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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대한 단소리

집 앞에서 본 치매 할머니를 뵙고나니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by 썬도그 2018.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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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보름달이 떴습니다. 한국에 평화의 달이 떠서 어느 한가위보다 덕담을 참 많이 한 추석일 듯 합니다. 잠시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전철에서 내린 후 마을버스를 타고 집 앞에서 내렸습니다. 마을버스에서 내리니 80대로 보이는 한 할머니가 앞서 가던 분에게 길을 묻고 계셨습니다. 해결이 안 됐는지 저에게도 물으시네요.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데요?"라고 여쭈었습니다. 

할머니는 아들 이름을 대면서 아들 이야기를 하십니다. 명확하게 말씀을 하지 않으셔서 제가 되물었습니다. 

"할머니 아드님 집 찾으세요?"라는 질문에도 대답을 잘 못하십니다. 행색을 보면 영락없이 고향에서 아드님 집 찾으러 상경하신 모습이었습니다. 곱게 차려 입으시고 작은 가방 하나 들고 계셨습니다. 나이 어린 저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해주셨습니다. 

계속 말을 붙이면서 단서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아드님 전화번호 아세요?"라는 질문에도 대답을 못하시다가 땅바닥에 털석 주저 않으셨습니다. 제가 그냥 가버리면 할머니는 계속 저렇게 앉아 계실 것 같았습니다. 고민을 약 3초 정도 하다가 바로 112를 눌렀습니다.

고백하자면 착하게 산 건 아닌데 112에 전화를 건 적이 1번 있었습니다. 그때도 쌈이 나서 지나가다가 전화를 걸었던 것 같네요. 하도 오래전 일이나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나이들면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실제와 환상이 섞여서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거든요. 그래서 실제의 과거도 사람마다 기억이 다릅니다. 


112에 전화를 하니 바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보통 전화를 하면 최소 1번 이상 뚜~~~하고 신호음이 가고 받는데 112는 바로 받아서 순간 당황해서 스마트폰을 귀에서 때고 바라보니 112가 맞았습니다. 무전기인가? 할 정도로 빨리 받아서 당황하다가 바로 말을 했습니다.

이러저러해서 한 할머니가 아드님집 찾으시는 것 같은데 전화번호도 모르시고 연락할 곳이 없어서 전화드렸습니다라고 전했더니 경찰관은 위치를 알려달라고 합니다. 

"00아파트와 00아파트 사이 삼거리입니다"라고 했더니 못알아들으시네요. 그때 바로 생각을 수정했습니다. 이게 제가 사는 지역 경찰서로 전화가 가는 것이 아닌 중앙 통제소에서 전화를 받고 중앙 통제소에서 해당 지역 경찰서로 전화를 주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00 전철역과 00 전철역 딱 중간에 있는 아파트 삼거리입니다"라고 했더니 바로 알아 들으시고 전화를 주겠다고 하시네요. 
1분 후 지역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할머니가 길을 잃으신 것 같습니다"
"할머니 인상착의를 알 수 있을까요?"라는 경찰관의 질문에 
"00색 상의를 입고 있으세요"
"혹시 가방 들고 계시나요?"
"네! 작은 가방 들고 있으세요"

경찰관은 대충 아시는 할머니 인지 "맞네!라고 다른 경찰관에게 말하는 듯한 했습니다. 
저도 그때 눈치를 챘습니다. 치매가 있으신 것 아닐까? 경찰관은 잠시 옆에 있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기다렸습니다. 생각보다 늦게 오기에 시계를 보니 3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참 시간은 신기해요. 3분이면 짧은 시간인데 참 길게 느껴졌습니다. 안되겠다 싶어서 다시 할머니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할머니는 땅바닥에 앉아계시면서 불안해 하셨습니다. 근처 정류장 의자가 있긴 한데 그리로 모셔야 하나 했는데 경찰차가 금방 올 것 같고 위치를 이동하면 경찰차가 저를 못 볼 것 같아서 말을 다시 붙였습니다.

"할머니 고향이 어디세요"
"안동"
"아드님 댁 찾으러 오셨나요?"
"나 혼자 나오는 게 아닌데 그냥 나왔어"

약간 불안해 하셨습니다. 

"할머니 곧 경찰차 오니까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아들이 온다고?. 잘 됐네 잘됐어"

귀가 어두우셔서 큰 소리로 말을 해야 겨우 알아 들으시네요. 그렇게 말을 붙이고 있는데 경찰차가 도착했습니다. 처음에는 경찰차가 삼거리에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해서 제가 손짓을 여러 번 했더니 제대로 찾았습니다. 


남자 경찰분과 여자 경찰분이 함께 경찰차를 타고 오셨습니다. 
"대화가 안되서 전화 드렸어요"라고 했더니 여자 경찰분이
"치매세요"

그럼 잘 좀 부탁드린다고 경찰관에게 말하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여자 경찰분은 할머니를 잘 아시는지 다정다감하게 다가가더니 할머니를 경찰차에 잘 태우셨습니다. 추석인데도 경찰분들도 고생 참 많이 하시네요. 

솔직히 정치에 개입하는 경찰, 정치하는 경찰 이미지 때문에 경찰 이미지가 좋지 않고 저도 경찰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기댈 곳은 또 경찰 밖에 없습니다. 정치 경찰 이미지는 문제지만 일선에서 뛰는 경찰 분들의 노고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경찰서와 소방서입니다. 

그렇게 할머니를 경찰차에 태워서 보낸 후에 마음이 갑자기 안 좋아졌습니다. 할머니가 기억하는 건 아드님 이름과 고향인 안동입니다. 할머니에게 가장 강력한 기억만이 남아 있는 듯 합니다.

사실 전 치매를 잘 모릅니다. 어떤 상태이신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안동과 아드님 이름은 또박또박 말씀 하시는 걸 보면 가장 강력한 기억일 듯 합니다. 고향과 자식의 이름의 그 강력한 이름만 가지고 감정을 이끌어 가시는 것 같으시네요. 그 2개의 단어가 행복한 기억이길 바랍니다. 


경찰 분들도 고생 참 많으시고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인상 착의를 잘 아시는 걸 봐서는 1번 이상 경험한 듯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 집이 어딘지 잘 아실 것 같네요. 그래서 안심이었습니다. 저도 경험을 했으니 대화가 잘 되지 않고 같은 말을 반복하시면 치매를 앓고 계신다고 생각해서 112에 전화를 바로 걸어야겠어요. 뭐 치매가 아니더라도 제가 해결 못하는 것들은 경찰에 알리면 잘 해결해 주시잖아요. 

 살아 계실 때 그리고 기억이 온전할 때 부모님에게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잘 해 줘야 합니다. 집에 들어온 후 베란다에서 둥근 달을 보면서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네요. 환한 저 달 아래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모두 즐거운 추석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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