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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87년 시국선언과 2009년 시국선언이 다른점

by 썬도그 2009.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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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서울하늘은 항상 뿌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게  더운 여름 대방동 한 중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데 갑자기 코가 매콤해지는것입니다. 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시더군요.  어디서 데모하나보네  창문닫아라~~~

이후  수시로  그 매케한 냄새를  맡게 되었습니다. 근처에 데모할곳도 없는데 그  최루가스 구름은 어디서 왔을까 궁금해 하면서  터벅터벅  발걸음을 집으로 향햇습니다. 86년부터 87년까지  매일 데모로 인해  나라는 시끄러웠습니다.  체육관 대통령이라는  전두환 전 대통령은  또 한번의 체육관 선거를 통해   육사동창생인 노태우에게  정권을  물려줄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극심한  대학생들의 저항에  노태우는 두손을 들고 87년 6월 29일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약속합니다.
이 6.29선언을 이끈데는 대학생들의 힘이 컸지만  정작 정부가 크게 움직이는 계기는   전국 대학교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9개 대학에서 785명의 교수들이 대학별로 시국선언을 했습니다.
학자들이 나라걱정을 하면서  시국선언을 하는 모습은  정말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고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있을때
하는 모습입니다.  

4.19때 고려대생이 필두가 되어  중앙청쪽으로 향하던 시위대들,  그리고  경무대앞에서 이승만 정권은 학생들에게 총을 쏩니다.  이 과정에서  143명이 사망하고  6259명이 중경상을 입습니다.  제자들이  쓰려저 가는 모습에 


학생의 피에 보답하자라는 피켓을 들고  교수들이  들고 일어섭니다.  지금까지   역사의 현장과  큰 변화에는  항상  학생들이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들 뒤에  교수들이  동참했습니다.


이 끔찍한 사진은  다큐사진의 거장인 정범태 사진작가가  60년 4월 18일  국회앞에서 시위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던  고대생들이  종로4가를 지나갈때  1백명의 깡패들로 부터  습격을  받아  40명이 부상당한 사진입니다. 


그러나  어제의 시국선언에서는   학생들이 동참을 하기는 했지만  학생들이 앞장서는 모습은 아니고  교수들이 앞장서고 학생들이 동참하는 모습입니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지금의 대학생들은  취직과  스펙경쟁에 모든신경을 쓰는 모습니다.  그렇다고 대학생만을 탓할것은 아닙니다. 그런 세상을 만든  우리들의 문제이지요.   또한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는 대학생도 전혀 지적할것이 없다고 말할수도 없습니다.

서울대, 중앙대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했구 앞으로 연세대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합니다.
4.19때 주축이 된 고려대는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대통령의  모교라서 침묵하나요?   선배라서  가만히 있는건가요?
민족고대라는 말은 앞으로는 쓰지 말고 막걸리 고대라는 서민적 말도 쓰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대학생들이  문제의식을  더 많이 가졌으면 합니다.  다만  예전같이  폭력시위로 일관하지 말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힘을 합쳐서  정권에게 보여주면  대학생들이 예전처럼  목소리를 낼수 있는 사회가 될것입니다.
솔직히 지금  한국사회에서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있나요? 목소리도 없지만 있더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뭉치질 못하니   자기 목소리도 못내고  기성세대들이 만든 세상에 어떻게 잘 적응할까 각자 노력하는 모습같아 보입니다.
예전에는  기성세대들이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두려워 했는데 요즘은  막대해도 되는  존재들로  보는것은 아닌지  안타깝습니다.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좀더 많이  크게 들렸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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