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의 과거를 담은 안양박물관의 '굴뚝도시 안양의 기억'
집에서 가까운 안양은 경기도지만 경기도라기 보다는 서울과 가까워서 그런지 작은 서울 같은 곳입니다. 제가 사는 금천구에서 지하철로 3정거장 밖에 되지 않습니다. 안양이 서울보다 못한 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많습니다. 특히 안양1번가와 안양지하상가는 물건 가격이 싸서 좋습니다. 이 안양에는 안양유원지를 리모델링한 '안양예술공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양예술공원 입구에는 안양박물관이 있습니다.
안양박물관은 유유제약 공장 건물이 있던 곳을 안양시가 다양한 박물관으로 만들어서 각종 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사진 촬영 때문에 안양예술공원에 갔다가 우연히 들렸는데 마침 아주 좋은 전시회를 하고 있네요
전시회 제목은 '굴뚝도시 안양의 기억'으로 안양이 거대해지기 시작한 1960~90년대의 풍경을 소개하는 전시회입니다. 제가 갔던 날 다음 날이 전시회 마지막 날이였네요.
안양이라는 도시의 이름은 불교 용어로 '극락'이라는 뜻입니다. 극락의 도시 안양. 이 안양은 서울과 수원의 중간에 있는 도시입니다. 포도로 유명한 곳이고 지금도 포도 농가들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안양의 마스코트가 포도를 형상화 한 '포동이'입니다. 양천구,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를 지난 안양천이 지나고 지하철 1호선이 지나갑니다. 수리산과 관악산, 청계산과 모락산으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안양의 역사
안양시는 안양리였습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이 되고 안양역이 생기면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1960년대 안양은 안양천이라는 하천과 뛰어난 교통 조건으로 안양에는 섬유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업 도시로 변모해 갑니다. 여기에 1968년 경인고속도로 개통, 1976년 경수산업도로가 개통되면서 공업지역은 더 확대됩니다.
안양은 1973년 시로 승격합니다. 안양은 도시화가 가속화되고 인구가 증가합니다. 특히 영등포와 구로공단 같은 공장지대가 서울지역 공장입지억제 정책의 의해 안양으로 밀려오게 됩니다. 1960년대와 70년대 경제개발 정책은 안양에 많은 공장을 세우게 되었고 80년대에는 전기, 전자와 중화학공업 공장도 들어서게 됩니다.
안양의 산업
안양의 제조업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 섬유 산업입니다. 1970년대가 가장 전성기였습니다. 한일나이론, 동양나이론, 효성, 동국실업,동일방직,동양상넘, 대농 등이 안양에 공장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인건비 상승 등으로 인해 섬유산업은 90년대 들어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쪽으로 이동을 합니다.
안양에는 박카스로 유명한 동아제약,한국업존, 동명산업이 있었습니다. 이 안양박물관 건물이 있던 곳에 공장을 지었던 유유산업도 있었습니다.
국민학교 당시 어머니가 선생님에게 박카스를 주고 가는 모습에 왜 약을 주고 가나 했습니다. 약병같이 생겨서 약인줄 알았는데 자양강장제더군요.
공장 연구실을 살짝 재현해 놓았네요
유유산업은 기억이 잘 없는 회사인데 '비나폴로'나 '유판씨'같은 비타민제를 보니 기억이 나네요. 1941년에 의약품을 수입하다가 의약품 제조로 업종을 변경합니다. '비나폴로'나 '유판씨'를 먹어 본 적이 없으니 잘 몰랐던 제약회사네요. 80년대 당시 비타민제는 부잣집 사람들이나 먹는 약이라서 그런지 먹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1973년부터 정부는 중화학 공업 육성책을 발표합니다. 이후 안양에 중화학, 전기,전자산업 공장이 세워집니다. 중화학공업은 대표적인 공해산업으로 이때부터 안양천은 시궁창이 됩니다. 이 시궁창 냄새는 90년대 후반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안양천은 대표적인 오염 하천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 안양시가 안양천 수질정화시설을 갖추면서 안양천을 놀랍도록 깨끗해졌습니다. 지금은 1년 내내 냄새 없는 하천, 맑은 하천이 되었습니다.
중화학의 대표적인 공장은 (주)락희유지였습니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주)럭키는 잘 아시겠죠? 럭키를 락희라고 표기 했었네요. 럭키는 나중에 금성전자와 통합이 되어서 LG가 됩니다. 럭키에서 생산하던 세탁 세제 '하이타이'가 있네요. 드봉, 퐁퐁. 럭키락스 다 추억의 이름들입니다. 지금은 LG생활건강에서 슈퍼타이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1964년 금성사가 국내 최초로 전기세탁기를 개발 생산을 합니다. 그런데 세탁기에 빨래 비누를 넣고 빨 수는 없습니다. 세탁기용 합성세제를 필요로 하자 1966년 안양 공장을 만들어서 국내 최초 합성세제인 하이타이와 뉴힛트를 만듭니다. 호계동에 있던 럭키 공장은 1982년 청주공장 완공으로 폐쇄됩니다.
1977년에서 나온 금성통신의 다이얼 전화기입니다. 추억의 다이얼 전화기네요. 버튼식이 나오기 전에는 이 다이얼 전화기를 썼었습니다. 손가락을 구멍에 넣고 획획 돌리면 드르르륵 하는 다이얼 돌아가는 소리가 무척 좋았습니다.
다방에도 전화기가 보급이 됩니다. 공중전화가 없던 다방에는 이렇게 열쇠락을 걸고 사용했습니다. 카운터에 20원을 올려 놓으면 전화 1통화를 할 수 있게 열쇠를 줍니다. 당시는 전화 1통화에 20원 이었고 오래 사용해도 사용 요금은 올라가지 않습니다. 통화가 되면 24시간 이야기를 해도 통화료는 20원이었습니다.
자주 쓰는 전화 번호를 적을 수 있는 연락처 내장 폰인 '금성 멀티스타'도 있네요.
아마 이게 가장 많이 사용했고 가장 많이 봤던 전화기입니다. 군대에서도 이 전화기로 통신보안 엄청 때렸던 기억이 나네요
노루표 페인트 공장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이 노르표 공장 근처에 가면 지금도 냄새가 매콤합니다.
1990년에 유명 탤런트를 주연으로한 기념영화 '뿌리 깊은 나무'도 촬영했었네요
갓뚜기라고 불리는 오뚜기 공장도 있습니다. 1969년 풍림상사가 오뚜기의 모체였고 1972년에 오뚜기 중앙공장이 생깁니다. 1973년에 오뚜기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971년 토마토 케찹, 72년에는 마요네즈를 국내 최초로 만듭니다. 마요네즈, 케찹은 오뚜기고 라면도 오뚜기입니다. 카레, 마요네즈는 국내 점유율 70~80%일 정도로 지금도 사랑 받고 있습니다.
1981년에는 국내 최초 레토르트형 건조식품인 '3분 카레'를 출시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끕니다. 현재 평촌동 부지 공장에서 500여종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크라운제과도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제지산업도 안양에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삼덕제지로 안양공고 근처에 공장이 있었습니다. 이 삼덕제지 공장은 설립자가 안양시에 부지를 기증한 후 시민 공원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만도기계에서 자동차 에어콘을 만들었습니다.
전시회는 2층으로 이어졌습니다. 내용이 길어서 2층 전시물은 다음 포스팅에서 따로 소개하겠습니다.
안양의 과거 핫플레이스, 대동문고, 들판, 봉암식당, 안양유원지 출처: http://photohistory.tistory.com/17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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