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엉엉엉" 기침까지 하면서 어린아이가 뒷좌석에서 서럽게 목놓아 웁니다. 그렇게 10여분을 우네요.
극장에서 그렇게 서럽게 우는 소리는 참으로 오랜만이었습니다. 우는 소리가 영화 보는데 방해가 되었냐고요?
아니요. 저도 같이 울고 있었거든요.
마당을 나온 암탉은 꼭 보고 싶었습니다. 어느 평론가보다 저에게 영화 선택의 지대한 영향을 주는 페니웨이 님의 마당을 나온 암탉 - 한국 애니메이션의 희망을 쏘다 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워낙 극찬하는 글에 저도 솔깃했습니다. 뭐 페니웨이님의 글이 아니더라도 이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작화 퀄리티가 대단해서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한국 애니 작화 퀄리티는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인기 애니에 한국 작화팀이 많이 참여하고 있고 최근에는 일본의 자본력과 함께 합작 애니를 많이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애니는 기획력도 떨어지고 시나리오가 참으로 부실합니다. 작화 표현력은 세계 최정상이지만 그 안을 담는 뼈대인 시나리오는 정말 짜임새 없고 줄줄 새는 바가지였습니다.
파스텔톤의 고퀄리티 작화에 감동은 증폭되다
전 애니를 무척 좋아합니다. 애니 안 좋아할 사람 없지만 특히나 애니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 애니의 과거를 돌아보면 일본 짝퉁만화가 대부분이었죠. 태권 V가 한국 애니의 거성이라고 하지만 그 태권V 속에 나오는 악당 로봇들은 일본의 로봇만화를 많이 베꼈습니다. 지금이야 베끼면 바로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지만 당시는 일본과의 교류나 일본 정보는 전문가들만 습득할 수 있었고 인터넷도 없었죠
80년대 한국은 미국 만화 작화 하청업체였고 90년대는 일본 만화 작화 하청 수준이었습니다. 간간히 장편 애니를 극장에 내걸기는 했지만 정말 조잡했습니다. 그러다 혜성 같은 장편애니가 등장합니다. 2002년 그해는 참 별스런 일들이 참 많았죠.
2002년 이성강 감독은 프랑스 안시에서 애니상을 받아옵니다. 그 애니가 바로 '마리이야기'이고 심심할 때 가끔 다시 돌려보곤 합니다. 노래도 영화음악도 작화도 뛰어난 '마리이야기' 다만 어색한 더빙과 매끄럽지 못한 시나리오가 좀 흠이었지만 몽환적 느낌의 애니를 보면서 드디어 한국도 애니강국이 되는구나 했습니다.
그러나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후 '천년여우 여우비'도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작화 수준은 이미 세계 수준이고 디즈니에 견주어도 일본에 견주어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질병인 시나리오의 매끄럽지 못함과 더빙의 아쉬움은 여전하네요.
부디부디 더빙을 하려면 제대로 더빙을 하는 배우를 선택하세요. 인기 있다고 아무나 더빙시키면 정말 곤란합니다. 발성법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 배우를 더빙시키는 것은 오히려 해롭습니다. 딴 데로 샜군요
'마당을 나온 암탉'은 천년여우 여우비와 비슷한 작화 수준을 보여줍니다. 파스텔톤의 작화에 3D 기법을 필요할 때 적절하게 섞었는데 아주 매끈합니다. 마치 동화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듯하다고 할까요? 디즈니의 2D 애니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입니다. 다만 세세한 설정은 디즈니를 따라가지는 못하네요. 하지만 이 정도도 참 대단한 발전이죠. 특히 청둥오리 때를 담은 거대한 새떼의 물결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3D로 한 땀 한 땀 디자인한 듯한데 정말 장관이더군요
이 작화는 저 같은 어른보다는 아이들이 딱 좋아할 작화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 꼭 아이들 손잡고 가야 합니다.
미운 오리 새끼의 변주? 미운 엄마 닭
미운 오리새끼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죠. 오리인 줄 알고 왕따를 당하던 오리가 나중에 백조로 밝혀지면서 군계일학이 된다는 이야기죠. 이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요즘 아이들이 정독해야 할 이야기입니다. 왕따문화가 만연한 초등학교에 필요한 이야기죠.
이 '마당을 나온 암탉'은 미운 오리 새끼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이야기고 그래서 기시감까지 느껴집니다
양계장에서 모성애를 거세당하고 알이나 낳고 모이나 먹는 필부필부의 닭 '잎사귀'가 양계장에서 탈출하고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나그네'라는 전직 오리 파수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다 파수꾼의 알을 품게 되고 그 알에서 깨어난 오리가 잎사귀를 엄마로 여기게 되죠. 그리고 그 '나그네'의 아들이자 잎사귀가 키운 초록이의 성장과 헤어짐을 다루고 있는 애니입니다.
이 애니의 원작은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원작입니다. 동화작가가 쓴 원작인데 1백만 부가 팔렸다고 하니 어느 정도 원작의 탄탄함은 알 수 있습니다. 영화 내용은 어렵지 않습니다. 수다스러운 수달이 엄마 암탉 '잎사귀'의 친구로 나오고 무지개 연못의 아로미처럼 연못가에서 오손도손 살다가 악당 족제비의 공격을 받으면서 초록이가 성장하고 순리대로 떠난다는 이야기죠.
또한 어린 초록이가 성장해 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면서 겪은 정체성과 사춘기를 담기도 합니다.
어린 초록이가 클수록 엄마와 내가 다름을 느끼고 거리를 두다가 엄마 '잎사귀'의 연못보다 바다보다 넓은 모성애로 그걸 다 포용합니다. 선과 악의 구분이 확실하며 아들과 어머니의 이야기이기에 절대 어렵지 않습니다.
내용이 어려우면 아이들 참 귀찮게 하죠. 엄마 쟨 뭐야~~~ 엄마 왜 저러는 거야? 아주 귀찮게 하는 게 아이들인데
아이들이 물어볼 정도는 아닙니다. 족제비만 나쁜 편이고 다 아군이고 중간에 왕따가 잠깐 있고요. 내용은 아주 간결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뻔한 내용이 뒤집어지며 엄마의 몫을 남겨두다
제가 웬만하면 시나리오 극찬을 잘 안 하는데 이 애니는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먼저 이 애니를 보면서 끝날 때 엄마랑 헤어지는 초록이의 모습으로 끝나는가 했습니다. 순리대로 살아야 함을 담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이때부터 뒤에 있던 아이가 펑펑 울기 시작합니다. 거대한 무리 속으로 사라지는 초록이
그리고 잎사귀는 허망한 표정으로 자신의 겨울나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소 놀라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존의 허리우드나 디즈니 만화라면 행복을 상품화해서 억지 해피엔딩을 펼치는 게 정답이라면 이 애니는 다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다소 아이들이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이들이 묻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니 놀라워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부분은 영화관을 나오면서 엄마나 아빠가 아이에게 잘 설명해 줘야 할 것입니다. 이 영화는 선과 악의 구분을 짓는 듯하면서 마지막에 동양 철학처럼 순리라는 것을 남기고 끝이 납니다. 위대한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성애를 다룬 영화가 참 많았지만 영화사상 가장 순수하고 위대한 모성애를 담은 영화가 아닐까 하네요.
더빙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최민식의 더빙 괜찮았습니다. 살짝 나오니까 큰 역할도 안 했습니다. 박철민의 애드리브 방언 같은 수달 더빙도 좋았습니다. 이 애니를 보면서 제눈에 눈물을 그렁그렁하게 만든 것은 '문소리'때문입니다. 아이들과 애니를 많이 보러 다녔지만 그때마다 어색한 더빙으로 인해서 참 짜증 났는데 '문소리'의 더빙은 성우보다 더 뛰어났습니다. 마치 진짜 잎사귀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문소리가 임신 중에 녹음해서 그런가요? 어머니 그대로의 목소리를 담아냅니다. 이 영화가 애니사상 초유의 1백만 돌파 기록을 세웠는데 그중 5할은 문소리의 역할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발성법도 어색하고 단지 인기만 많은 유승호의 목소리는 많이 거슬리네요. 전문성우가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부분이 좀 아쉽지만 워낙 작품이 좋아서 다 덮어지네요
아이들과 손잡고 꼭 한번 보십시오. 온 극장이 펑펑 우는 아이들 울음소리로 가득해도 다 보고 나면 행복해지는 영화입니다. 아이들에게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을 더 두텁게 하는 애니이고요. 이 애니 중국에서도 수출한다고 하던데요. 대박 났으면 하네요.
1시간 30분짜리 영화입니다. 아이들은 집중을 오래 못하기에 수시로 들락거릴 수 있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감상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아주 좋은 애니이자 한국 애니가 이렇게 컸다는 게 참 뿌듯하네요. 별 4개를 줄 만한 애니입니다. 한국 애니의 거대한 첫걸음을 내디딜 것 같은 예감에 별 하나 더 쏴서 별 다섯 개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