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요즘 매주 월,화가 되면 어김없이 챙겨보는 드라마가 선덕여왕입니다.
워낙  각색을 많이해서 역사드라마라기보다는 판타지드라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역사적사실을 기본으로 하여 소설적 상상력을 첨가한건데 주음식인 원래의 맛은 사라지고  온갖 조미료와 향신료맛만 가득합니다.  

재미는 물론있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많이 틀어진 모습이죠. 미실이 그렇게 악녀였을까? 하는 생각마져 듭니다. 뭐 같은 사건도 그걸 담는 작가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소설 미실과  드라마 선덕여왕은  180도 다르게 그려집니다.

문제는 이런 드라마를 보고  역사를 배우는 학생 혹은 역사를 배웠어도  드라마의 각인효과에 의해  성인마져도  역사적 사실을 잊은채 왜곡된 이미지가 머리속에 자리잡을까봐 걱정아닌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드라마와 영화가  역사의 이미지를 왜곡시키는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대표적인것이   고등학교 시절 명성황후보다는 민비라고  더 많이 알려졌던  명성황후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때 배운 명성황후는  지금같이 조선의 국모가 아니였습니다. 국사선생님은 민비에 대해서 설명해주길
평생동안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싸우고  사치를 일삼다가 민란인 동학까지 일으킨 원인제공을 한게 민비였습니다. 

당시 민비에 대한 내용을 듣다가 괜한  민씨성을 가진 친구가 창피해 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역사라는것도  사람이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평가가 되지만 민비의 행동은  칭찬할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먼저  민비는  일본에 편들다가  청나라에 기대다가  러시아에 기대는  상황에 따라서  세력에 기생하는 줏대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뭐 당시 상황이  긴박해서 어쩔수 없다고 변명하기엔 너무나 심한 변덕은 좋게 평가 받지 못합니다.  그게 나라를 위한 행동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오로지  흥선대원군을 내쫒기 위함이었고  자신의 세력인 민씨 일가를 지키기 위함이었으니 문제였죠

민씨일가의 부정부패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임오군란도 민씨일가의  부정부패때문이고  민비에게 관직을 돈으로 산 조병갑이폭정을 일삼고 조선왕실의 무능과 부정부패의 만연이  동학까지 일으키는 빌미가 되며 동학이 힘을 얻어 세력을 키우게 됩니다.
나라가 제대로 돌아갔다면 왜 힘없는 농민들이 동학에 참여했을까요.  모두 민비인 명성황후의 책임이라고 할수는 없지만 민비가 
큰 역활을 한것은 틀림 없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부터 이 민비(민비라는 소리가 더 많이 들렸습니다)가 명성황후라는  왕비의 옷을 입고  날개짓을 하더니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명대사가 뜨기 시작하더니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 4위에 까지 올라가더군요. 이미연이 연기한 명성황후를 다 보지는 않았지만 보면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민비를 너무 미화시키는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많이 가지게 되더군요.  그 결과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 4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합니다. 아니  우리나라 역사적 인물중에 존경할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욕을 먹던  사람이 존경을 받다뇨.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명성황후가 일본자객에 의해 죽임을 당한것은  안타까운 일이고  천인공노할 일이죠. 절대로 용서할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죽임을 당한일 말고는  민비가  잘한 행동이 뭐가 있는지  따져보면 거의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민비의 시해도  일정부분 자신의 행동에 의해서 저질러졌던것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행위자체를 옹호하는것은 아닙니다.  감히 한나라의 왕비를  자기들 맘대로 죽이는 나라가 어딨나요.  뭐 당시 조선은 조선이 아니였고  명패만 있던 나라였고  그런 힘없던 시절의 서러움도 함께 묻어 나옵니다.   명성황후 시해는  일제의 만행으로 길이 기억해야 할것 입니다.
그러나  이 명성황후 시해가  드라마와 영황와 함쳐지면서  드라마틱하게 그려지더군요.  그리고  민비를 미화시켰습니다.
마치  잔다르크가  나라를 구하는 소녀였다가  마녀라고 하여 화형에 처했듯이요.  하지만  민비는 잔다르크가 아닙니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한것도 아니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쫒던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백성들이  못살겠다고 여겼으면 그 착한 농민들이  낫을 들고  민란을 일으키겠어요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이 개봉예정입니다.   이 영화는 드라마 명성황후보다 더 각색을 많이 해서  호위무사까지 등장시키더군요. 무슨 신파 영화 같은데요. 이제는 조선의 국모 이미지가 굳혀지는것은 아닌지 안타깝기만 하네요  영화는 영화일뿐이라고 
하시겠죠.  하지만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 4위까지 올라간게  정상적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좋을지는 모르나  역사 왜곡이나 미화는 너무 심하게 하지 마십시요.
민비때문에 고통받은 백성들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그리고 요즘은 국사과목이 필수과목이 아니라면서요?  더 걱정이 되네요.

썬도그
하단 박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반절 2009.09.12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병화가 아니라 조병갑..
    그리고 민비는 조선의 국권을 지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민씨일가의 이권을 지키려고 했다는 점을 너무 돌려 말씀하신 듯.. 하긴 모든 것을 민족 혹은 국가의 시각으로 재단하는 인간들이 인터넷에 많아서..

  2. ?? 2009.09.12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 왜곡을 조심해야죠.
    분명히 역사 드라마가 사실을 왜곡하는 부분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그걸 보고 역사를 왜곡되게 배우는 것은 우려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배운 왜곡된 역사로 다시 세상을 재단하시는 것은 더 무서운 일인 것 같습니다.
    민비라는 이름과 명성황후라는 호칭이 우리 시대에 둘 다 불리지만
    예전에는 어느 호칭이 조선에서 쓰이고
    어느 호칭이 일본에서 쓰였을까요?

    민비라는 이름이 일본의 식민교육에서 명성황후를 깍아내리기 위해서 쓰인 말이고
    친일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근대사에서 일본인들에게 교육받은 역사학자들이 그대로 쓴 말이지요.
    그 사람들에게 교육을 받은 선생님들도 마찬가지겠구요.
    우리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만약, 우리가 민비(부정적인 측면)나 명성황후(긍정적인 측면)에 대해서 더 잘 알았다면 명성황후란 드라마가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부분을 보여주기 때문에 드라마도 인기 있었던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진짜 역사가 도전받고 더 연구되는 것이 아닐까요..

  3. 라라라 2009.09.12 1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제의 역사관은 민비도 왜곡시켰지만 고종도 무척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시켰습니다.
    민비를 새롭게 조명한다면.. 고종 역시 새롭게 조명해야 하는데..
    상품성이 떨어져서 인지.. 고종은 여전히 관심밖이라는 게 안타깝습니다.
    최근 발굴되는 자료에 의하면 고종은 무능력하지도 무기력하지도 않았습니다..
    외히려 근대화에 강한 의지를 가졌고 민비에게도 일정부분 정치적 역할을 하도록 하였는데..
    민비만 전면에 나선 것처럼 왜곡되어 있습니다.
    민비 사후에도 일본의 영향력을 벗어나려 애썼으나.. 강대국들은 신경쓰질 않았죠.
    이미 일본에게 한반도를 넘기기로 되어 있었으니까요.. 서로 서로 식민지를 인정해 준 거죠.
    다만 아쉬운 것은 고종과 민비는 일반 백성들, 농민들과 함께 난국을 해쳐 나가지 못했고
    오히려 수탈의 대상, 탄압의 대상, 권력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다는 것이죠.
    동학 농민들을 탄압하기도 했고.. 개혁을 강하게 바라고 이 나라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백성들을
    양반질서를 부정하는 무리로만 바라보았다는 것이죠..
    대원군은 매우 보수적이어서 외세를 끌어들여 견제하는 민비와 고종을 이해할 수 없었죠.
    대원군은 쇄국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시는 분이니까요.
    그러나 농민들은 농민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대원군을 지지하게 된 겁니다. 사실 대원군도 지배층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농민을 많이 이해해 주었죠.
    따지고 보면 민비, 고종, 대원군, 백성들 모두 너무나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힘들이 하나로 합쳐지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죠..

  4. 라라라 2009.09.12 1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황에 따라서 세력에 기생하는 줏대없다>고 하셨는데..
    오히려 급변하는 세계정치상황을 따라잡지 못해서 죽음을 당한 겁니다.
    그 당시 조선은 (지금도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답니다.)
    한쪽에만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다른 나라를 이용해서 견제할 수 밖에 없었죠. 당시에 중립국 논의나올 정도였죠.
    그래서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을 이용하여 견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국이 강하면 일본, 러시아을 이용하고 일본이 세력을 뻗치면 중국, 러시아을 이용했죠.
    일본은 영국과 손을 잡아 러시아를 견제했고요.
    러시아는 독일과도 손잡기도 했는데 민비가 그 사실을 알고 러시아를 끌어들인 거죠.
    일본은 독일과 러시아가 틀어진 것을 간파했으나 민비는 한 발 늦었고 그때를 기회로 민비를 시해한 것이죠..
    결국 독일이 반발하지 않았고 고종은 자신도 죽임을 당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겁니다..

    • Favicon of https://photohistory.tistory.com BlogIcon 썬도그 2009.09.12 18: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시선이 있긴하지만 힘을 받지 못하는게 민비라는 사람이 풍행이 좋지 못했어요. 사리사욕에 민씨일가만 챙기는 모습이었구요. 차라리 고종이 했다면 이해라도 가죠. 민씨는 시아버지에 대한 노여움에 반대편에 항상 설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집안싸움에 나라 망한꼴이죠

    • 라라라 2009.09.12 1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민비가 대원군에 큰 원한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치적으로도 견해가 달랐지만.. 개인적인 원한도 매우 컸습니다..

    • 하지만 2009.09.13 1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 세력견제의 목적이 민씨 일가의 이권을 최우선으로 뒀기에 시대의 흐름을 놓칠 수 밖에 없었던거 아니겠습니다.

  5. 라라라 2009.09.12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당시 조선시대 자체의 모순에다 민비 측근의 부정부패가 심각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 역사관에 의해 민비와 고종의 역할이 많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근현대사, 나아가 현대사도 역시 세계사와 관련지어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조선 이전에는 중국과 일본 이외에는 외세세력을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조선 후기부터 일본과 서구 열강과 많은 접촉이 있었고 또 그들의 세력 균형에 의해
    우리의 역사가 좌지우지되었습니다..
    현대사 역시 마찬가지죠.
    김구 암살, 분단, 이승만. 625, 419, 박정희, 베트남 전쟁, 반공정책, 박정희 암살, 518, 전두환, 김대중..
    모두 미국, 소련, 미국의 정치인들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세계사적 시각 없이 우리의 역사를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최근의 역사 교과서, 역사 관련 서적은 이런 시각들을 많이 반영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릴 적 보던 교과서와는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6. Favicon of http://beffect.tistory.com BlogIcon 원덜 2009.09.12 18: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고개가 숙여지는 드라마만 본 1인 이네요 ㅠㅠ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해야겟어요 +_+

  7. Favicon of https://lilac02.tistory.com BlogIcon 孤雲詩仙 2009.09.12 1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의 진실은 그 끝이 없군요.
    어린시절 배웠던 역사교과서의 내용들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할뿐....
    역사를 바로 인식하는 공부에 충실해야겠어요.

    • 읭? 2009.09.12 2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셨다면 민비가 썩 훌륭한 인물이 아니란 걸 아실텐데 역사교과서가 껍데기라뇨-_-;

  8. momozz 2009.09.13 1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건 다 둘째치고, 일단 민비라는 호칭이 거슬리네요...
    고종은 스스로 황제를 선언했고, 그럼 그의 비는 황후가 되는거지요.
    민비가 아니라 명성황후라고 호칭해줘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상 명성황후가 폐위된 적이 없으니까요.

    당시 명성황후의 태도나 행실이 비판받아 마땅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옛날 일제가 명성황후를 비하하기 위한 의도로 바꾸어버린
    민비라는 호칭으로 따라부르면서 비판하는 건...
    그것 자체만으로도 잘못된 것 같네요.
    호칭도 제대로 부르지 않으면서 역사를 다 아신다는 듯이 말씀하시는데...
    일본이 역사왜곡하는거 작은 것 하나에도 발끈 발끈하는 우리들이
    호칭조차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이 세뇌시킨 그대로 부르면서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명성황후의 행적을 옹호하는 건 아닙니다만...

    아무리 욕 먹을 짓을 많이 했어도 명성황후는 명성황후입니다.

  9. 스팅 2009.09.13 1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에 이어 요즘 하는 천추태후도 제가 아는 역사관과 많이 다르더만요
    역사에 그려져있는 천추태후는 드라마처럼 정의롭고 미화된 인물이 아니라
    김치양과의 사이에 나온 자식을 목종에 이은 왕위에 올리려다 강조에 막혀 유배된걸로 아는데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강조와 아주 가까운 사이이며 태후가 직접 김치양을 제거하는것으로 나오더군요..
    드라마이기에 그리고 당시 역사에 대한 완전한 고증이 어렵기에 어느정도 각색은 이해하지만
    너무 스토리가 드라마pd 주관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사실관계를 왜곡하는면도 많더군요..

    물론 재미가 있어야 시청률이 나오겠지만, 저는 드라마를 보면서 직접 책까지 찾아보면서 이 사실이 맞는건가
    비교하면서 보게 되더군요.. 저와 달리 그냥 드라마만 보고 판단하게 된다면
    얼마든지 인물평가를 극과 극으로 바꾸는게 가능하겠더라구요..

    제 고등학생때는 국사가 필수과목이었지만 그때는 국사의 중요성을 전혀 몰랐고 공부도 별로 안했지만
    요즘 한국사를 공부할 일이 있어서 깊게 파고드는데 알면 알수록 영어,수학 과목보다 더 중요한 과목이 국어,국사 과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가 역사가 일천한 나라도 아니고 5천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인데 국사가 필수과목이 아니라는점에 참 씁쓸하네요..

  10. Favicon of http://stprelude.tistory.com BlogIcon 프렐 2009.09.13 2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전공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블로그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만, 글쓴분의 시각에 안타까움을 표시할 수 밖에 없네요.

    역사라는 것이 '완벽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느냐 하면, 그것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일례로 우리가 흔히 아는 '삼국사기'만 하더라도, 저자 김부식이 친신라적 시각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신라의 역사가 다른 국가에 비해 건국년도가 앞당겨져 서술되어 있거나, 서술의 양이 훨씬 많거나 하는 등의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를 식민통치하려고 하고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려 했던 일제의 시각으로 서술된 식민사관은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명성황후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서술된 것은 첫째로, 당시 명성황후 및 민씨일파의 외교 방식이 일본의 조선 점령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민씨 일파가 현명하게 외교전을 펼쳤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을미사변이 있기 전 일본을 제압할 수 있는 외국이 러시아라고 판단했던 것은 당시 국제 정세에도 맞는 행동이었습니다. 자주적이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지만 민씨 일파의 외교가 단순히 '사대적이다'라는 식의 획일화된 비판을 하기에는 당대의 시대상을 잘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기존에 여성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던 시대의 서술은 아무래도 명성황후의 모습을 더욱 낮추어 서술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식의 남존여비 사상이 존재하던 시대였습니다. 이는 비단 명성황후 뿐 아니라, 서태후, 측천무후 등 각 시대별로 활약했던 여성 지도자의 경우 특히 두드러진 서술의 방식입니다. 그들이 정치를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 비슷한 수준의 남성 정치가에 비해 훨씬 비하되는 서술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 역시 우리가 고려해야 합니다.

    '기록' 그 자체는 역사가 아닙니다. 기록은, 기록하는 사람의 시각에 의해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습니다. 유교 중심의 위정척사가들의 입장에선 제사를 금지하는 기독교는 죽일놈들이었고, 기독교만이 옳다고 믿던 선교사들에게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자들은 이단이며 다 죽여버려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중국인들이 묘사한 유목민들(흉노, 선비 등)들은 매우 포악하고 짐승같은 자들이며 인간도 아닌 금수라고 했습니다. 과연 이것들이 다 '사실'일까요?

    글쓴분께서는 기준을 '역사 교과서'로 잡고 계시지만, 교과서야말로 역사를 가장 제대로 못 그려내고 있는 책입니다. 제가 역사교육과이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교과서에는 다양한 입장의 역사가들의 생각을 공통적으로 담아내고자 하기 때문에, 그 내부에서 굉장히 모순적인 서술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식의 한계가 있는 교과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모든 역사를 입증하려 한다는 점은 굉장히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과서의 내용을 참고하되, 신봉하는 자세는 옳지 못합니다.

    물론 글쓴분이 표현하고자 하는, 요새 방송에서 유독 심하게 역사를 '판타지화'시키고, '상상력'을 붙여 뜬금없는 식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간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동감합니다.(개인적으로 저 예시에 들어있는 '불꽃처럼 나비처럼'이라는 영화는 별로 보고싶지 않더군요) 하지만 글쓴분의 역사관에는 분명 위험한 요소가 있으며, 그런 식의 사고방식은 자칫 편협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photohistory.tistory.com BlogIcon 썬도그 2009.09.13 2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교과서를 부정하시는 모습도 결코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요.
      역사를 전공하는 분이라니 하나 묻겠습니다. 그렇다면 역사라는것은 항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던 사실도 현장에 없었던 관계로 모두 두리뭉수리로 묘사해야하는게 옳은 모습입니까?

      제가 비판한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임오군란의 원인및
      당시 여론등 민비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좋지 않았는데요. 이런것도 역사적인 이유로 설명을 주저한다면 과연 우린 후대에게 어떤 역사를 물러줄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프렐님이 주장하는 역사는 어떤게 역사이고 어떤것이 가장 객관적인 역사일까요? 또한 교과서 역사가 바르지 못하다면 어떤 역사책이 올바른 책이고 균형잡힌 책인가요?

      이책저책 다 읽어봐야 한다는 말씀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역사학자가 될수 없으니까요

    • Favicon of http://stprelude.tistory.com BlogIcon 프렐 2009.09.14 0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임오군란의 원인을 단순히 '민씨 일파의 부정부패'로 몰아갈 수는 없습니다. 임오군란의 배경에는 신식군대와의 차별대우, 반일감정, 그 외 여러 사회적 현상들이 결합되어 발생한 것입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이 완벽한 '진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책 저책 다 읽어볼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지적하는 바에 대해서 수긍하는 태도는 필요하겠죠. 결국 제가 말하고자 한 바에 글쓴분이 어떤 반론을 제기한건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photohistory.tistory.com BlogIcon 썬도그 2009.09.14 01: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임오군란의 원인이라고 했지 전부라고는 하지 않았는데요. 그리고 상대방에 대하 주장을 수긍하는 태도는 프렐님도 그렇게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 진실은 그 당시를 생생하게 살아본 사람도 진실을 알지 못하지 않나요. 신만이 그 진실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겠죠. 그렇다면 역사라는것은 다 진실을 위장한 허구라고 하는 생각 같아 보입니다. 그건 역사학자의 태도일지는 모르지만 일반인들에게 까지 그런 태도를 요구하는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11. 새매 2009.09.13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로 반론 제기하는 분들은 근거가 고작 고등학교때 배운 내용이냐고 타박하시는데 그러는 님들의 근거는 '일제니까 제대로 기록할 이유가 없을거다', '니가 왜곡없는 역사를 어찌 아느냐' 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게 좀 많이 웃기네요.

    반론을 제기하시려면 '민비의 행적이 어느 사료의 어느 부분에 적혀있고 그걸로 보아 이 글은 이런 부분이 잘못되었다.' 라고 하셔야지요. 역사 왜곡, 무조건적인 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원래 님이 아는게 왜곡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거임?' 이라고 이야기하시는게 적반하장이랄까, 어처구니가 없네요.

    암튼 좋은 글 적어놓으시고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고생하시는것 같네요. 잘 읽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photohistory.tistory.com BlogIcon 썬도그 2009.09.13 2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니예요. 제 글이 그렇다고 썩 좋다고 생각은 안합니다.
      좀 감정적으로 쓴것도 있긴 하거든요.다만 지적하신대로 제 글이 틀렸다면 그 근거를 들어주면 좋겠지만 다만 틀렸다 고쳐라 이런식이면 곤란하고 사람 열받게만 만드는 댓글이죠. ^^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지적은 많이 받아봐서요.

  12. Favicon of http://pturban.tistory.com BlogIcon 티에프 2009.09.14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BS드라마 명성황후보다 명성황후 시해 100주년 추모를 하기위해 만들어진 이문열 원작의 뮤지컬 명성황후가 더 효과가 컸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13. Favicon of https://redhawkblog.tistory.com BlogIcon 붉은매 2009.09.14 11: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게 공감합니다.
    민비가 잘한 건 솔직히 없죠.

    다만,일본인들에게 잔인하게 죽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동정을 받고,반일감정때문에 우상화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일 문제는 그런걸 이용해서 돈벌려는 사람들이죠.
    뮤지컬-소설-드라마...다 똑같습니다.

    마치 정치깡패에 불과한 사람을
    '종로의 독립군'으로 표현한 어떤 드라마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