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범이라는 배우는 참 코믹합니다. 그의 영화에서 그는 모두 코믹연기를 하지 않았지만 코믹연기를 할 때 가장 류승범 답습니다. 영화 '품행제로'를 보면서 이 류승범이라는 배우의 코믹성에 빠져들었고 부당거래에서는 비리 검사로 나오지만 특유의 유머러스함은 빠지지 않네요. 이제는 이 류승범이라는 배우가 진지한 연기를 해도 웃음이 나오는데 박중훈처럼 코믹배우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아닐까 하네요
잘나가는 보험사 직원이 과거의 잘못을 뒤치닥 거리는 이야기
이 영화를 짧게 정리하자면 잘 나가는 보험사 직원인 배병우(류승범 분)가 더 좋은 회사로 스카우트된 상태에서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덮기 위해서 동분서주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거의 실수란 보험왕이 되고 싶어서 가입시키면 안 되는 예를 들어 자살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가입시킨 것입니다.
다른 회사로 가기 전에 이 비리 아닌 비리를 잘 덮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보험을 연금보험으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더구나 보험 계약 후 2년이 지난 후에 우연한 사고로 위장한 보험금 타내려는 자살을 하면 보험금이 지급됩니다.
그렇게 2년 전에 가입한 4명은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꼬박꼬박 보험금을 입금하고 있었고 그 보험을 꼬박꼬박 내는 이유는 자살을 해서 남은 가족들에게 억대의 보험금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그걸 계획했다기보다는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 때문에 자살밖에 탈출구가 없는 사람들이죠. 서서히 자살의 늪에 빠져들어가는 고객들이죠
하지만 병우(류승범) 입장에서는 그렇게 자살을 하게 하고 그걸 자살이라고 입증하지 못하면 보험금을 다 줘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는 큰 타격을 받게 되고 병우 경력에도 좋지 못한 일이 생깁니다. 이렇게 양쪽의 욕망이 다르고 그 욕망은 서로 충돌하게 됩니다.
죽으려는 고객들과 죽음을 막으려는 병우의 눈물겨운 노력이 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입니다.
병우는 4명을 과일바구니를 사들고 찾아갔는데 한 명은 비정규직 환경미화원을 하는 얘가 4명이나 딸린 아줌마이고
또 한명은 동생과 사는 밤무대 가수이고 또 한명은 틱장애가 있고 어려운 누나와 함께 사는 노숙자 청년이 있습니다.
여기에 지인인 기러기 아빠이면서 외국에 있는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대리운전일을 하는 오 부장도 병우에게 들러붙습니다.
1번가의 기적과 비슷한 구도의 이야기
2007년 윤제균 감독이 연출하고 임창정, 하지원이 출연한 1번가의 기적과 영화 수상한 고객들은 참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영화입니다. 욕망덩어리 남이 어떻게 되든 말든 돈만 쫒는 냉혈한 같은 주인공이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 알게 된다는 내용이 참 비슷합니다.
따져보면 이런 영화는 한두 개가 아니죠. 악인이었던 혹은 냉혈한 개차반이었던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삶의 성찰과 의미를 알게 되고 개과천선한다는 이야기는 비일비재합니다. 그러기에 고리타분하죠
이 '수상한 고객들'의 병우는 그 정도는 아닌 착한 심성을 가진 소시민입니다. 심성은 착하지만 더 좋은 직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적한 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2년 전에 보험왕 욕심에 자살 시도가 있던 3명에게 보험가입을 시키면 안 되는 보험고객을 가입시킨 죄가 들통날까 봐 조용히 찾아가서 생명보험을 연금보험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고객 4명 모두가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습니다.
병우는 이런 4명의 고객을 어르고 달래면서 그들의 삶과 동화되어 갑니다.
술도 사주고 이야기도 들어주면서 고민상담사가 되기도 하고 파편화되는 가정을 깨지지 않게 테이프질도 해줍니다.
때로는 오해도 받기는 하지만 좋은 친구 혹은 이웃이 되어주고 자신의 어깨를 빌려줍니다.
수상한 고객들은 바로 우리 주변의 서민들
이 영화는 그냥 킬링타임용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속에 등장한 4명의 고객 모두는 우리 현실을 잘 담고 있습니다.
먼저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남편이 하던 환경미화원 일을 이어받은 최복순(정선경 분)은 4명의 자녀를 겨우겨우 키우면서 삽니다. 가난이 부끄럽고 지겹고 거기에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중학생 딸이 있죠.
이런 가정 참 많죠. 그나마 가진 게 있는 병우는 이 가정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면서도 그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뛰어듭니다.
고객이 죽으면 안 되기에 자신을 위해서라도 희망을 가지라고 말을 합니다.
또 하나의 고객은 아버지의 부채를 이어받고 사채빚이 있는 밤무대 가수 소연(윤하 분)입니다. 통기타를 치고 일당을 받지만 근근이 먹고살죠. 한강 다리밑에서 사는데 사는 게 참 퍽퍽합니다. 사채업자들이 수시로 찾아오고 희망이라고는 한 줌의 빛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틱장애가 있는 영탁(임주환 분)은 노숙자 생활을 하면 거 폐품을 팔아서 살아갑니다. 거기에 아픈 누나가 있고 그리고 조카가 있습니다. 여기에 이 수상한 고객 3명을 소개한 오 부장이라는 기러기 아빠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살고 있죠
이 4명의 공통점은 우리 주변에 수없이 많은 분들입니다.
전 이 영화를 보면서 이 시나리오를 쓴 작가분이 시사프로를 꼼꼼히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혀 가당치도 않는 허황되고 오버스러운 설정의 고객들이었다면 쓴웃음이 나왔을 텐데 4명의 고객 모두 우리 주변에 살고 있고 시사 2580에 나올만한 사람들입니다.
저소득층 비정규직 가정이나 갈 곳이 없고 근근이 폐품을 팔아서 노숙하는 틱장애가 있는 청년, 밤무대를 전전하면서 생계형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꿈인 20대 여가수. 외국에 처자식을 모두 보내고 자신은 대리운전으로 그들을 먹여 살리는 모습등은 신문에서 본 이야기들이죠
참 묘한 영화입니다. 시사성도 어느 정도 있고 코믹함도 있고 웃음과 절박함속의 눈물이 함께 교차하는 영화입니다.
류승범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명품 조연배우들이 많이 나오지만 전 이 영화 류승범의 영화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류승범의 방언에 가까운 유머러스한 애드리브(진짜 애드리브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사들은 이 영화를 코믹영화 쪽으로 혼자 이끌 고 있습니다. 류승범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국내 최고죠. 감히 류승범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넘어설 수 있을까요? 대적할 배우가 있다면 임창정 정도가 있겠죠
류승범이 관객을 웃기고 울리고 혼자 다 합니다. 4명의 고객들도 연기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류승범이 조정하는 마리오네트 인형 같다고 할까요? 류승범이 연기 한 병우라는 인물이 그들을 모두 안고 있는 정신적인 부채를 다 털어줍니다.
이 영화는 긴장감과 사건을 끝까지 끌고 올라가는 힘이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다 끝나기 전까지 3단으로 달리던 영화가 갑자기 5단 기어를 넣고 시속 100km 이상으로 질주하면서 몰입도를 높이면서 급브레이크를 밟아 모든 것을 빵~~~ 터트리고 눈물샘을 자극하더군요
그 눈물샘의 반은 류승범이라는 배우의 힘이고 나머지 반은 현실의 괴로움에서 터지는 눈물입니다
영화계에 입봉 한 조진모 감독의 첫 작품인데 신선한 면은 없지만 무난한 연출력은 좋네요.
수작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그런 킬링타임용 영화이지만 최근 들어 이렇게 하나의 감정이상을 유발하는 한국영화를 못 봤네요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는 영화입니다. 특히 류승범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필히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