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담기지 않은 역사 이야기

by 썬도그 2026. 2. 7.
반응형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에서 비극의 한 에피소드 정도로만 취급한 단종을 주인공으로 담은 영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종의 비극을 알고 있지만 제대로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거의 없었습니다. 큰 이야기의 작은 부분으로 다루었죠. 그러나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 유배를 정면으로 담습니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 몇 개를 가지고 꾸민 이야기가 많아서 우리가 알아서 걸러내야 합니다. 

엄흥도와 아들 셋이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고 묻어주다

단종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스로 자결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영화 속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엄흥도는 영월의 하급 관리로 단종을 모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한 역사서에 엄흥도와 세 아들이 영월 동강에 떠 내려오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고 무덤을 만들어준 후 온 가족이 평생 유랑 생활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단종은 역적이라서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3족을 멸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평생 도망을 다니며 살았습니다. 

 

또 한 주장은 시신을 까마귀가 물어뜯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왕가의 기록, 왕의 기록은 빼곡하지만 역적의 역사는 누구도 남기려고 자세히 담으려고 하지 않고 왜곡도 많습니다. 그래서 단종실록과 달리 후대에는 한명회를 부관참시하고 역적으로 보는 시선이 늘자 또 다른 단종의 기록이 담기기도 합니다. 한 사건을 두고 시대와 시선에 따라서 다르게 기록되고 있다 보니 정확한 기록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엄흥도 이야기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실제 이야기로 보입니다. 엄흥도는 아들 3명과 함께 지금의 장릉 자리에 시신을 묻었습니다. 이후 아들들과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됩니다. 

엄흥도는 충남 공주시 동학사의 숙모전에 단종 위패를 모시고 3년 상을 치룹니다. 여기에 함께 한 사람이 사육신의 처참한 시신을 수습해서 현재 노량진 사육신 묘에 묻어준 사람인 김시습이 함께 합니다. 김시습 기념관은 강릉에 있는데 지조 높은 선비의 표상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불의에 항거하는 사람이 진짜 선비죠. 

 

이후 엄흥도의 기록은 사라집니다. 다만 경북 군위와 경남 울산에 영월 엄씨 집성촌이 있어서 이 두 곳에 엄흥도나 아들들이 정착을 했을 것으로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엄흥도가 시신을 수습했다는 사실과 금성대군의 2차 단군 복위 운동을 잘 엮어서 만들어 냈습니다. 

영월 청령포에서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지낸 시간은 4개월 밖에 안 됩니다. 아주 짧죠. 그것도 2개월은 폭우로 인해 관아로 피신해 있었습니다. 이 4개월 동안 노산군은 영월 마을 사람들과 가깝게 지낸 듯합니다. 또한 당시 조선 사람들은 단종의 서사를 잘 알고 있었고 조정의 세조 세력과 달리 단종을 극진하게 모셨습니다. 

 

단종이 유배길에서 잠시 머물면서 마신 우물, 나무 등등을 지금도 기리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걸 보더라도 단종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알 수 있죠. 또한 단종은 죽어서 태백산맥의 산신령이 되어서 강원도를 지켜보는 영혼이 되었다고 믿고 있는 무속인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원한이 많은 사람일수록 귀신이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죠. 

단종의 아내 정순왕후 

단종은 12살의 나이에 왕에 오른 후에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찬탈 당합니다. 상왕으로 모셔진 뒤 창덕궁에서 몇 년을 더 기거합니다. 물론 자택연금 상태였죠. 그러다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이 밀고자로 인해 발각되자 사육신이 처참하게 죽고 그걸 알고 있었다는 주장과 이유로 단종이 유배를 가게 됩니다. 

 

이 단종의 영월 유배에는 단종 혼자 가야했습니다. 그러나 단종은 아내가 있었습니다. 정순왕후가 있었지만 세조는 단종만 유배를 보냅니다. 가혹하고 가혹하죠. 정말 인정머리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세조 입장에서는 자꾸 단종 복위 운동이 일어나는 걸 두려워했었겠죠. 그래도 보낼 거면 아내도 같이 보내야죠. 혼자 보냅니다. 

정순왕후는 동묘앞 다리인 영도교 앞까지 단종을 배웅한 후에 숭인 제1동에 있는 동망봉에 올라서 단종의 뒷모습을 끝까지 봅니다. 지금도 동망봉 근처는 정순왕후 기념공간이 있습니다. 정순왕후는 이후 궁핍하게 삽니다. 역적의 아내이니 조정에서도 신경 쓰지 않았죠. 이에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조선의 여인들이 야채 시장을 열어서 남은 음식을 정순왕후에 줬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시장 이름이 여인 시장입니다. 금남의 공간을 만들어서 몰래 정순왕후를 챙겼습니다. 

정순왕후는 낙산공원 근처에 있는 청룡사 옆 정업원 터에서 살았습니다. 시녀 3명과 함께 궁핍하게 살았지만 주변에 사는 여인들이 많이 도왔습니다. 정순왕후는 먹고살기 위해서 현재 원각사 사찰에 있는 우물에서 옷감에 자주색을 입히는 염색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갑니다. 지금은 자주동천이라고 불립니다. 

 

이후 예종을 지나서 성종이라는 성군이 이 정순왕후에게 나라에서 지원을 해주게 했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한명회라는 노회 한 여우 같은 인간의 힘이 빠질 때이기도 합니다. 성종도 한명회 덕분에 왕이 된 것이 있었지만 너무 왕을 무시하고 기어오르는 것 같아서 몰아냅니다. 정순왕후는 80세까지 살면서 장수를 하고 돌아가십니다. 

 

정순왕후는 남양주 사릉에 묻혀 있습니다. 

비구니가 된 단종의 친누나 경혜공주

 

단종이 왕위를 빼앗긴 이유는 주변에 어른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의 맏아들이자 후궁이 아닌 왕비의 아들인 적장자인 문종이 왕위를 계승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 상을 치릅니다. 이후 아버지인 세종대왕이 돌아가시자 다시 3년 상을 치릅니다. 3년 동안 상을 치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긴 상을 치루다 보니 몸이 약해진 문종은 젊은 나이에 사망하게 됩니다. 이후 적장자인 단종이 왕위를 계승합니다. 이때 나이가 12살입니다. 보통 어린 나이에 왕이 되면 어머니나 할머니가 수렴청정을 합니다. 그러나 할머니도 어머니도 없던 단종은 김종서라는 고위 관료에게 많이 의지하게 됩니다. 

 

이런 꼴을 보고 있던 야망가 세조가 한명회라는 책략가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위를 강제로 빼앗습니다. 이걸 계유정난이라고 하죠. 이 계유정난의 시작은 김종서를 철퇴로 내리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단종은 고궁이 아닌 경복궁 옆 북촌에 있던 누나 경혜공주의 집에 있었습니다. 6살 위인 경혜공주도 세종의 어여쁨과 문종의 사랑을 가득 받고 자랍니다. 

 

그리고 명문가문의 정종과 결혼을 하죠. 그렇게 신혼집을 차리고 살았고 어린 단종은 누나네 집에서 자주 찾아갔습니다. 계유정난 때도 삼촌인 수양대군이 방금 김종서라는 역적을 죽이고 왔다면서 명패를 달라고 하죠. 그 명패를 보여줘야 고위 관료들을 궁궐로 끌어 모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 단종은 살려 달라면서 명패를 내줍니다. 단종은 자신뿐 아니라 사랑하는 누나 가족이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았겠죠. 이런 걸 보면 수양대군이 참 무섭고 악질적인 인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조는 원귀 때문인지 평생 피부병에 걸려서 고생을 합니다. 피부병 치료하려고 가다가 정이품송이 나뭇가지를 들어 올려서 나무에 관직을 하사하기도 했죠. 

 

경혜공주와 남편 정종은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에 휘말려서 이미 유배 생활을 수원에서 하고 있었는데 전라도 광주로 모든 재산을 몰수한 채로 내려 보냅니다. 경혜공주는 이 유배도 따라갑니다. 광주에서 동생 단종의 사망 소식도 듣게 됩니다. 유배지에서 경혜공주는 임신을 하게 되고 정미수라는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러나 정종이 승려와 함께 반역을 꾸몄다는 이유로 한양으로 끌려가서 능지처참을 당합니다. 능지처참 짤로 유명한 짤이 바로 배우 이민우가 연기를 한 정종입니다. 정종은 세조 앞에서

 

"내가 충신이 되어 주상께 죄를 받았으니 어찌 아픔이 있으리오"

 

라는 말을 하고 죽게 됩니다. 기개가 대단했죠. 그렇게 남편을 잃은 경혜공주는 넋이 나갑니다. 이런 경혜공주를 세조가 한양으로 불러 올립니다. 자신의 동생 그리고 남편까지 죽인 세조이지만 자식들이 위해서 세조 앞에 섭니다. 그렇게 두 아이와 경혜공주가 한양 에서 삽니다. 그런데 살아지는 게 아니겠죠. 원수와 함께 사는 삶은 죽은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2년을 견디가 경혜공주는 비구니가 되어서 속세를 떠납니다. 두 아이는 세조의 아내가 키워줍니다. 잔혹한 집안이지만 측은지심은 있었습니다. 아니면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 일수도 있고요. 폭군이라고 해도 독재자라도 해도 민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외면할 수 없었나 봅니다.  이 이야기는 2011년 방영한 <공주의 남자>라는 드라마에 담깁니다. 

 

단종의 이야기만 담은 <왕과 사는 남자>지만 주변 이야기도 챙겨 보시면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겁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