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예술공장 2017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언캐니 밸리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레지던시 시설이 서울 곳곳에 있습니다. 보통 이곳을 서울시는 예술공장이라고 부릅니다. 서울시는 예술가들에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아틀리에 공간을 제공하고 예술가들은 작품을 기증하는 공생 관계의 장소입니다. 문화 낙후 지역인 금천구에는 인쇄 공장을 개조한 '금천예술공장'이 있습니다. 1호선 독산역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습니다.
금천예술공장 2017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언캐니 밸리
금천예술공장은 오른쪽에 창고동과 왼쪽에 레지던시 건물이 있습니다. 매년 정기 전시회가 개최되는데 가을에는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전시회가 개최됩니다. '다반치 크리에이티브'는 기술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절의 예술 거장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지금은 예술과 기술이 분리되어 있지만 중세시대만 해도 예술은 기술의 한 부가가치 정도였습니다.
'다빈치 크리에이티브'는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표방하는 전시회로 매년 개최되고 있습니다. 기술과 예술을 융합하는 전시회를 개최하는 이유는 근처에 가산 디지털단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가산 디지털단지는 80년대 섬유와 신발 공장 등이 있던 구로공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노동 집약적인 산업이 동남아로 이주하자 김대중 정부는 구로공단을 디지털단지로 변신을 시도했습니다. 지금은 유명 IT기업과 애니메이션과 봉제 공장들과 대형 의류 아울렛 매장들이 가득합니다.
금천예술공장은 전시회 기간에는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1층에 들어서니 예술가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네요
창고동에서도 전시회를 하는데 안내도 없고 문도 잠겨 있네요. 매번 들리지만 방문객들에 대한 배려가 높지 않은 것이 항상 아쉽습니다. 섬세함이 뛰어난 예술가들이지만 정작 관람객 입장에서 보는 시선은 많지 않습니다. 물론, 이건 행정가들의 문제지만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는 전시회에 예술가들이 좀 더 신경 써주었으면 합니다.
3층 전시공간으로 바로 올라갔습니다.
<배우가 된 텍스트 / 김은진>
입구에는 be to or not to be 라는 햄릿의 유명한 대사를 배치한 작품이 보이네요. 그런데 이 텍스트들 꿈틀거립니다.
마치 무대 위에서 텍스트가 연기를 하는 모습 같네요. 위에 달린 램프는 수시로 깜박이면서 연극 무대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터리얼 : 지극히 가볍고 여린 / 이성은 이승민>
에터리얼(Ethereal)은 지극히 가볍고 여린이라는 뜻입니다. 의자 위에 올려진 VR 기기를 쓰면 앞에 있는 로봇에 달린 카메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즉 외부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세상엔 3가지의 내가 있다고 하죠. 내가 바라보는 나, 남이 바라보는 나, 그리고 진짜 나! 이 3개가 동일할수록 건강한 내가 되지만 요즘은 보여주고 싶은 나를 너무 꾸미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렇게 꾸미다가 빈틈이 수시로 보이면 오히려 역한 느낌이 듭니다. 마치 언캐니 밸리처럼요.
참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라는 단어 이야기를 소개하죠. 이번 전시회의 주제인 언캐니 밸리는 로봇 같이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가진 물체에 관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깡통 로봇이나 마징가Z처럼 딱 봐도 인간을 닮은 로봇이라고 인식하면 그 로봇을 로봇 자체로 인식합니다. 그런데 이 로봇이 점점 인간과 닮아지기 시작하면 소름이 돋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인간과 로봇이 구분이 안될 정도의 로봇이 나오면 우리는 그 로봇을 로봇이 아닌 또 다른 인간으로 느낍니다.
언캐니 밸리는 이 소름이 돋는 구간을 말합니다. 언캐니 밸리는 불쾌한 골짜기라는 뜻으로 인간과 너무 닮은 로봇이나 피조물을 만났을 때 인간이 느끼는 불쾌함이 강해지는 구간을 말합니다. 그러다 인간과 너무 닮으면 불쾌함은 점점 사라집니다.
그러나 이번 '2017 다빈치 크리에이티브의 언캐니 밸리'는 이 주제에 부합한 작품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냥 첨단 기술을 이용한 작품 전시회이지 주제에 닮은 작품은 잘 안 보이네요.
3층 전시 공간에 들어섰습니다.
<마이크로 유니버스 / 탈 다니도>
이 작품은 미생물을 번식한 작품입니다. 박테리아들이 번식을 하면서 다양한 패턴을 만들고 있습니다. 미시 세계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마치소우주를 보는 느낌입니다.
2개의 달이 달린 듯한 기계가 트랙을 따라 이동하는데 이 작품 이름은 모르겠네요.
VR 기기를 이용한 작품이 꽤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VR 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해상도가 너무 낮아서 뒤집어 쓰면 그게 가상 현실 세상이라는 것이 너무 티가 납니다. 해상도가 더 높아져서 현실과 구분이 어려운 단계가 되면 모를까 지금은 VR 기기는 신기한 놀이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나 요즘 VR 기기를 이용한 예술 작품들이 많아지고 있네요.
<빛결 연작 / 팀보이드>
팀보이드는 인터렉티브한 설치 예술 작품을 잘 만듭니다. 여기서 또 만났네요. <빛결 연작>이라는 이 작품은 둥글게 돌아가는 수 많은 회전체 위에 LED를 박아서 빛을 이용한 기하학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이걸 키네틱 라이트라고 합니다. 움직이는 빛을 이용해서 수 많은 패턴을 만들어냅니다.
이 작품은 VR기기를 뒤집어 쓰고 앞에 놓인 사물을 만지면서 촉감과 시각을 결합한 작품입니다. 물론 VR기기에서는 저 사물이 저렇게 안 보이고 가공된 이미지로 보일겁니다.
<애니그마 / 퓨어폼 -알랭 티보 & 얀 브렐류>
애니그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쓰던 암화 기계입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앨런 튜링이 이 애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데 성공합니다. 이 애니그마라는 작품은 기계와 인간이 소통을 소재로 한 영상물입니다. 인간과 기계는 사용하는 언어가 다릅니다. 기계는 0과 1로 된 이진법이 언어입니다. 이걸 해독해줘야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고 우리가 기계의 언어를 알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치환하는 도구 또는 번역, 해독 도구가 애니그마가 아닐까 합니다.
또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많은 물체들이 내는 데이터들(빅데이터)을 해독해서 인간에게 이롭게 만드는 세상으로 만들 것입니다.
<이너 텔레스코프 / 에두아르도 카츠>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에두아르도 카츠의 지시를 받은 프랑스 우주인인 토마 페스케가 우주정거장 무중력 상태에서 정거장 안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만든 작품입니다. 앞뒤 구분이 없는 이 작품으로 집단적인 자아를 나타냅니다.
<전기적 유영과 시각적 관찰 / 양민하>
양민하 작가는 내시경 카메라를 이용해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이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담긴 팜플렛을 보면 내시경 카메라를 이용했다는 내용이 한 줄도 없네요. 이런 정보는 챙겨서 넣어주면 예술을 소비하는 일반인들이 좋아할텐데요.
<형이상한 연못 / 닥드정>
이 작품은 유기체 같이 움직이는 액체 금속을 전기력으로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는 작품입니다. 파타피직스라는 농담을 패러디 했다고 하는 설명을 읽다고 덮었습니다. 그냥 별 느낌이 없네요.
매년 찾아가지만 제가 점점 시니컬해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재미있고 흥미 있는 작품들이 많지 않네요. 제가 변한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활력도 없고 안내도 부실하고 설명도 여전히 현학적인 글로 치장하는 이 예술 문화가 점점 실증이 나네요.
모든 예술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또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턱이 낮은 예술도 있고 공부해야 보이는 예술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예술 작품은 설명이 많이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면에서 2017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언캐니 밸리 출품작들은 전체적으로 별 느낌들이 없었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감상일 뿐입니다.
2017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언캐니 밸리 전시회는 11월 5일까지 전시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