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걷는 것이다. 사진작가 정진호의 서울 걷기 사진전
제가 사람들에게 예찬을 자주하는 것이 2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걷기이고 또 하나는 사진입니다. 그래서 전 자주 걷고 자주 사진을 찍습니다. 지금 이글을 쓰기 전에도 여러 사진전을 걸어서 돌아보고 사진으로 채집했습니다.
걷기와 사진은 동의어입니다. 걷는 것 자체가 느림이고 느림 그 자체가 시간입니다. 그 느린 시간 만큼 피사체를 오래 관찰할 수 있죠. 그 오래 관찰한 피사체를 사진으로 담으면 그 사진은 좀 더 맑아 보입니다.
"가까이 봐야 예쁘다, 오래 봐야 아름답다 " - 나태주 시인의 풀꽃-
요즘 이 시가 엄청나게 인기가 많습니다. 짧으면서도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의 깊이가 깊습니다. 사진도 그렇지 않을까요? 사진도 찰나의 순간을 담지만 깊이는 우주만큼 깊은 사진들이 있잖아요. 사실, 요즘 사진들 깊이가 있는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그냥 말초 신경 자극만 하는 길거리 입간판 같은 사진들이 대부분이죠. 오늘도 여러 사진전을 봤지만 몇몇 사진전은 그냥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맹이와 다를 것이 없네요.
그럼에도 몇몇 사진전은 꽤 깊게 봤습니다. 그중 하나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전시 중인 사진작가 정진호의 서울 걷기 사진전입니다
대한 극장에 들렸다가 근처에 있는 갤러리 브레송에 잠깐 들렸습니다. 지하에 있는 갤러리인데 카페도 겸하고 있습니다.
12월 11일 어제부터 19일까지 전시를 하네요. 사실 정진호 사진작가 모릅니다. 다만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찍은 풍경사진 시리즈는 압니다. '갤러리 브레송'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촬영한 풍경 사진을 소개하는데 기발한 아이디어입니다.
다큐 사진작가는 보통 사건을 위지로 촬영을 하지만 사건이 있는 사람이나 현장에서도 풍경 사진 촬영하기도 합니다. 물론,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분들이 아니라서 미학적인 풍경 사진은 없다고 해도 찍기는 찍죠. 그 풍경 사진을 1년 이상 전시를 하고 있네요.
다만, 다큐 사진작가가 풍경 사진 찍는 것이 무슨 큰 의미나 느낌이 있는 것 같지는 않네요. 뭐 크게 보면 사람도 사건 사고도 이슈도 사회문제도 다 사람 사는 풍경이기는하죠. 스토리가 강점인 다큐 사진에 스토리를 지운 사진으로 촬영하는 것이 오히려 밋밋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자기 버릇 남 못준다고 풍경 촬영을 하면서도 자신만의 시선을 담기도 합니다.
사진작가 정진호는 서울 변두리와 뒷골목과 산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무슨 소명의식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고 건강을 위해서 많이 걷기 시작했고 단지 그 걷기에 카메라가 함께 걸었습니다.
함께 걸었던 카메라로 채집한 서울 풍경입니다. 사진들은 흔한 인기 피사체인 허름한 동네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몇몇 곳은 익히 알고 있는 동네도 있고 처음 보는 동네도 있습니다. 이 사진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왜 우리 대부분은 아파트 같은 곳에 살면서 사진은 허름한 변두리 동네만 촬영할까? 보기 드문 풍경이라서? 추억의 풍경과 비슷해서? 정겨운 풍경이라서? 낡고 허름한 것에 대한 애잔함 때문에? 사진작가의 사진의 9할은 변두리 동네의 허름한 모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제가 예상하건데 그 허름한 동네들은 아파트나 빌라에 없는 골목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형적이지 않죠. 무질서함이 오히려 사람 사는 느낌이 더 나지 않을까요?
가장 눈길을 끈 사진입니다. 마치 비바람에 흔들리는 배에 올라서 돛을 다는 선장님 같은 모습이라고 할까요? 방수포를 덮는 모습이 긴박해 보입니다. 그런데 집 앞에는 큰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아마도 지자체가 공공미술재를 붙어 놓은 듯하네요. 요즘 그림 벽화시기를 지나서 사진벽화가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변두리가 아닌 도심 그것도 빌딩을 담은 사진도 몇장 있었지만 많지 않았습니다. 사실, 도심의 거대한 빌딩은 정크푸드 같은 정크스테이션이라고 해서 그 안에서 걷지 않습니다. 그냥 이동만 할 뿐이죠. 도심 빌딩 사이에서 무슨 이야기가 피어나겠습니까? 도심 속 길은 이야기가 머물수 없는 욕실 타일 같은 곳이죠. 그냥 흘러갈 뿐입니다.
서울은 점점 걷기에는 매력이 떨어지는 도시가 되고 있습니다. 서울둘레길이다 뭐다 걷기 열풍으로 여러 길을 지자체들이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이 씁쓸한 것은 걷는 용도의 길이 따로 만드는 것 같네요. 모든 길은 걷기 좋아야 합니다. 그럼 알아서 걷습니다. 그러나 서울은 걷기 좋은 길이 사라지고 차가 다니기 좋은 길이 늘고 있습니다.
얼마전 강남공화국에 갔더니 골목길을 말끔하게 잘 정리해 놓았더군요. 아스팔트 길인데 길 양쪽에 직선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사람은 그 줄 안쪽으로 걸으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름 사람 보호 한다고 그린 하얀 선 같은데 그 하얀 선 안쪽으로 걷기에는 너무 좁고 중간 중간 주차된 차량과 매장의 물건들 때문에 걷기 쉽지 않네요
그런 모습에 강남답다, 강남스럽다 느꼈습니다. 점점 걷기에 열악해지는 서울이지만 그럼에도 전 길을 걸을 것입니다. 걸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보고 느낄 수 있으니까요.
전시회의 자세한 내용은 http://cafe.daum.net/gallerybresson/3V4c/200 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