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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책서평

기타노다케시의 머리속을 들여다 보는 다케시의 생각노트

by 썬도그 2009.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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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야쿠자의 섬뜩함과 냉정함과 함께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후덕함이 동시에 보입니다. 이런 얼굴은 정말 흔치 않습니다. 웃지 않으면 조폭 같은 얼굴 그러나 웃으면 동네 양아치 같은 귀여운 모습이 동시에 보입니다. 이런 독특한 얼굴을 가지게 된 것은 일본 여자 연예인과 사귄다고 보도가 나온 후에 시선을 피하기 위해 자동차를 버리고 오토바이를 술 먹고 타다가 사고가 난 후 가진 얼굴이란 것에 더욱 놀랐습니다.

 

죽음 앞까지 가본 사람만이 가지는 냉정함
그 냉정함에 죽음의 느낌까지 느껴집니다.

기타노 다케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의 영화 키드들을 만들어낸 정성일 씨는 특유의 입담으로 영화를 해부하는데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고 그가 추천한 일본 감독이 바로 기타노 다케시였습니다. 이 기타노 다케시는 우리에게는 영화감독으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일본에서는 유명 코미디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80년대 만담이 대유행할 때 히트한 만담가 출신 코미디언이죠.

지난번에 엄친아 탤런트 김정훈이 일본의 쇼 프로그램에 나가서 수학 1등을 할 때 진행자가 기타노 다케시인 것을 보고서 저 사람 정말 코미디언이 맞는구나 했고 좀 의아스러웠습니다. 세계적인 감독이면서 저런 쇼프로까지 진행하다니 천상 이야기꾼은 이야기꾼인가 보다 했죠.

한국으로 치자면 이경규가 비슷한 모습이지만 이경규와는 격을 달리 합니다. 그렇다고 이경규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닌 그만큼 기타노 다케시의 특이한 이력과 경력이 많은 팬들을 만드는데 일조합니다.

다케시의 생각노트

왜색이라는 이유로 한국에 일본 영화가 수입되지 않았던 지난 40년, 그 봉인을 풀고 가장 먼저 한국에 도착한 영화는 바로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였습니다. 경찰이 은행을 턴다는 독특하고 울림이 강한 영화를 잘 만드는 기타노 다케시. 그의 이미지는 냉혈한이었습니다.

다케시의 생각노트

그러나 이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배꼽 잡는 유머를 보고 있으면 아.. 이 사람 코미디언이 맞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제가 본 일본 영화 중 가장 웃음 가득하게 본 영화가 바로 이 기쿠지로의 여름입니다. 노래 또한 얼마나 좋은지 일본영화 TOP10 중 5위권 안에 들어가는 영화입니다. (물론 제가 뽑은 일본 영화 중에서죠)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정형화된 것이 없습니다. 유명 감독들의 영화들을 보면 특유의 감속 색채가 있는데
이상하게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연관되는 부분, 이거 천상 기타노 다케시 꺼다라는 정체성이 뚜렷하게 있지 않습니다. 그동안 찍어온 영화들을 보면 코미디와 액션, 혹은 장르 혼합 영화들이 많죠.

다케시의 생각노트

일본이라는 나라가 부럽지는 않지만 이 기타노 다케시라는 감독이 있는 나라라는 점은 부럽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기타노 다케시의 모든 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독설 화법은 별로 맘에 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독설들이 마음에 콕콕 와닿고 연륜과 경험에서 나온 따스한 독설(봉침이라고 할까요?)이라서
그의 말들은 좋습니다. 다만 표현력이 강한 게 좀 문제인데 뭐 나 또한 독설가로 유명하니 누워서 침 뱉기네요.

책 얘기해야 하는데 영화 얘기만 했네요.
그래도 기타노 다케시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 좀 풀어 봤습니다.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는 기타노 다케시의 평소 생각들을
생사문제, 교육문제, 관계 문제, 예법 문제, 영화 문제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적어내고 있습니다.

책은 다케시가 자주 가는 식당 요리사 구마가 다케시에 대한 묘사와 에피소드를 한토막을 소개하면서 부드럽게 시작합니다. 다케시의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이야기,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추억들을 곁들이면서 특유의 유머를 담아냅니다.

예를 들어서 오토바이 사고로 모두가 살기 힘들다고 했을 때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머리 한가운데를 티타늄 봉이 지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어묵의 기분을 이제 알겠군이라고 했다가 의사에게 혼난 적도 있고
포르셰 자동차를 가지고 싶어서 장난감 사듯 현금 다발을 던져주고 자동차를 가지고 나올려다가 자동차 등록하고 차번호 나오는데 2주일이 나온다는 말에 장난감과 다르군..이라고 말한 후에 포르셰를 탄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친구에게 포르셰를 몰게한뒤 택시로 포르셰를 따라가면서 포르셰를 감상했다는 일화는 다케시 덥다는 말이 나옵니다.

다케시는 만담가답게 화통하고 시원스러운 직설화법으로 세상의 정의를 나름대로 내립니다.
그 정의가 부드럽지 않고 공감가지 않은 정의도 있지만 눈치 때문에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못하는 말들을 시원스럽게 담아냅니다.

예를 들어 왕따가 생기는 이유가 평등사회가 되어서 돌팔매질을 평등하게 골고루 하니 한 사람이 왕따가 되는 것이고 왕따가 되었다고 징징거리는 나약한 모습 또한 지적합니다.
또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가장 큰 거짓말은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식의 말을 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노력하면 안 되는 것들이 많은데 그래도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확률이 있긴 하다는 현실 직시형 말을 하라고 합니다.
헛된 희망을 만들어서 패배했을 때 좌절했을 때 안으로만 숨으려는 현대의 나약한 젊은이들의 모습까지 지적합니다

오타쿠에도 쓴소리를 하죠. 넘버원(세계 제일)이 되기 힘드니까 온니 원이 되어 자위를 한다고 합니다. 아무도 관심도 안 가져주는 곳에서 온니 원이 되어 넘버 원이 되지 못한 자신을 위로한다는 것인데 뭐 공감가기도 하고 안 가기도 하고
여하튼 독특한 시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네요 가장 공감 가는 부분은 우정에 대한 정의입니다. 좀 옮겨보자면


'옛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는데 너는 지금 왜 날 도와주지 않는 거야' 하고 생각한다면,
그런 건 처음부터 우정이 아니다. 자신이 정말로 곤란할 때 친구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 우정이다. 요컨대 우정은 내가 저쪽에다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지, 저쪽에서 얻을 수 있는 뭔가가 아니다. 우정이란 상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다.

애초에 우정에서 뭔가를 얻으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다. 손익으로 따지자면 우정은 손해만 볼 뿐인 것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127페이지 중에서

다케시의 생각노트

다섯 가지 주제 중에 잘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긴 합니다. 강한 아버지 말씀처럼 따끔한 쓴소리와 과격한 생각이 있는 부분도 있지만 가장 부드러운 주제는 영화 문제를 다룬 마지막 장입니다.

이 부분에서 다케시의 영화관을 살며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다케시가 영화감독을 하고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상을 타면서 외구 기자들이 일본 영화의 대부인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말에 난감했다는 모습
다케시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를 보고 한 장면 한 장면을 그대로 사진으로 만들어도 작품사진이 될만한 대단히 디테일한 연출력에 칭송을 보냅니다. 연기 동작이 10cm만 벗어나도 다시 찍었다고 하네요
그렇다고 다케시가 아키라처럼 세세한 연출력을 하는 감독은 아닙니다.

다케시는 밤에 시나리오를 써서 다음날 촬영하는 일본의 우디 알렌 감독입니다. 영화감독들 중에 보면 전날 시나리오를 써서 다음날 촬영할 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감독들이 있죠. 이런 감독들로는 홍상수, 우디 알렌, 기타노 다케시 등이 있습니다. 뭐 세 명 다 똑같이 밤에 시나리오 써서 다음날 찍는다는 것은 아니고 현장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서 즉흥적인 면을 강조하는 연출력들의 대가입니다.

다케시 영화는 그런 이유로 시나리오대로 갈 때도 있지만 시나리오에서 벗어나 감독도 예상하지 못하는 결말로 흐를 때가 있습니다. 다케시는 영화를 다 찍어 놓고 편집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합니다. 마치 플라스틱 틀에 붙어 있는 프라모델 조각들을 하나하나 조립해 가는 과정을 즐긴다고 적고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도 편집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되고 색다른 시선이 되는데 그걸 충분히 즐기는 감독이기도 하고요
그는 진부함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래서 똑같은 이야기도 독특한 모습으로 담으려고 노력하죠.
자토이치에서 뜬금없이 군무를 추는 모습이 바로 다케시 표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하네요

이 책은 다케시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입니다.
다케시의 팬이라면 권해드리며 다케시 팬이 아니더라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이야기가 좀 더 많이 나왔으면 했는데 마지막 부분에 만 담겨있어서 좀 아쉽긴 하네요

앞으로도 생각거리를 주는 영화 재미있는 영화(둘 다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이지만)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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