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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전시회

추천하는 사진전. 한불수교 130주년 사진전 보이지 않는 가족

by 썬도그 2016.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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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점심은 없을 지 몰라도 공짜 사진전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공짜라서 사진전 수준이나 질이 떨어진다고요? 감히 말하지만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비싼 입장료 내고 보는 사진전 보다 더 좋은 공짜 사진전도 많습니다. 특히,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하는 사진전들은 공짜로 보기 미안할 정도로 뛰어난 사진전들이 많습니다.

이번에도 그 공짜로 보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빼어난 사진전을 보고 왔습니다. 


한불수교 130주년 사진전 보이지 않는 가족

올해로 한국과 프랑스가 국교를 맺은지 130년이 되었습니다. 100년도 아니고 130주년인데 이걸 또 챙겨서 기념하네요. 뭐 아무튼 그래서 양 국가가 문화적 교류를 하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서울시립미술관은 '보이지 않는 가족'전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 '보이지 않는 가족'전은 1950년대에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기획해서 전 세계에서 전시를 한 '인간가족 사진전'이 너무 미국인의 시선이 반영된 사진전임을 비파는 시선에서 나온 사진전입니다. 1950년대 이후의 현대 사진 210여점이 소개되는 사진전입니다. 


'보이지 않는 가족'은 사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면 대부분이 아는 '롤랑 바르트'라는 사진비평가이자 철학자의 '카메라 루시다'라는 책 등을 기반으로 한 사진전입니다. 스타이켄의 '인간 가족'전에 대한 반감으로 '인간 가족'사진전에 초대받지 못한 존재들을 초대해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반골 기질은 프랑스인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프랑스 사람들이 문화 유럽 역사를 대표하는 국가인데 2차 대전 이후에 미국으로 금융, 문화 등이 미국이 주도권을 잡자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를 알아 들으면서도 관광객이 영어로 질문하면 못알아 듣는척 한다고 했죠. 롤랑 바르트도 마찬가지죠. 미국 놈(?)들이 사진 주도권을 가지가자 비아냥 또는 반감을 가지고 '인간 가족'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그 비판의 시선이 모여서 '보이지 않는 가족'사진전이 나왔습니다.

전시회는 서울시립미술관 2.3층에서 이루어졌는데 저는 2층만 하는 줄 알고 그냥 나와버렸네요. 약속도 있어서 다 돌아보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뭐 천상 또 한 번 가야겠네요

2층에 들어서면 빨간 방이 나옵니다. 전시장 전체가 빨간색으로 도배되어 있는데 이 빨간색은 왕가의 색입니다. 롤랑 바르트는 신화론이라는 책에서 거대한 신화들을 해체합니다. 신화의 위치에 있는 왕, 아버지, 군인, 성공한 남자, 신사 같이 가부장적이면서도 권위적인 이 시대의 권력자를 말로 까고 해체합니다. 그 권위주의의 상징이 왕가죠. 


그래서 입구에 이런 왕가의 보물 같은 것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권위주의 까는 것 정말 좋아합니다. 권위를 내세우려고 하면 몸이 반응할정도로 권위에 대한 저항이 심한 저에게는 딱 좋은 빨간방이네요. 



이 사진은 2장의 사진을 봐야 합니다. 1장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를 사진으로 촬영한 사진으로 실물 크기의 2분의 1 크기입니다. 이 모나리자를 바라보는 관람객의 사진을 오른쪽에 배치했습니다. 마치 루브르 박물관 현장에 와 있는 듯한 사진이죠. 이 사진은 로베르 두아노 사진가의 사진인데 아주 위트가 넘치는 사진입니다. 유명 미술품과 그걸 관람하는 관람객 그걸 또 관람하는 관객 이 3각 관계가 유머러스합니다. 

자기객관화의 한 모습같기도 하네요. 


<우월한 동물들 / 로베르 두아노 1954년>

세계적인 사진가인 로베르 두아노는 유머러스한 일상 사진을 많이 촬영했습니다. 선원 옷을 입은 원숭이를 사람들이 원숭이 구경하듯 합니다. 그러나 사진만 보면 원숭이가 인간처럼 도도한 자세를 취하고 있고 인간이 원숭이를 우러러 보고 있습니다.  누가 원숭이이고 누가 사람일까요? 우리가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인간의 자만 아닐까요?




권위 파괴하면 이분 뻬놓을 수 없죠. 바로 현대 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프 쿤스'입니다. 1998년 제프 쿤스는 '진부'라는 전시회를 엽니다. 
이 전시회를 위해서 미국의 유명 미술잡지인 플래시 아트, 아트, 아트포럼 등에 자신의 전시회를 광고하는 광고를 싣습니다. 



그리고 그 광고를 포스터로 인쇄해서 돈을 받고 판매를 합니다. 광고는 돈을 주고 하는 것인데 잡지에 실린 자신의 광고를 돈을 받고 판다? 좀 깨는 발상이지만 이게 제대로 먹힙니다. 미술은 잘 모르지만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시선이라면 미술계는 물개 박수를 쳐줍니다. 그 새로운 시선이 문제가 되거나 분란을 일으켜도 일단 새로운 시선, 새로운 아이디어면 일단 인정해주고 박수를 쳐줍니다.

창의 창의 하는데 미술계만큼 창의가 각광받는 분야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왜 광고를 돈 주고 살까요? 모르긴 몰라도 예술에 대한 허세가 한 몫 했을 것입니다. 나도 예술 좀 아는 여자야. 나도 미술 좀 보는 남자야~~라고 말하고 싶은 중산층에게는 키치적이고 팝아트적인 가벼운 예술이 잘 먹혀 들어갑니다. '제프 쿤스'는 그 중산층 아니 일반인들의 예술에 대한 욕망을 아주 잘 찝어내는 미술가입니다.

솔직히 제프 쿤스가 미술가라고 하기에도 애매하죠. 최근에는 조수들이 아이디어부터 기획까지 하는 전시회도 많아졌습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전시장에서 셀럽들과 수다 떨면서 자신의 위상만 유지하는 행동을 보입니다. 마치 연예인 같아졌음에도 여전히 잘나가는 예술가입니다. 





두번 째 방은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이 두번 째 방은 '중립 안으로'라는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1950년대 이후 컨텀포러리 아트라는 동시대 예술이 유행이 시작됩니다. 강한 충격, 자극적인 시선과 생각이 난무한 예술계에 열광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과격한 생각에 지쳐버린 사람들도 속출합니다.


이에 가치 중립적이고 아무런 사상과 생각을 담지 않는 무생물 같은 시선을 옹호하는 시선이 생깁니다. 가치 판단하기 힘든 미니멀하고 중립적인 작품들이 중립의 색인 하얀색 벽지 위에 나열되어 있습니다. 




 

하얀 방에는 '랄프 깁슨'과 '워크 에반스' 같은 즉물주의 사진가들의 사진들이 가득합니다. 이중에서 '토마스 데만트'의 방이 눈에 들어오네요. 
토마스 데만트는 안드레아스 거스키처럼 신즉물주의를 부활시킨 사진가입니다. 사진에는 실제 사물과 공산품이 섞여 있습니다. 이는 산업 디자인이 원형질로 향하는 것이 큰 역할을 했죠



이 작품은 작가 이름이 기억나지 않고 제목도 제대로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아마 흑인 여성 시리즈로 기억됩니다. 얼핏 보고는 흑인 여성 3명을 촬영한 사진으로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흑인으로 분장한 동양인과 백인이 있네요. 가운데만 흑인이고 다른 여성들은 흑인 분장을 했습니다.

뭘 표현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이 모습을 보면서 생물학적인 인종과 가공된 인종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좋은 예는 아니지만 한국 젊은이들의 문화라고 하는 힙합 문화도 사실 동양인 문화가 아닌 미국 흑인 문화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20대 문화로 섭취하고 있습니다. 무비판적인 수용이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흑인 문화에 대한 동경심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전시는 3층으로 이어지고 3층에 볼만한 사진, 유명 사진이 많은데 이것도 모르고 나와버렸네요. 아쉽네요. 다음에 또 들려서 3층도 들리고 일민미술관도 들려봐야겠습니다. 이 전시회는 일민미술관에서도 연계를 하고 있습니다. 일민미술관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쪽길로 나가면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한불수교 130주년 사진전 <보이지 않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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