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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사춘기 강을 건넌 어른들을 위한 영화 우리들

by 썬도그 2016.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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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라서 그래"
기승전 사춘기입니다. 사춘기라도 이유가 있을 거에요. 또한, 들어볼 이야기가 있고요. 그런데 사춘기 아이가 자초지종을 어디 말하나요? 그냥 끙끙 앓죠. 엄마나 아빠는 이해 못할 이야기라고 미리 판단하고 말해봐야 이해하지 못한다는 선경험이 있어서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가 몰아쳐도 입을 꾹 다뭅니다. 그렇게 사춘기는 아름다운 기억이 아닌 절망과 공포로 하루 하루 채워집니다. 

아이들의 하루는 어른의 1주일 이상입니다. 어른은 그날이 그날이지만 아이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들은 하루 하루가 놀라움의 연속이자 깨달음이 영혼의 지문처럼 새겨지는 나이입니다. 이 나이가 가장 혼란스럽고 방황도 많이 하는 나이죠. 제 경험을 떠올려 봐도 중학교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나이입니다.

아침 조례가 끝나면 깡패 같은 녀석들이 앞에 나와서 노골적으로 돈을 걷기 시작합니다. 사육사가 사라진 사파리에서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뜯어 먹는 살육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초식동물인 저는 사육사는 어디 있는지 두리번 거렸지만 종례시간에 들어오는 사육사인 선생님은 살육의 느낌도 냄새도 발견하지 못 합니다. 

그러다 초식동물의 큰 상처를 보게 되면 육식동물에게 사정 없이 회초리를 휘두릅니다. 그 모든 과정을 지금 떠올리면 중학교 시절을 싹 지우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넌 참 무탈하게 사춘기를 보냈어"
그 말에 대꾸를 하지 않습니다. 대꾸 해봐야 어머니나 저나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속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무탈하긴요. 전 그 사춘기 시절에 지옥을 느꼈어요"


강 너머 마을 불구경을 하는 엄마 아빠들이 꼭 봐야 할 영화 '우리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아름답게만 포장된 내 추억이 송두리째 되새김질 당해야만 했습니다. 추억이라는 꿀이 발라진 유년 시절이 정말 그 시절이 아름답기만 했을까?라는 귓속말이 들려 왔습니다. 

판타지로 칠해져 있는 유년 시절을 다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친구와 웃고 떠들다가도 친구의 아버지 어머니의 직업이 떠오르고 집안 씀씀이나 용돈의 차이를 통해서 빈부 격차를 느끼던 나이. 전자오락실에 가서 친구가 하는 게임을 지켜보다가 친구가 인심 쓰듯 50원을 주던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정확하게 언제 알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친구 자체가 아닌 친구의 배경과 우리집과 친구네 집을 비교하게 된 시절을요. 윤가은 감독은 그 나이를 초등학교 4학년 한국 나이로 12살로 정했습니다. 


선(최수인 분)은 지아(설혜인 분)가 전학오던 날 같은 반 친구보다 먼저 알게 됩니다. 선은 친하게 지내던 보라와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왕따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엄마라는 울타리 밖을 나와서 친구들이 더 좋은 나이에 왕따가 된 선은 지아를 또 다른 친한 친구로 받아 들입니다.

그렇게 둘은 방학 내내 붙어 다닙니다. 서로에게 비밀 이야기도 하고 우정을 쌓아갑니다. 엄마에게 때를 써서 지아와 함께 동생 윤과 함께 밥을 해먹으면서 스스럼없이 지냅니다. 


그렇게 둘도 없는 친구로 보내게 된 어느 날 비싼 가격 때문에 문방구에서 사지 못한 색연필을 지아가 훔쳐서 선에게 선물로 줍니다. 그렇게 둘은 비밀까지 공유하게 됩니다. 그렇게 지아와 함께 집에서 자던 어느 날 이혼해서 아빠랑 사는 지아가 엄마랑 알콩달콩하게 지내는 선의 모습을 보고 뽀루퉁합니다.

12살이란 그래요. 나에게 없는 것을 친구가 가지고 있으면 그게 부러움을 넘어서 시기로 변질이 됩니다. 그렇게 뜻도 모를 지아의 질투에 이상한 기운을 알아채지만 정확하게 그걸 잘 모릅니다. 

선과 지아는 점점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핸드폰도 있는 지아와 핸드폰도 없는 선, 영어 학원을 다니는 지아와 영어 학원도 못 다니는 선 그렇게 둘 사이에는 거리가 생기고 그 거리는 건널 수 없는 큰 강이 됩니다. 지아는 선과 친했던 보라와 함께 어울려 다니고 선은 또 다시 홀로 놓이게 됩니다. 



12살이라는 부모라는 항구에서 나온 선과 지아의 방황기

지아는 방학이 끝나고 정식으로 전학을 하게 되고 선은 지아에게 손을 흔들지만 보라에게만 반응합니다. 선은 또 다시 외톨이가 됩니다. 이런 선의 속도 모르는 엄마는 선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을 하지 않아서 끙끙 앓기만 합니다. 엄마는 김밥집을 운영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김밥을 싸고 남편 뒷바라지도 하는 등 바쁘게만 지냅니다. 

선의 괴로움을 알지만 챙겨줄 시간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그저 사춘기라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죠. 
하지만 선은 엄마 품을 떠나서 첫 관계가 흐르는 바다에 나섰는데 망망대해에서 해매고 있었습니다. 윤 감독은 12살이라는 나이를 이렇게 정의 합니다. 엄마, 아빠라는 항구를 나서는 나이. 

부모님들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자신들의 품 보다는 친구를 1순위로 놓는 시절을요. 
그 시절을 보통 사춘기라고 합니다. 엄마 아빠 품의 포근함 보다는 다른 친구를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더 좋아하는 나이를요. 그리고 우리가 모두 지났던 사춘기라는 강을요.

어제 본 영화 '어린왕자'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어른이 되는 게 문제가 아니야. 어린 시절을 잊는 게 문제지"
정도는 다르겠지만 우리 어른들 모두 그 사춘기 시절을 지났습니다. 그런데 10년 20년이 지나면 그 시절의 떨림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영혼에 굳은 살이 박힌 중년과 이제 막 파릇파릇한 색으로 자라면서 모든 것이 새로운 아이들과는 시선 자체가 다릅니다. 

이런 시선의 차이를 영화 '우리들'은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 보다 친구가 소중한 나이의 생채기를 다큐식으로 담은 영화 '우리들'

남자 아이들보다 여자아이들이 무리지어서 잘 지낸다고 하죠. 엄마 아빠 보다 친구가 소중한 나이에 친구 하나 없이 지내는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럽습니다. 또한, 친구 맺기 과정의 서걱거리는 마찰음도 많이 나는 시기입니다. 영화 '우리들'은 이런 관계맺기의 어려움과 문제점과 사소한 것과 사소한 것일 수도 있는 것에서 차이를 느끼고 내편, 니편으로 갈리는 모습을 잘 담고 있습니다.

나와 너의 존재가 아닌 내 아빠와 너희 아빠의 직업의 차이와 빈부에 따라서 무리 짓기를 하는 살벌함도 담고 있습니다. 응팔에서 덕선이가 잘 사는 집 친구가 친구가 될 나이 이전의 철 없는 시절의 이야기 또는 요즘 아이들의 무리짓기를 통한 큰 고통을 담고 있습니다.


엄마는 물어봅니다. 그러나 선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게 아이들 사이의 룰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냅니다. 그렇게 선과 지아는 점점 사이가 크게 벌어집니다. 나이들면 다 철없던 시절의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시절은 그게 중요했습니다. 

어른들은 사춘기라서 그런가 보다라고 쉽게 넘어가 버리고 먼저 때린 친구만 탓합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요. 왜 싸우게 되었는지 그 나이의 떨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면에서 이 영화는 어른들, 특히 10대 사춘기 아이를 둔 엄마 아빠들이 꼭 봤으면 합니다. 잊고 살던 그 시절의 떨림을 이해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니까요.


봉숭아와 메니큐어

다큐멘터리인줄 알았습니다. 12살의 폭풍 같던 시절을 오롯하고 올곧게 담았습니다. 영화는 어려운 영화는 아닙니다. 은유가 가득한 영화는 아닌 우리들인 어른들이 잊고 살고 있는 사춘기 시절의 폭풍을 다큐멘터리로 담은 듯한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시절 감정의 폭풍이 떠올라서 자꾸 뒤척이게 되네요. 뻔한 감동, 뻔한 슬픔이 아닌 어른이라는 당신들이 가볍게 생각하는 '사춘기라서 그래'라는 말 이면의 폭풍과도 같은 사춘기 시절의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사소한 것에 사이가 틀어지고 무리짓기를 하고 내편을 부던히 많이 만들던 나이를 담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유일한 은유가 있다면 봉숭아와 메니큐어입니다. 핸드폰이 없는 선은 봉숭아를 바르고 핸드폰도 있고 학원을 다니고 용돈도 두둑한 지아가 바르던 메니큐어. 선은 봉숭아를 칠했던 손톱 위로 메니큐어를 발랐다가 다시 손톱 끝에 걸려 있는 봉숭아 물을 봅니다. 이 봉숭아와 메니큐어는 두 주인공의 감정과 관계를 은유하고 있습니다. 


금 안 밟았어!라는 내편이 필요한 시절을 담은 '우리들'

피구를 하던 선은 금을 밟았다는 친구들의 말에 "나 금 안 밟았어"라고 항의를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내편을 들어주지도 않습니다. 영화는 이 피구 장면을 앞과 뒤에 배치를 합니다. 외톨이와 외톨이가 만나면 외톨이가 아닙니다. 

저 어렸을 때는 외톨이가 없었습니다. 한 반에 60명이나 되어서 그런지 외톨이가 꽤 많았고 그 외톨이들끼리 모이면 외톨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외톨이들은 외톨이가 아닌 상태로 지냈죠. 요즘은 좀 다른 것 같네요. 한 반에 20~30명도 안 되는 교실에서 외톨이라는 주홍글씨가 써지면 바로 외톨이가 되나 봅니다. 그 살벌함이 무섭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그 살벌함을 사춘기라는 시선으로만 바라봅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혼자 세상을 견디는 것이 쉬울까요? 선과 지아는 어른들에게 제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네요. 선생님도 부모님들이 모르는 사춘기 소녀들의 고군분투에 잠시 한 숨이 쉬어지네요. 

그렇다고 누굴 탓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부디, 우리들이 건너온 그 사춘기라는 강을 흔한 통과의례가 아닌 무척 어렵고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알아봐 달라고 하는 손 짓 같네요. 

아역 배우들의 연기가 대단합니다. 최수인, 설혜인, 이서연 그리고 선의 동생 역을 한 강민준 군도 정말 대단한 연기를 해줍니다. 무엇보다. 여자 이창동 같은 감수성 9단인 윤가은 감독의 행보를 뒤쫒게 하네요. 다행스럽게도 윤가은 감독의 이전 단편 작품인 콩나물을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김시선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도 이전 작품인 단편 영화 '콩나물'을 감상해 보세요

단편영화 콩나물 보러가기 

꽤 괜찮은 영화입니다. 사춘기 자녀를 둔 엄마 아빠들에게 추천합니다.

별점 : ★★★★

40자 평 : 우리들이 건너온 사춘기라는 거센 강을 되돌아보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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