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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한국여행

달동네를 재현한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by 썬도그 2010.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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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주말에 인천여행을 갔다 왔습니다. 여행을 갔다오면 꼭 바리바리 싸들고온 사진과 동영상 편집문제로 난감해 할때가 많습니다. 제가 게으른것도 있지만 PC가 오래되서  편집시간이 길고 그러다 보면 지쳐버리더군요.  이번에 PC 최신형으로 바꾸고  밀린 여행기들 좀 처리좀 해봐야겠네요

사실 인천을 여행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좀 가깝습니다.  제가 사는 집에서 1시간도 안걸리는 거리입니다. 그 거리면  집에서 서울시청 가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시청부근에는 자주 나갔지만 인천쪽은  잘 안가게 되더군요. 딱히 갈일도 없죠. 인천쪽에 사는 친구도 없으니까요

더구나 저 끝 동인천쪽은  고등학교때  대학 떨어지고 영종도의 을왕리 바닷가 갈때 한번 가보고  대학때 출사간것이 전부입니다.  대학때 월미도 출사 갔던 기억이 나네요.  인천여행기가 좀 길어질듯 하네요.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그 6시간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은 느낌과 생각과  채취를 담았습니다. 이번글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편입니다.

1호선을 기다리다보면  짜증날때가 있습니다. 인천행은 수시로 오는데 왜 수원행 열차는  드문드문 오는것 입니다. 하도 열받아서 인천쪽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사는지 철도청에 물어볼 생각까지 해봤습니다.  

출발전에  동인천까지 가는 전철시간을 알아봤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최근에 인천행이 복선화 되어서  급행열차가 생겼다고 하더군요.
즉  동인천까지 급행으로 가는  전철이 있다고 하는데 그걸 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동인천 급행열차는 15분에 한대씩 습니다. 정말 자주있네요.  구로역에서 동인천까지 약 30분 걸린다고 합니다.


동인천 급행열차 시간표입니다. 참고하세요.





덜컹거리는 전철이 드디어 동인천역에 멈췄습니다.





동인천역 4번출구를 나오니 재개발 풍경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이곳도 뉴타운 같은 재개발 사업이 한창인듯 합니다.





저 멀리 성과 같은  아파트가 보이네요.  산중턱까지 아파트가 진군한 모습이 서울과 다름이 없군요.



재래시장은 크게 활기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선거철인지라 각종 플랜카드가 난무하네요. 저 플랜카드의 크기만큼이라도 시민과 서민을 품을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요?
선거때만 한표 부탁하고 당선되면 나몰라라 하는 모습들 너무 많이 봐서 저 플랜카드들이 그렇게 좋게 보이지 않네요.



참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이야기를 안했네요.
사실 이곳을 갈려고 간것은 아닙니다. 원래는  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이 목적이었고  집을 나설려다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 동인천역 근처에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어 급하게 끼어 넣게 되었습니다. 인천 어느지역에 달동네 박물관이 있다는 소리를 이전에 많이 들었던 터라 한번 들려보고 싶었습니다.  위 사진에서 쭉 올라가면 달동네 박물관이 나옵니다.



재래시장의 차양막 공가가 한창이더군요.  재래시장 살리기 묘안들이 많이 나오지만  아직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거대한 마트의 힘에  재래시장이 힘을 쓸수가 없네요.


내가 가는 길이 맞나 할때  이정표가 나오네요. 이정표는 많은곳에서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이 달동네 박물관이 꽤 유명한가 봅니다.



박물관은  작은 구릉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언덕같은 곳을 오르니 인천전경이 보입니다. 군데군대 오래된 건물과 거대한 성당들이 보이고 서울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이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옆에는  고층아파트가 있습니다.  아마 고층아파트를 올리면서  공원겸 박물관을 만들었네요.
아파트가 있던 자리는 불량주택인 달동네가 있었구요.



휴일이라서 많은  가족나들이객들이 보이네요.



입장료는 저렴한 5백원. 사진촬영 해도 됩니다. 500원 저렴한 입장료지만  정말 알차고 성실하게 꾸며놓은 곳입니다.


이 달동네 박물관을 보니 우리네 80년대 풍경을 박제해 놓았더군요. 저 앉은뱅이 책상  제 삼촌이 쓰던 책상이네요.
잉크병에 펜촉 찍어가면서  글씨 쓰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저도 펜촉으로  글씨 써봤는데  잉크가 가방에서 쏟아져서 낭패스러웠던 기억이 나네요.

예전엔 다들 잉크한번 엎어본적 있었을 거예요. 꺼끌꺼끌한 잉크펜촉.  그러나 그 느낌이 살갑게 느껴졌습니다.

닥종이로 만든  디오라마가 있고


코너를 도니 기념품 판매소가 보입니다.  반가웠던것은 평상이었습니다. 저 넓은 평상에 누워서 책도 읽고 숙제도 하고  일기도 쓰고 공부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세로로 만화책이 꽂혀 있는 만화가게도 생각나네요. 가운데 고무줄 하나가 있는 가로 책꽂이.지금은 만화가게도 많이 없지만 세로로 꽂혀 있죠. (아닌가? 요즘 안가봐서 ㅎㅎ)





파주 헤이리에 20세기 소년소녀관이 있는데 그곳도 추억의 물건을 많이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긴  추억의 물건을 전시만 하는데 이곳은 판매도 합니다. 그러고보면 저 추억의 물건만 만드는 공장이 따로 있는것 같기도 합니다.  보존상태들이 너무 좋은데 누가 준것 같지는 않더라구요. 더구나  이곳처럼 판매까지 하는 모습에  중국에 공장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80년대 한국의 추억의 물건을 생산하는 공장?? 참 재있는데요.





저 동그런 딱지 지금도 파나요?  드래곤볼이 찍힌걸 보면  파는것 같기도 한데  요즘 아이들은 메이플 딱지를 많이 가지고 다니더군요


아 이 권법청년 참 재미있게 봤는데  권법소년도 있었죠. 전성기 글그림이지만  이 작품 일본작품을 그대로 배낀것이더군요.
그걸 최근에 알았는데 이 80년대 90년대 초는  일본 만화들이 불법 카피되서 많이 팔렸습니다.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죠.
만화만 그랬나요. 노래들중에서도 일본 노래 카피한 노래도 며개 있었죠.



드디어 달동네를 복원한 거리가 나왔습니다.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았습니다.



80년대 학원.  공부방 같은데  전 이런 학원 본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개인집을 들어가 봤습니다.  자계무늬가 있는 평상과  그 위에 뱀주사위게임이 있네요. 80년대 히트 보드게임이죠. 좀 잘사는 집 아이들은 부르마블 게임을 했었구요.

벽지는 신문지로 바른 모습이 보이는데  잘 재현해 놓았네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듯한 느낌입니다.


아궁이에는 연탄이 있습니다. 직접 연탄을 갈아 볼수도 있습니다. 한 어머니가 어린 딸과 직접 연탄을 갈면서 옛날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작은 옷장과 이불 창문 거울 책상 그리고 사진이 있는 액자가 보입니다.


예전 80년대까지만해도 이런식으로 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걸어놓곤 했습니다.
물론 부잣집들은 이렇게  걸어놓지 않았죠.



기계추가 달린 괘종시계. 저 어렸을때 본 그대로네요.




한쪽에 붙어 있는 우등생은? 이라는 글귀에 눈이 쏠리네요.  TV,신문,잡지를 삼가하며 영어는 큰소리로 교과서를 왼다.
수학은 연습장을 많이 쓴 사람이 1등이다. 국어공부는 하루이틀로 안된다. ㅎㅎ 재미있는 글귀입니다.
저 항목중 많은 부분이 지금도 유효합니다. 


창문가의 주전자가 눈에 들어 옵니다.



시멘트 블럭으로 만든 담벼락에  오래된 포스터와 전단들이 붙어 있습니다. 



정말 많은 관람객이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의 저 두 아가씨는  저 시절을 잘 모르겠죠.  하지만 저에게는 이런 풍경들이 다 추억이네요.


푸세식 화장실.  이런 불량주택들의 괴로움은  저 화장실이 절반을 차지합니다.  지금은  대부분 수세식을 사용하지만 푸세식 화장실은 정말참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여름엔 더 심했죠.




저는 저런 일본식 교복 바로 다음세대여서 저 교복을 입어보지는 못했네요. 그래도 교련복은 정말 잘 입고 다녔습니다.
교련이 있는 날은 교련복 입고 등교하던 모습.  지금도 교련은 있지만  예전같이 군사훈련은 안하다고 하네요. 

지금 남북한 긴장상태인데  전쟁나면 고등학생들도 총들고 나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예전엔 대학생들도 교련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교련시간에 제식훈련 다 배우고 군대가니 군대에서 솔직히 배울게 별로 없더군요. 


이 집은 조금 사는 집안같습니다. 이렇게 마루가 있는 집은 조금 사는 집이라고 할 수 있죠. 



저 비키니 옷장. 어렸을때 세들어 살던 신혼부부가 저 비키니 옷장 하나만 놓고 살더군요.
그분들 요즘 뭐하고 지내시나 궁금해지네요. 



사진은 아마츄어가 찍어도  세월이 흐리면 그 가치는 증가 됩니다. 다시는 그 시간을 재현할 수 없고 돌이킬수 없지만 사진은 그 시간을 붙들어 맬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저 미닫이가 있던 흑백TV,  저게 집에 들어오는날  난리가 났었습니다. 동생들과 방방 뛰었구요.
그러나 자주 고장나서 난감했죠.  

처마밑에 제비집도 있네요. 외갓댁에 가면 항상 제비가 있었습니다.  처마밑에 제비집을 짓고  그 제비가 날아가고 날아오는 모습을 여름에 마당에서 한참을 봤었습니다. 

물을 파는 가게도 있네요.  


솜집입니다. 지금은 보기 힘들어졌죠.  솜집에 이불을 맡기면 새이불처럼 만들어 주곤 했습니다.


뻥튀기 장수의 뻥이요 소리도 듣기 힘든 풍경인데  지금은 아에 전문 공장에서 뻥튀기를 만들어서 팝니다. 
어렸을때  쌀이나 옥수수등을 가지고 가서 돈을 내면 크게 만들어주던 마술사가 따로 없었어요.

땅거미가 지는 골목길에서 밥냄새가 나면 시계가 없던 저는  저녁시간이 다가왔음을 알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한자리에 모여서 가족들이 뭘 만드네요.  당시는 가내수공업이나 많았고 부업도 참 많이 했습니다. 어머니가 인형옷을 받아오면 밤새 바느질을 하셨습니다.  여름구두 덮개를 만들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어머니 도와서 많이 만들었는데  보상은 없었습니다. ㅠ.ㅠ





저 주렁주렁 달린 것은  제 기억으로는 미수가루나  먹는 가루였던것으로 기억해요.
저가 뜯어서 손바닥에 뿌려놓고 혀로 핥아서 먹었는데  다 불량식품이죠. 그런데 아무 탈 없었습니다.

뽀빠이는  숨어있는 별사탕 먹는 재미로 참 많이 먹었어요. 대부분 100원이던 과자중에 50원이라서 인기가 많았던 뽀빠이. 라면튀겨놓은것 같은 맛이였어요.  50원이라서 인기있던 것이 또 있었는데  50원짜리 팥앙금으로 만든 깐돌이가 있었습니다. 깐돌이 정말 대 히트였죠


장난감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이라서 풍선하나사서 며칠을 논 기억도 납니다. 풍선으로 집에서 게임하고 배구도 하고  참 재미있게 놀았는데ㅎㅎ



플라스틱 물총도 보입니다. 한번 장전하고 쭉 악력으로  누르면 발사되는 원시적인 물총. 저거 하나 사서 물총 쏘면  좀 있는 집  아이들은  고르게 오래 분사되는 플라스틱 물총으로 공격하고 했죠. 참 그 물총이 부러웠어요. 





칠성코라도 있었나요?  전 먹어본적이 없어서. 칠성사이다. 코카콜라. 킨사이다, 오란씨, 환타등을 마시던 80년대


그 80년대를 넘어 한세대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왜 달동네라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80년대 초 KBS에서 방송한 달동네라는 드라마 때문에 달동네로 불리워지게 됩니다.
달과 더 가까운 동네 아니 달을 더 크게 볼수 있는 동네라서 달동네라고 불리던 그곳은  집없는 사람들이 무허가로 산비탈에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국가가 달동네를 철거하면 서민들은  또 하염없이 다른 달동네를 찾아 떠났습니다.

서울 난곡이라는 동네도 달동네로 유명했습니다. 그곳은 지금 아파트촌으로 바뀌었고  원주민들의 재정착률은 8.7%로10명중 한가정만 재정착하고 다들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뉴타운이라는  개발지상주의가 많은  공동체를 파괴했고 지금도 파괴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재정착율을 50%로 올린다고 하지만 하나의 수사학일 뿐입니다. 

빨간 마후라가 동남아에서 히트치던 70.80년대의 그 달동네들. 그곳에서 살았던 서민들은 모두 안녕하신가요?


달동네 박물관에서 바라본 인천은  아파트들이 부쩍 부쩍 자라고 있엇습니다. 



박물관은 오래된 물건들만  전시하는 곳이지만 달동네 박물관에서본 이미지를 안고  현재를 살고 있는 분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박물관속 이미지로 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현실인 모습을 생각하면서  수도국산 달동네를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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