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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에관한글

1992년 가을 대부도 염전에서

by 썬도그 2008.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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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진이라는 타이틀로 이 블로그를 운영하게 된 이유는 대학때 사진동아리를 헀던 이유때문이 였습니다.
1992년  대학 1학년때   공대라서 여자학우가 없는관계로  중,고등학교를 남자내음 가득함을 지워버리고자
여자회원이 많다는 사진연구회를 가입했죠.

사진보다는 술에 쩔어 살던 대학 1학년때  여름방학을 보내고  10월 말에 있는 축제때 사진동아리에서 개최하는 축제전시회에 낼 사진을 찍고자 밀린 숙제하듯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녔죠.  삼촌이 중동에서 보내온  일제 니콘 자동카메라  들고 사진을 찍었던
그 시절  동기 여자친구에게  수동카메라 하나 빌려서 휴일날 혼자 출사를 갔습니다.  200미리 줌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어디갈까 하다가 멀리가보자 작정하고 대부도로 목적지를 정했습니다.

연합동아리이기도 한  제가 있던 동아리는 다른 학교 친구에게 귀뜸을 받았죠.  대부도 가봐 죽인다. 사진찍을것 많다고요.
그래서 오후좀 지나서 출발한  대부도 여행 .

덜컹거리는 수원행 전철을 타고 갓습니다. 그리고  수원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제부도와 대부도를 간다는 버스를 탔습니다.
그때 기억으로는  사강에서 내려서 제부도와 대부도를 가는 버스를 타라고 하더군요.  사강에 오후 4시쯤에 내린 저는
제부도를 갈까 대부도를 갈까 하다가 대부도행 버스를 탔습니다.  오후 4시가 넘어서 탄 대부도행 버스를 흙먼지 흩날리며 도착한 대부도.  그러나 버스 기사님은  내리면서 이게 막차입니다라는 천청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저씨.. 서울 아니 수원나가는 버스 없나요?
네 이게 막차에요.  헉

순간 눈앞이 까마득하더군요. 그냥 걸었습니다. 사진은 찍어야 겠기에 대부도 염전을 카메라에 담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면서 아름답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집에는 어떻게 가나 걱정이 많았죠.  36컷 두통의 흑백필름을 다쓰고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었죠. 사진을 찍으면서  날도 춥지 않은데  그냥 풀밭에서 밤새던지 해야겠다고 작정을 했죠.

새벽에 춥지 않을까? 하면서 이리저리 노숙할 풀밭을 찾았습니다.  나의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녁해는  무심하게  지평선 넘어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역시 평소에 술 안먹고 사진좀 찍어 놓을껄   국민학교때부터  개학이 얼마 안남았을때부터  밀린 방학숙제하는 버릇은 대학생이 되서서 못버리는구나 신세한탄도 했습니다.

염전을 걸으면서 밭을 보면서 한숨만 나왔죠. 핸드폰도 없던 시절 공중전화도 안보이던  그  넓은 벌판에서  걱정하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공중전화로 전화나 해야겠다 생각하면서 국도를 걸었습니다.  그러다 머리속에 히치하이킹이 생각났습니다.

영화광이었던 제가 생각난것은 허리우드의 영화 한정면 이었죠.   영화주인공이 멋지게 손을 들어 차를 세우고 어디까지 태워달라고 부탁하던 장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태워주는 모습에 저도  여기서 자서 입돌아가는니 집에가서 자자라는 신념으로
너무나 내성적인 제가 손을 들었습니다.   차가 영화에서처럼 스더군요. 제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조심조심 말을 건냈습니다.
죄송한데 버스가 끊겨서요.  수원까지 안될까요? 

승용차의 운전석 옆에는 여자친구인 듯한 여자분이 타 있더군요.   여자친구와 대화를 나누더니  거기 가는 방향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떠나더군요.  아.. 한숨이 나왔지만  그래도  차가 스는 모습에  놀라워습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차를 태워줄수도 있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고  수차례 차를 세웠습니다. 두대중 한대는 스더군요.  그러나 승용차들은 저를 외면했습니다.
 
대부도에 여자친구와 여행을 온 차들이 많더군요. 

그러다  봉고차가 스더군요.   저기 이러저러해서 사진을 찍다가  차가 끊겼습니다. 죄송한데 차좀 얻어탈수 있을까요?
어디까지 가시는지 모르겠지만 시내로만 나가신다면 어디든 괜찮습니다.   봉고차 는 흥쾌히 문을 열어주더니 타세요 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저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냈습니다.  사진잘 찍으시겠네요부터   이런저런 관심을 보이시더니  남자두분 여자두분인 봉고차 일행은 자기들 이야기를 계속 하더군요.  귀동냥으로 들어보니  그분들도 대학동아리 친구들이더군요. 대략 나이는 30대 중반쯤 되던 그 4분

제가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참 좋아보이십니다. 저도  나이들어서 이런 동아리 친구들이랑  여행을 갔으면 좋겠네요 하면서요.
그 분들은 깔갈깔 웃으시더군요.  봉고차 차창으로 밖을보니 휘엉청 보름달이 떠 있더군요.  그 보름달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덜컹거리는 그 비포장길도 잊지 못하구요.  그리고  암흑과 같던 그 섬을 나와  수원시로 나왔습니다. 내리면서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죠. 나 이러저러해서  대부도에서 입돌아갈 각오로 노숙할뻔했다면서 친구에게 떠벌렸죠. 그리고  친구에게 한마디했습니다. 우리 지금은 20대초반이지만 나이들어서도 이렇게 우정 끊지 말자구요.

그리고 그해 가을 축제 전시회때 제가 찍은 대부도 염전은 노출부족으로  작품에 탈락할 위기에 있었지만 다징,버닝의 수작업을 총 동원해서 작품 반열에 올려 놓았습니다.

몇일전  동아리 친구들과 SUV를 타고 풍경좋은곳으로 갔다 왔습니다. 뒷자석에 앉아서 밖을 보니 보름달이 떠 오르더군요.
그리고 20대때의 제 모습이 기억나네요.

너 기억나니? 내가 92년도에 수원역에서 20원 넣고 전화건거. 
친구는 뭔소리냐 하면서 쳐다보더군요.  아냐.  고맙다 친구야.  넌 모르겠지만 약속 지켜줘서.  또 한번 친구는 별 싱거운 녀석이네 하면서 쳐다보더군요. 그날  서해바닷가 한켠에서 조개구이집에서 조개들이 웃고 있는듯 했습니다.

그리고 조개구이집 창밖에 든 보름달을 보면서  대학떨어지고   친구와 함께 1월의 영종도 여행후  육지로 돌아오는 배안에서 본  내 생애 최고로 크게본 보름달이   합성되어 망막에 맺혔습니다.


대부도에 이 가을 다시 가볼 생각입니다.  그 염전 그대로 있을까? 지금도 오후 5시 쯤에  차가 끊길까?
사강이라는 그 버스정류장에는 여전히 조개들이 웃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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