찾지 못해서 빛을 못 보기도 합니다.
평범한 날들도 순탄치 않은 길을 걸은듯 합니다. 제작한 지 1년이 지난 영화가 이제야 영화관에 걸리네요
지난주에 위드블로그 영화 리뷰 체험단에 선정되어 '평범한 날들'을 관람했습니다.
요즘은 어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혀 보지 않고 영화를 봅니다. 영화 보기 전에 잡다한 정보와 주제 및 줄거리를 다이제스트로 읽고 나면 아무래도 그 글에 영화를 끼어 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아예 아무런 정보도 읽지도 보지도 않고 갑니다.
이 영화 '평범한 날들' 리뷰어에 신청한 이유는 예고편 때문입니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송새벽이 나오기 때문이죠
송새벽은 참 독특한 배우입니다. 국내 어눌한 말투와 연기의 최고봉이죠. 영구의 멀쩡한 버젼이라고 할까요? 항상 어눌한 말투로 일관하기에 그의 얼굴만 봐도 관객은 웃을 준비를 합니다.
영화 평범한 날들은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BETWEEN, AMONG, DISTANCE라는 공간을 나타내는 단어들로 된 단편 3개가 묶인 영화입니다.
BETWEEN, AMONG, DISTANCE
1편 BETWEEN은
송새벽이 주연한 단편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30대 보험설계사인 한철이 출근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이와 아내와 짧은 인사를 하고 출근을 하는 한철(송새벽), 그는 무능하고 어눌한 직장인입니다. 보험 실적은 거의 없고 불평만 많습니다. 그런데 큰 사고가 난 후 아내와 딸아이를 잃게 됩니다.
그런 상실감에 그는 수 번의 자살시도를 합니다. 하지만 죽는것도 어눌해서 잘하지 못합니다.
그런 그도 자신이 짜증이 납니다. 모든게 뒤죽 박 죽인 세상, 사랑하는 두 사람을 모두 잃은 30대 가장은 정체 없이 수면제를 먹은 듯 맹한 느낌으로 세상을 쏘 다닙니다.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의 부재를 추리형식으로 담고 있습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딸이 화재로 죽고 그 딸의 죽음을 참지 못하고 아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무슨 사고로 죽었는지는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구차해서였을까요? 감독의 이런 화법은 예술영화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법이긴 하지만 대중성과는 솔직히 거리감이 있고 좀 답답하기도 합니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것이 대중성이 있을 텐데 빙빙 돌려서 말합니다.
말로 설명하면 2줄에서 3줄 밖에 되지 않는 스토리라인을 길게 늘인듯한 모습이 있네요
하지만 송새벽의 연기는 일품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내가 널 안아도 되겠니?' 라고 말하는 자식을 잃은 아비의 서러운 눈물이 강물처럼 흐릅니다.
송새벽의 어눌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그대로 담은 평범한 가장 역을 잘 보여줍니다.
AMONG은 20대 효리(한예리 분)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어가 서툰 교포청년인듯한 남자친구에게 헤어짐을 통보받습니다.
실연이 그녀에게 왔죠. 그런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있는 상태에서 교통사고까지 납니다. 다리를 절게 되어 몸과 마음 모두가 폐허가 됩니다.
요양차 어머니 곁에서 지내게 된 효리, 생각보다 효리는 잘 지냅니다. 산책도 하고 깡깡 언 호수에 마실도 다녀옵니다.
그렇게 잘 지내는듯한 효리가 폭발합니다. 자신의 자리를 쩔뚝거리는 모습을 건널목에서 흉내 내는 여고생을 냅다 팹니다.
그리고 속에 있던 울분과 슬픔을 밤거리에 쏟아 냅니다. 평범한 줄 알았는데 속은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효리. 그렇게 새벽 거리에서 효리는 상처 입은 여우처럼 울부짖습니다.
DISTANCE는 수혁(이주승 분)이라는 10대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조모가정의 아이입니다.
할아버지는 수혁을 키우기 위해서 막노동판에서 일하다가 크게 다치게 됩니다.
수혁은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본 후 포르투갈로 여행을 가기로 결심을 합니다. 저 멀리 떠나고 싶어 하는 수혁
그러나 수혁은 떠나기 전에 복수를 시행합니다. 할아버지를 다치게 한 원흉을 처단하려고 하죠. 자전거로 고급 승용차를 쫒아서 아파트까지 찾아가서 구타를 합니다
그러나 그 구타당하는 사람은 자신이 구타하려고 한 대상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고
그걸 알고 미친 듯 달리다가 수혁은 자신을 인지하면서 또 막 웃으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상처 입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처 치료기 같았던 영화
이 영화의 제목은 직설법이 아닌 반어법적인 제목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평범하지 않는 날들의 기록물이라고 할까요? 1,2,3편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혼자 지내는 주인공입니다. 다른 게 있다면 1편 한철은 30대, 2편 효리는 20대, 3편 수혁은 10대라는 연령대가 다르죠. 또한 깊은 슬픔을 가지고 그걸 치유하는 과정 모두 다 다릅니다.
한철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상처를 마무리 지으려고 하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생활은 엉망이 되고 깊은 늪으로 서서히 빠져듭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욕하는 행동에는 단호하게 대처합니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데 자꾸 손가락질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분노을 폭발합니다. 그리고 죽은 아이의 무덤에서 용서를 구합니다.
효리는 쿨해 보입니다.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해도 마치 예상했던 일인 양 밥에 물 말아먹듯 대수롭지 않게 대처합니다. 그냥 너 가라~~라고 끝을 냅니다. 그러나 효리는 겉으로는 쿨한 척 하지만 속은 붕괴되었습니다. 허한 마음을 채울 수 없어 어머니 곁에 머물지만 그래도 치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밤거리에서 그 울분을 호숫물처럼 거리에 쏟아 냅니다.
수혁은 이전 두 단편영화의 주인공과 조금은 다릅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은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고 복수를 마무리하고 도피의 여행을 가려고 했습니다. 수혁의 상처치료는 복수였습니다.
저는 상처를 받으면 한철처럼 꾹꾹 담고 있기만 합니다. 그런데 일상이 망가지는 한철 같은 스타일이죠. 그러다 술 먹으면 그게 대폭발 하는데 그때 친구들이 무척 놀랍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효리 같아 보이고요
3명의 주인공이 상처를 받고 치료하는 과정이 이 영화의 주된 주제이고 줄거리입니다. 영화 포스터의 카피문구에는
9월, 고단한 당신 마음을 꼭 안아 드린다고 하는데 과연 이 영화가 상처의 치료과정을 다 보여주는 영화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 고개가 끄덕거려지지 않습니다. 그냥 각자의 상처치료방법만을 다룰 뿐이지 치료되었다고 끝까지 다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철이 3편에 나와서 치료가 된 모습을 살짝 담긴 하지만 어떻게 치료가 되었는지는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있죠. 슬픔을 꾹꾹 눌러 담지 말고 그걸 터트리고 눈물과 분노로 터트리라는 것입니다.
안에 가지고 있으면 나중에 빵빵해져서 더 큰 상처로 연결될 수 있다고 귀띔을 해줍니다.
분명 감독은 의도가 많아 보이던데 그게 대중에게 어필하려면 보다 직관적이고 친절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친절하지 못하고 유기적이지 못한 연출
감독 이난은 이 영화가 첫 장편 데뷰작입니다.
하지만 장편은 장편이지만 3편의 단편을 이어 붙인 영화이기에 어떻게 보면 단편영화 같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3편의 단편이 전혀 상관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상처 치유기라는 주제를 공통분모로 삼은 영화들이죠. 3편의 영화는 서로 공통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E.T시계는 3편 모두에게서 나오고 자동차 안에서 발견하는 나뭇잎과 근조라는 상갓집 문 앞에 있는 한문 문구도 각각의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입니다. 이런 스타일의 영화는 이전에도 많았죠. 하지만 이 영화 '평범한 날들'에서 각각의 이미지들은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타난티노식으로 3편의 영화가 펄프픽션식으로 서로 연결된다는 설정도 신선미가 떨어지고 예측가능합니다.
전 이 3편의 영화가 서로 동시대의 공간을 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영화 보고 난 후 설명문을 읽어보니 한철은 2007년, 효리는 2008년 수혁은 2009년을 담은 영화라고 하네요. 그렇다면 왜 영화에서는 직설적으로 2007년, 2008년, 2009년을 표기하지 않고 아니면 당시의 연도를 담지 않았을까요? 대부분의 관객은 같은 시간대를 사는 것인 줄 알 텐데요
이런 모습은 한두 곳이 아닙니다. 함의적이고 은유적이고 메타포들을 많이 배치했는데 그걸 관객들이 다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메타포들은 유추하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감독 스스로는 각자 해석하라고 하지만 뭔가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답답함 때문에 좀 짜증이 나더군요
분명 이 영화는 대중적인 면이 많이 모자랍니다. 특히 2,3편은 공감도 별로 안 가고 지루하기만 합니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하고 주목할만한 배우들입니다. 송새벽이 연기한 1편만이 가장 흥미롭고 재미도 있었는데요. 차라리 송새벽 편을 길게 찍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분명 이 영화는 대중적이지 못합니다. 재미면에서는 그다지 좋지 않고요. 1편을 뺀 2,3편은 재미라는 것을 느끼기 힘듭니다. 하지만 영화마니아들 특히 감독이 곳곳에 숨겨 놓은 숨은 그림 찾기와 직소퍼즐 맞추기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그 퍼즐 맞추는 재미가 있습니다.
30대 한철과 10대 수혁의 만남에서 수혁의 상처 치유방법의 폭력성을 한철의 치유방법인 용서로 덮는 모습은 가장 인상 깊더군요.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면 우리는 대부분 복수를 꿈꿉니다. 요즘은 공공의 적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면 댓글로 복수를 하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그 복수 자체가 범죄가 됩니다. 영화에서나 주인공이 잔인하게 복수하는 것을 우리는 손뼉 치면서 응원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요? 그냥 삭혀야죠. 하지만 삭히기에는 이 세상이 날 너무 분노케 하네요
영화는 그 분노를 폭력보다는 그냥 삭히기보다는 터트리라고 합니다. 펑펑 울고 누군가의 어깨를 빌려서 울라고 합니다. 터트린 후 눈물을 쏟아낸 후 세상이 더 맑고 명징하게 보이듯 상처를 싸 않고 살지 말라고 살짝 말합니다.
적극 추천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이난 감독의 가능성을 본 영화라고 할까요? 좀 더 세련되고 단출하고 직선적으로 다음 영화를 담아 대중성도 갖추길 바랍니다. 그래야 또 다음 작품도 만들 수 있잖아요. 이난 감독의 재능을 느낀 영화이지만 장편영화감독으로는 좀 모자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드네요
주변에 평범해 보이지만 두려움과 슬픔과 어두움 속에서 사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전 이런 친구들을 잘 찾아냅니다.
그들에게 따스한 한마디가 감정의 구멍이 되어 그 구멍으로 슬픔이 다 흘러나오도록 해주세요. 그게 친구의 한 도리가 아닐까 하네요. 제가 이걸 잘 감별할 수 있는 이유는 저 또한 깊은 슬픔 속에서 지낸 시절이 많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