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10년 동안 사진으로 담은 오인숙 사진작가의 '서울염소'
고백하자면, 유명 사진작가의 사진전에 가서 큰 감동을 받은 적은 거의 없습니다. 장탄식을 내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해 본적은 없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죠. 가장 큰 이유는 그 사진을 이미 PC모니터도 미리 다 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진의 미학적 구도와 형식미는 철저해도 그런 아름다움이 절 울게 하지는 않습니다.
브레송 사진전도 카파 사진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어떤 해외 유명사진작가의 사진전을 할 지 모르겠지만 해외 유명사진작가의 사진전을 보러갈 생각은 많지 않네요.
대신 국내 사진작가의 사진전, 사진 동아리 사진전, 이제 막 사진을 시작하는 분들의 사진전 또는 일반인들의 사진전, 아마츄어들의 사진전들을 더 많이 보고 찾아보고 싶습니다.
물론, 프로가 아닌 아마츄어 사진가나 막 사진을 시작하는 사진작가의 사진들은 완성도 면에서는 프로들에 비해서 많이 떨어집니다. 한때는 그 완성도 높고 낮음을 추종할 때도 있었습니다. 인화 품질이 어떻네 사진구도가 어떻네 사진이 주는 메시지는 볼 생각을 하지 않고 구도나 소재, 형식미나 장소나 촬영도구인 카메라에 탐닉한 적이 솔직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것 다 버리고 이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세상에 하고 싶은 것인가? 작가의 시선과 메시지가 날 얼마나 움직이나? 그런 것을 주로 볼 생각입니다. 이런 제 변화는 몇년 전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수 많은 사진전을 봤지만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전은 몇개가 되지 않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사진전은 한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1년 동안 카메라에 담아서 돌잔치 대신에 인사동의 '갤러리나우'라는 사진전문 갤러리에서 아기 사진 전시회를 한 것입니다. 그 자체가 감동이었습니다. 누군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대단한 열정이 아니면 담기 힘듭니다. 그게 비록 가족이라고 해도 담기 힘들죠.
솔직히, 하루에도 수백 장의 사진을 찍으면서 자신의 가족을 사진으로 담는 사진작가나 사진가 또는 생활사진가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저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피사체이면서 가장 사진을 찍지 않는 사진이기도 한 가족. 이 가족을 카메라에 담은 사진들이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디카페 일기도 윤미네집도 모두 가족을 담은 사진집입니다. 특히 윤미네집은 전몽각 교수가 딸의 성장과정을 장시간에 담은 사진집으로 국내에서 최다 판매를 기록한 사진집니다. 사진을 배울수록 알수록 소시민들이 기록하는 일상의 사진이 더 좋아지네요.
남편을 10년 동안 사진으로 기록한 오인숙 사진작가의 '서울염소'
오인숙 사진작가의 서울염소라는 사진집은 제목 자체가 특이합니다. 서울염소? 무슨 뜻일까요? 이 독특한 제목은 사진집 속에서 밝혀집니다.
오인숙 사진작가는 얼마 전 서촌의 '갤러리 류가헌'에서 두번 째 개인 사진전 '서울염소'를 전시했었습니다. 시간이 맞지 않아서 가보질 못했는데 이렇게 사진집으로 만날 기회가 생겼네요.
서울염소 사진전은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작가 오진숙이 남편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은 장기프로젝트입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을 꾸준하게 사진으로 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장장 10년 동안 남편을 기록하고 그 삶의 변화 과정을 찍었습니다.
사진 속에는 익숙한 공간이 있습니다. 제가 사는 곳 근처에 있는 금천구청역과 광명시로 넘어가는 다리에서 찍은 사진이 있네요. 오인숙 작가님이 이 근처에서 사셨다고 하던데 그래서 더 반간습니다.
작가의 남편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입니다. 직장생활이 다 그렇지만 매일 같이 야근을 하고 정글과 같은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고단함을 어깨에 이고 사는 삶 속에서 점점 지쳐갑니다. 자신을 태우면서 가정을 지키는 촛불 같은 존재가 대한민국 가장입니다.
요즘 푹 빠진 드라마 미생도 이런 우리의 삶을 조명하는 드라마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면서 눈물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신을 태워야만 지탱할 수 있는 서울 생활이자 사회 생활입니다. 작가는 사그라드는 촛불 같은 남편을 지켜봅니다.
지쳐하는 남편을 묵묵히 기록하면서 남편이 지방에서 사는 삶을 생각하자 안타까워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남편의 그런 방황아닌 방황을 처음에는 아파하기도 채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남편을 지켜보면서 작가 자신도 변화해가는 모습이 카메라를 통해 사진으로 담깁니다.
남편 이야기
"어릴 때 자주 큰집에 갔었어"
큰 집은 소를 열 마리를 키우는 목장이었는데 우유 얻으러 가고, 큰집 형들도 보러가고...
산 모퉁이를 돌아가다 보면 작은 밭 같은 평지가 나오는데, 거기 염소가 한 마리 묶여 있는거야.
그냥 쇠꼬챙이에 염소는 똥그라미 안에 있어.
쇠말뚝과 똥그라미 중간쯤에 앉아 입을 우물거리면서..
그 똥그라미가 어린 눈에는 너무 인상적이었어
똥그라리를 보면서 '바깥에 풀을 먹고 싶어도 목먹는구나, 저 염소 참 불쌍하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
커서 내가 보니까 내가 딱 그 염소야
그 목줄 길이가 내가 회사 가는 반경인 거지.
주위는 녹색, 안은 회색.
까만 염소 한 마리가 앉아있는 거야.
끈 마저도 하얘, 끈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집 근처에 좋은 경치가 있어도 회사와 집만 왔다갔다하는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하는 직장인들은 그걸 보지 못합니다.
그러다 지쳐서 쓰러지죠. 회사라는 올가미를 목에 걸고 시지프스의 굴레처럼 사는 직장인들은 그렇게 하얗게 타버리게 됩니다.
말뚝에 메인 염소 같다는 남편. 이런 남편을 지켜보며서 작가도 변하기 시작합니다.
시골에 작은 집을 구해서 텃밭을 일구면서 지친 직장 생활과 서울 생활의 피로를 달래는 모습 속에서 마음이 아려오네요.
지방 여행을 하면서 놀란 것이 있습니다. 오후 7시가 되었는데 가게가 문을 닫았습니다. 다른 곳에 가도 문이 닫혀 있더군요. 번화가는 아니지만 저녁 7시 무렵에 문을 닫은 가게가 꽤 많은 것을 보고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해 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잠자리를 준비하는 삶,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200km도 안 되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연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도 삶이 영위 될 수 있나? 그게 가능한가?라는 부족한 상상력을 꺼내려고 했지만 도시 생활에 찌든 제 상상력은 고갈 되어 있었습니다.
버리고 덜 가지면서 덜 스트레스를 받고 살 수 있는 삶도 있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진에 오랜 눈길이 갔습니다. 안빈낙도. 제 삶의 목표는 아마 이게 될 것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가진 것을 많이 버려야할 것 같습니다. 많다고 행복한 것 아니고 없다고 불행한 것 아닙니다. 그러나 도시 생활을 하다보면 도시의 관성에 따라서항상 비교를 하는 버릇이 있고 외형을 중시하는 과시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얼마나 멋진 삶입니까. 부처님 미소 같은 얼굴을 한 남편분의 모습에 긴 눈길을 접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사진집을 보다가 찡함이 밀려오네요. 밀물처럼 썰물처럼 살아가자. 봄이 되면 자라고 가을에 열매를 맺으면서 살자. 자연을 스승 삼아서 살아가자라고 작게 다짐했습니다.
오인숙 작가는 10년동안 남편의 삶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도 기록합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의 방황을 이젠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며 남편의 삶을 동조하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가족에게 바치는 사진집, 한 사람을 감동시킨 사진집은 저를 넘어 많은 사람들을 흔들리게 할 듯하네요. 메시지가 명징해서 좋습니다. 이런 사진들이 전 점점 좋아집니다.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세상을 변화 시키고 유명해지는 사진작가도 많지만 켜켜히 쌓인 세월의 향기가 묻어나는 이런 사진들이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지네요
앞으로도 뷰파인더 너머의 세상을 천천히 그리고 오래 기록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