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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곡성. 믿고 싶은대로 믿고 사는 인간의 무지를 비판한 걸작

by 썬도그 2016.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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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역사에 남을만한 영화입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 영화를 옹호하거나 추천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고난 후 우리 인간의 무능과 무모함과 무지에 대한 구역질이 가득 나왔기 때문입니다. 뭔가 상쾌한 기분보다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구토를 한 바탕 하고 싶을 정도로 역한 기분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3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서 영화 속 장면 장면을 다시 떠올리면서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왜! 이 영화는 이렇게 기분 더럽게 만드는 것일까? 그 이유 찾기에 대한 정리가 어느 정도 되니 이제서야 영화 리뷰를 쓸 마음이 생기네요. 


시작은 코믹, 중간은 사회비판 다큐, 후반은 긴장 쩌는 스릴러

영화 <곡성>은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명작이나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제 기분이 너무 좋지 못하네요. 기분 같아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 너무나 독창적입니다. 

영화 <곡성>의 전체적인 톤은 스릴러입니다. 음산한 기운이 자박자박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스릴러라 구분하기엔 담고 있는 시선과 소재가 너무 다양합니다. 먼저 이 영화 웃깁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전남 곡성 농촌 마을에서 일가족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살인을 한 사람은 그 집의 가장인 한 남자였습니다. 귀신에 씌웠는지 몰골은 흉측하게 변했습니다.

이런 사건이 몇 건이 더 일어나면서 마을에 흉흉한 소문까지 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연쇄 살인을 다루는 경찰들의 무능력함과 처리 과정이 코미디입니다. 특히 경찰이지만 겁도 많고 소심하고 순박한 종구(곽도원 분)의 캐릭터는 전형적인 경찰과는 사뭇 다릅니다. 경찰이라는 이미지와 소심함이 충돌하면서 많은 웃음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영화는 초반의 웃음기를 지우면서 점점 미스테리한 연쇄 살인 사건을 진중하게 담습니다. 영화는 중반에 접어들면 일광(황정민 분)이 등장하면서 무속 신앙이라는 미신을 끌어들입니다. 산 속에 사는 일본인인 이름모를 외지인(쿠니무라 준 분)과의 대결을 통해서 무속 배틀이라고 할 정도로 긴장감도 점점 타오릅니다.

이 중간 부분을 보면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모습이 많이 느껴집니다. 실용과학이 발달한 한국, 최신 기술이라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 다른 나라들이 한국의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보고 반면교사로 삼는 나라지만 홍대나 종로 같은 젊은이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는 항상 이동식 점집과 점을 보는 집들이 엄청나게 많은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신랄하게 까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21세기 과학 시대에 무당이 공존하는 기이한 한국 사회를 자연스럽게 풍자하면서 비판도 합니다. 

그리고 영화 후반은 러시아룰렛처럼 긴장감이 팽팽한 스릴러로 변모합니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몰라서 갈등하는 종구의 모습을 통해서 범인을 밝혀내는 모습이 진행되고 동시에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사는 인간의 무지와 무능과 무모함을 모두 담아 버립니다.


강건너 불구경 하다가 내 일이 되자 이성을 잃어버린 인간의 자화상

마을에서 가족 중 한 사람이 미쳐서 일가족을 살해하는 일이 계속 일어났지만 경찰은 이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통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과학수사대가 내려와서 철저하게 수사를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영화에서는 그 흔한 과학수사대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는 이 영화가 과학을 제외한 세상 즉 과학으로 설명되어지지 않는 세상인 무속의 세계와 오컬트 같은 심령에 대한 이야기를 진중하게 하고 싶은 듯합니다. 

그렇게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주인공인 경찰 종구는 설렁설렁 근무를 합니다. 아니 소심한 성격이라서 적극적으로 캐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동료 경찰이나 동네 친구들이 전해주는 ~~카더라 통신을 경찰이 귀담아 듣습니다. 

그렇게 남의 일로 대하던 일가족 몰살 살인사건이 자신의 딸에게서 발현됩니다. 어느 날 딸이 귀신이 들린 듯한 행동을 하고 아버지에게 쌍욕을 하는 등의 이상 증상을 보이자 종구는 딸 효진을 살리기 위해서 안절부절 못합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지목하는 이상한 사람이자 모든 살인 사건의 시작점이라고 지목하는 산에 사는 일본인 외지인을 찾아갑니다. 

그렇게 일본인 외지인과 한 바탕을 한 후 딸의 병세가 더 심해지게 되고 딸의 귀신들림을 치료하기 위해 일광(황정민 분)이라는 무당이 투입됩니다. 영화는 일광이 투입되면서 웃음끼가 싹 사라지고 그 자리에 무속과 스릴이 점점 스믈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겁 많고 소심한 종구가 딸이 미쳐가는 모습 앞에서 점점 살기를 띄면서 영화는 거대한 활화산 같은 마지막을 향애 달려나갑니다.


이유 없는 것의 이유를 찾는 인간의 무모함을 비판한 영화 곡성

19세기말 서양 문물이 들어오고 서양인들과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이상하게 여겼던 것은 한국은 유교 국가이지만 무속신앙이 엄청나게 발달한 점을 기이하게 봤습니다. 산이 많은 나라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산에 가면 무당들이 제사를 지내는 곳이 꽤 많았습니다.

이 무속 신앙은 21세기인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고 한국의 한 뿌리 깊은 문화입니다. 
무속 신앙에서 흔히 말하는 '신들림'은 여전히 과학으로 설명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과학적으로 그걸 설명하려고 노력도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과학과 무속 신앙이라는 2개의 탑이 세워집니다. 이는 마치 한약과 양약 모두 인정하는 모습과 비슷하죠.

무속 신앙을 다룬 영화나 다큐는 좀 있긴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곡성>은 이 무속 신앙을 스릴의 한 요소를 투입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무속 신앙의 설명되지 않는 영험을 스크린 전체에 닭 피처럼 뿌려 놓습니다. 

딸 효진의 귀신들림 현상이 발생하자 종구는 동네 의원을 찾아가지만 이렇다할 설명을 듣지 못하자 낙담을 합니다. 딸의 몸에 난 두두러기에 대한 설명을 얻지 못한 종구는 한국 사람이라면 흔하게 생각하는 신들림이라고 판단하고 무당을 찾아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무당에게서 드디어 딸이 아픈 이유를 설명을 듣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이 영화 <곡성>이 우리에게 주는 핵심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요렇게 소문이 파다하면 말이여 무슨 이유가 있는 거여 이유가"


라는 대사처럼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면 그 이유를 궁금해 합니다. 대부분의 일들은 이유가 밝혀지고 우리는 그 이유를 머리 속에 저장하고 하나의 경험 단지에 넣습니다. 

그러나 딸의 병에 대한 이유를 모를 때 무당 '일광'은 아주 의미심장한 대사를 합니다

"자네 낚시할 적에 뭐 어떤 게 걸려 나올지 알고 하는가? 그 놈은 낚시를 하는 거여.  뭐가 딸려 나올지는 몰랐겄지 지도" 

주인공 종구는 아무 죄도 없는 딸이 왜 아파야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당에 기대고 성당 신부님을 찾아가고 병원을 찾아가는 등 이유 찾기에 나섭니다. 그러나 세상 일이라는 것이 대부분은 이유가 있지마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이 더 많습니다. 길을 가다가 교통 사고가 났을 때 우리는 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교통 사고가 나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건 이유가 없습니다. 

어떠한 원한 관계도 아니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온갖 경험 단지의 뚜껑을 열어서 과거에 내가 했던 악행 때문인지 아니면 내 기도가 약해서인가? 등등의 별 이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나마 교통사고는 이유 찾기를 하지 않지만 갑작스러운 연쇄 살인 사건이나 신들림 같은 일이 발생하면 여러가지 이유를 댑니다. 

굿을 안 해서 그런다느니 조상이 노해서 그랬다느니 온갖 이유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유를 듣기 위해 종교를 찾고 과학을 찾고 무당을 찾습니다. 그렇게 여러 곳을 찾아가서 가장 합당하다고 느껴지는 곳에 온 믿음을 줘 버립니다. 거기서 부터 인간은 현혹되기 시작됩니다.

그렇다고 과학과 무속신앙과 종교를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설명되어지지 않는 것들이 주는 공포로부터 각자의 논리로 설명해줘서 인간 마음의 불안감을 치유해 주는 역할을 무속 신앙이 과학이 종교가 철학이 하고 있는 점을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즘 청춘들이 좋아하는 청춘 콘서트에서 내 삶의 방향을 알려줄까요? 아닙니다. 강연자들은 걱정하지마라 참고 견디면 미래는 항상 밝다라는 정형화된 설명을 듣고 역시! 희망의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는구나라고 기쁜 마음을 챙겨 들고 나오죠. 청춘 콘서트 강연자들이 하는 역할은 두렵고 불안한 맘에 몰핀을 투입해서 진정 시키는 역할 뿐입니다. 

똑같습니다.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또한, 설명되어지지 않는 것들은 설명되어지지 않는 것이 바릅니다. 
그런데 그걸 억지로 온갖 논리로 설명하고 우리는 그 논리에 취해서 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이유찾기는 영화가 끝나면 시작됩니다. 그때 그 장면은 이런 이유였구나! 아 그 장면 그래서 그랬구나. 그런데 몇몇 장면은 그 이유를 모르게네? 식으로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 찜찜함 속에서 영화 속 장면 하나 하나를 떠올리면서 이유찾기를 시작합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이 영화는 논리적인 영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이유 없는 장면도 많고 설명되어지지 않는 장면도 많은데 그건 각자 찾으라는 소리 같기도 하지만 애초부터 이유가 없는 것도 많을 듯하네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에 허물어지는 인간의 인식체계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경험단지에 넣었다가 비슷한 경험이 일어나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과 함께 내 경험이 진리라고 우깁니다. 특히, 경험단지가 많은 나이든 사람들이 흔하게 겪는 인식의 오류죠.  아무리 오래 살아도 세상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나이가 많아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계속 나옵니다.

문제는 자신의 경험만을 믿고 그 경험 울타리를 벗어난 새로운 경험을 하면 혼란을 겪습니다. 영화 <곡성>은 이 부분을 살벌하게 담습니다. 스포라서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겠지만 기존의 오컬트 영화나 심령 영화에서 보던 정형성을 파괴하면서 영화는 크게 요동을 치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과학을 배제 시킵니다. 신기하게도 유일하게 과학에 기대라고 말하는 사람은 종교인인 신부님입니다. 딸이 아프다는 소리에 직접 귀신을 봤냐면서 다 어디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말고 병원에 가보라고 합니다. 병원이라는 기존의 과학체제를 살짝 보여주지만 심령현상 앞에서는 과학도 쉽게 무너져 버리면서 영화는 점점 비가시적인 세상이자 증명할 수 없지만 없다고 할 수도 없는 불가지론을 적극 끌어드립니다.

이 비가시적인 세상인 심령의 세계를 이용해서 습한 공기를 계속 증폭시킵니다. 우리가 느끼는 공포의 8할은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많습니다. 영화 <곡성>은 2시간 동안 그 무지에서 오는 공포를 영화 전체에 뿌려 놓아서 공포에 대한 민감도를 바짝 끌어 올려 놓습니다. 



보고 싶은 대로 보여지는 관객의 거울 같은 신기한 영화 곡성

영화를 보고나서 이 영화의 별점을 3개 주려고 했습니다. 기분이 너무 찝찝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정신을 다시 가다듬고 복기를 해보니 이 영화 별 3개를 감정적으로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되어지네요. 별 5개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영화는 엄청난 영화입니다. 

그 엄청난 이유는 정말 근 5년 안에 본 한국 영화 중에 정말 독특한 영화였습니다. 소재도 스토리를 풀어가는 방식도 스릴이나 연출 등등 모든 것이 생경스러웠습니다. 마치 녹색이라는 생명이 가득한 산 속을 2시간 30분 헤맨 느낌이었습니다. 그 강렬한 에너지가 가득한 영화입니다. 

이 낯설고 날선 영화라는 자체만으로도 이 영화는 별 5개를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별 5개를 준 이유는 또 있습니다. 이 영화는 영화를 본 관객의 마음을 현혹시키는 영화입니다. 장르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여러 개의 장르로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스릴러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스릴러로(대부분이 범인 찾는 스릴러로 느끼겠지만) 코미디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코미디로 저 같이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사회 비판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다큐 영화로 느껴집니다. 

보고 싶은 대로 보여지는 독특한 영화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사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세상의 본질은 하나지만 우리는 그 각자의 믿음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개인화 된 세상의 본질을 보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네요. 

영화 마지막 장면은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모습에서 관객을 향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주네요. 우리가 참이라고 생각하는 사진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 그래서 온갖 거짓에 현혹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는 말 같아 보였습니다. 

별 5개를 주는 영화지만 적극 추천은 못하겠네요. 기가 쪽 빨리는 영화입니다. 이 말을 빼먹었는데 출연한 모든 배우가 모두 연기를 기가막히게 잘 하네요. 특히 '쿠나무라 준'과 김환희양은 영화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보여줍니다. 

40자평 : 잔혹코믹스릴심령다큐멘터리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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