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 행복의 근간인 집이 없지만 행복한 미소가 가득한 미소를 만나다
2018년에 개봉한 영화 <소공녀>를 중간까지 보다가 다음에 봐야지라고 했던 것이 5년이 넘었네요. 그렇게 영화 <소공녀>의 전반부 내용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넷플릭스에서 2025년 4월 21일에 내려간다는 소리에 부리나케 찾아봤고 다 봤습니다. 그리고 여러 생각이 드네요. 가장 크게 든 생각은 '광화문 시네마'입니다.
🌈대한민국 영화의 마지막 불꽃같았던 광화문 시네마
한국예술종합학교 줄여서 한예종은 한국 영화계와 연극계 음악계에 큰 영향을 주는 예술 사관학교입니다. 한예종 출신 배우나 감독이 참 많죠. 이 한예종 출신의 우문기, 이요섭, 전고운, 권오광, 김지훈이 뭉쳐서 만든 독립 영화 제작사가 '광화문 시네마'입니다. 독립 영화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상업영화에서 다루지 않은 좀 덜 대중적일 수 있지만 독특한 소재의 영화를 잘 만듭니다.
따라서 독립영화의 독특함과 상업영화의 재미가 2개의 바퀴가 되어서 돌아가야 그 나라의 영화 생태계는 건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립영화로 크게 성공한 감독들이 그 감독의 독특한 감성에서 나오는 신선함과 대규모 자본이 만날 때 큰 시너지가 날 때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감독이 연상호 감독입니다.
물론 연상호 감독 드라마와 영화가 다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또한 <파수꾼>을 만든 윤성현 감독은 오히려 변질이 되어서 쿠팡플레이의 저질 좀비 드라마 <뉴토피아>를 만들기도 하죠. 이 '광화문 시네마'에서 나온 독립영화 중에 인기 많았던 영화들이 꽤 있습니다.
2013년 개봉해서 지금도 회자되는 <족구왕>이 있었고 2016년 개봉해서 역시나 화제가 되었던 <범죄의 여왕>도 있습니다. 그리고 2018년 <소공녀>까지 광화문 시네마의 인기를 구가하는 작품들이 연달아 나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소공녀>를 끝으로 더 이상 볼 수가 없네요. 아마도 권오광 감독이 <타짜 : 원 아이드 잭>을 말아먹어서 더 이상의 제작 여력이 되지 않나 봅니다.
어떻게 보면 독립영화계의 가장 전성기가 이 '광화문 시네마'로 대표되던 2012 ~ 2018년이 아닐까 합니다.
🎬집 없이 떠도는 청춘을 담은 영화 <소공녀> 이솜 최고의 영화
모델 출신의 배우 이솜은 상당히 매력적인 얼굴을 가진 배우입니다. 영화 속 이름처럼 미소가 참 아름다운 배우죠. 이솜 배우는 앞으로 더 좋은 영화에 많이 출연하겠지만 이솜 배우의 최고의 필모그래피 영화는 이 <소공녀>가 아닐까 합니다. 배우 이솜 아니면 누가 이런 캐릭터를 소호 할까 할 정도로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와 연기를 합니다. 그렇다고 엄청난 캐릭터는 아니고 그냥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집 없는 20대 청년의 모습을 너무 절절하게 잘 재현했습니다.
소공녀의 영문 제목은 Microhabitat입니다. 해석하면 작은 서식지라는 뜻으로 거미나 게들이 바위 뒤에 숨어 사는 그 공간을 의미합니다. 20대 미소(이솜 분)는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월세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가사도우미를 하면서 번 돈으로 월세내고 소중한 3가지인 위스키와 담배를 사고 나면 남는 돈이 없습니다. 머리가 백발이 되는 병이 있어서 약도 먹어야 합니다.
이런 미소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친구도 가난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 가난한 커플의 소원 중 하나는 맛집에서 음식을 함께 먹는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하는 일을 이 커플은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두 사람 모두 일을 하지만 풍족하지 못합니다. 특히 미소는 일이라고 하기엔 너무 소박합니다. 집주인이 술집으로 출근하면 그 시간에 집안 청소를 하고 하루 45,000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돈으로 12,000원이나 하는 위스키와 4,500원으로 오른 담배를 피웁니다. 매달 적자를 내자 미소는 결심합니다. 집 월세를 내지 않기로 합니다. 어떻게 보면 안쓰럽고 어떻게 보면 한심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빚 안 지고 스스로 삶을 책임지는 모습 자체를 보면 미소는 어른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집을 없애기로 하자 민폐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대학교 밴드 멤버들의 집에 떠 돌아다니는 미소
미소는 트렁크를 끌고 대학교 시절 함께 밴드 활동을 한 멤버들의 집에 머물기로 계획합니다. 대기업을 다니는 친구를 불러서 사정을 말해보니 당차게 거부당했고
이혼한 드럼치는 후배의 집에 머물기도 합니다.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그 자체로 민폐죠. 아무리 친해도 하루 묵고 나는 것은 몰라도 며칠씩 머무는 것은 큰 민폐입니다. 이를 미소가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갈 때마다 계란 한 판 하나 사서 들고 갑니다.
어떤 멤버는 박대하고 어떤 멤버는 환대하지만 환경이 받쳐주지 못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멤버는 웃으면서 받아주지만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알기에 미소는 자신이 잘하는 빨래 청소 및 요리까지 해주고 나옵니다.
사람은 평온할 때는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없습니다. 여유가 넘치면 다 친절하죠. 부자들이 친절한 이유가 다 여유에서 나오는 친절입니다. 구김살이 있을 수가 없는 삶에는 짜증과 한숨도 없습니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는 본색이 드러나죠. 누구는 미소를 피하고 누구는 미소를 반겨해 줍니다.
이 멤버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멤버는 끊임없이 추파를 날리는 늙수그레한 아저씨 같은 리더 아저씨와 함께 직설적으로 말하는 부자와 결혼한 기타를 치던 언니입니다.
🍹 소공녀는 취향에 대한 관점을 담은 영화
표면적으로는 주거난에 허덕이는 20대 청년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관점으로 보면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내 취향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주제로 한 듯합니다.
영화 초반에 모든 것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던 미소가 집을 떠나기로 할 때 충격이었습니다. 아니 매일 술과 담배를 먹고 피우는데 이 돈을 줄이는 것이 합리적이지 누가 집을 빼?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런데 그냥 그 술 담배가 스트레스 해소용이 아닌 그 사람의 유삼한 행복도구라면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할까요?
미소는 모든 것은 다 끊고 버려도 위스키, 담배 그리고 남자친구 이 3개만 있으면 길거리에서 자도 행복하다고 하는 인물입니다. 자신의 취향이 확고합니다. 그런데 기타 치던 누나가 염치없다면서 술 담배라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남의 집에 얹혀사는 건 염치없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긴 하죠. 염치가 없죠. 자기 취향은 다 챙기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니까요.
그러나 이 염치없다는 손가락질의 시선은 돈에서 나온 시선입니다. 실제로 전 담배를 2년 전에 끊었습니다. 피다 안 피다 하다가 결국 끊었습니다.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건강에 안 좋은 걸 바로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지만 가격도 큰 영향을 줬습니다. 요즘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4,000원이 넘는 가격이 부담스럽더라고요.
제가 돈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4,000원이라는 돈을 담배에 투자하느니 그 돈으로 영화 보고 책 사보고 커피 마시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서 끊었습니다. 그리고 담배가 제가 소중히 지켜야 할 취향도 아니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4,000원도 아깝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끊었습니다. 비싼 가격도 무시 못할 영향을 줬습니다. 신기하게도 싫어하려고 하니 10년 이상 비싼 가격에 가끔 사서 펴놓고는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 확 느껴지네요. 그런데 미소는 다릅니다. 미소는 담배가 취향이고 목숨처럼 소중합니다.
주변에 미소 같은 사람 많습니다. 돈은 없다면서 고양이를 키우고 개를 키웁니다. 값비싼 피겨를 사고요. 돈의 관점으로 보면 이해가 안 가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 고양이가 강아지가 피겨가 그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러나 이걸 기타 치던 누나는 이해를 못 합니다. 솔직히 기타 누나가 미소에게 하는 염치없다는 말을 보면서 속 시원하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미소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내가 목숨처럼 여기는 술과 담배라고 항변을 했으면 기타 누나가 더 화를 내고 싸움이 났겠지만 미소는 미소로 대답합니다. 어차피 내 취향 남에게 설득한다고 설득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 듯한 해탈의 미소로 느껴지더라고요. 바로 부끄러워지더라고요. 그걸 모르는 미소가 아닌데 화를 내봐야 소용없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가진 것 많은 멤버들보다 더 미소를 많이 짓는 가진 것 없는 미소
보통 이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면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소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삶은 아닙니다. 웹툰 작가가 꿈인 남자 친구가 사우디로 2년간 근무하러 갈 때 눈물을 보입니다. 그게 소중한 3가지 중 한 가지가 사라진자 그제야 미소가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행복 요소 하나가 사라져도 미소는 항상 행복합니다. 부자들의 여유가 느껴질 정도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이 모습이 좀 충격이었습니다. 술집에 나가는 집주인을 위로하고 이혼한 후배를 위로하고 시집살이로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로합니다. 이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참 궁금했습니다.
가난해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 <소공녀>
그 힘은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남자친구에게서 나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미소의 멤버들은 결혼, 이혼, 부모님과 함께 사는 이유 등등으로 자신의 취향이 뭔지 뭘 소중하게 여기면서 사는지를 까먹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집 있고 돈 많은 사람도 이혼한 후배도 결혼 생활에 치여서 사는 친구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듯합니다.
불안하고 흔들립니다. 집이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집 없는 미소는 갖은 구박과 눈치에도 흔들리지 않은 미소를 짓습니다. 행복이라는 건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때 나오는 행복이 생각보다 그 힘이 크고 강력하고 오래갑니다.
영화 <소공녀>는 행복을 물체화 시켰습니다. 위스키, 담배, 남자친구 그러나 추상적인 것도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돈 안 드는 행복 원천도 많죠. 저에게는 햇볕 쬐기 산책, 동네 구경, 사진 찍기, 음악 듣기, 라디오 듣기, 정보 탐색 등등 행복의 원천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더 중요한 건 시간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할 시간이 있어야 하지 없으면 못합니다. 미소의 미소는 스마일이 아닌 Small입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 지금은 철 지난 유행어가 되었지만 소확행을 즐기고 느끼는 사람이 모두 미소입니다. 모르겠어요. 저는 한 때 참 불행한 삶을 살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꽤 그 시간이 길었습니다. 그런데 소확행을 느끼고 알게 되면서 삶의 태도도 변했어요. 이 변화가 하루아침에 1년 만에 찾아온 건 아니고 서서히 찾아왔습니다.
지금은 잔뿌리가 많이 자란 나무가 되어서 쉽게 느끼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다 가지면 나오는 것이 아닌 확실한 한 가지가 모든 불행을 물 타서 희석시키거나 더 나아가 행복감을 느끼게 합니다. 돈을 많이 쓴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돈을 안 쓰고 때로는 돈을 벌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들도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또 생각해 보면 미소는 청소, 가사, 요리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건 미소가 잘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 번 돈으로 확실한 행복을 끌어내는 취미 활동인 위스키 마시기, 담배 피우기, 남자친구 만나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취미 활동을 하는 이유처럼요. 다만 미소는 집이 없을 뿐이죠. 그러나 우리 또는 저처럼 집 없이 철없이 저러는 것이 합리적일까 하는 시선도 분명 있습니다. 한 때 즐기면서 산다는 욜로족 같이 보이는 미소입니다.
그러나 욜로 유행이 지나고 보니 모든 걸 즐기는 것이 아닌 확실한 것만 즐기는 미소의 모습이 오히려 포기할 수 없는 취미가 행복의 원천이라는 점을 더 크게 느껴지게 하네요. 그리고 인상 깊었던 장면은 모든 멤버가 장례식장에 모였을 때 미소만 참석 안 했는데 이유는 연락이 안 된다는 겁니다. 미소가 친구라는 존재에서 행복의 원천을 끌어낼 수 있을까 했지만 원하든 아니든 집이 있는 친구들을 통해서도 온기를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친구란 같은 생활 수준일 때 친구지 차이가 너무 심하면 친구로 지속하기 어렵긴 하죠. 멤버들도 미소를 정말 말 그대로 작은 존재로 여겨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이 참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내가 미소였을 수도 있고 내가 또 다른 미소를 만들어서 방치했을 수도 있고요. 여러모로 참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아주 좋은 영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