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와 윤석열 계엄 그리고 국민들
1980년 5월 뉴스에서는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뉴스가 연일 올라왔습니다. 국민학생 저학년이었던 저는 그 모습에 전쟁이 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습니다. 북한이 아닌 북괴라고 하던 시기라서 북한이 밀고 내려오면 어쩌나 두려웠습니다. 매일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대머리였던 대통령은 몇 년 후에 프로축구와 프로야구 시축 시구를 하면서 프로 스포츠 시대를 선포했습니다. 중학생이 된 시기의 서울에는 길거리 게시판이 등장했고 그 게시판에는 지금은 성적인 이미지라고 포털에서 삭제 조치할 너무나도 선정적인 성인 영화 포스터가 매주 다른 영화로 바뀌었습니다.
소년이 온다
읽다가 덮었습니다. 너무나도 적나라한 표현에 숨이 턱 하고 막힐 정도입니다. 중학생인 주인공 동호가 체육관이 있는 시체를 지키는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시체 썩은 내를 맡아본 분들은 알죠. 꿈에서도 나오는 그 냄새.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아서 덮었습니다.
제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제대로 알게 된 건 5공 청문회였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는 증언이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5공 청문회는 6 공화국인 노태우 정권 시절에 열렸습니다. 당시 여소야대라서 가능했던 일이죠. 매일 같이 수많은 증언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 하나하나가 충격적이었습니다. 공수부대가 대검으로 사람을 찔렀다는 소리에 어떻게 군인이 민간인을 학살할 수 있을까 했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읽다 덮었지만 다른 글에서 봤습니다. 동호가 왜 저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렇게 아프게 하냐는 문장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양심! 참 이상한 매커니즘입니다. 왜 우리 인간은 양심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왜 또 누군가에게는 그 양심이라는 것이 없을까요?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운영하는 장교 가족 집이 나옵니다. 바로 뒤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가스실에서 사라지고 있지만 관사는 천국 그 자체였습니다. 장교 아내는 양심이 없어서 가스실에서 죽은 사람들의 옷을 골라서 입습니다. 반면 딸의 관사에 머무르려고 왔던 어머니는 밤에 붉게 타오르는 아우슈비츠 가스실의 불빛을 보고 마음이 동요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사라졌습니다.
같은 핏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있고 누군가에게는 없는 양심.
윤석열 계엄
이번 주 부터 노벨 시상식 주간이 시작됩니다. 정말 믿어지지 않고 지금도 믿기지 않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12월 10일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은 특정 작품에 수상을 하는 것이 아니지만 노벨 위원회의 발표문을 보면 '소년이 온다'라는 책이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다룬 1979년 12.12의 시작점이 된 10.26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 다음날 내려진 비상계엄 사태가 1980년이 되어서도 계속되다가 확대 비상계엄이 펼쳐집니다. 그 계엄 상태에서 태어난 비극이 광주민주화항쟁입니다.
우리는 이 5.18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군인이 자국민을 살해하는 비극을 없어야 한다면서 1987년 헌법을 고쳐서 국회해산법을 법에서 없애 버립니다. 대신 비상계엄을 대통령이 지시해도 국회에서 과반 이상 참석 과반 이상 찬성을 하면 계엄을 해제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다 광주민주화항쟁의 비극을 다시는 만들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죠. 이 법 조항이 있었기에 2024년 12월 3일 일어난 친위 쿠데타가 성공하지 못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계엄 발표 전에 군대를 이동시키고 꽤 오랜 시간 준비를 한 것을 보면 윤석열은 최소한 양심은 털끝만큼도 없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행정권을 장악했으면서도 사법권은 계엄 선포로 바로 장악하고 계엄법에 없는 입법권까지 장악하기 위해서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에 특수부대를 헬기로 보내고 일일이 지시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지시하지 않았다는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어두웠던 세상을 생생하게 잘 기록했다고 칭송을 받는 '소년이 온다'는 과거가 아닌 현재가 될 뻔 했습니다.
12월 3일날은 혼란을 넘어서 이 나라는 왜 이럴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 밤입니다. 과연 이 사태가 윤석열 1명이 만든 세상일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
2016년 12월 3일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날 엄청 추웠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럼에도 1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광화문과 을지로까지 꽉 채웠습니다. 목소리는 하나였습니다. '박근혜 탄핵' 이날은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20,30대 청춘들이 참 많았습니다. 모두 한 목소리를 냈고 이 모습에 놀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 힘)'은 2016년 12월 9일 탄핵 표결에서 다수의 여당 의원들도 탄핵에 찬성을 합니다.
이날의 목소리와 현장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리고 8년 후 우리는 또다시 탄핵을 앞둔 대통령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 광장에 나왔던 20,30대들은 왜 6년이 지난 2022년 윤석열을 지지했을까요? 세밀하게 보면 20대, 30대 남자들이 적극적으로 지지를 했고 그 20,30대 남자들이 만든 대통령이 윤석열입니다.
그럼 왜 20,30대 남자들은 윤석열을 지지했을까요? 2022년 대선을 떠올리면 현재는 윤석열 옆에 없지만 당시에는 있었던 양두구육을 했던 이준석이 있었습니다. 20,30대 남자들은 윤석열 보다는 이준석을 지지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왜 매번 감옥에 가거나 탄핵을 당하는 대통령을 그것도 왜 보수 정당 대통령을 꾸준히 뽑는 것일까요? 이는 보수 정당 대통령을 한 번도 지지하지 않았던 저에게도 큰 불행입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탄핵이 다가오고 있네요. 탄핵을 당하던 안 당하던 전 크게 신경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이런 대한민국의 팔자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그냥 이 나라의 운명 같고 국민성 같습니다. 그 12월 3일 따릉이를 타고 국회로 달려가서 계엄군을 막는 시민도 우리의 국민이고 지금도 윤석열을 지지하는 국민도 우리의 국민입니다. 제가 미래를 어둡게 보는 이유는 양심 때문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늘어가는 양심 소멸의 나라
실수는 할 수 있고 지지하는 시선이 다른 건 당연한 겁니다. 중요한 건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하고 다시는 같은 문제로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됩니다. 중요한 건 반성입니다. 반성의 바탕은 양심입니다. 양심이 있다면 나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에게 사과를 하고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줘도 사과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점점 양심이 줄어드는 느낌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편견에 사로 잡혀서 자신과 다르면 집단 구타를 하고 집단 따돌림을 수시로 행사합니다.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편견과 혐오와 편가르기가 일상인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또한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이분법의 사회로 만드는데 큰 영향을 준 것은 sns이기도 합니다. 필터 버블의 시대가 만든 혐오스러운 세상입니다.
이런 혐오의 공기 속에서 자라난 병균이 윤석열입니다. 윤석열의 갈라치기가 먹혀 들어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트럼프도 먹혀 들어갔죠. 대표적인 갈라 치기 전법이 성공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튜브 정치채널 또는 혐오를 바탕으로 큰 인기를 끄는 채널들을 보면 알 수 있죠.
어떻게 보면 윤석열은 결과이고 원인은 우리 안의 혐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이 말은 윤석열에 대한 면죄부나 변호의 말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이재명이 싫어서 윤석열을 찍고 윤석열이 싫어서 이재명을 찍는 모습은 앞으로는 줄어들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혐오심은 그 어떤 마음보다 강력한 힘이 있어서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겁니다.
외로웠을 광주
광주는 고립되었습니다. 1980년 광주는 외부로 향하는 모든 도로가 봉쇄되었습니다. 언론은 보도 통제가 되어서 어떤 사진도 뉴스도 나가지 않거나 왜곡되어서 보도되었습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지만 폭도들의 시위라고만 보도되었습니다. 그렇게 광주는 저항했지만 묻혔습니다. 그리고 1988년 88 올림픽이 끝난 후 5공 청문회를 통해서 8년 만에 온 세상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44년 후인 2024년 계엄은 또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와 다른 점은 계엄 과정이 생중계가 되었고 그 중계를 본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택시를 타고 국회에서 계엄군을 막았습니다.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다 보니 상황을 바로 알고 그 계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막아섰습니다.
1987년 계엄법 계정이 없었다면 그리고 시민들이 없었다면 윤석열의 계엄은 성공했을 수도 있습니다. 소수의 양심적인 사람들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죠. 양심이 큰 사태를 막는 브레이크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1980년 그 광주의 일을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주저하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과거 계엄 사태를 소재로 한 소설로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을 받는 2024년에 또 한 번의 비상계엄 빙자 친위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기만 하네요. 다시 한번 느끼지만 민주주의는 아주 허약한 제도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었지만 한 사람이 없애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는 한반도 전체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한도 남한도 독재자가 자기 멋대로 운영하고 있고 우리는 그걸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북한보다 우리 시스템이 좋은 건 시민의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반국가세력이 대통령인 나라! 이런 나라 이제 제발 그만 봤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