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벚꽃이 이제 막 피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봄이 좋아지네요. 아마도 봄이 사계절 중 가장 생기가 가득하기 때문이겠죠. 내가 꽃이였던 시절 모든 계절이 꽃처럼 화사했지만 내가 꽃이 아닌 나이가 되다 보니 젊음에 끌리게 됩니다. 인기 예능인 윤식당의 윤여정 배우처럼 늙으면 꽃만 보이게 되나 봅니다.
전국 곳곳에서 꽃축제를 합니다. 특히 벚꽃축제는 봄꽃 축제의 하이라이트입니다. 거대한 크기와 하얀 꽃이 가득피는 모습은 봄에 내리는 설경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이 벚꽃축제가 올해는 맥이 빠졌습니다.
벚꽃 없는 벚꽃 축제
어제 낮에 촬영한 여의도 봄꽃 축제 현장입니다. 벚꽃이 50%도 개화하지 않아서 썰렁합니다. 그러나 영등포구는 여의도 봄꽃축제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아마 영등포구는 기상청의 벚꽃 개화 예보를 믿고 4월 1일부터 9일까지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는 벚꽃이 몽우리도 지지 않았고 이번 주도 벚꽃이 만개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흥미롭게도 같은 여의도지만 메리어트 호텔에서 63빌딩 길은 벚꽃들이 만개한 벚꽃들이 많습니다. 같은 여의도지만 위치에 따라서 만개 시기가 다르네요. 이런 개화 시기 편차도 보기 드무네요. 벚꽃 개화 시기가 늦은 것은 꽃샘 추위가 길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개나리, 산수유, 목련, 진달래 그리고 벚꽃까지 동시에 개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동시다발 개화는 올해만의 모습이 아닙니다. 몇년 전에도 이런 모습이 있었습니다. 뉴스에 따르면 80년대는 산수유>>목련>>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이 폈는데 최근에는 온난화 때문에(뭐든 다 온난화지만) 동시에 개화하는 모습이 늘고 있다고 하네요.
자연이 하는 일 인간이 조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연 탓만 하는 것도 인간답지 못합니다. 최근 봄꽃 개화 시기가 뒤죽박죽이 되는 모습을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국 지자체들은 대비를 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행사 때문에 벚나무 축제로 만드는 지자체들
이유는 간단합니다. 벚꽃 예상 개화 시기에 맞춰서 연예인과 다양한 공연팀과 계약을 했기 때문입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공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벚꽃이 늦게 폈다고 행사를 연기하고 공연팀과 연예인을 한 주 뒤에 공연하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공연 보러 벚꽃 축제에 가나요? 벚꽃 보러 가는 거 아닌가요?
지자체들의 고충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벚꽃 축제의 주인공은 공연도 연예인도 아닌 벚꽃입니다. 아무런 행사나 공연이 없어도 벚꽃이 한아름 피면 그 자체가 축제입니다. 따라서 지자체는 개화 시기를 살피고 벚꽃 축제 기간을 유기적으로 조절해야 합니다.
다른 거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벚꽃 축제 할 때 교통 통제만 하면 됩니다. 경찰은 공연팀과 달리 쉽게 교통 통제 시기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공연팀과 행정상 일정 때문에 벚꽃이 피던 말던 그냥 밀어붙입니다.
이러다 보니 올해와 같은 불상사가 자주 일어나네요. 영등포구가 대비한 것은 벚꽃없는 벚꽃축제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벚꽃 축제가 아닌 봄꽃 축제로 이름을 바꾼 것 밖에 없습니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이죠. 영등포구만 그러겠습니까? 전국 지자체들이 다 비슷합니다.
제가 사는 금천구도 매년 벚꽃 개화 시기를 맞추지 못해서 어느 해는 벚꽃이 피지도 않았는데 벚꽃 축제 진행하고 어느 해는 벚꽃 다 떨어지고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4월 7~8일 양일간 하네요. 제대로 맞췄을까요? 아마도 지난 몇년 간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개화 시기에 맞춰서 한 것 아닐까요? 물론,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행사 때문에 벚꽃을 무시하고 밀어부치는 벚꽃 축제는 행정 낭비가 아닐까 하네요
내년에는 달라질까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벚꽃 가득핀 벚꽃 축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벚나무 축제는 이제 지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