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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책서평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잊고 있던 사실을 알려준책 엄마를 부탁해

by 썬도그 2009.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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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만든 2할은 소설가 신경숙이 만들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저의 감성의 대부분은 신경숙이라는 작가가 만들어 주었습니다. 군 시절 견디기 힘든 사실을 달랠 길이 없었습니다. 술을 진탕 마시고 하늘에 주먹질을 할 수도 친구와 여행을 갈 수도 또 다른 만남을 할 수도 없는 공간.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내 슬픔을 편지라는 매개체로 주변 사람들에게 스팸처럼 뿌려 되는 게 전부였죠.

그러나 다 부질없는 짓이었습니다. 그러다 신경숙 씨의 신작 소설인 깊은 슬픔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 빠지면서 서서히 서서히 이별의 아픔이 치료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슬픔은 더 큰 슬픔으로 치료된다는 그 한 구절에 극한의 슬픔을 들이마시고 슬픔에 질려버리면서 치료가 되었네요.

풍금이 있던 자리로 익숙한 이 소녀 같은 작가가 새로운 책을 낼 때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읽었습니다.
신경숙 소설은 대부분 자기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풍금이 있던 자리. 깊은 슬픔을 통해 이 가난한 집 문학소녀가 성장하는 과정을 우두커니 지켜봤고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던 모습도 언뜻 봤습니다. 그러다 한 번의 성장통을 크게 겪어야 했는데 그게 바로 소설 외딴방이라는 책으로 각혈을 하면서 빚어냅니다. 소설 외딴방을 읽으면서 정말 쓰기 힘든 자신의 이야기인데 이걸 썼네. 책의 깊이보다는 작가 신경숙이 안타까웠습니다. 대부분의 글들이 자신의 경험담인데 여기까지 공개해 버리면 이야기의 밑천이 다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쓰러움이었습니다.

일본소설의 부류 중 하나는 작가가 모든 것을 경험하고 나서 소설로 담는 소설들이 있다고 하네요. 신경숙의 소설들을 그 모습을 닮았습니다. 그러나 외딴방 이후에도 그녀의 글쓰기는 계속되었습니다. 그 힘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 힘을 신경숙이 소설 속에서 그리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두고 싶습니다.

이제는 검색창에서 검색되지도 않는 95년도 기억되는 그녀의 첫 에세이집에서 엄마에 대한 묘사는 우리들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의 삶이 나이테처럼 손에 그려진 고생 어린 손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가 언젠가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좀 늦었지만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이 드디어 잉태되었네요

사실 엄마를 부탁하는 사놓은 지 오래된 책입니다. 책이 나오자마자 사놓았지만 읽지는 않았습니다.
너무 신경숙 글만 읽다 보니 좀 질린다고 해야 할까요. 좋은 노래도 너무 오래 듣으면 새로운 면도 없고 대충 어떤 식으로 노래가 나오겠구나 하는 예상치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우리는 실망하게 되죠. 밭에도 계속 같은 작물만 싶으면 땅의 기운이 오그라들듯 다른 작가의 소설들을 탐험한 뒤 다시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13주 연속 베스트셀러 책이 팔리지 않은 이 시대에 100만 부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면서 작년과 올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돌풍은 마더 신드롬으로 이어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올 여름 첫 장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1시간 후 덮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신경숙이 하나의 어법 실험을 했더군요. 주인공인 딸은 너로 오빠는 그로 불리는 모습에 조금 낯설었습니다. 그래서 읽히지가 않아 덮었습니다

그러다 2주전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시 펼쳐 든 엄마를 부탁해!
그리고 지난 2주동안 조금씩 읽은 이 소설책은 2 주내 내 눈물을 그렁그렁하게 저를 만들더군요. 전철 안에서 마을버스 안에서 그렁거리는 눈을 감추는 방법은 책을 덮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드디어 이 작가가 그 15년 동안 소설 곳곳에서 언뜻언뜻 조연 혹은 엑스트라로 나오게 한 엄마라를 존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그 글이 이렇게 까지 절 움직이게 할지는 몰랐습니다. 언젠가 엄마에 관한 엄마에게 헌사하는 책을 쓰겠다던 신경숙. 그 약속이 드디어 지켜졌네요.

소설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생일상을 받기 위해 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 올라옵니다.
그러나 치매기가 있는 엄마는 아버지의 손을 놓치게 되고 서울역에서 엄마를 잃게 됩니다. 큰딸과 큰아들 막내딸 둘째 아들까지 모두 엄마를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찾지 못합니다. 이 책은 크게 4명의 주인공이 등장해서 엄마에 대한 편린 같은 기억을 직소퍼즐을 맞추듯 하나하나 맞춰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엄마가 아닌 엄마에 대한 기억이었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너로 시작되는 큰딸의 고해성사가 이어집니다.
소설가인 딸은 엄마에게 화를 냈던 모습들을 떠 올리며 흐느껴 울고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던 큰아들은 누구보다도 더 큰 죄책감에 흐느껴 웁니다. 그리고 평생 바람을 피우고 풍운아처럼 엄마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부초처럼 떠돌아다녔던 아버지 당신의 고해성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막내딸의 고해성사가 가장 서글프더군요. 우리네 엄마나 어머니 할머니들이 가장 먼 행성 대하듯 막내딸에게는 가장 소원하게 돼하고 마찬가지로 막내딸들은 엄마의 인력권에서 멀어져 가장 사이가 소원하죠.


그런데 이 막내딸이 자기 때문에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자책은 눈물샘을 자극하더군요.
그리고 당신인 아버지가 밝히는 엄마에 대한 기억과 자식들이 모르던 이야기도 눈물샘을 자극하고요.
도련님인 균이 농약을 먹고 죽은 것을 평생 한으로 살고 있는 엄마. 그런 엄마가 아버지 몰래 근처 보육원에서 한 아이를 알게 되고 그 아이를 균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에 당신인 아버지는 억장이 무너집니다.

엄마는 뭐든지 키워냅니다. 엄마라는 커다란 자궁 속에서 모든 것은 생명을 얻게 됩니다.
하물며 강아지까지.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고 살림을 차렸을 때 억척같은 엄마는 그 자식들을 모두 키워냅니다.

딸이 쓴 소설을 읽고 싶은데 글을 읽지 못하는 엄마는 눈이 안 보인다는 핑계로 보육원 선생님에게 글을 읽어주는 것을 부탁하던 모습 속에서도 아버지는 가슴이 덜컹합니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엄마의 실종으로 가장 가슴 아파하는 사람은 아버지 당신이 아녔을까 싶네요

소설에서는 엄마를 둘러싼 가족 모두가 고해성사를 합니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엄마라는 존재를 엄마의 부재 속에서 엄마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죠. 항상 언제나 있는 존재들에 우리는 그 고마움을 잘 모릅니다. 언제까지나 거기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존재이기에 그 가치조차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 부재가 가져오는 충격은 생각보다 큽니다. 이런 방식은 눈먼 자들의 도시나 죽음의 중지 같은 주제 사라마구의 글 쓰는 방법과 비슷합니다. 하나의 존재 그러나 너무나 소중한 존재를 갑자기 사라지게 한 후 그 존재에 대한 반응성을 담는 것인데

이 엄마를 부탁하는 주제 사라마구의 방법과 비슷하게 그냥 엄마가 사라지게 한 후 남아있는 사람들의 기억들을 서로 공유하면서 우리가 언젠가는 해야지 했던 일들이 이미 늦었음을 느끼게 해 줍니다.

엄마를 부탁해


항상 내 날개 밑에 불어주는 바람 같은 엄마라는 존재.
우산 없이 학교에 갔다가 갑자기 내리던 비에 학교 현관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를 때 내 이름을 불러주며 그 먼 3킬로나 되는 먼 통학거리를 걸어오셔서 우산을 건네주곤 했던 엄마. 그러나 때론 그 존재 자체가 촌스러워 부끄러워했던 존재.

그런데 참 웃긴 게 엄마가 했던 끔찍한 자식사랑 그러나 남들에게 창피스럽게 보이는 모습에 짜증을 냈던 우리들이 자신들의 자식에게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자식들은 똑같이 우리에게 짜증을 냅니다.

엄마는 쪽팔리게 이게 뭐야. 이런 거 안 해줘도 된다고!! 그때 내가 30년 전에 했던 말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것을 깨닫죠.

이 책은 우리들이 바쁘다고 잊고 살았던 엄마 혹은 할머니의 이미지를 되짚어보게 하는 책입니다. 책 속에서 문득문득 할머니와 어머니의 이미지를 볼 때면 한없이 마음이 아파오곤 하네요.

10년 전에 어머니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고향 선산에 할머니를 묻는데 엄마!라고 하면서 한없이 울시더군요. 그 모습에 저도 한참을 울었네요. 그렇게 강인하던 어머니가 또 다른 누군가의 딸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한없이 울었죠

이 책 엄마를 부탁해에서도 엄마 박소녀가 엄마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그렁한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군요.
우리네 엄마들도 또 다른 누군가의 엄마가 있고 그 엄마품에서 재롱을 떨던 시절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쉽게 상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책이 그렇게 너, 그, 당신의 고해성사를 받고 끝났다면 그저 그런 신파조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엄마에게도 다른 남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엄마도 완벽하지 않다는 인간적인 면을 보여 주워서 참 좋았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모르는 비밀이죠.


도모꼬를 목욕시키고 있는 어머니(Tomoko Uemura in Her Bath, Minamata)" (1972) 사진작가 유진 스미스 작품
도모꼬를 목욕시키고 있는 어머니(Tomoko Uemura in Her Bath, Minamata)" (1972) 사진작가 유진 스미스 작품



엄마를 잃어버린 가족들이 잊어버린 엄마에 대한 기억들을 되찾고 엄마는 자식들이 살았던 곳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옛 기억의 끄나풀을 따라가는 모습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평생 어머니를 잃고 찾는 과정에서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소설은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의 아이콘인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든 피에타상에게 부탁을 합니다.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작가의 책중 외딴방 이후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만드는 책일 듯하네요.
세상 모든 엄마의 아들, 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엄마를 부탁해
우리 어머니들의 삶과 사랑을 절절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신경숙의 소설『엄마를 부탁해』. 2007년 겨울부터 2008년 여름까지 '창작과비평'에 연재되어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작품으로, 작가가 <리진> 이후에 펴내는 여덟 번째 장편소설이다. 연재 후 4장으로 구성된 원고를 정교하게 수정하고, 100여 장에 달하는 에필로그를 덧붙였다. 소설의 이야기는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가 서울의 지하철 역에서 실종되면서 시작된다. 가족들이 사라진 엄마의 흔적을 추적하며 기억을 복원해나가는 과정은 추리소설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전개된다. 늘 곁에서 무한한 사랑을 줄 것 같은 존재였던 엄마는 실종됨으로써 가족들에게 새롭게 다가오고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된다. 각 장은 엄마를 찾아 헤매는 자식들과 남편, 그리고 엄마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딸, 아들, 남편으로 관점이 바뀌면서 이야기가 펼쳐질 때마다 가족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온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각자가 간직한, 그러나 서로가 잘 모르거나 무심코 무시했던 엄마의 인생과 가족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저자
신경숙
출판
창비
출판일
200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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