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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추억을 길어올리는 우물

연습장에 여고생이 낙서한듯한 원태연시인의 시

by 썬도그 2009.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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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도였을거예요. 대학 1학년때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을때
짝사랑 하던 그얘를 바래다 주고 비가 내리던  신림동 거리를 걷다가  서점에 들어 갔습니다.
그냥  요즘 무슨 책들이 인기가 있나 알고 싶었습니다.  당시만해도  베스트셀러 분야는 시분야와 소설,수필분야로 나눠서
순위를 매기고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시 읽는 사람이 없죠. 시집도 거의 안나오고  나와도  베스트셀러 코너에 시는 없습니다.

베스트셀러를 뒤적이다가  시집코너에 갔었습니다. 그리고  한권의 시집을 집어 들었죠
시집 제목이 좀 특이했어요.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딴생각을해  

새로 나온 시집인데  책 제목이 너무 맘에 들어서  집어 들었습니다. 시집이 좋은점중 하나는 가격이 싸다는 것이죠.
우울한 기분에 책을 사서 집까지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자기전에  시를 읽어 봤죠.

그런데  시집이 좀 이상했습니다. 뭐랄까.  시집이라고 하기엔  수준이 영~~~
그 당시만해도  시집은 시인들만 내는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원태연 시인은 시인이 아니였습니다. 문단에 등록된 시인도 아니였구요.  저는 그런 사실도 몰랐고  당연히 젊은 시인이구나 해서 시집을 집어 들었는데   시집전체에 흐르는 유치함이란

어떤 느낌이었냐면요.  연습장에 감수성이 넘처 흐르는 여중고생이 낙서하듯 쓴 시 같다고 할까요?
딱 느낌이었습니다.  원태연이름도  여자이름 같아서  시인얼굴을 다시 확인하고 남자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시 하나를 소개해 볼께요


원태연 - 이별역 

이번 정치할 역은

이별 이별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잊으신 미련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시고

내리십시오

 

계속해서

사랑역으로 가실 분도

이번 역에서

기다림행 열차로 갈아타십시오

 

추억행 열차는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당분간 운행하지 않습니다



분명 시는 수준이 높지 않습니다. 딱 여고생 수준이라고 하면 맞을거에요.  시집사고 후회하긴 처음이었습니다.
그래도 몇개의 시는 내 당시 사랑의 열병을 녹여주더군요.  그 몇개의 시가 맘에 들긴 하지만 시집 전체로 보면  별로 좋은 시집은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집이 대박이 나는 것입니다. 라디오 DJ입에 의해 전파되고  여고생들에게 입소문이 타면서 엄청난 판매부수를 올리
게 됩니다. 이후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라는 시집을 발매후 또 대박을 터트립니다. 이 두개의 시집의 히트로 인기 시인이 되었지만  원태연 시인은 시인협회에 등록된 시인이 아니였습니다. 오늘 무릎팍도사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신춘문예같은  문인의 등용문코스를 밟지 않았습니다.


공식 자격증이 없는 야매시인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설움도 많이 받았죠. 인기는 있지만  정작 유명 시인들은 그를 시인으로
인정을 안했어요.  원태연 시인 스스로도 알아요. 자기 시가  여고생 수준의 시라는 것을요.   하지만  이 원태연 시인이 불고온
감성시 열풍은  하나의  문화코드로 다가 옵니다.

라디오방송작가 출신의 이정하 시인의  우리 사는 동안에 , 너는 눈부시시만 나는 눈물겹다
책이 빅히트를 하는등 90년대 초  감성시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 감성시 봇물을 튼것은 바로 원태연 시인입니다.

원태연 시인이 몰고온 열풍은  그의 시의 수준이 아닌 70,80년대까지 우리 문학계에 꽉 들어찬 엄숙주의에 질려버렸던  10,20대들이 그의 감수성을 소비하기 시작하기 한것입니다.  초중고에서 시 하나 읇고  시의 은유법차고 주제,소재 작자의 생각을  이잡듯이 잡아내는 시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군사독재정권 밑에서 시는  이데올로기를 넣어야  시라는 강박관념  아니면  지난 군사정권 시절의  암울함을 추억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던 엄숙한 분위기에  감수성으로 다가온 시인이 원태연이었죠.

다만 그의  감수성은 풍부한데  시의 어휘력이나 표현력이  수준높지 않아서  욕도 많이 먹었어요. 한 시인은 원태연 시인의 시를 보고 말세라는 표정으로 이런것도 시라고 나오는 시대라고 비아냥 거리기 까지 했으니까요.

이정하 시인이  감성시의 계보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켰고 이정하 시인의 시는 저도 아주 명징하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원태연이  감독을 되어서 우리게 오네요.

시인의 감수성을 영상으로 어떻게 녹여낼지 모르겠네요. 시집처럼 처음에는 욕을 먹을까요?  그건 지켜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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