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티벌284 미친광장에서 본 '제이미 우드의 맥킨로 이야기'
가을은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라서 많은 축제와 전시회가 펼쳐집니다. 1년 내내 가을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축제와 전시회 많이 보러 다니죠. 10월 28일까지 월요일, 화요일만 빼고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 문화서울역 광장 곳곳에서 펼쳐지는 '페스티벌284 미친광장'공연 및 전시회가 진행중입니다.
콘서트, 행위예술, 전시, 공연 등 다양한 예술들이 한꺼번에 선보이는 미친광장 전시회는 서울역 광장을 재조명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전시회입니다. 전 공연과 전시와 콘서트가 무료라서 출퇴근 또는 주말에 서울 시민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 및 전시회입니다. 문화서울역 앞 광장에서 펼쳐지기 때문에 접근성도 좋네요
문화서울역284 광장에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전시품이 있는데 안에 들어가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공연은 주로 오후에 있는데 공연 특성상 야간에 하는 공연이 꽤 많네요. 광장 왼쪽에 있는 공연장에서 '가자미소년단'의 신나는 락 음악을 감상하다가 '제이미 우드의 <맥킨로 이기기>를 보러 가기 위해서 이동했습니다.
문화서울역284 오른쪽에는 RTO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공연을 합니다. 여기는 안에 들어가면 더 많은 예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잠시 가자미소년단 공연을 보고 왔더니 그 사이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네요. 급한 마음에 관람 인원 수를 물어보니 100여 명이 관람할 수 있다고 하네요. 빠르게 관람객 숫자를 세어보니 다행스럽게도 전 안정권이네요. 제가 보고 싶었던 이 공연은 영국인 마임연기를 하는 '제이미 우드의 <맥킨로 이기기>입니다.
사진출처 : http://www.northdevonjournal.co.uk/Jamie-Wood-s-comedy-tennis-Beating-McEnroe-comes/story-21002220-detail/story.html
맥킨로 이기기? 혹시 존 맥킨로를 말하는 것인가? 아세요? 코트의 악동 존 맥킨로. 뭐 코트의 악동이라는 별명이 꽤 흔해서 여러 선수가 떠오르겠지만 전 80년대 테니스 스타인 '존 맥킨로'가 바로 떠올라요
곱슬 머리에 붉은 헤어밴드를 착용하고 과격한 행동을 서슴지 않게 하는 이 에너지가 아주 강한 선수죠. 테니스라는 고급 스포츠 문화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존 맥킨로'를 아는 이유는 2가지였습니다. '존 맥킨로' 경기를 공중파에서 해주었고 볼거리가 지금같이 풍요롭지 못한 시대에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길게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이 '존 맥킨로'의 반대말 같은 강력한 라이벌인 '비에른 보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테니스 룰도 잘 모르면서 '존 맥킨로'경기가 재미있었던 것은 극과 극의 캐릭터가 테니스 경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출신의 '존 맥킨로'는 악동 이미지 그 자체였습니다. 성질나면 경기 중에 라켓을 부러뜨리고 강력하게 화를 내는 한 마디로 무례함이 일상화된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강력한 라이벌인 스웨덴 출신의 '비에른 보리'는 유럽 신사 같은 기품이 있고 예의 바른 예수님 이미지였습니다. 긴 금발 머리를 보고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고 응원했던 기억이 나네요. 80년대 흑백TV로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사진을 보니 아주 미남은 아녔네요.
모르겠습니다. 초등학생이던 시절에는 세상이 선과 악의 구분이 확실하다고 믿던 시절이었습니다. 마징가Z가 우주 악당을 열심히 막고 있는 시절인 줄 알았죠. 커서 보니 선과 악은 디지털처럼 0과 1이 아닌 정의에 따라서 시선에 따라서 선이 되었다가 악이 되었다가 하는 세상이더군요. 절대 선과 절대 악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과 악이 선명하던 시절에는 '맥킨로'는 악, '보리'는 선이였습니다. 이름도 보리잖아요. 쌀과 보리처럼 일용 한 양식을 주는 이름이기에 좋아했던 것도 있네요
<맥킨로 이기기>는 1시간짜리 공연입니다. RTO에 들어서니 테니스코트 또는 테니스공 색깔의 가운을 입고 있는 '비에른 보리'처럼 머리가 치렁치렁한 흡사 서양 도사 같은 '제이미 우드'가 주문 같은 것을 말하면서 입장 관람객을 맞이하네요. 자리에 안자 테니스 공을 관객에게 던집니다. 그 테니스 공 주고받기를 하면서 공연의 흥을 점점 끌어올립니다.
이런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모습이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큰 인기를 끌었나 보네요. 그렇게 테니스 공으로 던지면서 관객들의 웃음을 유도합니다. 그리고 공연은 시작되었습니다. 무언극은 아닙니다. 영어로 말하면 오른쪽 상단에 자막이 뜹니다. 요즈음은 이런 자막 지원하는 공연이 많아서 공연 보기가 아주 좋네요. 내용은 복잡한 내용은 아닙니다.
'제이미 우드'는 어려서 훌쩍 큰 형과 함께 '비에른 보리'와 '존 맥킨로' 테니스 경기를 시청했습니다. 연배가 저와 비슷하나 봅니다. 그러다 '비에른 보리'가 결승전에서 패배를 합니다. 이후, '제이미 우드'는 개인적 경험을 투영합니다. 독일 학교로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한 여자를 두고 친구의 질투 때문에 싸움을 강요당해다가 싸움을 하기 싫어서 울어버린 울보, 즉 루저가 된 자신의 경험을 투영시킵니다.
남성성이 거세된 울보 제이미, 제이미의 개인적인 경험과 자신의 우상이었던 '비에른 보리'의 충격적인 패배를 씨줄과 날줄로 엮으면서 '제이미 우드'는 꿈속에서 '존 맥킨로'를 이기기로 결심합니다.
테니스 이야기를 좀 하자면 '비에른 보리'는 유럽을 대표하는 선수로 1977~81년까지 109주 동안 테니스 랭킹 1위였습니다. 무려 14차례나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을 했죠. 보리의 독주 시대에 1980년 무서운 그러나 매너가 좋지 못한 껄렁껄렁한 미국인 그 자체인 '존 맥킨로'가 등장합니다.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이죠. 맥킨로는 1980~85년까지 170주 랭킹 1위를 했습니다.
이 두 정상급 선수는 1981년 테니스 결승에서 만납니다. 이 경기에서 '비에른 보리'는 '존 맥킨로'에게 패배합니다. 그 충격에 보리는 시상식에 참석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보리는 그 경기를 끝으로 은퇴를 합니다. 보리의 나이 25살이었습니다. 새로운 별에 의해서 강제로 밀려난 것이죠. 이런 일은 스포츠계에서는 자주 있습니다. 두 개의 별이 공존하지 못하는 모습이 많죠.
<맥킨로 이기기>는 맥킨로가 보리에게 전화를 걸어서 왜 시상식에 나오지 않았냐면서 타박을 하다가 보고 싶다는 말을 전합니다. '제이미 우드'는 이 맥킨로를 이기기 위해서 관객을 동원합니다. 가상의 테니스 경기를 치루어서 자신이 맥킨로라는 악당을 이겨서 자신의 꿈 또는 남성성을 되찾습니다.
발레복을 입은 제이미 우드는 관객 여러 명을 무대 위로 올려서 효과음 도우미, 존 맥킨로와 주심 역할을 주고 함께 무대를 만듭니다. 관객 참여극은 꽤 많습니다. 그러나 관객이라는 변수 때문에 공연이 크게 좌지우지되기도 하죠.
그런데 놀랍게도 이 공연에서 나온 관객 모두 미리 심어 놓은 관객이 아닐까 할 정도로 뛰어난 연기 또는 재미를 보여줬습니다. 요즘 관객들은 너무 적극적이네요. 이런 유쾌한 관객 덕분에 공연은 박수 갈채를 받으면서 끝났습니다.
자신을 막고 있는 그것을 뛰어 넘으라는 메시지와 함께 끝이 난 공연 후 관객 대부분은 1회 공연이 너무 아쉽다고 말하네요.
마침 '제이미 우드'가 지난 금요일 생일이라서 생일 케익을 받았네요.
페스티벌284 미친광장 공연은 수요일부터 재가동합니다. 좋은 공연 체크했다가 무료로 관람하세요. 공연 및 전시 관람 후에 리뷰 이벤트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페스티벌284 미친광장 홈페이지 : http://festival284.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