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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광우병촛불시위와 용산철거민 시위의 다른점

by 썬도그 2009.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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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을 되돌아보면 내 개인의 삶과  사회적 시류가 만난 지점이 바로 광우병 촛불시위였습니다.   십수년이 지나서 후대 사람들이  역사책에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를 꼭 집어 넣을듯 합니다.   1백만명이 서울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꽉채운 모습 앞으로도 과거에도 이런 광경을 보기 힘들었고 힘들 것입니다.

저도 그 역사의 현장에 수차례 참석하면서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왠지 모를 뿌듯함도 느껴집니다.
한 두번은  꼴닥 밤을 세우면서 현장에 있었던 저로써는  시시각각 변하는  촛불시위현장의 느낌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때로는 과격하기도 했고 때로는  놀라운 자정능력으로   대오에서 이탈한  전경을  구타하는 손길을 같은 시민들이 둘러 쌓으면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저들하고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라고  일갈하던 시민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몇분이 발길질을 하다가 그 일갈에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던 모습, 그리고 그 전경을 얼싸안고  전경들 품으로 다시 보내주었던  그 분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폭력적인 모습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참 차분하고  질서있고 비폭력과 자정적 노력이 많았던  시위로 전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 100여일 가까운 광우병 촛불시위를 지나  제2의 촛불을 지피고자 여러단체에서 노력을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네요.

용산철거민 추모집회에 저도 참석하고자  지난주 토요일에 청계천에 갔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간 저는 그 규모의 초라함에 솔직히 실망을 했습니다. 왜 이리 사람이 없을까?  약 1천명정도의 분이 계셨고  저도 참석하고 싶었구 그 현장을 기록하고 싶엇지만
기자증을 내밀지 않으면  집회현장의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험악한 모습에 많이 당황되더군요.


오늘도 청계천에서 시위가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지난 광우병 정국때와는 많이 다르고 소규모의 시위가 있을듯 합니다.
왜 이리 달를까요?


다른것을 떠나서 참여인원의 간소함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광우병 촛불시위와  용산 철거민시위의 다른점


얼마전 강호순의 연쇄살인에 대해서 세상이 경악했습니다.  이 범죄가 무서운 이유는 원환관계의 살인이 아닌  불특정 다수에 대한
범죄였기 떄문입니다.  90년대 초의 지존파 사건은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가진자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던 범죄였죠. 당시는 고급차 타고 다니는 분들이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 이후  유영철 사건이 있었구  힘없는 여자들만 감금하고 죽였습니다.
여자분들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 이후 정남규의 무차별적이고  불특정 다수에 대한  살인행각은  서울 서남부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정남규의 살인행각이 무서운것은  부녀자들에 대한 범죄가 아닌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적인 살인이였습니다.
하지만 지역적으로 서울 서남부라는 지역적인 조건이 있었죠.


그런데 광우병이라는 살인자는 달랐습니다. 지역적인 조건도  특정인도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공평하게 범죄를 가할수 있다는 가능성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분노했습니다.  내가  소고기를 일부러 안먹는다고 해도  정육점의 칼을 통해서  옮길수 있다는 공포는   문자 그대로의 공포를 넘어설 정도의 엄청난 공포였죠. 그래서 그 불특정한 다수들이  광화문 앞 종로거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이 불특정 다수들은 경찰에서도  배후세력을 캐낼수 없을정도로   특정지어진 무리가 아니였습니다.   이 불특정다수가 1백만명이 넘은 지난 2008년 여름은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지핀  용광로가 활활 타올랐습니다.


그러나  용산 철거민 참사는 좀 다릅니다.  용산 철거민에 울분을 토하고 내 이야기라고 한탄하는 목소리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 입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공감은 하지만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게 보편적인 생각입니다.   나쁜 이명박정권!! 이라고 공감은 하지만  이전 광우병과 다르게   나와 직접적인  사안이라는 생각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 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재개발을 앞둔  세입자분과 일부 시민과 민노총분들만  참여를 하는 모습입니다.


문제는  1백만명의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제발 정신차리라고  촛불을 들고 외쳐도  꿈쩍않았던  이명박정권이 기깟 1천명정도의 시위대를 보고  어떤생각을 할까요?  그냥 쓸어담을  쓰레기정도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1백만명이 보여야 청와대 뒷산이 북악산 중턱에서  내려다 보지   1천명 정도야   그냥 쓸어담을 목소리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지난 광우병 시위때  시위로 인해 변한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대통령의 몇마디 사과에   온정주의로  앞으로 잘해라 라고 면죄부를 주지 않앗나 생각을 해봅니다.  10년전  87년 6월 10일의 항쟁도   대통령 간선제에서 직선제 발표을 이끌어 냈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해서   전두환의 친구인 노태우가  5년간 정권을 맡았죠.   광우병시위도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너무 쉽게 온정주의로 물러 섰다는 생각이요. 

그런 생각도 솔직히 합니다.  작년 광우병시위때  정부에 너무 강경하게 주장한 면이 있지 않냐는 생각을요. 정부에서 받아들일 정도의 수준에서 요구조건을 내세워야 하는데   정권을 부정할 정도의 강력한 요구를 하다가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끝나버린 모습이요.


오늘  용산철거민 추모집회 무사히 잘 끝났으면 합니다.
지난 광우병시위때는  어용방송인 SBS도 열심히 방송하던데   이제는  SBS와 KBS가 합동으로  용산철거민시위를 일부러 보도하지 않거나  사실전달만 하는 언론의 건강한 여론을 촉발하는 의무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광우병 시위와 용산철거민 추모시위의 다른점은   불특정다수에 대한 공포와 특정한 사람들의 공포의 차이로 인한 규모의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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