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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베트남전을 생생하게 카메라로 담은 래리 버로우즈 본문

사진작가/외국사진작가

베트남전을 생생하게 카메라로 담은 래리 버로우즈

썬도그 2007. 12. 13. 23:15

래리 버로우즈는 참혹한 정글속 부상당한 미군들을 보면서 머리가 아찔해 왔다. 미국정부의 허가를
받고 찍는 그였지만 전쟁은  매케한 화약내음과  피비린내가 나는 현장이었다.
 조국을 지킨고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결연한 모습은 미군들에게 있지 않았다. 습기높은 공기와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소나기 여기저기의 신음소리에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종군사진기자로써 9년을
베트남의 이름모를 정글을 군인들 뒤를 따라 그 생생한 화면을 본국의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전쟁의
참상을 전하겠다는 일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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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남베트남 484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맹렬한 포격전을 벌이던 중 부상을 입어
부축을 받던 해병대 중사 제러미아 퍼디가 쓰러진 동료와 마주쳤다. 두 병사의 표정이 사진에 단순한 액션컷 이상을 의미한다. 한명은 흑인 다른 한 명은 백인인 이 두병사는 미본토에 있는 인종간의 갈등은 없다.
단지 그들은 전우일뿐이다.




시대는 영웅을 만든다. 2차대전을 통해 로버트 카파가  사진영웅이 되었다면  래리 버로우즈는
베트남전을 통해 사진영웅이 된다.  지금 이라크전은 부상당한 미군병사나 죽은 이라크병사를 미정부에서 사진으로 찍지 못하게 철저하게 종군사진기자를 관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전에서는 이런 모습이 없었는데
미  정부는 이런 사진들이 전쟁을 선전하는데 쓰는 프로파간다용 사진으로 담겨질줄 알았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은 흑백사진으로 담겨진  선동적인 사진이 아니였다.  베트남전은 병사들의 핏빛이 선명한
칼라사진들이었구 피를 흘리는 병사들의 사진들은 오히려  반전운동의 계기를 만들고 결국 미군이 베트남을
떠나게 하는 결정적인 역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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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버로우즈{larry burrows}



래리 버로우즈는 영국에서 태어났고 라이프지에 송고할 사진을 찍기 위해 1962년 1971년 사망때까지
베트남에 있었다. 1967년 그는 미국잡지사진상을 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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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esanh, South Vietnam, 1968



북베트남의 공격이 계속되던 1968년 미군 제 1공중강습 부대가 해병대 기지에 탄약을 공수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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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ar Dong Ha, South Vietnam, 1966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는 해병대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훗날 영화 플래툰에도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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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è, South Vietnam, 1969



1968년 구정 대공세때 사망했다가 최근 한 공동묘지에서 비닐에 싸여 발견된 남편의 시신 앞에
오열하는 여인의 모습이다. 버로우즈는 교전의 양 당사자들 모두 촬영할 수 있었던 뛰어난 종군
사진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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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a Trang, South Vietnam, 1962



그는 전쟁의 풍경을 담기 위해 전투기에도 오른다.

어렸을적 베트남 전쟁은 어른들의 무용담이나 빛바랜 흑백사진속의 아버지들의 모습에서
영화 플래툰 그리고  미드라마 머나먼정글의 모습이 전부였다.  하지만 내가 베트남전쟁을 충격적으로
봤던 영화가 바로 햄버거 힐이다. 공짜표로 본 그 영화는 액션영화가 아니였다.

전우들의 살점으로 다져졌다고 해서 햄버거 힐이라고 불리운 그 언덕을 사수하기 위해 수많은 전투와
레이팜탄의 불바다에서 전쟁이 오락거리가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래리 버로우즈가 있었기에
미국인들은 전쟁이 더 숭고한 희생과 이상을 실현하는것이 아닌  자신의 아들들이 선혈을 흘리면서
죽어가는 모습속에서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베트남에서의 전쟁을
멈추기 위해 대규모 반전시위를 하게 된다. 그 반전시위엔 상이용사들도 함께하게 된다.



래리 버로우즈의 총알이 맞은 카메라가 그의 마지막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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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책 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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