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영화들에 대한 흔한 비판은 '가난', '폭력' 아니면 이야기가 안 되냐면서 너무나도 자극적인 소재로만 영화를 담는다는 겁니다. 이해는 갑니다. 형사나 로맨스를 담으려고 해도 근사한 장소에 차량 전복은 가볍게 나와줘야 하다 보니 독립 영화의 저예산으로는 그리기 쉽지 않죠. 그래서 독립 영화들 중에 액션 영화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주로 담는 것이 가정 불화와 인권 유린과 학원 폭력물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 돈이 없다는 것 즉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자본가의 입김이 없어서 좋은 영화도 많이 나옵니다. 있는지도 모르는 영화들이 대부분이지만 돌아보면 지금까지 날 흔들고 있는 영화들은 독립 영화들이 많네요.
스튜디오 봄이 만든 3학년 2학기를 보다

'거의 없다'님이 추천해 준 인천영상위원회가 지원하고 '작업장 봄'이 제작한 <3학년 2학기>를 금요일 오후 7시에 봤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특별한 액션과 사건 사고가 없어도 그냥 담기만 해도 좋은 영화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하는 세상, 알려고 하지 않는 세상을 담는 자체가 영화의 독특하고 특별한 시선이고 그 시선에 우리는 감동할 때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 주변의 아이들이 떠올랐고 이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살펴보게 되더라고요.
가정 형편 때문에 취직을 해야 하는 창우

예전엔 상고, 공고라고 하던 특성화고 또는 직업고등학교는 대학 진학 보다 성인이 되자마자 사회에 진출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주로 가죠. 물론 한 세대 전에는 연합고사라고 고입 선발 고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수 없는 성적 때문에 가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저출산 시대에는 원하면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연합고사가 2019년 폐지되었네요.
특성화고에 다니는 3학년 창우(유이하 분)는 스스로 공부를 못 하는 걸 압니다. 그리고 인문계 고등학교 다니는 바로 아래 동생과 집 근처 마트에서 근무하는 엄마와 유치가 빠진 어린 막내 남동생에게 브랜드 치킨을 사주기 위해서 취직에 대비합니다.
인문계 고등학생들에게는 3학년 2학기가 수능 대비를 하거나 큰 휴식 같은 시절이지만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사회에 나가야 하는 혹독한 계절입니다.

그럼 이들이 가는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냐? 선망 받는 일자리는 아닙니다. 누구도 하고 싶지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들이 많죠. 창우는 그렇게 공단 공장에 실습생으로 들어갑니다. 월급은 최저임금의 70% 정도이고 나머지는 정부 지원금 등으로 채워집니다. 그 마저도 정식 직원이 아니라서 노동 인권법에 저촉되지도 않습니다. 실습생은 학생 신분이라서 노동법이 보호를 못합니다.
다만 영화에서는 노무사가 직접 방문해서 학생들에게 부당 대우나 어려운 점을 물어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취직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회사의 불편 부당한 행동도 다 참아야 합니다. 이 모습이 우리들 모습, 내 과거의 모습과 오버랩 되네요. 창우 친구인 우재(양지운 분)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근무하면 되지만 창우는 엄마를 도와서 방 3개짜리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합니다.
창우가 벌어오는 얼마 되지 않는 돈이 절실합니다.
사회 초년생들의 겪는 서러움과 창우의 착함에 눈물이 그렁그렁

누군가는 공부 못해서 직업계 고등학교에 가고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한다고 힐난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한국 사회가 그렇게 성숙한 사회가 아닙니다. 집 근처에 구로공단에서 근무하던 여공들이 제가 사는 동네에 많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여공들을 아이들이 손가락질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공들은 학교 다닐 나이에 버스 타고 서울로 올라와서 오빠와 남동생 또는 집에 월급을 보내주는 또순이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죠. 그럼 공부 잘하는 인간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냐? 우리는 지난 겨울 서울대와 육사 엘리트들이 벌인 내란을 봤습니다. 하버드대 출신이라는 쿠팡 의장인 김범석의 못남도 잘 보았습니다.
공부 잘 하는 것이 옳고 착한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이 잘 보여줍니다.
그럼 공부 못하면 폭력적이고 악마의 인격을 가졌냐? 아닙니다. 창우를 보면 눈물이 절로 나올 정도로 착합니다. 19살 나이에 무거운 것을 들고 날면서 손목에 파스를 붙이고 다쳐서 와도 엄마에게 알리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특성화고 나와서 돈 많이 버는 사람들 많습니다. 육체노동이 오히려 AI 시대에 지금까지는 대체 불가능하고 배우려는 사람도 없다 보니 돈을 쓸어 담고 있더라고요. 물론 매일 일이 있는 것이 아닌 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요즘은 육체노동에 대한 편견이나 멸시는 많이 사라졌네요.

그리고 제 경험과 링크가 되었습니다. 사회 초년생 때는 모르는 것 투성이죠. 아직도 기억나요. 가라로 해야 한다고 가라? 가라는 가라오케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어로 가짜라는 뜻입니다. 일본 용어도 많고 야근에 특근에 각종 불합리한 일들을 엄청나게 배웠습니다.
다만 그 세상 물정을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잘 보여줘서 적응하는데는 편했습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 겪은 그때의 고통 지금도 잊지 않고 몇몇 기억은 아주 뚜렷합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그걸 어떻게 견뎠을까 할 정도로 폭력에 가까운 행태들이 떠오르네요. 당시는 까라면 까라는 문화가 더 심했고 노동법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열악했죠. 고용보험도 없던 시절이니 어련했겠어요.
그러나 선진국이라고 하는 한국에서 아직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는 행태들, 불법이 행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여전하구나를 느끼게 되네요. 그렇다고 영화가 사측이나 상사를 악마로 그리는 건 아니고 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해명도 넣어줍니다.

특히 용접일을 하는 여자 주임을 만나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재능을 찾는 창우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이 환경을 탓하지만 그럼에도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꽃이 핀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담고 있네요.
담백하게 담아서 더 좋았던 <3학년 2학기>

자극적인 전개나 엄청난 사건 전개가 있지는 않습니다. 자극적인 요소도 크지 않고요. 물론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덤덤하게 담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에 생활에 적응해 가는 창우를 보면서 그렇게 세상은 우리가 알든 모르든 돌아가고 있고 뭐든 키워지고 성장하는 모습을 잘 담고 있습니다.
노동 영화라고도 할 수 있고 성장 드라마 또는 다큐멘터리 같다고 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가능성을 담고 있게 한 연출가의 뛰어난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이란희 감독, 유이하 배우, 김성국 배우, 양지운 배우, 김스완배우와 김아석 배우 등등 모두 눈에 밟히고 확 들어오네요.
한국 영화가 망해가도 있어도 이런 좋은 배우들이 자라고 있어서 희망을 보여주네요.
별점 : ★ ★ ★ ★
40자 평 : 수능날 근무했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