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집단의식을 사진으로 비꼰 박초록 사진작가의 Dynamic Korea! 2012
사례 1 : 한 대형 영화체인점을 운영하는 대기업을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 글에 그 대기업 직원들이 몰려와서 일명 쉴드질이라고 하는 명명백백한 문제점을 변호하고 있음
사례2 : 친일파가 세운 서울의 한 고등학교를 방문 후 학교 풍경을 스케치해서 블로그에 올리면서 설립자가 친일파라는 글을 함께 적었는데 동문 선배들이 몰려와서 글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라고 댓글로 압박을 함. 글을 쓴 사람은 그 고등학교가 모교임. 선배들은 동문회까지 거론하면서 압박을 했고 글을 쓴 사람은 결국 글을 삭제 하지는 않고 학교 이름을 지워버림
사례3 : 대형 육교를 세우고 그 육교 바로 밑에 횡단보도를 만든 몰지각한 행정을 한 구청의 행정을 보고 신랄한 비판을 블로그에 했는데 그 글을 읽고 그 구청에 사는 주민들이 몰려와서 너! 어디에 사는데 우리 구 욕하냐고 악플을 잔뜩 담. 참고로 그 글을 쓴 사람은 같은 구청에 살고 있음
사례4 : 인천과 서울의 한 대학을 방문한 블로거가 그 학교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과 함께 약간의 비판을 적었음
그 글을 읽은 대학교 동문들이 몰려와서 쌍욕을 섞어 가면서 악플을 담. 한 댓글러는 글을 쓴 사람의 정치색까지 거론을 함. 좋은 지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니가 뭔데 우리 학교 욕해!라고 글이 대부분
위 사례는 눈치 챘겠지만 제 경험입니다. 아시겠지만 제가 워낙 모든 것들을 좀 삐딱하게 보고 비판적으로 보잖아요. 그렇다고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니고 칭찬할 것은 칭찬을 하지만 조그마한 비판도 용납 못하는 사람들은 안 좋은 점만 끄집어서 지적을 하네요. 위 사례를 읽고 제 행동을 비판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저의 비판적인 행동을 비판하는 행동이 일반적일 수 있습니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 잖아요
위 사례는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준거 집단에 대한 비판입니다. 하나의 준거 집단을 비판하면 그 소속인들은 그 비판이 합리적이고 합당한지 안 한지를 따지지 않고 내가 속한 집단을 욕했다면서 멱살잡이를 하죠. 이게 한국적인 풍습 아닐까요? 그렇잖아요. 아무리 내 식구가 밖에서 잘못했어도 누군가가 멱살잡이를 하고 있으면 무조건 내 식구는 잘못한 것이 없어 멱살 잡은 니가 잘못한 것이라고 하잖아요.
이게 바로 한국인들의 집단의식이자 집단 생활에 익숙한 풍경입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1개 이상의 준거집단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해타산이 맞는 준거집단을 마치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준거집단이 공격을 당하면 똘똘 뭉쳐서 방어를 합니다. 회사가 그렇고 학교가 그렇고 자신이 사는 동네가 그렇고 자신이 속한 동호회가 그렇습니다.
이렇게 올곧은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니가 뭔데 지적질이야! 라고 하는 준거집단이 창궐하면 그 사회는 상자속 썩은 사과처럼 다른 준거집단을 물들이면서 나라 전체가 썩게 됩니다. 한국은 이미 썩을대로 썩었습니다. 그러니 뉴욕 총영사관이 한국 정부를 비판한 기사를 쓴 외국인 기자에게 전화로 압박을 하죠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서두를 장식한 이유는 이 사진작가 때문입니다. 2012년 미래작가상을 받은 박초록 사진작가의 사진은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습니다. 우리 한국인 아니 동북아시아 3국의 전체주의적인 성향을 사진으로 비꽜습니다. 사진 장르 중에 블랙코미디를 아주 좋아하는데 블랙코미디 사진 시리즈더군요
한국, 일본, 중국의 공통점은 경제 괴물이라는 점과 3개 나라 모두 서로 서로를 미워하지만 하는 행동이나 생활방식은 아주 비슷합니다. 특히, 집단을 위해서 개인을 소모시키는 모습은 너무나도 비슷하죠. 서양은 개인이 우선이고 모든 생각이 개인이 중심인데 한국, 일본, 중국은 집단체 또는 나라를 위해서 국민이라는 개인은 하나의 부속품이자 소모품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회사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 희생을 강요하는 개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내부자들처럼 내부고발이 쉽게 일어나기 힘든 나라입니다. 영화 내부자들은 내부고발의 고통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개인이 집단의 부속품으로 보는 시선은 아마도 동북아 3국이 서양과 달리 아래로부터 혁명인 시민혁명이 일어난 적이 없고 시민이 주인인적이 없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또한, 공자님 말씀 때문인지 개인 보다는 집단을 우선시 하는 행동은 동양의 사고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Dynamic Korea! 2012, 사진작가 박초록>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내가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지를 살피고 집단에 소속되면 포근함을 느낍니다.
집단에 소속되려면 여러가지 형태로 인증을 해야 합니다. 일베를 하는 사람들이 일베 인증을 하는 이유가 다 소속감 때문이고 그 소속에서 인정을 받기 위함이죠. 이게 바로 조폭 문화 아닙니까? 솔직히 한국의 준거집단은 조폭문화가 어느 정도 다 있습니다.
아이들이 같은 브랜드의 아웃도어 제품을 입는 행동들, 저거 다 조폭문화입니다. 조폭들 보세요. 비슷하게 생겨서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머리를 하고 다니잖아요. 박초록 작가는 이런 한국인들의 집단이 주는 포근함에 취한 집단주의를 유형학적인 사진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사진축제 2015는 북서울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박초록 사진작가의 다이나믹 코리아! 2012라는 사진 시리즈는 우리들의 현 모습을 반영한 사진들입니다.
어제 한 여학생이 oo여대 아우터를 입고 버스에서 내리더군요. oo여대라는 것은 그 아우터 등판에 뙇하고 찍혀 있더군요. 전 그 모습이 웃겼습니다. 저렇게까지 소속감을 나타내야 하나? 마치 삼성전자 직원이 삼성전자 마크를 등판에 거대하게 찍고 출퇴근 하는 모습이잖아요.
그렇게 우리는 어떤 소속이라고 으스대야 편안함을 느끼나 봅니다. 자신의 준거집단이 세상에서 알아주는 시쳇말로 끝발있는 회사나 학교나 집단이라면 더 으스대죠. 의상으로 동기화된 우리들의 모습은 꼭 준거집단에 대한 표출은 아닐 것입니다. 아줌마들의 패션이 비슷한 것은 아줌마를 드러내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그게 편리한 패션이기 때문이죠
올 여름에 유행했던 냉장고 바지는 패션테러로 보이지만 시원함이라는 편의를 제공하기네 너도 나도 사 입었죠. 아줌마라는 단어는 편의 그 자체입니다. 편리하고 실용적이면 패션 테러를 가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썬캡이죠.
위 사진을 보니 이런 생각도 듭니다. 10,20,30대들은 너무 남을 의식해서 남들과 똑같은 브랜드 옷을 입고 다니려고 노력하다가 오히려 차별성이 없어져서 레고 인간이 되는 듯하고 40대 이상 아줌마 아저씨들은 편의성만 너무 의존하다보니 편의성이 좋은 옷을 사서 몸에 걸치고 밖에 나가보니 다들 비슷한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 정작 40대 이상은 남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죠.
너무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젊은이들과 너무 의식하지 않는 장노년의 모습이 그들이 입고 다니는 옷으로는 비슷한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으로 보여서 흥미롭네요.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전역한지 수십 년이 지나도 군복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죠. 옷으로 같은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문화, 이것도 한국의 독특한 문화가 아닐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