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 모여서 <왕과 사는 남자> 이야기가 나왔고 다들 천만 가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호평 일색이었습니다. 저도 물론 개봉 첫날 보고 마지막 장면에서 너무 울어서 한참 앉아 있다 모자 쓰고 마스크 써서 눈을 가리고 나왔네요. 다 아는 이야기지만 너무나도 슬픈 이야기였고 이걸 간과하고 살았던 느낌까지 드네요.
조선 역사 중에 사도세자 뒤주 이야기와 함께 가장 슬픈 이야기임에도 우리는 제대로 된 역사를 잘 모르고 살았더라고요. 또한 많은 영화나 드라마가 하나의 에피소드로만 다루었어요. 영화를 보고 난 훈 조선 초기 역사, 단종의 누나와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 이야기까지 다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엄흥도라는 사람의 이야기도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설연휴 손익분기점과 300만을 넘은 <왕과 사는 남자>

요즘 매일 일어나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KOBIS 통계입니다. <왕과 사는 남자>가 손익분기점을 넘기나 안 넘기나 확인하는데 드디어 2026년 2월 16일 손익분기점인 260만 명을 넘어섰네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지 않은 영화 같지만 사극은 기본적으로 제작비가 많이 들어갑니다.
배우들의 탕건이나 옷 모두 수작업으로 제작해야 하기에 기본적으로 많이들어갑니다. 그래서 제작비가 100억 가까이 들어가고 그 105억은 손익분기점이 260만 명 정도 됩니다. 참고로 장항준 감독 영화 중 최고의 제작비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또한 장항준 감독이 연출한 영화 중 <기억의 밤>이 가까스로 손익분기점을 넘겼지만 <리바운드>가 예상과 달리 손익분기점 반정도만 채우는 바람에 눈물 자국 있는 말티즈가 되었던 쓰라린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 영화가 아주 중요했습니다.
한국 영화들이 요즘 다 망해가고 있기에 한국 영화의 회생을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도 많은 영화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장항준 감독이 워낙 예능 친화적인 감독이라서 미덥지 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저도 어느 정도 감안하고 봤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장항준이라는 이름이 안 보일 정도로 몰입하면서 봤네요.

2026년 2월 16일 설 하루 전날인 월요일 어제 무려 53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스코어를 냈는데 이 추세라면 500만 관객도 쉽게 넘어설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천만 영화는 주말이나 연휴에 80만 관객까지 찍었던 걸 기억하는데 53만 명도 엄청나게 높은 수치입니다. 반면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는 18만 명으로 예상보다 낮은 성적을 보이고 있네요. 450만 명이 손익분기점이라는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왕과 사는 남자가 배우의 연기 역할이 컸다?

많은 사람들이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에 배우들의 힘이 컸다고 합니다. 맞는 말이죠. 배우들의 힘이 컸습니다. 특히 두 주연 배우인 엄흥도의 유해진과 단종의 박지훈 배우의 열연이 돋보인 영화입니다.

또한 특별출연이지만 영화관에서 관객과의 만남을 꾸준히 이어가는 이준혁 배우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모든 배우들이 연기들을 참 잘하더라고요.

유해진과 적당히 속물인 사또 역할을 박지환 배우의 구강 배틀은 영화의 재미를 좀 더 올려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배우의 힘이 큰 영화라고 하고 저도 이 주장에 공감을 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연출이 안 좋은 영화냐? 그것도 아닙니다. 다만 좀 더 잘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많고 저도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출이 아쉬울 뿐이지 연출이 나쁜 영화는 아니다

장항준 감독도 인정하고 있는 부문은 초반 과도한 개그 드립은 재촬영을 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초반의 웃음 구간은 좀 더 다듬었으면 하더라고요. 전 그냥 재미있게 봤습니다. 큰 무리수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웃음이 잘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스스로 거장이 되지 못한 역량을 인정하는 감독이 또 장항준 감독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가볍고 웃기다고 연출력이 안 좋은 감독이라는 소리는 좀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드네요. 먼저 장항준 감독의 보이지 않은 능력, 연출을 잘 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먼저 캐스팅입니다. 영화는 캐스팅이 흥행의 반이라고 할 정도로 어떤 배우가 출연하고 연기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면에서 박지훈, 전미도, 유해진, 유지태, 김민 배우 캐스팅은 아주 큰 역할을 했습니다. 배우를 감독이 캐스팅 안 하는 영화도 있지만 이 영화는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들에게 출연 의사를 물어봤기에 감독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리고 촬영 순서입니다. 많은 영화나 드라마들이 제작비를 아끼고 제작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장소별로 묶어서 촬영을 합니다. 이러다 보니 영화 후반의 장면을 먼저 촬영하고 영화 초반 장면을 뒤에 찍기도 합니다. 이러면 배우들이 내가 어떤 장면을 찍는지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 감을 잡기 쉽지 않습니다. 물론 촬영 전에 시나리오를 다 읽었고 베테랑 배우들은 쉽게 감정을 잡지만 솔직히 가장 좋은 촬영 법은 영화 순서대로 찍는 겁니다.
그래야 배우들이 어떤 촬영인지 우리가 영화 어디쯤을 찍고 있는지 이야기를 따라가기 쉽고 배우들도 연기하기 쉽습니다. 장항준 감독은 블루 스크린 연기처럼 가짜 연기를 하는 것 같아서 시간 순서대로 촬영했다고 합니다. 배우들에게 꿈과 같은 조건이죠. 또한 현장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서 큰 소리를 낸 적이 없다고 하죠. 이것도
한 번은 드라마 촬영 현장을 견학 갔는데 밤샘 촬영을 해서 그런지 모두가 신경이 날카롭더라고요. 여기저기 컵라면 쓰레기가 굴러 다니고 열악한 환경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공교롭게도 그 촬영 현장이 장항준 감독이 시나리오와 연출까지 한 드라마 <싸인>의 현장이었습니다.
몇 줄 안 되는 역사적 사실을 훌륭한 상상력과 연출로 만든 왕과 사는 남자

한국 영화감독들은 유난히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감독이 많습니다. 사실 노래도 싱어송라이터가 자신이 만든 노래라서 더 착착 감기죠. 장항준 감독은 방송 작가 출신으로 시나리오도 곧 잘 씁니다. 이번 영화도 직접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역사적 기록은 몇 줄 안 됩니다.
조선 후기에 나온 조선왕조실록과 버금가는 방대한 내용에 야사까지 곁들인 연려실기술에 적혀 있는 엄흥도라는 인물과 단종의 이야기를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었네요. 그리고 영화 후반 연출은 아주 좋았습니다. 특히 단종의 죽음을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적절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전체적인 모습을 담지 않고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담은 연출은 아주 뛰어났습니다.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앵글이 넓어졌고 단 하나의 움직임도 적나라하게 담았다면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이는 유해진 배우의 놀라운 연기 덕분도 있지만 연출의 힘도 무시 못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이외에도 유해진과 박지환의 구강 액션도 리허설 없이 촬영한 것도 감독의 노하우죠. 좋은 연기는 합을 맞추는 것보다 애드리브까지 던지면서 그것에 연기가 아닌 실제로 반응하는 것이 가장 생동감 있죠.
그래서 많은 장면을 리허설 없이 촬영했다고 하네요. 장항준 감독이 너무 까불거리고 촐랑거리지만 감독으로서의 역량이 낮은 감독은 아닙니다. 영화 <리바운드> 보세요. 연출도 꽤 잘 하는 감독입니다. 물론 거장 직전 감독이라서 한국의 상위 클래스 감독 연출보단 못하지만 이 정도면 앞으로가 더 많이 기대되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장항준 감독은 스릴러, 코미다, 로맨스, 스포츠 영화, 사극 등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연출하는 역량도 무시 못합니다. 앞으로 눈물 자국 없는 말티즈가 될 테고 몸 값도 크게 오를 겁니다. 제가 연예인들의 삶은 전혀 부럽지 않은데 장항준 감독의 삶은 부러워요. 그래서 인생은 '장항준'처럼 이라는 말이 나오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