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형상의 사물 이야기. 사진작가 난다의 사물의 자세 마치, 단지
사진작가 난다를 안 것이 2010년 경입니다. 사진을 좋아하지만 사진을 너무 심각하게 사용하는 작가들을 보면 머리가 아픕니다. 사진처럼 명징한 도구도 없는데 사진으로 느껴지지도 않는 회상, 그리움, 존재의 회환, 존재의 시간 등등 추상적인 제목을 달아서 가르치려고 합니다.
분명, 그런 추상적인 제목을 사용한 사진들이 마음에 풍덩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그런 사진들은 절 위로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루 종일 우울해 하면 지쳐서 살기 힘듭니다. 매일 매일 우울해도 인위적으로 밝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사진전들을 보면 온통 우울증 환자 같은 사진전이 많습니다. 추상적인 제목으로 칠해진 사진만 보다 보니 처음엔 무던하게 보다가 점점 우울해지더니 나중에 화가 납니다. 아~~~ 지겹다. 지겨워라는 생각이 들 때 난다 작가의 사진이 들어왔습니다.
<콩다방>
<발리우드식 군무>
그냥 빵 터졌습니다. 심각한 메시지 또는 전하는 메시지는 없는 그러나 보자마자 웃음이 절로 나오는 사진들입니다. 정적인 사진 보다는 합성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관람객의 웃음을 절로 자아냅니다.
위와 같은 사진은 초등학교때 했던 콜라쥬 형식의 사진으로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회 비판 하면 보통 머리띠 두르거나 심각한 표정으로 비판하거나 악다구니를 하는 것이 아닌 유쾌하게 비웃어주는 여유라는 강력한 웃음의 무기를 챙기고 사회를 비판합니다.
이 웃으면서 남을 욕 보이고 비판하는 능력을 가진 난다 작가 팬이 되었습니다. 권위를 허무는 가장 큰 무기는 웃음입니다. 심각하게 말하고 우러러 봐달라고 원하는 인정욕망 덩어리에게 웃음으로 그 권위를 가볍게 날려 버릴 수 있습니다. 웃음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작가입니다.
알고 간 것은 아닙니다. 매주 한 번 씩 지나가는 인사동에 갔다가 난다 작가님의 전시회가 있어서 들렸습니다.
2015년 3월 11일부터 24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사물의 자세 마치, 단지'라는 난다 작가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 사진전은 제 6회 갤러리 나우 작가상 수상작을 전시하는 전시회이기도 합니다. 갤러리 나우는 매년 한 명의 사진작가를 선정해서 갤러리 나우상을 시상합니다. 다른 사진갤러리도 이런 상 하나 만들어서 운영하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사진작가들은 이런 갤러리의 후원으로 큰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좋은 사진작가는 갤러리들이 전속 작가로 모시기도 하죠.
작년과 재작년에는 외국 사진작가가 갤러리 나우상을 받았는데 올해는 한국 사진작가입니다. 난다 사진작가는 여성 사진작가로 위 이미지 속 모델이 사진작가 본인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몇년 간 비슷한 사진들만 찍어서 식상한 것도 있었습니다.
보통, 한 사진작가 또는 미술가나 음악가나 하나가 히트하면 그걸 줄기차게 만듭니다. 안 팔릴때까지 줄기차게 만드는데 그러다가 자신이 만든 성에 갖혀 버립니다. 사진작가 배병우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소나무도 찍고 고궁도 찍고 궁전도 찍었는데 소나무 사진만 팔리더라. 그래서 지금 또 소나무 찍고 있다. 이게 작가가 가지는 딜레마입니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저 작가분은 20년 내내 저 소재만 다루네라면서 안봐도 뻔하구나 느껴지게 됩니다. 물론,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소재와 주제 그리고 표현력이라면 그걸 극한까지 끌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매번 자기 복제를 하는 듯한 사진만 계속 찍는다면 그건 작가 개인으로도 성장이 아닌 정체를 지나 후퇴일 것입니다.
사진작가 난다는 특유의 밝고 쾌할한 사진을 포토샵을 이용해서 작업을 했는데 이번 사진은 다릅니다.
전시회 사물의 자세 마치, 단지는 사람을 닮은 인형을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단지 사물이기도 하다. 사람 형상을 한 사물 = 인형입니다. 위 사진을 보니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 소령이 떠오르네요. 의체에 데이터화 된 전뇌를 심어서 인간의 삶을 살고 있는 쿠사나기 소령은 인형의 몸에 사람의 영혼을 집어 넣은 하이브리드 신인간입니다.
가장 충격적인 사진입니다. 왜 우리는 이 사진을 보고 충격을 느끼고 거북스러움을 느낄까요? 단지 사물인데요. 생명이 없는 사물에 왜 우리는 불쾌감을 느낄까요? 이런 불쾌감은 유기체가 생명을 잃었을 때 같은 생명이 느끼는 당혹과 공포와 두려움 밑에 흐르는 동질감입니다.
그런데 이 인형은 생명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쾌감을 느낍니다. 그 이유는 나와 닮았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닮은 구체관절 인형을 저렇게 분리해서 놓으니 당혹스러움과 불쾌감을 느낍니다.
사진들은 철저하게 인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인형이 우리 인간들이 숨기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우리는 이 사진들을 불편해 합니다.
이 작업이 단지 사물의 구성으로 보이지 않고 변태적이고 폭력적이어서 불편하다면, 형상이라는 실제의 대체물이 실제와 분리될 수 없음을 증명한 셈이다.
<전시회 서문 중에서>
외형의 닮음에도 우리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모습도 있지만 우리와 비슷한 행동을 해도 닮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래밍 된 지식이 아닌 스스로 주변 환경을 통해서 배우는 사람처럼 자라는 로봇 채피는 외형은 인간과 흡사하다고 할 수 없지만 인간이라고 느껴지게 됩니다. 그 이유는 행동 양식이 인간과 비슷하기 때문이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특징들까지 닮아서 채피는 인간처럼 느껴지거나 또는 동물처럼 느껴집니다. 유기체가 무생물과 다른 공포감, 살고 싶은 욕망을 옆에 있는 유기체에게 전달하면서 채피를 로봇이 아닌 생명체로 느낍니다.
단지, 닮았다는 이유로 동질감을 느끼는 인형과 인간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물인 로봇 사이 어디쯤에 우리 인간이 있지 않을까요?
<셀카 붕붕>
난다 사진작가의 다른 사진도 볼 수 있는데 사진들이 큼직큼직합니다. 이 작품은 160 x 120 cm인데 그 크기와 함께 또렷한 재미가 있습니다.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광화문 광장에서 흔한 셀카질을 하고 있는데 얼굴이 풍선입니다. 아마도 익명성을 표시한 것 같은데 풍선 얼굴을 한 사람들이 하늘에 붕붕 떠 있네요.
제 느낌으로는 셀카라는 허세질로 하늘로 붕 뜬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셀카라는 자체가 스스로 자기 이미지를 창조하는 주관적인 사진 행위의 정점으로 잘 나오지 않는 사진을 바로 삭제하고 잘 나온 사진만 세상에 공개하는 주관적인 사진 셀렉팅 행위입니다. 그런데 실제 내 얼굴은 셀카와 다릅니다. 실제 내 모습은 셀카보다 못생겼죠.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남이 찍어준 사진 속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일 것입니다.
<삐에로는 줄을 서지 않는다>
여전히 이런 유쾌한 사진도 계속 이어가네요. 앞으로도 다양한 사진, 꾸준히 생산해주길 바랍니다. 난다 작가님의 갤러리 나우 작가상 수상도 축하드립니다
전시회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갤러리 나우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