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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노력없이 얻어진 젊음과 늙음을 자랑하지 말자

by 썬도그 2019.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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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화요일 밤에 방영하는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시간을 소비해서 70대 할머니로 늙어버린 25살 김혜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드라마인 줄 알았다가 뚜껑을 열어보니 25살 청춘을 살던 혜자가 한 순간에 70대 할머니가 된 후 겪는 노인들의 고통과 그들의 삶을 조명하는 아주 건강하고 아름다운 드라마였습니다. 매주 챙겨보면서 젊음과 늙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오늘도 마음을 적시고 흔들어 놓은 장면이 있었습니다. 

늙어가는 게 죄입니까?

한국에서 살다 보면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중 하나가 젊음이 착하고 바르고 옳은 일이고 늙음은 추악하고 더럽고 욕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젊음이 부럽고 평생 젊은 상태로 살고 싶은 것은 누구가 꿈꾸는 욕망입니다. 그렇다고 늙었다고 괄시하고 더럽게 여기고 추하게 여기는 그 시선은 어디서 배운 추잡한 시선일까요? 노화가 시작되는 20대 중반 이후에는 누구나 어제보다 젊어지고 싶어지지만 그게 우리의 뜻대로 되나요? 

쉽고 간단하게 말해서 누군 늙고 싶어서 늙나요? 늙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20대 중반부터 노화가 온다는 말로 따지면 매일 늙어가는 사람이 한국 전체 인구의 6할이 넘습니다. 어제보다 더 늙은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늙어가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늙음도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농담이라고 하지만 옛날 사람이라고 늙음을 손가락질 하고 젊음을 추앙합니다. 추앙할 수 있습니다. 동안이시네요라는 말이 칭찬이라는 말에 토를 달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 나이로 보이는 사람에게 까지 무슨 큰 죄를 지었다는 듯 힐난하고 손가락질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너흰 늙어봤냐 난 젊어봤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젊어봤고 이제는 늙어가면서 느끼는 고통과 즐거움을 다 느끼는 저에게 늙어가는 것이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습니다. 나쁜 점은 몸이 젊지 않아서 오는 고통이 있습니다. 노안이 생겨서 가까이서 책을 읽을 수 없고 멀리 있는 글자도 눈을 지푸려야 보입니다. 조금만 힘든 일을 해도 체력이 딸립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70대가 된 혜자는 약의 힘으로 하루 하루 버티는 노년의 버거운 삶을 잘 조명하고 있습니다. 뭘 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고 나중에는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몸의 제한 때문에 바로 포기하는 일들이 늘어납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나오지 않은 늙어서 좋은 점도 있습니다. 혜자는 25살에서 70대로 점프해서 늙어서 좋은 점을 말을 못하지만 늙어가면서 좋은 점은 꽤 많습니다. 가장 먼저 아는 것이 많아지고 경험이 많아서 불안감이 좀 줄어듭니다. 많은 경험과 지식으로 현명한 판단을 할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많은 경험과 지식을 남에게 강요하는 꼰대가 될 확률도 높습니다.  좋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 늙으면 좀 더 현명해지고 성숙한 인간이 됩니다. 또한 늙어갈수록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일들이 많아지고 세상을 이해하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몸은 늙어가지만 영혼은 점점 젊어진다고 할까요?


나보다 젊다고 무시하고 하대하지 마라!

<갑질 당하는 직원/작성자: Jirsak/셔터스톡>

젊음을 그렇게 칭송하고 우대하고 우러러 보면서 정작 젊은 몸을 가진 젊은 세대에게 중년과 노년 세대들은 너무 막대합니다. 반말은 기본, 자신보다 낮은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하대하는 모습이 기본 태도인 못난 중,노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자존감이 없어서인지 상대를 낮춰서 자신을 높이려는 못난 행동을 합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상대를 동등하게 또는 높여주면서 자신도 같이 높아진 다는 것을 잘 압니다.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어떤 일이 터지고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거나 자신이 상황을 제어하고 싶은 분들이 "너 나이 몇 살이야"라는 말을 많이합니다. 상대를 제압하고 자신의 아래에 두기 위한 말이죠. 요즘은 "너 나이 몇 살이야"라는 말이 잘 먹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무시 당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존경을 받고 싶으면 상대방을 존경하고 존중해주면 나도 존경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노력 없이 숨만 쉬면 먹는 나이를 내밀어서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못난 모습입니다. 한국 사회가 여전히 유교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런지 여전히 나이 많으면 무조건 나이 대접 받길 원하는 분들이 많네요. 나이 들어서 몸이 불편한 분들이 편의를 제공받고 다른 사람의 호의를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호의나 대접을 강제로 받으려고 하는 것은 또 하나의 갑질이나 못난 모습입니다. 

얼마나 못났으면 아무런 노력이 없어도 먹는 나이를 내세울까요?


젊다고 으스대지 말고 늙었다고 위세 떨지 말자!

<눈이 부시게>에서 70대가 된 혜자는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기본 옵션으로 주어지는 게 젊음이라 별거 아닌 것 같겠지만 날 보면 알잖아. 니들이 가진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엄청난 건지"

저도 그랬습니다. 20대 초반 어른들이 좋을 때다 좋을 때야라는 말을 할 때마다 뭐가 좋다는 거지? 매일 매일 즐거움도 있지만 고민도 참 많은 나인데 왜 좋다는 건지? 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이들면 압니다. 그 좋을 때가 몸에 대한 예찬이 더 크다는 것과 함께 누군가를 책임지지 않고 누군가가 날 책임져주는 보호막이 있는 삶에 대한 부러움이라는 것을요. 

"God, tell us the rea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신이여, 청춘 시절에 청춘은 왜 허비되는지 말해주세요"

영화 <비긴 어게인>의 주제곡인 'LOST STARS'의 한 구절입니다. 전 이 노래 가사 중에 청춘 시절에 청춘은 왜 허비되는지라는 말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청춘은 부자나 빈자나 남자나 여자에 상관 없이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단 한 번 주어집니다. 청춘 시절에는 그 청춘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대부분 모릅니다. 그러나 청춘에서 멀어질수록 청춘이 주는 온기가 점점 그리워집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생은 벚꽃 같은 느낌입니다. 20대 초반에 만개 했다가 중년 나이에 열매를 맺고 낙엽이 다 떨어진 노년이라는 쓸쓸한 계절을 맞습니다. 평균 수명이 길어서 좋다는 분들도 있지만 봄이라는 청춘이 길어진 것이 아닌 낙엽이 다 떨어진 노년이라는 겨울이 길어진 것이라서 오히려 더 고통스러워졌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눈이 부시게>에서 혜자는 등가교환의 법칙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물건의 가치 만큼 돈을 지불하는 것처럼 뭔가를 갖고 싶으면 그 가치만큼 희생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젊음과 늙음은 동일한 가치입니다. 젊음은 건강한 몸을 받은 대신 경험 적은 미성숙한 영혼을 가졌고 늙음은 성숙한 영혼을 가지는 대신 매일 늙은 몸이 주는 고통을 달고 삽니다. 

물론 농경사회가 아닌 도시사회에서는 나이 들면서 얻어지는 경험이 성숙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감정의 경험을 통해서 일비일희하지 않는 묵직함을 갖추게 됩니다. 젊다고 으스대지 말고 늙었다고 위세 떨지 않았으면 합니다. 서로 존중하는 삶이 현재의 내 나이의 삶을 더 건강하고 성숙하게 만듭니다. 젊음과 늙음은 시간이 주는 선물이지 내 노력으로 얻어진 결과물은 아닙니다.  그러니 나이 덜 먹고 많이 먹음이 결코 자랑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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