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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대한 단소리

착하다의 또 다른 이름 순응주의

by 썬도그 2008.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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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때만 해도 저는 착하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걔 어때? 라고 나에 대해서 누가 물으면  걔 되게 착해~~라는 말을 많이 들었죠.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 대해서 물어보면 다른 사람들은 아 걔~~ 무척 착해라고 말해줄때가 있습니다.

착해? 착하다.  이 말 만큼 특색없고 무미건조한 단어도 없는듯 합니다.
저는 어렸을때나 지금도 내성적인 성격입니다.  어렸을때는 너무 말수까지 없어서 색시란 별명을
선생님에게 선사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툭하고 내 뱉은 말이지만 지금까지 그걸 기억하는걸 보면 맘에 상처를
많이 받은듯 합니다. 실제로 그 당시 말수적었던 대인관계가 그렇게 넓지 않앗던  나에게 반 아이들이
한꺼번에 시선을 주던것은 내 자체가 아니라 색시라는 별명이었죠.

뭐 고학년으로 올라가 운동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나는  이전보다 많이 활당한 소년이 됩니다.
고무공으로 하는 손야구인 짬뽕에서는  거포였고 (쳤다하면 외야를 넘기니) 축구에서는 주전수비수였습니다.
나만 믿고  다 공격수로 뛰었으니까요.

하여튼  그렇다고 해도 인기많은 학생은 아니였습니다. 워낙 할말만 하고  낯가림도 심해서 나를 잘 아는 친구는
많이 없었습니다.   친구가  나를 다른 누군가에게 소개할때 항상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착하다
처음엔 듣기 좋더군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착하다라는 말에  부화가 치밀어 오르더군요.   착하다만큼
특색없는 단어도 없습니다.  뭐가 착하다라는건지  착하다라는 단어는  점점 이용해먹기 쉽다. 순응주의자다
자기주장이 없다라고 인식이 되더군요.   성격은 대학와서 많이 변했습니다.  동아리의 중책도 맡아보고
세미나도 직접열기도 하며  가르침의 달인인  초중고등학교 선생님드을 모시고  전산강의도 했었으니까요.

어렸을때는 교탁앞에 나가는것도 떨렸는데  얼마나 심했는지 쉬는시간에도 교탁앞으로 안나온다고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말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성격이라는것은 기질이라는것은 크게는 아니지만 변하는것 같습니다.
제 안의 까칠함이 따질것 따지고  지적할것은 지적하고  눈뜨고 당하는 꼴을 못보는  비판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180도 바뀐것 같네요

착하다란 말 자주 하시나요?   누군가를  한마디로 정의할때 걔?  아주 착해라고 말하신적이 있나요?
솔직히 그 말 무성의함도 느껴집니다.  착하다라는 의미는 너무 포괄적입니다. 뭐 생각없이 생각나는대로 말하는게
대부분이겠지만요. 

누군가를 소개받을때  이 사람 무척 착해요~ 라고 소개받을때도 난감합니다. 순응주의자라는 건지
자기주장이 없다는건지 정체를 알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할말 다하고  정의감이 많아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사람을 착하다고 말하진 않습니다.

내 머리속에 착하다라는 이미지는  순응주의 입니다.

어렸을때 우린 착하게 커라 착하다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착하게 커라 착해라라는
말을 듣죠.  아이는 착하다라는 말이 칭찬이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칭찬의 단어지만  순응해라 부모님의 말에 무조건 따르라 사회에 적응해라 규범을 지켜라.  세상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암묵적 명령조의 말이
착하다입니다.  아이는 더 착해질려고 노력하게 되고 정말 착한 아이가 됩니다.

왜라는 단어대신에  네 알겠습니다라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되죠.

순응주의가 나쁘다는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에 순응주의자들만 있으면 정말 세상은 변하지않고  정체되고
권력있는 자들에게만 천국인 세상이 되는듯 합니다. 이런말 하긴 좀 그렇지만 전 일본사람들을 전체적으로 집단적으로 보면  순응주의자들의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일본이 제국주의로 쉽게 접어든것도
그런 순응주의가 있지 않을까 하네요.  싸잡아 말하긴 좀 그렇지만요. 

지금은 나에게 착하다라고 말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착해지고 싶지도 않구요. 그렇다고 악하겠다는것이 아닌
착하다 안에 있는 순응주의적인 모습을 너무 싫어 해서요.


당신은 혹시 착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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