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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불평 불만이 많은 사람이 불행할까?

by 썬도그 2016.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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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미국에 사는 한국 중년이 쓴 글에 대한 반박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이 글은 생각보다 큰 반응을 보여서 많은 분들이 읽었습니다. 제 글에 사이다!를 외친 분들도 있지만 양비론으로 비판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렇게 비판을 하는 분 중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 불행하다는 말을 하는 분이 2 분이나 계시네요.

불평 불만이 많은 사람이 불행하다? 라는 주장에 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제가 쓴 반박글은 정확하게는 불평 불만 보다는 비판적인 글이였습니다. 미국에 사는 중년이라는 분이 먹고 살기 좋은 나라인 한국에서 왜 그리 살기 힘들다고 말하는 지 모르겠다면서 주어진 세상에 만족하면서 살라는 훈계조의 글에 제가 반론을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한국도 잘 사는 나라니 불만 갖지 말고 순응하고 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응주의를 비판했습니다. 순치된 삶이 올바른 삶이라는 시선에 결코, 동의할 수 없었고 반박글을 통해서 미국 중년 분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그 비판이 몇몇 분들에게는 불만으로 비추어졌나 봅니다. 뭐 그럴 수 있습니다. 비판을 하면 불만으로 해석하는 분들이 한국에는 꽤 많으니까요! 제 친구들도 어떠 사안이나 제품에 대한 비판을 하면 뭔 그리 불만이 많냐고 합니다. 

그럴 때 마다 전 불만이 아니라 비판이고 비판이 있어야 서비스건 정치건 제품이건 더 좋아지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오히려 주는대로 먹고 시키는대로 일하고 뭐든 불만 없이 순응하기만 하는 순치된 삶 보다는 낫다고 말합니다.
"배부른 돼지보단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거야"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삭힙니다. 
뭐 비판이나 불만이나 똑같이 대우하는 나라에서 이걸 따지는 게 의미는 없겠죠. 

그럼 비판 아니 불만을 하지 말아야 할 몹쓸 것인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다들 불만 많이 가지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은 먹고 살기 위해서 그 불만 앞에서 말 못하고 끙끙 앓거나 뒤에서 말합니다. 전 한국 사회같이 상명하복의 나라에서 불만을 앞에서 터트리지 못하고 속으로 삮히는 문화가 뒷담화 문화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됩니다. 
앞에서 말 못하는 불만이 한국 사회의 큰 고름으로 느껴집니다. 

 

불평 불만이 많은 사람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

불평 불만이 많은 사람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

인사동 화단에 시민들이 먹고 버린 플라스틱 커피컵이 가득한 모습을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지나칩니다.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죠. 그렇게 누구도 이런 쓰레기가 핀 화단에 불만을 표시 하지 않으면 인사동 화단은 쓰레기 화단이 될 것입니다.

이때 이 쓰레기 화단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종로구청에 전화를 해서 쓰레기 화단에 대한 민원을 넣고 쓴 소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인사동에 쓰레기통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화단의 쓰레기는 사라졌습니다. 

만약 불만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지금도 인사동 화단은 쓰레기가 올려져 있을 것입니다. 도로에 구멍이 나고 보도블럭이 깨지고 가로등이 고장났지만 불만 없이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는 공무원이 순찰하다고 발견하지 못하면 계속 구멍나고 깨지고 꺼진 상태로 지낼 것입니다. 

 

 

불평 불만이 많은 사람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

 

수 많은 사람을 죽인 가습기 소독제를 판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면 옥시(레킷벤키저) 같은 회사는 또 나올 것입니다. 자신들의 제품으로 소비자의 생명을 앗아가도 소비자들이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순응해 버리면 다른 회사들도 옥시싹싹 사태를 보고 한국 소비자들을 무시하는 행동을 할 것입니다.

이는 정부에 대한 불만도 마찬가지입니다. 담배값을 2배 올렸는데 큰 저항이 없다고 판단한 정부는 전기료나 수도세 등등 다양한 공공재에 대한 비용을 서서히 올릴 것입니다. 실제로 정부는 국민 저항이 적으면 그냥 밀어부치고 있죠. 반면,  2015년 연말정산 파동에서 보듯이 국민적 저항이 거세면 정부도 그 불만을 무시할 수 없어서 원상복구 시켰습니다.

전 순응하는 삶은 권력자만 살찌우게 하는 삶이라는 것을 삶에서 체득했습니다. 전기료 올리면 올리는대로 내고, 담배값을 2배나 올려도 불만 없이 2배나 비싸진 담배를 사는 순응주의의 혜택은 권력자에게 돌아갑니다. 불만을 토로하고 저항해야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모든 65세 이상 노인에게 노인기초연금을 준다고 약속한 정부가 돈이 없다면서 일부만 주겠다고 해도 순응해 버리면 위정자들은 아! 거짓말 해도 순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구나!라고 느끼면 다음에도 앞에서는 준다고 하고 나중에는 이러저러한 핑계로 못준다고 하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할 것입니다. 

불만과 불평이 없었다면 수 많은 발명품과 신기술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기존 폴더폰도 쓰는데 만족스러운 사람만 가득했다면 스마트폰처럼 편리한 제품이 나올리 없습니다. 누군가가 손안의 PC처럼 스마트폰으로 인터넷도 하고 게임도 하고 여러 정보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불만이 없었다면 스마트폰은 못 나왔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하고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더 편리할 수 있는데라는 불만이 더 편리한 세상을 만듭니다. 

 

불만이 아닌 맹목적 비관주의와 긍정주의가 문제다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결과가 좋게 나올 지 나쁘게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비관적인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있죠. 이런 사람들을 꺼려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대로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왕이면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전해줘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저도 싫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 사람의 기질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그런가 보다 넘깁니다. 기질은 그 사람의 성향이고 성격이기에 그걸 고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들인 사람들은 기질이고 근거가 있는 부정이라면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가 되는 부정은  이유없이 근거 없이 무조건 부정하는 맹목적 부정주의 또는 맹목적 비관주의자입니다.

반대로 맹목적 긍정주의도 문제입니다. 당장 먹고 살기 어렵고 오늘 밤부터 굶게 생겼는데 손을 꼭 잡아주면서 뭐든지 잘될거예요. 꿈과 희망을 가지세요! 라고 말하는 듯한 맹목적 긍정주의도 문제입니다. 오늘 당장 먹을 것이 없으니 일단 가까운 관공서에 사정을 이야기해서 임시 거처와 임시 구호물품이나 구호금을 받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현명한데 희망을 가지라는 말만 하고 떠난다면 그것도 좋은 행동은 아닙니다. 

이렇게 근거를 통한 부정과 긍정은 이로운 점이 있지만 근거도 이유도 없이 무조건 싫고, 무조건 좋다고 하는 행동은 남에게 해로울 수 있습니다. 

 

 

불평 불만이 많은 사람이 불행할까?

미국에 사는 한국 중년이 쓴 글에 대한 반박라는 글을 읽고 페이스북에 댓글을 단 2분은 흥미롭게도 저를 불행한 사람으로 판단했습니다. 신기하더군요. 전 글에 불행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는데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제가 날카롭게 비판을 했고 비판=불만이라는 생각을 확장해서 불만 많은 자 = 불행이라는 논리를 펼친 듯힙니다.

먼저 밝히지만 저 불만 참 많습니다. 그러나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행운아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떠올려보면 불행하다는 생각이 3할,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가 7할로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왜 저를 불행한 사람으로 느꼈을까요? 불만과 불행이 어떤 상관 관계가 있나요? 불만이 많다고 불행하다면 불만이 없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까요? 실제로 댓글을 단 분은 불만 없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이 주장에 공감하는 분도 반대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다 자기 경험을 통해서 맞다 틀리다 하겠죠.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무자르듯이 불만 많은 자는 무조건 불행한 사람이야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긍정주의자가 모두 행복한 것도 아니겠죠. 

또한, 불만과 불행은 별개이지 어떤 강력한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미래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를 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실제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로또를 샀는데 1주일 내내 난 1등 할거야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가 꽝이 되어도 1주일 동안 즐거웠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1주일 내내 난 꽝 나올거야라고 했다가 실제로 꽝이 되어서 젠장하는 것보다 났겠죠. 그런 긍정의 힘과 효용은 저도 자주 애용합니다. 저는 매사에 불평 불만이 많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기다리는 것이 더 낫겠다 싶으면 긍정적인 시선으로 봅니다. 

그게 바로 긍정의 힘이죠. 하지만 이 긍정주의에 대한 비판도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디즈니입니다. 디즈니는 꿈과 희망을 파는 회사입니다.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고 꽤 많은 돈을 벌죠. 그래서 디즈니를 행복주식회사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긍정과 희망을 상품화 해서 팔고 대부분의 광고들이 꿈을 가져라, 희망을 가져라라고 말하죠. 요즘은 희망전도사들도 많이 등장해서 덮어놓고 희망!을 외치라고 말합니다.

 

저 뒤에서 큰 돌이 굴러 내려오고 있는데 돌이 알아서 피해갈거야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긍정이 아닌 인지부조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 전도사 말에 혹해서 대책없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삼니다. 자신이 취직 못하는 것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인데 취직할 수 있다는 맹목적인 긍정과 희망만 쫒죠. 그렇게 문제의 원인에 대한 비판은 거세되고 무조건적인 희망만 외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부와 기업들은 자신들을 향한 불만과 비판이 없기 때문에 행정하기도 편하고 기업 운영하기도 편합니다. 불만분자들의 모임 같은 노동자단체가 없으면 기업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래서 전 맹목적 긍정주의자, 희망전도사들을 멀리합니다. 
그럼에도 불만이 많은 사람이 불행하다는 논리는 이해가 안 갑니다. 불만이 많아서 그 불만을 해결해달라는 사람이 왜 불행할까요? 오히려 반대 아닐까요? 예를 들어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없어서 구청에 민원이라는 불만을 토로했더니 며칠 후에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생기면 민원을 넣은 불만 가득한 사람은 행복하지 않을까요?

불만 많은 사람과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 불만 많은 사람은 불행하다는 논리가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또한, 부정적인 것과 비판을 동일시 하는 것도 원인이겠죠. 
불평 불만이 많지만 행복한 순간이 더 많은 저로서는 불평 불만이 많으면 불행하다는 논리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글을 읽은 맹목적 긍적주의자들은 불평이 많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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